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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기도 양식, '예수 이름' 국한할 수 없어"기도의 양식보다 중요한 기도의 내용, 하나님 나라"
목회자 세미나, 민중의 이름으로 기도에 대한 성찰
고수봉 기자 | 승인 2015.01.14 03:07

   
▲ 12일(월) 전주성경학당과 한신구약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세미나에서 '민중의 이름' 기도에 대한 신학적 토론이 진행됐다. ⓒ에큐메니안
지난해 11월 한신대 신학대학원 채플 당시, ‘민중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는 기도로 논쟁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전주성경학당(이영재 원장)과 한신구약학회는 제2회 목회자 신년세미나를 공동으로 주최하면서 주제를 ‘민중의 이름으로 기도에 대한 성서신학적, 목회적 성찰’로 잡았다.

12일(월) 전주중부교회 비전센터 2층에서 오후2시부터 시작된 세미나는 1부 예배를 시작으로 2부 순서에서 본격적으로 ‘민중의 이름’ 기도에 대한 토론을 이어갔다. 세미나 발제자로는 논쟁을 던진 당자자 김형우 학생(한신신대원 M.div 3/4)을 비롯해 이영미 교수(한신대 구약학), 우진성 목사(과천영광교회), 김상기 박사(한신대)가 나섰다.

세상 속에 화육된 신에 대한 고백

   
▲ 김영우 신학생. ⓒ에큐메니안
먼저 김형우 학생은 ‘민중의 이름’ 기도에 대해 성서 신학적 해명을 시도하고자 했다. 그는 세월호 사건을 언급하면서 “‘돈보다 생명이다’라고 울부짖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봤다”며 “이 외침은 기도였으며, 진정한 예배로 다가왔다”고 기도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민중을 예수(민중예수)로 보게 하는 사건이었으며, 민중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이라면서 “주술적으로 말하는 예수가 아닌 역사 속에서 현존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출애굽기 3장의 가시덤불은 고난당한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이기 보다는 ‘물(物)’이 되신 야훼로 생각된다”며 가시덤불을 통해서 자신을 보이신 것처럼 하나님은 고난 받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즉, 모세는 ‘가시덤불’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하나님은 출애굽기 3장 14절, ‘나는 곧 나다(공동번역)’라고 자신을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에서도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히브리어에는 ‘존재하다(to be)’라는 동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존재’가 아닌 ‘그의 일’로 파악해야 한다”며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경험”이라고 성서적 해명을 이어갔다.

요한복은 1장, ‘육신이 된 말씀(로고스)’도 이와 같은 맥락을 가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말씀은 ‘태초에 있은 자’, ‘하나님과 함께 있은 자’, ‘사람들의 빛이 되는 생명을 가진 자’로 이야기 된다. 하지만 육신이 되기 전까지 피조물들은 그를 깨닫지도 알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세월호 사건에서 발견한 민중은 출애굽기의 ‘떨기나무’와 요한복음의 ‘육이 된 말씀’처럼 화육하신 하나님의 모습으로 이해된다. 이에 대해, 그는 “하나님은 역사 현장에서 오늘도 일어나고 있는 민중사건 속에 계속 화육하시고, 물적인 형태로 계속 재현되는 것”이란 안병무 박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민중을 통해 예수님을 경험했고, 이를 기도를 듣는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정리했다.

   
▲ 발제자들은 공통적으로 성서의 문자적 해석이 '민중의 이름' 기도를 거부할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에큐메니안

민중? 예수? 중요한 것은 기도의 내용

   
▲ 김상기 박사. ⓒ에큐메니안
시편40편을 통해 기도의 의미에 대해 짚은 김상기 박사는 “주기도문의 핵심개념은 하나님 나라로 모든 내용이 이에 연관되어 있다”며 그런 측면에서 “시편의 내용은 주기도문에 담겨져 있는 것들(하나님 나라)과 일치하고 있으며, 하나의 기도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김 박사가 지목한 시편 40편은 ‘깨달음-야훼와 그의 구원사 선포-제도권과의 충돌-고난’의 순으로 전개된다고 한다. 그런 과정에서 시편기자는 “오만과 거짓으로 무장된 권력자들의 길을 곁눈질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그에게 실존적 위기 상황에서 기도는 자신의 구원과 적들에 대한 보복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1-10절)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시편기자가 맞은 사회는 제사장 집단이 권력을 장악한 사회로, 그가 선포한 말씀은 기존 종교제도와 충돌될 수밖에 없는 내용”이라며, 시편기자는 11절부터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호소하기 시작한다. 그 이면에는 “여러 사람들, 즉 ‘거짓을 따라가는 사람들’, ‘교만한 사람들’(4절)의 공격이 있었을 것”으로 해석했다.

그런 시편기자의 기도 내용의 핵심은 “적들의 현재를 뒤바꿔서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그들이 조롱당하고, 생명의 위협으로 수모를 당하게 해달라는 것, 즉 하나님의 보복을 요청한 것”이라며 “시편기자에게 기도는 분노의 표시이며, 그의 현실에서 분노할 줄 모르는 기도는 종교, 정치, 경제적 권력을 지지하고, 지탱시켜는 결과 밖에 안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도에 있어 어떤 형식으로 기도하느냐 보다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가 중요한 논의”라며, “우리의 언어를 정제하는 것이 기도는 아닐 것, 기도가 단순한 말장난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의 악의 현실이 누구에 의한 것인지 파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기에 김 박사는 “성서에서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보복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으로 소개한다”며, “현실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을 때에만 성서에서 얘기하는 기도가 될 수 있으며, 민중 또는 예수 이름으로 하는 기도, 그러한 형식을 넘어 참된 기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정리했다.

신학적으로 ‘민중’, 해석학적 관점으로

   
▲ 이영미 교수. ⓒ에큐메니안
이영미 교수는 구약의 다양한 기도의 형태와 내용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이번 주제와 관련해 관심을 끄는 것은 히브리 성서의 ‘중보기도’”라며 “중보기도는 ‘누구를 대신해서’ 드리는 기도인데, ‘누구’는 다양한 이유로 자기 스스로를 위해 기도할 힘을 상실한 약자를 위한 기도”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히브리 성서에는 중보기도의 사례가 많이 등장하고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중보자란 성서적 전거로 제시하기 어렵다”며 이러한 중보기도는 “왕정시대에는 예언자의 직무였으며, 포로기 이후에는 제사장의 직무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구약성서의 기도에서 ‘이름’은 곧 하나님의 ‘현존’이나 ‘능력’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히브리 성서의 기도는 하나님께 직접 드려지는데, 어떠한 관용구도 기도의 종결구로 사용된 예는 발견되지 않는다”며, ‘이름’과 관련한 예레미야 10장 25절의 경우도, “중보적, 대속적 의미가 아닌 야훼를 기도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족속”이란 뜻으로 설명했다.

이런 토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기도에 대한 언급을 신약성서에서 찾을 수 있지만, 초대교회나 초대교부들에게서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초대교회의 기도서인 <디다케>에는 종결구가 나타나지 않으며, 세라피온의 <예배서>의 기도에서는 ‘그분을 통하여’, ‘성령 안에서’, ‘이제와 영원히 아멘’ 등”이라고 소개했다.

   
▲ 발제자들의 발표 이후, 참석자들의 다양한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다. ⓒ에큐메니안
이영미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 기도의 전통이 칼빈의 개혁교회 전통에서 찾았다. 그러나 이 교수는 칼빈이 ‘칼빈의 기도로’에서 성서적 전거로 든 요한복음 3장 14절, 16장 24절, 디모데전서 2장 5절 등에 대해 “성서적 전거들을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성구를 인용하는 등 성서를 증빙자료로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성서 속에 다양한 전통이 내포되어 있음을 간과하게 만들며, 오직 문자적 인용에 적합한 것만이 성서적이라고 독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근본주의를 양산하게 할 위험이 있기에 조심해야할 성서 읽기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그는 “‘민중의 이름으로 기도’에서 ‘이름’은 중보자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민중을 대신해서, 민중의 ‘자리’에서, 민중과 ‘함께’ 하나님 앞에 간구함을 뜻한다”며 “‘민중’이라는 단어는 매우 상황적이고 유동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해석학적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기도 양식, 초대교회 ‘예수’ 없이도 기도

   
▲ 우진성 목사. ⓒ에큐메니안
마지막으로 우진성 목사는 신약성서와 초대교회 전통에서 나타난 다양한 기도의 전통들에 대해 소개했다. 그러나 그는 성서와 초대교회 전통의 표면적 증거를 기도에 대한 직접적인 내용으로 삼을 수 없다고 한다. 여기에는 다양한 기도의 전통이 있으며,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문자적인’ 답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 목사는 복음서, 사도행전, 바울서신 속에 나타나는 기도와 관련된 ‘예수 이름’에 대한 자료를 분석했다. 그에 의하면, 요한복음 후반부의 큰 주제 중 하나는 “‘하나님-예수’ 사이의 친밀한 관계, 곧 아버지-아들 관계가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로 확장된다는 것”이라며, “예수 안에 거하는 자들도 ‘하나님-예수’, ‘아버지-아들’의 친밀함에 참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사도행전의 경우, 예수에게 드리는 기도가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도행전의 특징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예수의 이름’을 분명히 언급한 것과 기도의 대상이 예수인 기도가 많다”는 설명과 함께, “그리스도인의 또 다른 표현이 예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라고도 전했다.

그는 다양한 기도의 양식을 전하면서 “초대교회가 예수에 대해 가졌던 가장 본질적인 신앙고백은 그가 죽었다가 살아난 분이라는 고백”이라며,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높여졌고, 하나님과 함께 예배와 숭배의 대상이 됐다”고 전했다. 적어도 삼위일체 교리가 발전하기 전, 초대교회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동시에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기도 끝에 주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통하여’라고 반복적으로 고백했다. 이에 대해, 그는 “4세기에 이르러서야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중보자 되고, 하나님과 연합하는 통로가 되며, 능력의 원천, 신앙의 근거가 된다는 고백을 담아낼 기도 문구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초대교회에서 많은 경우 ‘예수 이름’없이 기도했지만, ‘민중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근거도 알지 못한다”며, 그러나 “그리스도교 기도에는 예수 신앙이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고 끝마쳤다.

고수봉 기자  gogo9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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