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광화문은 분수 광장에 모여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활기찬 곳이다. 그러나 세월호 유가족이 단식농성을 시작하자 분수광장도 슬픔에 잠겼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사라졌다. 이제는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목소리, 아이들의 생명을 삼킨 차디차고 시커먼 바다처럼 아이들의 웃음을 삼켜버렸다. 분수는 더 이상 솟아나지 않았고 분수광장은 사막이 되어 모든 것을 불살라버릴 한여름 태양의 열기로 더욱 뜨겁게 달아올라 광장에서 단식하는 이들을 질식시키고 있었다. 304명의 생명이 수장되는 것을 목도하고 흘렸던 눈물보다 더한 땀을 쏟아내도록 담금질하는 듯했다.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이를 잃고 슬픔 속에서 왜? 내 아이가 죽어가야 했는지를 밝히려는 피끓는 절규에 그저 함께 단식하며 삶을 함께 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은 사막이다. 광야다.

광화문 분수 광장이 광야라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 단식을 시작하니, 먹고 사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 있는 모든 이가 먹지를 않으니 먹는 건 중요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단식을 하니 허기가 밀려왔다. 허기가 밀려 올 때는 물을 마셨다. 금식 삼일째가 되는 날, 화장실에 가기위해 일어서는데 하늘이 노랗다. 어지러움이 일어난다. 광화문의 소음과 무더위, 그리고 단식이 겹치니 사순절 기간의 금식과는 달랐다. ‘이러다 쓰러지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되는 순간, ‘아! 살고 죽는 것이 먹고 사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회 수요일 아침 TV 생중계로 304명이나 되는 이들이 수장되는 것을 지켜 본 나는 살고 죽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생명이 가장 중요했다. 영원한 생명이 중요했다. 단식만 나를 괴롭힌 것이 아니다. 하루 종일 천막에 앉아 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리가 저려 왔다. 양반다리를 하다 발이 저려 오면 무릎을 꿇어 앉았다. 시간이 지나자 영락없는 수도자와 같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가? 하루 종일 렉시오 디비나를 하니 고통의 시간은 은혜의 시간이  되었다. 시간은 은혜의 시간이 되었다. 광화문 천막으로 들어 온 순간부터 나의 삶은 지극히 단순해졌다. 여벌 옷 한 벌만 가지고 한 여름을 광화문 광장에서 지내다보니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삶이 펼쳐졌다. 삶이 아주 단순해졌다. 삶이 단순해지니 성경의 말씀이 선명하게 이해되었다. 교부들이 사막으로, 광야로 들어간 이유는 말씀의 본질, 진리를 찾는 삶을 살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꿀과 석청을 먹으며 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하느님과 세계, 그리고 인간을 관통하는 진리를 찾으려는 몸부림이었으리라.

▲ 7월 28일 세월호 단원고등학교 희생자 유가족과 동조단식하는 이들

내리쬐는 태양에 광화문 분수 광장은 서서히 달아올랐다. 숨이 막혀 오기 시작할 무렵 불현 듯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는 이야기(마 4:1-11, 눅 4:1-13)가 겹쳐졌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께서 밤낮 사십 일을 금식하시니 시장하셨다. 그런데 유혹하는 자가 와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라고 말하였다. 간단히 요약하면 돌로, 밥을 만들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돌로 빵을 만들고 있다. 돌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다. 바벨탑을 만들 때, 돌 대신 벽돌을 구웠고, 흙 대신 역청을 쓴다. 돌과 흙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돌(실리콘)로 반도체 만들어 돈 벌어 먹고 살고 있다. 돈이 중심인 세상. 이번 세월호 사고의 중심에는 생명보다 이윤이 우선인 세상이 버티고 있다.

예수께서는 "성서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신 8:3) 하지 않았느냐?" 하였다. 예수께서는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된다는 세상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를 살린다.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신 그 말씀이다.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말은 하느님의 뜻과 섭리와 의지, 그리고 질서대로 창조하셨다는 이야기다. 이를 종합해 보면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인간은 등 따뜻하고 배불러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뜻과 섭리와 의지 그리고 질서 안에 산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먹는 밥은 배부르게 하는 것을 넘어 하느님의 모든 창조의 과정과 섭리가 밥이 되어 우리의 생명을 살린다는 것일 이야기 하신 것이다. 쌀 한 톨에 하느님의 창조의 모든 섭리가 담겨있다. 배부르게 하는 밥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순리가 우리를 살린다는 이야기다. 지금 이 시대에 꼭 맞는 말씀이다. 세월호 사건은 생명보다 이윤을 챙기는 신자유주의의 결과이다. 다시 말하면, 돌로 빵을 만들라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사건이었다.

악마는 포기하지 않는다. 악마는 예수를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 보시오. 성서에, '하느님이 천사들을 시켜 너를 시중들게 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시편 91:11-12) 하지 않았소?"하고 말하였다. 악마의 유혹은 달콤하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한국교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빠진 유혹이다. 하느님의 백성이라면 뭐든지 가능하다는 유혹이다. 높은 곳에서는 떨어진다. 만유인력은 하느님의 창조 질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이것이 창조의 순리다. 그런데 악마는 지금 하느님의 순리를 벗어나 무엇인가를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시도를 하라고 한다.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지면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복일까? 복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죄악이기도 하다. 하느님의 순리에 맞으면 복이요. 순리를 거역하면 죄악이다.

예수께서는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칠십인역 신명 6:16.)는 말씀도 성서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이라도 순리를 거스르는 것을 원하지 않으실 분이라는 것을 예수께서는 너무도 잘 아셨다. 하느님의 창조의 섭리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기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이와 동시에 하느님의 섭리,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악행에 대한 경고를 하신 것이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일련의 과정들은 하느님의 섭리,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총체적인 악의 결과이다.

포기할 악마가 아니다. 악마는 다시 아주 높은 산으로 예수를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며 "당신이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하고 말하였다. 세상의 모든 나라와 화려한 모습에 현혹된 무리들의 욕망을 막을 수 있을까?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선악의 구별은 없다. 옳고 그른 것은 필요치 않으니 권세 있는 이들에게 머리를 조아려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다. 이것이 지배 이데올로기다. 오늘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여기에 있다. 권력에 순종하면 부를 얻고 출세한다. 나에게 편안함과 안락함, 주지육림을 제공하면 좋다. 악마는 남이야 죽든 말든 나만 잘살면 된다는 탐욕의 본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번영신학에 환호하는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느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 그 복이란 다름 아닌 물질의 풍요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이 왜? 물질에만 한정되어 있을까? 편안함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까? 탐욕에 물든면 선악의 분별력은 사라지고 악을 서슴지 않고 행한다. 온갖 불의와 직간접적인 폭력을 휘두른다. 뿐만 아니라 악을 내면화시켜 부지불식간에 이웃의 삶을 송두리째 지배하고 무너뜨리며 자신들의 배만 채우며 죽음으로 내모는 야만을 서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영혼을 팔아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탐욕의 정체라는 것을 악마는 교묘히 숨기고 있다.

▲ 7월 28일 7.30 재보선 승리를 위해 세월호 특별법에 총력하겠다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를 광화문 천막에서 바라 본 모습

세상을 호령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면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 7월 28일, 새정치민주연합은 7.30 재보궐 선거에 앞서 의원총회를 한다. 그 장소가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 분수광장이었다. 기자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의원총회의 핵심은 세월호 특별법을 통한 대국민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었다. 광화문 분수광장에 가기위해 새정치민주연합의 국회의원들은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이 단식하는 천막을 지나갔다. 정부와 여당의 무능을 비판하며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데 당의 역랑을 집중하겠다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국회의원들 중 단식중인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에게 인사를 건넨 국회의원은 세 명 뿐이었다. 그들의 진정성이 어디 있는가? 그들의 진정성은 세월호의 슬픔에 공감하는듯하지만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들의 뻔뻔함은 선거의 패배로 나타났다. 야당에게 기대한 국민들의 패배감이 컸다. 왜? 국민들이 패배감에 휩싸여야 하는가? 국민은 패배하지 않는다. 국민은 심판할 뿐이다. 국민의 판단은 정확하다. 국민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이 패한 것이다. 나는 그 날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에 미혹되어 악마에 절하는  현실을 목도했다.

"당신이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달콤한 악마의 유혹에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신명 6:13.)하시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오늘날 물질을 탐하며, 권력을 섬기며 하느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현실에 침묵하고 지배 이데오로기를 제공하는 교회는 하느님을 잊었다. 세월호의 슬픔이 깊이 잠긴 광화문 광장에 하느님을 잊은 교회는 없었다. 하느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이들은 슬픔을 공감하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고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의원총회가 끝나자, 정적을 깨고 분수광장에 분수가 솟아올랐다. 내 아이 잃은 슬픔에 자라나는 아이들의 물놀이 즐거움을 앗아가는 것은 옳은 일인가? 내 아이는 세상에 없지만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에 진실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유가족의 단식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분수를 재가동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심스런 나의 제안에 유가족들은 흔쾌히 동의했다. 그리고 서울시에 분수의 재가동을 요구했다.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분수가 가동되자 신나게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유민이 아빠와 민우 아빠의 얼굴을... 나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즐겁게 뛰어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도 소중하면서도 아픈 감정의 소용돌이는 가슴 뭉클한 희망이었다.

▲ 새정치민주연합의 의원총회가 마치자 광화문 분수광장에 분수가 솟아 오르는 모습

▲ 그동안 분수가 가동되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분수광장에 분수가 솟아 오르는 것을 보며 지나가는 어린 아이의 모습.

이윤상 목사  rev.yoons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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