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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모자라던 날 2<안상님의 살아온 이야기-1991.8.31>
안상님 | 승인 2015.01.14 12:26

6시 정각에 여교역자회관 문을 나섰다.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지 정문이 잠겨있어서 지하실로 가서 부엌문으로 나왔다. 무조건 용문역으로 가면 가는 길이 있겠지 하고 나서기는 했으나 큰길까지 나와 보니 트럭이나 버스는 지나가는 데 택시는 별로 다니지 않는다. 차마다 혹시나 태워줄까 하고 손을 들면서 초조히 기다렸다.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어야 했나? 이러다가 인신매매단에라도 끌려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나이에 인신매매를 걱정해야하니 우리나라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70년대 산업개발 이후 사람들이 강퍅해지기만 했나 보다. 조금도 여유가 없이 몰아붙이니 짜증내고 한탕하려 드는 게 보통이다. 한참 후에야 중형 택시가 나타났다. 용문역 간다고 하고 나서 용문역에 가면 기차가 있느냐고 하니까 자기차가 서울 차인데 그대로 가자고 한다. 10,000원이면 종로 창덕궁 앞까지 가겠다니 천만 다행이다. 망우리까지 1 시간이 걸렸는데 거기서 종로까지 1시간 반이 걸렸다. 3가에서 우회전을 해야 하는데 지나쳐버려서 낙원동으로 올라오니 공사 중이라 길이 막혀있다. 할 수없이 내려서 걸어왔다. 안국역 지하도에서 파리크롸상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빵 두어 가지 사가지고 들어왔다. 아침식사로 며느리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빵 사왔다”고 떠들며 들어갔더니 아들은 출근하고 며느리는 동생 약혼준비로 벌써 나가고 없었다.

박영숙 의원과는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시간은 여유가 있다. 아침 내내 졸린 데 잘 수는 없겠고 빨래가 밀려있기에 세탁기에 넣고 딸에게 다 되면 널라고 일렀다. 옷만 갈아입고 다시 여의도로 갔다. 여신협에 가서 박순경 대책위원회의 어제 이후의 소식을 듣고 팩스 보낼 것 등 둘러보고 국회로 갔다. 박의원과 이상덕 보좌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민당 여성위원회 구성과 사업에 관한 논의였다. 지난 4월9일에 합당대회를 한 이래 신당에서 여성위원장이던 나는 여성위원회가 특별위원회로 되는 과정에서 자리가 없어진 셈이다. 그저 당무위원으로 매주 월요일에 당무회의에 참석하는 외에는 별로 할 역할 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여성위원회의 자율적인 활동을 위해 헌장, 정책, 조직, 예산안 등 작업을 많이 했고 마포에 커다란 사무실도 마련되었지만 선거 치루는 과정에서 특별위원회 가동을 못한 것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6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임명했고 박의원이 여성위원장이 되었다. 나에게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국회의원이 아니면서 위원장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훨씬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전에는 내 힘에 벅찰 일을 앞에 놓고 공연한 걱정을 하느라고 얼굴에 기미가 다 끼었다. 근래에 얼굴이 새까맣게 기미가 낀 것을 보고 내가 무슨 걱정이 있어서 이렇게 기미까지 끼었나 하고 생각해 보았다. 별로 속 썩일 일이 없는데. 여성신학교육원 운영문제로 걱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보다는 신민당에 간 것이 내 생리에 맞지 않아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는 것이 기미로 나왔나 보다. 흰 머리도 꽤 많이 생겨서 이것이 신민당 흰 머리라고 했다. 내 연배들에 비해 머리가 희어지지 않는다고 야단을 했는데 이제 흰머리가 꽤 눈에 띄게 되었다.

이젠 여성위원장이 결정되었으니 그 동안에 준비했던 신민당 여성연합이나 여성연맹 따위의 구상은 다 헛것이 되었다. 창립총회를 해서 대표를 뽑는 번거로움도 없게 되어서 큰일을 덜은 셈이다. 위원회가 구성되면 실무진을 선임해서 활동을 시작하면 된다. 그 동안 실무진을 구성해야 한다고 해서 내가 한 사람을 데려왔는데 그는 두 달이나 어영부영 지내면서 할 일이 없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경제적으로도 내게는 부담이 되지만 그에게는 교실무자 대우를 받지 못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회의 끝나고 나니 1시까지는 아직 10분이 남아있다. 어제 대책위원회에 데려다 논 사람이 거기 있으니 들렸다 가기로 한 것이다. 그 보좌관도 이것저것 이야기 하느라고 여신협(가정법률상담소 4층)까지 왔다. 그는 지난 3월에 내게 신민주연합당에 들어와야 한다고, 신당이 합당하면 여성위원장을 해야 하는데 일은 아랫사람들이 다 할 테니 위원장 자리만 수락하라고 졸라댔던 일 때문에 지금까지 내게 미안한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제 마음대로 되는 세상이 아닌데 어찌하랴. 내가 이해하는 수밖에. 저나 나나 끌려 다니느라고 고생인 거지. 나는 마음 같아서는 지금도 신민당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은데 여성운동이라는 말 때문에 꼼짝 못하고 매여 있다. 누가 내던진 말이냐? ‘여성의 정치세력화’ 란 것. 이렇게 아무도 안 할 것이라면 왜 나 혼자 거기 가서 이 고생이냐? 그렇다고 그만 두고 나가버리면 여성들의 문은 더 좁아질 것이 아닌가? 그러니 붙잡고 늘어질 수밖에. “저는 어쩌랍니까?”고 하느님께 부르짖고. 그래도 내 작은 힘이라도 보태서 여성의 자리를 잡아봐야지 하고 다짐하고, 알지도 못하는 데로 왜 끌려 들어왔나 후회하기를 얼마나 반복했는가? 이것도 부닥쳐보고서야 아프다고 느끼는 내 인생의 한 면이다. 또 얼마나 더 반복할 것인가? 적어도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이 자리를 굳힐 때까지는 버티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도 졸린 데 집에 돌아오니 딸이 널어 논 빨래는 거의 다 말랐다. 오늘이 토요일이니 빨래를 남겨둘 수 없어서 4시가 넘었는데 또 한 번 세탁기를 돌렸다. 널어 논 빨래는 다음날 거둘 수밖에 없겠다. 아차 원고를 써야 하는구나. 31일이 되도록 밀려있었다. 카토릭 잡지인 생활성서에 매달 20매씩 보내는데 이번 달에는 박순경교수석방대책위원장이 되는 바람에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 원고는 가끔 생각하다가 지난 며칠은 아예 잊어버리고 있었다. 오늘 보냈어야 했는데 어쩌나? 그래도 지금은 쓸 수 없다. 이젠 졸린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만 다른 것이 돌아갈 수 있겠다. 아들과 며느리는 동생 약혼식에 가서 잘 먹고 왔다면서 들어오더니 옷만 갈아입고 다시 나갔다. 처남 동서 등 4쌍이 신나게 놀 모양이다. 아들은 두 남매가 단출하게 자라다가 5남매 있는 집으로 장가를 가더니 형제자매 쌍쌍이 많은 것이 무척 좋은가 보다. 딸은 토요일이니 주일학교 교사 준비하러 가서 늦을 것이다. 남편은 모처럼 내가 집에 있으니 저녁을 먹으러 들어왔다. 우거지된장국, 풋고추 멸치 볶음, 김구이, 가지김치, 노가리 조림 등으로 냉장고에 있던 밑반찬으로 저녁상을 차렸다. 남편이 좋아하는 동부가 남았기에 까 넣고 밥을 지었고 우거지는 봄에 내 옥상 밭에 심었던 열무를 데쳐서 얼려놨던 것이다. 며느리도 된장국을 좋아해서 아예 끓여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을 때 물을 타서 끓여먹으면 간편해서 좋다. 가지도 우리 밭에서 나온 것인데 미처 따먹지 못해서 많아졌기에 김치를 담가두었다. 남편은 저녁 후에 내가 졸려서 자야겠다니까 친구 만난다며 밖으로 나갔다. 그제서야 오래 밀린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저화가 오더니 그 수녀의 원고 독촉이다. 이미 부쳤으려니 하고 확인하는 것인데 아직 못 썼다고 월요일에 802호실에서 이사회를 모이니까 그때 가서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내일은 세상없어도 그 원고를 써주어야 한다. 그것도 바쁘고 힘들어서 아주 그만두겠다고 하자니 이 비상시에 원고료 몇 만원이 어디냐? 그리고 그런 것조차 없으면 언제 원고지를 대해보나 싶어서 한 달 한 달 매꿔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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