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6일 금요일, 흐림
제1막: “여보, 어제 빵기가 부탁한 이 우편물 좀 부치고 와요.” “싫어. 나가기도 싫고 내 일도 바쁘고.” “당신은 걸어야 해요. 너무 오래 집에 꼼짝 않고 있잖아요. 갈 테요, 안 갈 테요?” 꼬집고 잡아끌고 떠밀다 시피하자 못 이겨 우편물을 들고 문을 나선다. 내가 따라나서자 “당신도 가려구? 그럼 당신이 혼자 갔다 와.”하며 다시 들어서려는 그를 대문에서 막아선다. “우린 따로따로 가는 거에요. 당신은 우체국에 가는 길이고 난 안경 고치러 안경점에 가는 길이라구요.”(둘 다 덕성여대 학생회관에 나란히 있다.) 이렇게 어르고 달래는 정치적 절차를 밟아야 겨우 의자에 대한 극진한 사랑에서 그를 잠시라도 떼어놓을 수가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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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아치도 팔뚝에 "차카게살자"라고 문신을 하는데 구청장의 조경수준이라니... | ||
제3막: 공원을 억지로 세 바퀴 돌리면서 제3탄을 준비했다. “여보, 우리 4.19탑까지만 걸어가서 꽁보리밥 먹고 들어갑시다. 눈 수술한 마누라 소원 좀 풀어줘요, 응?” 다시 그를 끌고 오릿 길을 걷는다. 보리밥집 ‘신정’은 내게야 언제와도 반가운 곳이지만 나물이 절반인 밥상을 들여다보는 그는 짓느니 한숨이요 뱉느니 탄식이다.
[제2장] 더구나 옆자리에는 영어가 짧은 남자가 미국인 중년여자 몇을 데리고 들어와 꽁보리밥을 시킨다. 미국사람들이어서 미국식으로 먹는다. 나물을 먼저 먹고, 보리밥을 그 다음에 맨밥으로 먹고, 한국 칠리소스라고 가리키자 고추장을 한 숟갈 퍼넣고서는 입에서 불이 나자 물김치에다 된장찌개에다 사골우거지국까지 물이라는 물은 죄다 들이키고... 한국음식에 영영 정떨어지게 만들기로 작정했다면 그 가이드는 크게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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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에서의 수집품으로 꾸며진 덕대 앞 선물가게 OZ 8th avenue에 들려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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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우리 대문에 들어서면 엽이가 디딤돌에 흙을 깔아서 얼음에 미끄러지지 않게 해두었는데 비가 오니까 진창으로 변했다. 또 마당에 절구가 셋이나 있고 거기에 물이 차서 얼면 절구들이 갈라지기 쉽다. 보스코는 그걸 보고도 그냥 들어가고 나는 물을 길어다 돌팍을 씻어내고 절구에 찬 얼음을 비워낸다. 그의 뒤통수에 대고 내쏘는 전순란의 정치평: “내 집이냐 우리 집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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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까닭은... | ||
아아,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것이다. 한 편은 껌딱지처럼 책상에만 붙어 있는 남편을 걸리기 위해 4막 7장의 연출을 해야 하고, 한편은 백전백패(百戰百敗)를 시늉하면서 못이기는 척 그 연출을 따라야 한다. 반시간 넘게 마당일을 하고 들어와서 약속한대로 커피를 끓이고 프라페를 보스코에게 차려주면서도 이 집이 ‘우리 집’인지 ‘내 집’인지가 그다지 중요해보이지 않아지는 것, 그것이, 아아, 사랑이라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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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란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아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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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식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징계 사건에 관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