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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기획연재] 5회 왕따를 부추기는 경쟁 교육김선희 장편 청소년소설 [열여덟 소울]
이한수(인성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 승인 2015.01.27 13:30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배하는 서열화 기제로 폭력성이 많이 언급되는데, 폭력성 못지않게 또래 집단의 지배 질서를 규정하는 요소로 학력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체적 폭력은 각종 사회 규범으로 규제를 받아 음성화되는데 비해 학력 경쟁과 서열화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방위로 조장되고 있어 학생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의 세상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면 기존 지배 질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니 사회 통합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되고 탈법적 권력 추구가 기존 질서를 위협하곤 하지 않습니까. 학교는 어른들 세계의 축소판입니다. 학력이 부의 세습을 합리화하는 권력 기제라는 인식이 확산되면 이에 반발하여 음성적 권력을 추구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요. 요즘 많이들 걱정하는 학교 폭력이니 왕따니 하는 문제들의 근본 원인은 바로 이런 권력 추구 서열화 풍조에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학력이 지배 욕구를 부추기고 권력의 수단이 되어버리면 신체적 폭력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신체적 폭력에 비해 정신적 지배가 우리 삶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학력에 의해 신분이나 권위가 결정되는 풍조는 신체적 폭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 구성원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학력 경쟁 풍조는 아주 폭력적이어서 우리의 삶을 갈수록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게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러하다면 지금 우리 교육은 우리의 삶에 해악만 끼치고 있는 셈입니다. 이 땅에서 아이를 교육하는 일은 나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지게 만듭니다. 소외되고 차별받는 아이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절규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닐까요. 기존 체제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일탈과 저항을 그 폭력성만으로 재단하는 건 온당치 못하다고 봅니다. 권력 추구형 학력 경쟁이 오히려 더 폐해가 심한 게 아닌가요.

   
 
[열여덟 소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참 아픈 사연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 사연을 알게 되면 누구나 그 인물을 안아주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을뿐더러 뒤처지는 학생으로 놀림감이 되기 일쑤입니다. ‘조미미’는 학교에서 왕따입니다. 난독증이 있으니 학교 공부에 뒤처지는 게 당연한데 그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는커녕 열등생으로 낙인찍어 개인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헤어날 수 없을 정도로 따돌려 버립니다. ‘조미미’와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왕따가 될 위험이 있으니 누가 그의 아픈 사연을 들어 알 수 있겠습니까. 대체로 아픈 사연이란 불우한 가정환경을 말하는데 학교에서 자기 집안의 안 좋은 얘기를 하는 건 금기사항이라 서로 속 깊은 얘기를 나누는 게 애당초 불가능한 일입니다. 단짝으로 붙어 다니는 친구한테도 그런 얘기를 털어놓는 건 참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다 친구가 변심하면 완전히 왕따가 되어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지요.

‘조미미’가 말이 어눌하고 난독증이 있는 건 청각장애가 있는 부모님에 의해 길러졌기 때문인데 이런 불우한 가정환경에 대해 선생님과 친구에게 털어 놓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집안 환경이 곧 경쟁력이고 불우한 환경은 왕따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 강남에 사는 아이들은 자기 집 아파트 평수에 따라 노는 그룹이 달라지고 타워팰리스(초고층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선망의 대상이 된다고 하는데 이런 현상은 부자 동네에만 국한된 얘기일 수 없습니다. 경쟁교육이 학력을 권력화하고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학력을 좌우하니 못 사는 집 아이들이 멸시받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이 시대에 제도권 학교를 다니면 인성(人性)을 함양하기는커녕 몰염치한 경쟁심만 잔뜩 키우게 된다고 봐야 합니다.

[열 여덟 소울]은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형민’, 부모님의 사업 실패와 이혼으로 아버지와 지하 셋방에서 살고 있는 ‘공호’, 청각 장애가 있는 부모님이 키워 언어장애 난독증에 빠진 ‘미미’, 세 고등학생이 겪는 학교 부적응을 그리고 있습니다. 학교가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가 아니라 살벌한 경쟁으로 열등한 자를 도태시키는 전쟁터 같은 곳일 때에는 가급적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지 않도록 꼭꼭 숨겨야 합니다. 그러니 내면에 상처가 있는 사람은 학교에서 치유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상처가 덧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등장인물 ‘미미’는 말을 더듬고 글을 못 읽어 교사한테 무시를 당하고 급우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습니다. 이런 학생은 학교 다니는 게 참 고역일 게 뻔합니다. 그런데 ‘미미’에게는 숨겨진 재능이 있습니다. 말더듬증이 심한데 노래는 듣는 사람의 영혼(soul)을 울립니다. ‘형민’과 ‘공호’가 우연히 ‘미미’의 노래를 듣고 매료되어 관심을 갖게 되고 같이 왕따가 될 위험을 감수하기까지 하면서 친해지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셋은 가정환경이 모두 불우한 만큼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커지고 흉금 없이 속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됩니다. 우월감에 찌든 승리자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진실한 관계로 맺어지게 됩니다.

작금의 우리 교육은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회의(懷疑)하는 걸 용납하지 않습니다. 딴 생각하지 말고 앞만 보고 달리라고 닦달하며 영혼에 족쇄를 채우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따위의 질문은 나중으로 유보되고 ‘왜 그래야 하는데?’라는 실존적 의문은 무시당하기 일쑤입니다. 철학 나부랭이로는 한 끼 밥도 살 수 없다는 끔찍한 현실 인식을 함부로 폄훼해서도 안 되지만 우리 모두 구렁텅이로 떨어질지도 모르고 떼 지어 달리고 있는 하멜른의 쥐들처럼 영혼을 저당 잡히고 있는 건 아닌지 회의감이 드는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어쩌면 내세울 것도 없고 가진 것도 대수롭잖은 이들이야말로 진실하게 서로를 위할 수 있는 축복받은 자들이 아닐까요. 시기심을 자극하는 우월감으로는 참다운 행복을 누릴 수 없으며 소박하게 서로를 위하며 평화에 이바지하는 자가 진정 행복하다는 걸 깨우치는 게 참다운 교육이요, 성장이 아닐까요. 말로만 인성(人性)을 읊조릴 게 아니라 비인간적인 경쟁심부터 먼저 걷어낼 일입니다. 영혼을 울리는 감동을 눈곱만큼도 줄 수 없는 삶이란 얼마나 헛된 것인지.

필자 블로그  http://blog.daum.net/2hansu

이한수(인성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hansu8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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