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박정희는 남로당의 비밀당원이 되었나?

박정희를 말하는 사람들 중 더러는 박정희가 남로당의 비밀당원이 되게 된 이유를 그의 형 <박상희의 죽음>에서 찾는 이들이 있다.
박상희는 근본에서 그의 동생 박정희와는 다른 사람으로 성장했다. 박상희와 박정희가 같다는 것은 ‘한 피’를 받았다는 것 정도였다. 형 상희가 어렸을 때부터 올곧은 아이로 자랐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는 일제치하에서도 일정한 역사의식, 자주·해방의식을 품고 성장했고 활동했다. 그가 죽은 것은 1946년 대구 10.1항쟁에서였다.

미군정하에서의 일이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소속의 부산지구 철도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턱없이 낮은 임금, 노동권 유린 등의 실제적이고 철저한 개선을 요구하며 일으킨 파업을 계기로 남한 전역에서 이른바 9월 총파업이 이루어지는 데, 드디어 이 항쟁의 불길이 10월 1일 대구에도 옮겨 붙게 된다.
학생과 시민들이 일체를 이루어 다음날까지 계속되는 항쟁에서 전날 10월 1일 사망자에 이어 다음날도 잇달아 사망자가 발생하는데, 박상희는 이 항쟁에서 총살당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그 알량한 일본 군사관의 복장을 자랑하던 박정희가 그 사관복을 잽싸게 벗어 던지고 광복군에 편입을 하는가 했는데, 다음해(1946) 10월, 그 민중들의 노동권·자주권의 회복을 위한 항쟁에서 비운에 간 형의 복수를 위해 남로당에 가입, 비밀당원이 되었다는 것은 논리의 모순이 있다. 박정희에겐 이상스러우리만큼 민족이 없었고, 조국이 없었다. 

그는 소년시절부터 유별나게 말이 없었고, 말이 없으면서도 칼싸움, 전쟁놀이를 즐겼고, 더욱 기이한 것은 대구사범 시절이나 졸업 이후 문경 보통학교 교사시절까지도 계속되는 그의 전쟁놀이에 언제나 진 편은 중국으로, 이긴 편은 일본으로 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 ‘이기는 것’이었고, 그래서 절대로 필요한 것이 ‘힘’이라는 것이었다. 힘, 힘이 있어야 한다!

박정희의 남로당 입당은 결코 민중의 항쟁 속에 죽어간 형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힘의 신앙 때문이었다. 당시 상황은 군대나 학원이나 노동계나 예외 없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계열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박정희는 그렇듯 내밀히 전개되고 있는 흐름에서 힘을 느꼈고, 미구에 그 힘에 의한 현실의 장악을 확신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의 중심에 남로당이 있다고 믿었고, 그것이 곧 박정희가 남로당의 비밀당원이 된 이유였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그렇듯 박정희가 남로당원이 된 것은 <10.1 대구민중항쟁> 현장에서 죽은 형의 복수를 위해서도, 혹은 남로당의 정당 정책이나 이념, 확신 때문도 아니요. 오직 그 ‘힘’ 하나를 믿어서였기 때문에, 그 ‘힘’이 없다고 판단될 때는 이제까지의 소속도 동지도 가차 없이 내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행된 것이 소위 <박정희의 남로당 반역>이라는 것이다.

김창용이 지휘하는 군 내부의 좌익색출작업이 대통령의 특명에 의해 전개되는데, 상황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던 박정희는 남로당의 정치사회 주도권은 이미 불가능한 것이라는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자신이 지니고 있던 군부 안의 남로당 비밀당원의 명단을 군부에 넘겨줌으로 남로당 조직원들을 그야말로 일망타진(一網打盡)케 한다.

박정희는 ‘힘’의 신자로써 가히 신출귀몰하는 자였다. 그 부지기수의 동료 ·동지들의 명단을 죽음에 넘겨준 박정희는 정말 재빨리 이승만 군부의 막강한 힘을 가진 별들의 빛(힘)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는 출중하기 그지없는, 아주 분명하고 확실한 힘의 신자였다. 그를 지켜준 것은 백선엽, 정일권 등 소위 만군인맥의 실력자들이었다.

그 이후에도 그는 ‘힘’의 광신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매력이요, 자랑인가? 그가 1961년 5.16군사쿠데타에 성공한 후 자신이 선도해낸 5.16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친애하는 애국 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今朝未明(금조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입법·사법의 三權(삼권)을 완전 장악하고 이어 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천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군사혁명위원회 이름으로 발표된 이 선언은 군사혁명위원회의 공약으로 반공확립·유엔헌장준수구악일소·민생, 경제문제 해결·승공의 실력배양·군대로의 즉각 복귀 등 6개항을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일뿐만 아니라 사실은 처음부터 거짓이었다.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는 ‘힘’에게 이끌리기 시작한 때부터 그의 이상(?)이었다. 그는 평소에도 군우들과 둘러앉은 자리에서 불과 4일 천하로 끝나버리긴 했지만 1936년 2월 26일의 일본 청년장교 쿠데타 예찬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1952년, 부산피난 수도에서의 5월 어느 날, 감히 당시 육군참모총장 이종찬에게 군사혁명(?)을 제안하기까지 했다. 박정희! 참으로 기이한 사람이었다. 힘에 미쳐 산 사람이었다니…힘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100번을 양보해 힘의 실체를, 의미를 인정한다 해도 그 가치를 인정할 수는 없다. 한 제자가 “평생에 모셔본 한 분”이라는 그의 스승과 상부상조(相扶相助)를 주제로 생(生)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스승은 도대체 <소유>라는 것을 아예 무의미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 터였다. 열심히 일해서 자신의 가난을 이겨낼 뿐만 아니라 여분이 있어 도우면서까지 살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얼마나 덕스럽고…. 그렇게 생각한 제자는 스승께 용기를 내어 평소 생각을 말했다.
“선생님, 열심히 일해서 벌어서 도우며 산다면 좋지 않겠습니까?”
“도우며 산다? 도우며 산다….”
“네, 열심히 일해서 말입니다.”제자는 스승의 답을 조심스럽게 기다렸다.
“도울 것이 없도록 살아야지….” 역시 스승은 동문에 서답이었다.

힘은 지니지 않음으로 힘이 된다. 이미 지녔다 했을 때의 힘은 흉기가 된다. 그래서 힘의 사람은 힘에 의해서, 칼의 사람은 칼에 의해서 제거된다. 칼(刀)과 힘(力)은 그래서 쌍태아라는 것이다. “칼을 가진 자는 (쓰는 자가 아닌) 칼로 망한다.”는 예수의 말은 더 첨삭이 필요 없는 진리이다. 칼을 가진 자는 칼로 망한다! 그런데 박정희는 칼을 가진 것만으로 부족해 칼을 제 맘껏 휘둘렀다! 그랬던 박정희 어찌됐나?

새 역사의 시작, 박정희의 이름 지우기

“이제도 네피림이 있고 이전에도 네피림이 있었다! 그들은 장수에, 장사에 거구였다. 그들은 용사들로서 유명한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사는 세상은 더 보아줄 수가 없을 만큼 타락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세상이 썩었고, 무법천지가 되어 있었다.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속속들이 썩어 있었다.”

‘무법천지’라니…, 힘 있는 이들만의 세계 말이다. 개역성서는 “强暴(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했다. 힘 가진 자의 세상이 되어 버렸단 말이다. 그래서 창조한 모든 것들을 쓸어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쓸어버렸다. “지극히 작은 자”와 함께 하기 위해 예수가 준비한 것이 무엇이었나? 자신이 “지극히 작은 자” 되는 거 아니었나? 작은 자를 도우려면 작은 자를 위해 봉사하려면 뭔가 가진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하는 말이고, 우리 계산인데 예수의 계산 방식은 우리와는 달랐던 것인가!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누가한 말일까? 병까지도 나누어 앓겠다니….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우리 역사에 박정희가 있다. 힘 하나로 역사를 난장판으로 마장(魔障)쳐 버린 사람이 있다. 경제를 말할 때마다 박정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경제 하면 박정희 아니냐?”는 것이다. 박정희 하나로 우리는 그토록 잘못되어 버린 것이다. 경제가 지상(至上)이 된 것 말이다. 사람이 여기까지 타락할 수 있는 것일까?

박정희가 일으킨 5.16 그 군사반란이 한국 민주사에 둘도 없는 금자탑인 4.19를 살육해 버렸고, 경제가 지상이라면 그건 사람이 아닌 돼지가 된 것인데, 아직도 박정희라니! 그러나 희한한 것은 역사(歷史)의 역사(役事)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 “뜻의 사람”은 역사를 곧 하나님이라 했다.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은 그 역사가 그 역사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그렇다 이미 역사가 그의 역사에서 박정희의 이름을 지우기 시작했다.

<필자 소개> 문대골 * 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 상임고문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교회 원로목사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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