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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간 이야기 1 - “풍금”<주대범의 교회음악 산책 14>
주대범 장로 (중앙루터교회 성가대 지휘자) | 승인 2015.01.30 14:01

   
▲ 아리아 풍금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풍금, 風琴>에 대한 아련한 추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교실 풍경이 나오는 TV드라마 화면마다 풍금을 치는 교사나 주인공의 모습이 빠지는 예가 없음을 보면 풍금은 우리 <감성과 추억>의 상징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수십 년 교회생활을 한 교우들에의 기억 속에는 <풍금>과 관련된 특별한 장면이 한 구석 꼭 차지하고 있으리라. 설익기는 했어도 참으로 소중한 꿈이 주야로 가슴 설레게 하던 어린 시절, 교회나 학교에서의 풍금과 함께 떠오르는 그림 한 장 없다면 6070에 이 땅에서 헛살았던 사람이다.

나도 중고등학교 시절 개척교회를 다녔으므로 늘 <아리아 풍금>과 <오봉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가끔 부른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불렀다. 숙명적으로 그 때 <풍금>을 반주하던 여학생은 지금껏 나하고 살고 있다.

통기타는 멀쩡히 살아남았는데, 아쿠스틱(acoustic, 전기를 사용치 않는 生音) 악기인 풍금이 디지털 전자오르간에 치여 급속히 사라져버린 안타까움은, 부러져버린 바늘 때문에 <조침문>까지 지었던 유씨 부인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풍금은 바삐 살아가며 잊거나 잃어버린 아쉬운 세월의 아련함과 우리 사회가 디지털화하면서 잃어버린 수많은 정든 것들의 표상(表象)이 되지 않았나 싶다.

   
▲ 풍금을 닫는 옥희엄마(윤미라 분)
주요섭(1902~1972)의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48>에서는 풍금이 옥희 엄마의 절실한 심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도구로 쓰인다. 옥희 아빠의 죽음으로 자물쇠가 채워진 풍금이 다시 열렸다가 사랑방 손님이 떠남으로 결국 다시 잠긴다. <옥희 너 하나 뿐이야>라면서도,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를 계속 되뇌면서도 풍금 뚜껑을 열고 풍금을 타며 고즈넉이 노래하는 젊은 과부의 상사(相思)를 누가 쉬 알까? 도로 닫혀버린 옥희네 풍금이 나의 마음에 지금껏 생채기를 낸다.

1948년 어느 산골 학교에서 시작된 사제지간의 사랑 이야기인 하근찬(1931~2007)의 소설 <여제자>는 1999년 <내 마음의 풍금>이란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아가씨로 불려진 학생 <홍연>으로 분한 전도연의 천부적인 매력을 우리 모두 알게 된 감동적인 작품이다. 2008년에는 뮤지컬로도 발표되어 잊혀져가던 <풍금>에 대한 우리의 감성을 다시 일깨웠다.

39년 전 군대에 갔을 때 일이다. 6주간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되기 위하여 춘천 103보충대에서 며칠을 보내게 되었다. 동물 사료로 쓰기 위한 칡의 넝쿨과 잎을 분리하는 사역(使役-자칭 사역보다 이것이 진짜 사역이다)을 하던 중 휴식시간에 등을 떠밀려 한 차례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아마도 이등병답지 않게 <선구자>를 불렀던 기억인데, 덕분에 사역을 면제해 주며 자유로이 놀다가 1시간에 한 번씩 노래나 부르라는 명을 받았다. 꼬박꼬박 군바리들 앞에서 위문공연을 하며 남는 시간에는 구내 예배실에 가서 혼자 풍금을 치며 찬송가를 불렀다. 입대한 이후 한 번도 교회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눈물이 날 지경으로 가슴이 벅차고 은혜가 되었다. 지금은 더 좋은 악기가 내 앞에 널려 있어도 그 때, 그 감격으로 찬송을 부르지 못한다.

1896년경에 풍금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시할 근거는 없으나 이모저모를 살핀 결과이다. 피아노가 처음 들어온 사실은 분명하다. 미국 북장로교 사이드보텀(사보담, Sidebotham, Richard H. 1874~1908) 선교사가 아내 에피를 위하여 1900년 3월 낙동강 사문진나루터를 통해 대구에 들여온 것이 그것이다.

찬송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의 작가이며 대표적인 애국 기독교인 남궁억(1863~1939)이 설립한 <황성신문> 1909년 4월 27일자에, 관립고등학교에서 풍금이 보편적으로 사용됨이 보도된 것을 보아 십여 년 사이에 꽤 흔한 물건이 되었나보다. 당시 토요일마다 열린 풍금연주회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신기한 서양음악을 감상하였다고!

   
▲ 김인식과 김영환
당시 최고의 풍금주자로 김인식(1885~1962)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숭실중학교를 다닐 때 선교사 부인인 헌트(Hunt)와 정의여학교 교장인 스누크(Snook)에게서 성악과 오르간, 악전(musical grammar, 樂典)을 배워 3학년 때 1학년 수업을 맡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바이올린과 코넷도 잘 다뤄 조선정악전습소(1911년에 조양구락부의 후신으로 세워진 사설 음악학교로서 국악 뿐 아니라 서양악과가 있어 바이올린과 풍금을 교습했다)와 여러 기독교 학교들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우리나라 최초의 합창단인 <경성합창단>을 결성하여 지도했으며, 운동회를 위한 창가 <학도가>도 작곡했고 헨델의 <메시아>도 번역했으며 애창찬송인 <예수 나를 위하여>를 쓴 분이기도 하다.
김인식의 후학으로는 <홍난파>가 유명하지만, 김인식과 또래면서 제자였던 이상준(1884~1948)은 후에 <풍금 연습 중등창가집>이란 교본을 펴냈다. 또한 선교사 댁 풍금으로 시작하여 유학을 다녀와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된 이로 김영환(1893~1978)이 있다.

<풍금>의 서양 이름은 <리드오르간>이고 상대적인 악기는 <파이프오르간>이다. 오르간은 건반악기이면서도 파이프나 리드를 진동체로 하는 공기울림악기(氣鳴樂器, aerophones)이다. 특히 리드오르간은 관(管)을 통해 소리를 내는 파이프오르간과 달리 바람으로 리드(reed, 갈대, 簧)를 통해 소리를 울려낸다.
따라서 갈대(reed)의 끝을 스치는 바람이 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인류가 안 것이 오르간의 시작일 것이다. 갈대를 음정 길이대로 잘라 붙여 만든 <팬파이프>의 원조인 <시링크스, Syrinx>는 고대 헬라에서 중요한 악기였다. 중국을 비롯한 동방에서는 이를 <소, 簫>라 하였고 원리가 조금 차이나는 악기들을 <적, 笛>, <생, 笙>, <금, 笒>이라 각각 불렀다.
국(아)악기 중에는 입으로 부는 오르간(mouth organ)으로 <생황, 笙簧>이 있다. 17개의 관을 가진 것으로 표준화 되었는데, 중국의 쉥(笙: shêng)이나 일본의 쇼(笙, shō)와 같다. 켈트(Celtic) 문화에서 꽃피운 스코틀랜드의 Bagpipe도 오래된 악기면서 오르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리드>는 갈대의 줄기를 말하지만 그것을 가공한 발음체를 뜻하며, 나아가 갈대가 아니라도 같은 기능을 가진 발음체를 통틀어 말한다. 한쪽을 고정시키고 공기를 불어 넣음으로써 다른 쪽을 진동시키는 발음원으로서, 목관악기, 리드오르간족 또는 오르간의 파이프에 쓰인다. 이 리드가 있는 악기를 유황악기(有簧樂器)라고 한다. 오보에, 클라리넷, 색소폰, 백파이프의 리드는 갈대로 만들고, 하모늄, 아코디언, 하모니카, 오르간의 파이프 등은 금속편으로 만든다.
리드는 금속 등의 딱딱한 재료로 만들어져서 바람이 통할 때 일정한 음을 내는 하모니카 등의 자유황(free reed)과 관의 길이에 따라 음정이 바뀌는 피리들의 타황(打簧, beating reed, stricking reed)이 있으며 비팅 리드는 색소폰 같이 1장의 리드가 관 내부나 베크(beck)에 닿아서 공기를 진동시키는 홑리드(single reed)와 오보에 같이 2장의 리드가 서로 접촉해서 공기를 진동시키는 겹리드(double reed)가 있다.

풍금의 리드는 자유황(自由簧)으로, 독일의 음악학자 리만은 동양악기 생(笙)이 그 원조라고 말한다. 15세기에 리드파이프가 개발되었고 소형풍금인 레갈(Regal)이 만들어져 17세기까지 수녀원 등에서 애용되었으며 발로 조작하는 풀무가 발명되어 지금 쓰는 리드 오르간의 선구가 되었다.

1840년,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도뱅(1809∼1877)이 자유황을 장치한 리드 오르간의 특허를 받았고 그 이름을 하모늄(harmonium)이라고 불렀다. 5옥타브의 음역, 4열의 리드와 많은 스톱에 의해서 음색을 조절할 수가 있었고 바람은 발로 밟아 불어내는 방식이었다. 유럽에서는 보통 하모늄을 리드오르간이라고 부르고 있다.
도뱅은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 1860년에 흡입식 리드오르간을 만들어 보스턴에서 알렉산더 오르간이란 이름을 붙여서 판매하였다. 이것이 아메리칸 오르간이며 한국에서도 널리 쓰였다. 리드오르간은 파이프오르간의 기능을 간소화시킨 것으로 음색을 바꾸기 위해 몇 개의 스톱(stop)을 갖춘 정식 구조로 된 것과 스톱이 없는 보급형이 있다.

   
▲ 야마하 풍금
나도 아직 풍금을 하나 가지고 있다. 십 수 년 전 디지털오르간을 사주고 대신 얻은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1950, 60년대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야마하(YAMAHA)사의 제품이다. 6개의 음색 스톱과 1개의 포르테 스톱을 갖춘 고급 제품으로 바람이 좀 새긴 하지만 지금도 매우 훌륭한 소리를 낸다. 오늘도 이 악기로 생일 축하 노래를 멋지게 연주하였다. 아마도 생산된 지 족히 60년은 된 악기이기 때문에 이제는 골동품적 가치로도 꽤 대단할 것이다.
다음 산책부터 대표적인 교회 악기인 파이프오르간에 대하여 함께 나누자.


 

 

 <덧붙이는 글>
개화기 때를 이야기하다 보니 당시 멀쩡했던 기독교인들이 친일파로 생을 마감하는 슬픈 이야기가 연상되어 몇 자 적는다.
앞에서 남궁억 선생 이야기를 잠시 했지만, 그는 훌륭한 언론인, 시인, 작곡가, 전도사였다. 그러나 일제 치하에서 말 그대로 셀 수 없이 들락날락 거리다 결국 옥고로 해방을 못보고 병사하였다.
대비되는 인물이 <애국가>의 유력한 작가로 알려졌으며 교회음악에도 큰 기여를 한 윤치호(1865~1945)이다. 남궁억이 고문후유증으로 사돈인 개성 윤치호 집에서 요양한 적도 있으나 윤치호가 믿는 하나님과 남궁억의 하나님은 달랐나보다. 그 위대했던 인물이, 해방되자 저간의 친일행적 때문에 온갖 곤욕을 당하다 급사하였다. 그래도 자식은 장관이 되고, 조카는 대통령이 되어 지금껏 대단한 가문이라 일컬어진다.
앞의 홍난파도, 당시 유명 소프라노 김활란도 하는 수 없어 친일하였다 하나,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면 성삼문의 노래대로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 / 주려 주글진들 채미도 하난것가 / 비록애 푸새엣 거신들 긔 뉘 따헤 낫다니>라며 야망을 저버림이 마땅한 일이었다.
찬송가 <어머니의 넓은 사랑>의 작가 주요한(1900~1979)도 마찬가지이다. 한번은 그 찬송의 작곡가 구두회 선생이 나에게 전화를 하여 주요한의 집안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우리 가문은 천한 상놈 집안이라 친일파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한 기억이 난다.
주요한과 앞서 거명한 동생 주요섭은 목사의 자식으로 한 배에서 태어나 둘 다 작가로서 동시대를 살았지만 주요섭은 형처럼 살지 않았다.
한국교회와 친일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지만, 이제는 친일 기독교인들의 역사는 그대로 두어 두고두고 되새겨야 하겠지만, 그들이 일구이언(一口二言)으로 부른 찬송가는 당연히 부르지 않아야 한다.

필자소개

   
▲ 주대범 장로

1955년 서울에서 출생, 교육에 종사한다.

대학에서 문학을, 개인적으론 작곡을 공부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10년 한 후, 출판사를 운영 했었다.

교회합창곡도 작곡하고, 글도 쓰면서

누가 부탁하면 목수 일도 하고, 시각디자인도 한다.

중앙루터교회 성가대 생활을 39년째 하고 있다.

주대범 장로 (중앙루터교회 성가대 지휘자)  bawee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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