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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 마틴루터 킹LA 마틴 루터 킹 킹덤 퍼레이드에서 인터내셔널 그랜드 마샬 수행기
이해학 목사(주민교회 원로목사) | 승인 2015.01.31 11:42

2012년 1월 16일 나는 오픈카를 타고 한 손에 태극기를 들고 한 손으로 V자를 만들며 “마틴 루터 킹 빅토리-!. 피이-스!. 프리덤!”(Martin Luther King Victory! Peace! Freedom!)를 외치며 LA 시가를 누볐다. 2012년 킹덤 퍼레이드에서 <인터내셔널 그랜드 마샬>로서의 내 역할을 흥분 속에 수행하였다. 마치 내가 마틴 루터 킹이나 된 듯이.

   
▲ @newsis

UCLA대학에서 아침 일찍 조찬과 더불어 기념행사를 가졌는데 흑인대표들과 한국교포 대표들 그리고 국내에서 참석한 김영진 전 농림부장관께서 참석하였다. 그랜드매스타 전동석 한국대표께서 나의 금년도 그랜드 마샬 수락연설통역을 해주셨다.
“금년도 그랜드 마샬로 선택해주어서 고맙다. 한국에는 나보다 훌륭한 인권운동가가 많이 있다. 그만큼 인권이 심각하게 박탈된 현장이 많다는 것을 증명한다. 나는 오늘 아직도 현장에서 투쟁하는 그들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섰다. 무엇보다 세계를 감동시킨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자유정신을 기리는 미국시민들과 더불어 아직도 지구촌을 덮고 있는 힘 있는 자들의 횡포에 희생된 자들이 없어질 때 까지 자신의 존엄성을 박탈당하고 사는 사람이 없어질 때까지 이 행진은 계속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하였다.

출발선에서 흑인인권 지도자들과 교류하고 LA시장의 환영을 받았다. (그는 후에 나에게 LA명예 시민권을 보내왔다). 내가 오픈카에 올라 행진할 때에 미국에 사는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놀랐다. 

   
 
물론 내 차량에 <그랜드 마샬 이해학 목사>라고 붙였지만 이름도 모르는 조그만 동양인이 검정 두루마기를 입고 “피이스! 리버티!”를 외치는 것에 어떤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는 고함들을 질러 댔다. 환영의 뜻으로 생각하자.

미국 의회는 초대 대통령 죠지 워싱턴과 마틴 루터 킹 생일(1월 15일)을 기념하기 위해 전 미국의 국경일로 정했다. 매년 1월 셋째 월요일은 마틴 루터 킹 퍼레이드가 있는 날이다.

오전10시부터 시작되는 이 퍼레이드는 전 미주지역 주단위로 진행되지만 LA지역 축하퍼레이드에는 무려 100만이 넘는 시민들과 흑인. 백인 . 히스페닉 등 각 단체들이 참여하여 축하퍼레이드를 다양하게 벌린다. 한국 무용단의 춤추는 행진은 시선을 받기에 충분했다. 감동적인 것은 주로 흑인들이지만 아침 일찍부터 길가에 자리들을 잡고 아예 살림도구까지 끌고 와서 자기들의 문화행사를 하면서 행진에 박수를 보내고 고함을 질러 응원을 한다. 그들의 해방자인 마틴 루터 킹을 존경하는 눈빛이 온 거리를 넘친다. 이 행사는 미국의 ABC TV를 통해 4시간동안 전 미주지역에 생중계 된단다.

 17회째 계속되는 LA퍼레이드 특징은 한-흑 갈등이 일어난 1994년 4.29흑인폭동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와 일치를 증진키위해서 한국전쟁에 참여하였던 한국을 사랑하는 흑인독지가 Mr. Larry E. Grant가 펀드를 조성해 창설하여 해마다 한국과 흑인이 함께 할 수 있다. 한인대표로는 아이티에 태권도 선교사로 일하시는 그랜드 매스터 전동석 선교사님이다.  
“한-흑 화해와 일치를 위한 퍼레이드” 인데도 거리에 한국인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은 아직 한국동포사회가 공감대를 이루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김영진 전 장관으로부터 내게 금년도 <마틴 루터 킹 퍼레이드>에서 <그랜드 마샬>을 맡으라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 나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리고 강하게 거부하였다. 나 보다 더 훌륭한 인권운동가가 주변에 많이 있다는 것을 설명 하면서 현장을 더 지키는 인권운동가들을 몇 추천하였다. 그러나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 대일본청산운동 외국인노동자 인권까지 종합적인 운동을 평생 해온 내가 적임자라는 것이다. 내가 수락 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코드는 “이번에는 목사여야 한다.”는 것으로 결국 내가 그랜드 마샬에 서게 된 것이다.

나는 안다. 내가 마치 마틴 루터 킹이나 된 듯이 두루마기 휘날리고 있지만 나를 세워 여기까지 오게 한 민중들의 피땀이 있었음을. 이런 영예는 과거 고난의 시절에 대한 위로는 될지 몰라도 이런 행사가 자칫 현제 아픔을 호도하는 것으로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도 우리사회 저변에는 시대적 고통을 견디지 못하며 스러지는 층이 있다. 우리가 그들을 외면하면서 인권잔치를 벌리는 교활함에 스스로 속이지 않아야한다고 다짐해본다.

   
 
사건은 언제나 현장에서 시작된다. 1955년 어느 날 미국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의 버스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백인들이 버스를 타면 흑인들은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불행한 비극이 법이고 관행으로 되어 있는 세상에서 한 흑인 여인이 이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그의 이름은 <로자 파크스>이었다. 동료 셋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존엄함을 지켰던 것이다. 이런 현장에서는 언제든지 갈등이 일어난다. 상식이 옳은가 양심이 옳은가?

피곤에 지친<로자 파크스>는 상식을 따를 물리적 힘이 없었다. 그녀는 결국  인종분리법으로 체포되었다. 이로 인한 흑인들의 분노가 폭발되어 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하여 영감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몽고메리 주에서 버스 보이콧운동이 일어나면서 그것이 산불처럼 번지고 노도와 같이 미국 사회를 삼켜 시골교회 착한 침례교 목사였던 마틴 루터 킹을  끌어내 행진에 대표로 세웠다.

마틴 루터 킹도 자신의 영혼 깊은 속에서부터 인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터진 것이었으리라. 이것이 링컨이 시작하였으나 정치적 형식에 그친 흑인인권운동이 다시 불을 붙였다. 비폭력과 무저항주의가 진보주의자들에게 비난을 받으며 백인들에게 냉대를 받는 상황에서 1964년 노벨평화상 까지 받지만 월남전을 반대하는 반전 운동가를 미국사회가 그냥 둘 수 없는지도 모른다. 1968년 4월 4일 멤피스의 한 모텔 2층 발코니에서 미리 잠입해 있던 테네시 출신의 백인 우월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인 제임스 얼 레이가 쏜 권총에 머리를 맞고 암살되었다. 그는 베트남 전쟁이 장기화되어가는 시기에 흑인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동참하기 위해 멤피스로 내려와 있었다. 이미 그에 대한 암살 소문이 파다하고 주변에서 피신을 권유하였지만 그는 하늘의 뜻에 맞기겠노라고 거절하였다. 베트남전을 일으키기 위해 <통킹만사건>을 조작한 그리서 미국 대통령에 당선 된 린든 B. 존슨는 킹 목사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선포하였다. 그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히브리서 11장38절)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링컨 기념관 앞에 20만명에 달하는 군중이 모인 인종차별 반대 집회에서 마틴 루터 킹은 불후의 연설을 남겼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과거 노예였던 사람들의 후손들과 노예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형제애를 가지고 한 테이블에 앉아 ··· (중략)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저의 네 아이들이 언젠가는 자신들의 피부 색깔에 의하여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인격에 의하여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나라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유명한 급진적 지도자인 말콤 엑스의 흑인 민족주의와 차별성 때문에 백인들도 마틴 루터 킹의 대열에 함께하였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단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아메리칸 드림' 을 완전히 실현할 길을 찾고 있을 뿐입니다. 기회의 공평함과 혜택과 재산이 골고루 분배되는 꿈, 피부색이 인격을 결정한다고 더 이상 논쟁하지 않는 땅에 사는 꿈,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가 중요시되는 땅에 대한 꿈- 이것이 우리가 지닌 꿈입니다. 이 꿈이 실현될 때 이 나라의 불협화음은 형제간의 아름다운 심포니로 변화할 것이며, 전 세계 모든 사람은 미국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땅이며 용감한 자들의 고향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워싱턴D.C. , 1962년 7월 19일

그러나 로자 파크스가 없었다면 마틴 루터 킹도 없었을 것이며 6년 뒤에 태어난 오바마 대통령도 없었을 것이다. 말콤 엑스의 백인에 대한 근원적 증오가 낳은 증오로는 문제 해결은 안 되는 것이기에 마틴 루터 킹의 “함께 더불어 사는 꿈”을 택하였다. 그의 꿈은 오바마 대통령 당선으로 성취 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과정이다.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이사야 11장 6)

그날이 올 때까지 정의에 목말라하는 창조적 활동가들이 역사의 현장을 지키며 불의한 현실에  도전하는  행진이 계속될 때만이 가능해 질 것이다.

이해학 목사(주민교회 원로목사)  hebul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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