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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셔 피는 꽃이 동백이라 했던가요?”<전순란의 휴천재일기-2015.1.27>
전순란 | 승인 2015.02.02 11:26

2015년 1월 27일 화요일. 맑음

“구더기. 그들은 질서가 파괴된 이 지구상에 유일하게 오붓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나봐요. 더럽게 냄새나는 배설물이라도 고맙게 받아들이는 겸허와 슬기가 퍽 돋보입니다. 그들은 성서도 필요 없고 옛 성현의 말씀도 필요 없을 거에요, 남녀노소 모두 벌거벗은 몸이지만 해탈의 경지에서 얼마나 화목합니까?”

서정술 신부님이 경향잡지에 쓰셨다는 글 한 토막을 마산주보에서 읽었다. 구더기야 썩은 것을 먹어치우지만(그래서 몸이 썩어가는 상처의 치료에 구더기가 쓰이기도 했단다) 요즘은 구더기만도 못한 인간 부류, 어디건 들어갔다 하면 모든 것을 썩히고 시체 썩는 냄새를 풍기는 구더기만도 못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요즘은 향기로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 오염될 여지가 없는 순수한 사람들, 다행이지만 지리산에 들어와서 얻는 가장 큰 소득이 바로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하는 일이다. 관을 무서워하고 손톱만큼의 이득이 생기면 당장 달려가지만 대한민국이 침몰하고 지리산이 무너져도 눈썹하나 까딱 않고 제 살길만 찾는 세태를 떠나서, 지리산에 살면서 인간과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 헌신하는 이들이 참 아름답고 향기롭다.

오후 늦게 산청 약초매장에 가서 미루씨 부부를 만나 차를 한 잔 대접받고 그니네 차로 함께 성심원에 갔다. 성심원 원장 오신부님을 비롯해서 ‘지리산종교연대’의 성직자중창단이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남자들은 본래 큰 소리에 더 큰 소리를 지르고 조신한 여자들(원불교 교무님들과 천주교 수녀님들)의 목소리는 작은 소리가 더욱 더 기어들어가 보스코가 참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듣다 못해 오신부님이 “밥이라도 먹고 합시다!”며 그들을 식당으로 안내하여 저녁을 대접한다.

성심원 식당의 밥은 언제나 맛있다. 실상사 공양간이든 성심원 직원식당이든 이력에 붙을 정도로 우리가 자주 밥을 얻어먹는 곳이다. 민어조기가 나오는데 섬나라 사람이어서 생선을 좋아하는 미루씨에게 내가 생선을 얼른 하나 더 얹어주었는데 그니는 딴 사람 먹을 것이 없을까 걱정된다면서 생선을 먹으면서도 몹시 부끄러워한다. 접시에 남은 생선 대가리 두 개가 양심을 부끄러워할 정도로 섬세한 인간이 있는가 하면, 수백 학생들을 세월호에 물속에 가라앉히고서도 “뭐가 어때서?”라고 철면피하게 눈을 부릅뜨는 인간 부류가 정권을 쥐고 나라를 흔들고 있다.

   
 
   
 
   
 
   
 
식사 후 미루씨네와 우리 두 부부는 함께 진주 옥봉 성당으로 갔다. ‘세월호 지리산 천일기도’가 주관하는 “진주지역 세월호 기도회”에 참석하는 길이다. 옥봉성당 하춘수 신부님(마산교구 정평위원장), 가톨릭농민회 지도 박창신 신부님, 마산교구 교육관장 신부님 그리고 오상선 신부님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미사를 공동으로 집전하셨다.

하신부님은 “인간이라면 정치 경제 이념을 넘어서서 생명의 가치와 권리를 돌봐야 하는 원초적 사명이 있는데 저 숱한 죽음을 목격한 국민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런 사건이 마지막이 되도록 진실을 밝혀야 다음 세대에 무고한 죽음을 막아낸다.”는 요지로 강론하셨다.

   
 
   
 
   
 
   
 
   
 
김유철 시인이 낭송한 "동백, 맹골수도에 피다"라는 시에서는 “떨어져셔 피는 꽃이 동백이라 했던가요?”라는 구절이 참석자 모두의 심금을 울렸다.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의 총무가 국회조사위의 직뮤유기 분위기와 새누리당의 은폐 시도를 대충 들려주었다. 지리산종교연대의 ‘성직자중창단’도 노래는 어설프지만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성직자들이 함께 무대에 오르는 아름다운 정경을 보여주었다. 사회자 최세현 선생은 그것을 ‘비쥬얼 노래’라고 소개했다.

일동은 강당으로 자리를 옮겨 가수의 독창, 유가족 간사가 청중과 주고받는 대담을 이어갔다. 진주를 빛내는 ‘큰들문화센터’의 합창과 퍼포먼스는 우리가 잊으려는 순간에 새로운 각성을 심어주었다. 우리가 기득권자들의 후안무치하는 범죄에 저항하는 가장 큰 무기는 그들의 죄악을 절대 잊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는 일이리라. 다시는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없게 만드는 일이리라.

   
 
   
 
   
 
   
 
   
 
   
 

   
 

 전순란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아내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http://donbosco.pe.kr/xe1/?mid=junprofiie

전순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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