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문화 단신
[이한수 기획연재] 제6회 왕따에서 벗어나려면조규미 단편 청소년 소설 <음성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한수(인성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 승인 2015.02.03 11:02

아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가 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합니다. 유아기에 부모, 특히 엄마와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어려워할 수 있고 과잉보호를 받으면 자율성이 자라지 않아 매사에 의존적으로 될 수도 있습니다. 관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되 간섭하지 않아야 건강한 자아가 싹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쉬운 게 아닙니다. 다들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미리 공부를 시키고 다른 집 아이와 비교가 되기 때문에 부모로서는 아이 스스로 뭐든 재미를 붙일 때까지 기다리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더 어려워집니다.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가족 간에 불화가 있으면 아이의 심성에 자존감이 깃들기 어렵고 제 스스로 잘 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열등감을 갖게 되면 친구들과 어울리기 어려워하고 외톨이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아이들의 인성 발달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 요인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가난한 집 아이는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크니 교육이 부를 세습시키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조롱받는 처참한 지경이 되었습니다. 사회적 환경이 이렇게 악화되다 보니 바르게 가르쳐 두루 평화롭게 살자 하자는 인간화 교육이 거듭 강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人間)’이라는 말 자체가 ‘더불어 살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이 모든 고통과 혼란이 본연의 인간성을 상실한 탓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보면 지나치지 않는 착한 마음, 나를 낮추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 남을 해코지하는 못된 사람에게 맞서는 정의로운 마음, 이런 마음을 키우는 것이 바른 교육이며 바른 교육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당연한 이치가 놓치지 말아야 할 지표가 되었습니다.

위인전을 읽혀 성공한 사람을 본받도록 하는 게 일반적인 교육 방법인데 이런 교육이 자칫하면 아이를 소외시킬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큰 사람, 힘 센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면 보잘 것 없는 자들을 혐오하는 미운 마음이 생길 수 있으며 더 심해지면 자신마저도 하찮게 여기며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남보다 뛰어난 아이가 되도록 다그치고 늘 비교를 하는 우리 교육이 아이들을 이렇게 외롭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요. 매사에 자신감이 없는 아이는 대인 관계를 두려워하여 외톨이가 되고 자만심이 강한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미움을 사서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 폭력과 왕따로 고통 받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예외 없이 이런 소외 현상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자아 존중감이 없어 불품없는 애라고 무시당하는 아이나 약자를 핍박하여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아이 모두 가혹한 경쟁과 승자 독식의 비정한 사회 체제에 희생된 것이라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이지메(집단 따돌림)를 겪은 일본에서 ‘사토 마나부’라는 교육자에 의해 창시된 ‘배움의 공동체’ 협동학습이 고통스러운 우리 교육을 극복할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공부가 우월성을 확인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소통하고 협력하여 함께 성장하는 행복한 기회가 되도록 그 본래의 뜻을 회복하자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위대한 영혼을 본받겠다는 각성도 중요하지만 소외된 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따뜻한 마음을 기르는 일도 간과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불쌍한 아이를 집단적으로 따돌리고 떼 지어 두들겨 패는 끔찍한 일을 대할 때에는 분노 조절이 어려울 만합니다. 매를 맞아 마땅하며 따끔하게 혼내 다시는 이런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각인시켜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의 병이 더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아이의 아픔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소외의 고통을 견디어 온 아이의 몸부림을 알게 되면 내 분노가 오히려 부끄러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아이와 마음이 통하게 되고 비로소 상처는 아물기 시작합니다.        

   
▲ 조규미의 소설 <음성 메시지가 있습니다>가 수록되어 있다.
집단 따돌림 등의 폭력 사건 가해자도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심리적 상처가 깊은 피해자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좀체 공감하기 어려운 끔찍한 일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는 올바른 정신 자세를 훈계하는 일보다, 함께 아파하고 눈물짓는 일이 먼저이며 그러지 않고서는 어떤 가르침도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공감한 다음에는 그 불쌍한 아이에게 어떻게 용기를 불어넣어 줄까 고민하게 됩니다. 협동학습처럼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보자는 목소리를 키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 일말의 용기라도 심어줄 감동적인 이야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다가 <음성 메시지>를 만났습니다.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어릴 적 놀이 친구(윤재)가 중학교에 올라오면서 외톨이 그림자가 되는 바람에 멀리하게 됩니다. 그 애와 지내면 나도 왕따가 될 게 뻔하니 다른 애들처럼 그 애를 따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학급에서 힘 센 패거리 멤버가 되었는데 그림자와 같이 놀다니 말이 안 됩니다. 그러다가 집단폭력에 가담하였다고 나(진수)는 징계까지 받게 되고 폭행을 당한 그 친구(윤재)는 전학을 가게 됩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패거리를 슬슬 피하게 되는데 이젠 자신이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될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더 이상 지낼 수는 없습니다.

빠르면 초등학교 3학년만 되어도 아이는 부모님에게 고민거리를 쉽게 털어놓지 않습니다. 들어주기보다 가르치려고 할수록, 조력자로 기다려 주기보다 해결자로 나설수록 아이는 점점 더 자기 얘기를 하지 않게 됩니다. 얘기해 봐야 일만 골치 아프게 된다는 걸 아니까요. 부모도 어릴 때 그런 일을 다 겪었으면서 까맣게 다 잊어버린 것처럼 아이 마음이 다가오도록 곁을 내어줄 줄 모릅니다. 내 행동이 심판 당한다는 느낌이 들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든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지지자 조력자가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께 털어놓기 어려운 말을 친구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고민을 들어줄 친구, 내 아픈 사연을 딴 데 퍼트리지 않을 상담자가 한 사람만 있어도 됩니다. 이 작품들이 외로운 아이의 아픈 사연을 들어줄 상담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들을 읽는 어른도 아이가 들어와 쉴 수 있도록 마음 한 켠을 비울 줄 알게 되겠지요.

<작품 읽기>

  윤은 어렸을 적부터 알던 사이다. 우리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윤의 집은 우리 집 맞은편 동이었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같은 학교로 진학한다. 그래서 누가 어느 동에 살고 누구누구가 같은 반인지 뻔히 알 정도다. 올 초 2학년이 되어 학급을 배정받고 교실에서 그 애를 발견했을 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특별히 반갑지도, 특별히 불편하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그 애와 함께 축구도 하고 놀이터에서도 많이 놀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애와 말을 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그 애를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나뿐 아니라 아무도 그 애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 애는 점점 그림자가 되어 갔다. 말도 없고 웃음도 없고 표정도 없는 그림자.
  그림자와 놀면 그림자가 된다. 그래서 아무도 그림자와 놀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뿐 아니라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냥 그것이 아이들 사이의 규칙이었다. 학교에 들어갈 때 운동화를 실내화로 갈아 신듯이.
  윤이 그냥 그림자에 머물렀다면 일이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림자가 밀고자가 되었을 때 문제가 생겼다. 그림자에게는 아무도 말을 걸지 않지만 밀고자에게는 말을 걸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비를 걸었다.
  5월답지 않게 유난히 더웠던 날이다. 후덥지근한 교실 공기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아이들의 신경줄은 녹아버릴 것 같았다. 그날 학급에서 도난 사건이 있었다. 은수라는 여자 아이의 지갑이 없어진 것이다. 
  나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속한 패거리 중의 한 아이였다. 우리는 비밀을 단단히 지키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비밀은 지켜지지 않았다. 우리 패거리 말고 다른 아이들이 도난 사건의 범인을 알게 되었고 담임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범인으로 지목된 아이는 담임과 면담을 했고 벌점을 받았다. 일이 그렇게 끝났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했다. 지목된 아이는 자신을 지목한 아이, 밀고자를 찾기 시작했다.
  “네가 말했어?”
  “내가 미쳤어? 그 돈으로 나도 먹었는데. 네가 나한테 말할 때 들은 애 없어?”
  “들은 애? 글쎄, 주변에 아무도 없었던 것 같은데…….”
  “혹시 쟤가 들은 거 아니야?”
  “쟤? 그림자?”
  그제야 아이들은 그림자를 하나의 인간으로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밀고자가 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들은 곧 밀고자를 단죄하기 시작했다.

이한수(인성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hansu85@daum.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