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땔 감 2<안상님의 살아온 이야기-1997.1.26>
안상님 | 승인 2015.02.04 14:56

연탄아궁이도 자꾸 개발되어서 널따랗다. 아궁이에 연탄이 들어갈 만한 둥근 토관을 넣고 공기구멍만 내고 다 봉해버렸다. 부넘기(아궁이에서 불길이 방바닥 밑의 고래로 넘어가도록 만든 고개같이 생긴 것, 서울 사투리로는 부냉기이다)가 연탄 불길과 잘 맞지 않으면 방이 덥지 않는다고 해서 나는 아궁이를 뜯어서 불길이 잘 들어가도록 굵은 파이프 같은 토관을 셋을 부넘기 에 올리고 아래는 연탄 열이 잘 빨려 올라가도록 각도를 맞추어 고쳤더니 방이 훨씬 따듯해진 일도 있었다. 그 다음에는 레일식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아궁이는 재래식 나무 때던 아궁이 같이 넓은데 바닥을 시멘트로 바르고 연탄 바께츠 밑에 바퀴를 달아서 밀어 넣었다가 연탄을 가르려면 잡아당겼다. 연탄이 연소되는 중에 나오는 일산화가스 때문에 사고가 많아 사망자도 나오고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소리도 들렸다. 연탄가스를 마셨을 때 동치미 국물이 해독을 한다고도 했다. 모두들 연탄가스를 무서워하면서도 달리 도리가 없으니 전전긍긍하면서 굴뚝에다 가스 배출기를 다는 것이 유일한 안전대책이었다.

1966년에 우리 세 식구는 그 전해에 미국으로 유학 간 남편을 따라 일리노이 주로 이사를 했는데 주말 목회를 하는 남편이 시무하는 교회의 목사관에서 살게 되었다. 부엌에서는 가스를 쓰고 지하실에는 기름보일러가 있어서 난방과 온수가 자동으로 다 돌아가고 내 손이 갈 일이 없었다. 냉장고를 비롯하여 텔레비전, 라디오, 시계, 커피포트, 프라이팬, 그릴, 토스터, 재봉틀, 세탁기, 건조기, 칫솔, 면도기, 가습기, 제습기, 청소기 등 전기기구가 많아서 참으로 신기하고 편한 세상이었다. 사람의 힘으로 하던 일을 전기 에너지라는 땔감으로 다 해결했다. 그런데 하루 밤에 난방이 꺼졌다. 관리 집사가 달려오더니 기름 탱크가 비었다고 한다. 내가 처음이라서 그런 것을 미리 점검할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땔감이 없으면 열을 낼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터득하게 되었다.

70년 여름에 남편이 학위를 받고 위스컨슨 주의 장로교회 담임목사로 취임되어 이사를 했다. 사택이 먼저 살던 데 보다는 작았지만 우리 다섯 식구가 살기에는 충분했다. 그 곳은 겨울에 보통 영하 20-30도 내려가는 혹독한 추위이나 집안에 들어가면 여름처럼 따듯했다. 단열재를 많이 써서 벽이 두껍고 창들이나 문이 다 이중이었다. 72년에 귀국을 일 년 앞두고 새 사택 건축을 시작했다. 남편이 취임하기 전에 목사를 구하기 어려웠던 이유가 바로 사택이었다고 했다. 미국인 목사들은 그런 사택에 오지 않는다고 해서 9개월이나 비어 있었다. 교인들이 우리가 쓰고 있는 사택이 좀 낡고 수준이하라고 해서 미안해하던 참이라 새 사택 짓는데 호응이 좋았다. 그 동네에서 아주 좋은 집 수준으로 지으니 반대하는 부자 장로도 있었다. 설계과정에서 부터 옆에서 지켜 본 나는 집짓는데 꽤 관심이 많았다. 단열재로 한국 보다 3배나 두꺼운 자재를 쓰는 것을 보고 놀랐다. 지금이니까 우리도 단열재를 쓰지 그 당시는 단열재가 별로 없었다. 한옥이야 벽 아래쪽에 돌을 넣어 화방 쌓고 기와 밑에 흙을 쌓아 단열이 되나 창문에는 창호지 한 장이고 덧문이 있었다. 마루는 대개 트여 있었고 분합문을 다는데도 얼마 없었다. 물론 거기는 우리보다 추운 기후여서 그렇겠지만 전쟁 후에 서둘러 짓던 우리네 허름한 집에 비하면 천년이나 살듯이 튼튼하게 짓고 있었다. 그렇게 단단히 지으니 땔감의 손실도 적을 것이다.

73년에 귀국하니 여기는 아직도 그 연탄을 때고 있었다. 편하게 살다가 갑자기 엣 날의 고역을 다 치르려니 무척 힘이 들었다. 큰딸이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데 병원에서는 아무 원인도 찾지 못하고 귀국후유증이라며 딸 하나 이기지 못하는 엄마를 나무랬다. 혹시 연탄가스가 방으로 새어드나 싶어서 방을 다 뜯어 고쳤다. 그 딸은 뇌수술을 받고 암으로 앓다가 일 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넋이 나간 우리 식구들은 아무 말 없이 하루하루를 넘겼다. 그러면서 몇 년을 지나다가 연탄에 시달리며 참고 살기가 너무나 힘들어서 나는 거금을 들여서 기름보일러로 고쳤다. 남들은 학교 사택에다 그렇게 돈을 처넣었다고 흉을 보았지만 나는 하루를 살더라도 고쳐서 편안히 살고 싶었다. 방바닥에 파이프를 깔아 배관을 하고 기름보일러의 뜨거운 물이 파이프를 지나가면서 방을 덥혀주니 따듯한 온돌이 되었다. 미국에서 살던 집만은 못해도 방마다 연탄 갈러 뛰어다니는 일은 줄었다. 혹시 보일러가 고장이 날 때를 대비해서, 또 기름이 비싸니까 따듯하게 살려면 너무 경비가 많아지니 안방 하나는 연탄을 쓰는 대로 그냥 두었다. 그 연탄 가는 일 때문에 밖에 나갔다가도 그 시간에 맞추어 허둥지둥 돌아와야 했다. 연탄아궁이가 여럿 일 때에는 한 곳이 꺼져도 다른 아궁이에서 불을 부쳐오기가 쉬웠지만 아궁이가 하나일 때는 불이 꺼지면 옆집에서 부쳐올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꼼짝없이 새로 피워야 하는데 여간 성가시고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니다. 그 짓을 안 하려면 연탄불을 꺼트리지 말아야 한다. 요즈음은 번개탄이라는 것이 생겨서 신문지 한 장으로도 불이 붙는 연탄 불쏘시개가 생겨서 좀 편리해졌지만 그때는 석탄 불붙이듯이 번거로웠기 때문이었다.

77년 말에 스위스에 있는 보쎄이 에큐메니칼 연수원 대학원 과정에 들어갔다. 10월에 시작인데 민주화 운동하는데 따라다녔다고 여권이 안 나와서 고급공무원이던 집안 동생의 보증을 얻어 12월에야 겨우 나갔다. 거기서 나를 감탄하게 한 것은 집집마다 가지런히 쌓여 있는 장작더미이다. 마치 예술 작품처럼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한 마차나 됨직한 장작을 쌓아 놓았다. 장작으로 난방을 하는 것은 아니면서도 벽난로를 위해 그렇게 예비해 둔다. 처음에 내방이라고 들어갔는데 온돌에서 지내던 나에게는 침대가 너무나 추웠다. 세타를 입고 양말도 신은 채 잤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 전에 더운 물로 목욕을 해서 몸을 녹인 다음에 오리털 이불 속에 온기를 보존한단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춥게 자는 것이 습관이 되었나 보다.

82년에 압구정동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남편이 우리 신학대학의 학장이 되면서 수원으로 새 교사를 짓게 되니 양쪽 학교로 다니기가 너무 멀어서 우리 집을 중간쯤에 마련한 것이었다. 그 때는 아파트가 선망의 대상이었다. 재래식 주택의 불편함이 싹 없어지는 곳이니 주택관리에 지친 주부들은 거의 다 아파트를 좋아했다. 밤에 자다가 남편이 “여보 연탄 갈 시간 아냐?” 하고 나를 놀린다. 그 때마다 연탄의 노예에서 해방된 것을 환호하며 기뻐했다. 아파트는 기름 탱크가 비었는지 점검할 일도 없다. 중앙난방식이어서 보일러를 켜는 일조차 없다. 조금만 이상하면 관리실에 전화하면 득달같이 달려와서 고쳐준다. 땔감이라는 어휘조차 생각할 일이 없다. 그저 매달 나오는 관리비만 꼬박꼬박 내면 된다. 난방, 온수, 취사용 가스. 전기요금 등이 다 들어 있다. 그러고 보니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도 바로 사람을 움직이는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땔감이나 마찬가지이다. 음식이 들어가지 않으면 사람은 죽을 것이다. 이 얼마나 희한한 일인가? 그런데 음식도 넉넉하고 땔감 걱정도 없는 그 좋은 아파트가 나는 점점 싫어졌다. 나무가 그리워서 한 달이 멀다하고 나는 푸른색을 찾아서 시외로 나가야 했다. 나무들이 있는데 가서 숨을 깊이 들이 쉬고 나면 “아! 살 것 같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자연에서 받는 무슨 땔감이 있나 보다. 나는 그 맑은 공기를 찾아서 나무 많은 동네로 집을 보러 다녔다. 또 한 가지 아파트에서 내가 미치도록 싫은 것은 대로변의 차 소리이다. 아파트 옆으로 올림픽대로가 생기면서 나는 하루도 편안하지 못했다. 그 소리는 내 영혼을 죽이는 나쁜 땔감 이였을까? 그래서 내가 편히 살 집을 찾아 헤매다가 창덕궁 옆으로 이사를 했다. 언니랑 친구들이 극구 말리는데도 나는 더 이상 그 아파트에서 살 수 없다고 절규하면서 이 한옥으로 옮긴 것이다.

안상님  sangnim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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