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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부재자투표 보리풀을 발라라<이해학 칼럼>
이해학 목사(주민교회 원로목사) | 승인 2015.02.08 16:23

요즈음은 군에서 자살도 많아 걱정들인데 내가 군대 생활 할 때는 지금보다 훨씬 힘들어도 자살 한 사람은 별로 못 보았던 것 같다. 나의 군 생활은 좀 유별났다.

68년 내가 뒤늦게 한신을 입학하였는데 그해 영장이 나와서 4월 8일인가 입대 날이었다. 이제 막 임마누엘 동산에서 강의가 시작되어 서너 번의 강의를 듣고 서로를 다 알지도 못한 채 징집에 응해야 했다.

군에 가는 것은 겁이 나지 않는데 가장 걸리는 게 어머니였다. 매일 연신내 천변 거죽대기 집에서 혼자서 일하실 어머니가 너무 안 되어 보였다. 어머니는 남대문 시장에서 계란을 받아다가 가게에 넘기셨다. 남원에서 홀로되신 이모님이 붙여주는 계란을 서울역에서 찾아다가 가게에 돌리는 보부장사였다. 무거운 짐, 깨지기 쉬운 계란, 골목골목 이고 다니는 수고로움 보다 더 어려운 것이 계산을 못하시는 것이었다. 치부책을 가지고 다니시며 계란 놓고 주인 보러 적어 달라 하셨다. 몇 천원의 계산을 위해 손가락을 한참 폈다 오므렸다 하시는 계산을 내가 조금씩 도와야 하는데 군에 가버리면 그게 가장 걱정이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독자는 군에 징집을 안가도 된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멀리 고향 순창군 유등면 사무소에 가서 문의를 하였다. 그런데 면사무소 직원 말로는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서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진단서를 첨부하여 제출하면 심사 할 수 있단다. 나는 할 수 없다는 체념으로 돌아서는데 면서기가 나를 부른다. 3만원만 주면 서류를 다 만들어 빼주겠단다. 나는 대꾸도 안하고 나와 버렸다. 결벽증인지 완벽주의가 심한 내가 그것을 수용 할 수 없었다.

군에 간다고 인사를 몇 군데 하였더니 돈들을 주신다. 나는 집에서 나서며 어머니께 인사드리고 주변에서 받은 돈을 다 털어 드렸다. 나는 이제 대한민국 군인이다. 군인은 군에서 나온 것으로만 살아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눌렀다. 논산까지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없다. 논산훈련소 신입동(대기소)에 들어갔다. 머리를 빡빡 깍은 고참들이 욕지거리를 입에 물고 몽둥이로 위협을 하였다. 불필요한 기합을 주고 소지품을 다 내놓으라는데 옷을 다 걷어가고 군용으로 걸아 입었지만 보물같이 안고 다닌 일기장을 빼앗기고 말았다. 생각지 않은 사건은 돈을 뜯어내는데 나는 돈이 없어서 곤욕을 겪었다. 하루가 지나니 그 사람들이 배치 받고 가버리고 우리가 또 들어오는 후배들을 닦달을 내었다. 하루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하루다음 온 사람들을 마음대로 짓이기는 것이 군대라는 것이구나 하고 배우기 시작 하였다. 힘의 횡포를 용납하는 세계가 군대다.

   
 
내가 배치 받은 것이 논산훈련소 32중대였다. 교관들이 32중대는 훈련소중의 훈련소 특수부대에 잘 들어 왔다고 기염을 토한다. 훈련소에서 가장 자주하는 것이 선착순 집합 몇 번부터 다시 돌아오기 이다. 나는 늘 빠르지 못해 항상 마지막까지 돌아오는 부류였다. 그런데 피해의식 같은 걸 느꼈다. 나무 밑에 잔잎을 쓸고 선착순 집합 하면 나는 쓰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은 흙을 뿌리고 달려가 줄을 선다. 어느 선배가“군에서는 요령을 잘 써야 피곤하지 않다”는 충고가 생각났다. 나는 어떤 고된 훈련도 받을 수가 있다. 나는 설사가 나서 밥을 먹지 못한 속에서도 총알이 배위로 나르는 포복훈련과 MRI(사격훈련)을 거뜬히 하고 일등사수가 되었다.

훈련의 최고봉은 사격점수이다. 우리중대는 대대로 전체에서 일등을 고수해온 유명한 중대이기에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밤에도 담요를 뒤집어쓰고서도 M1총 방아쇠를 처녀 젖가슴을 만지듯이 부드럽게 1단계 2단계 잡아당기는 훈련을 하였다. 그 결과 우리 중대는 최고점수 명예를 지켜 내었다. 그러나 백바가지(교관들이 흰 하이바를 쓰고 있기에 백바가지라고 부른다)들이 대부분 야외에서 훈련을 시키는데 훈련 아닌 것이 나를 괴롭힌다. 예를 들면 불필요한 기합을 연속으로 주어 군인정신이라는 것이 분노를 쌓이게 하는 것들은 훈련이 아니었다. 소대 대표는 아침부터 돈을 걷는다. 그래야 고된 훈련을 안 받는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괴롭다. 돈이 한 푼도 없기에 내가 돈을 못내는 것을 옆에 사람이 내어주곤 하였다. 그러면 훈련은 집어치우고 휴식 아닌 노래자랑 시간이 되고 개그맨 서영춘 동생을 끌어내어 “돌리지마라 돌리지 마라 내 앞에서 돌리지마라...” 노래를 시키는 것이 반복되었다.

군대는 편하게 살기위한 요령을 습득하는 학교였다. 이래가지고 전쟁을 치룰 수 있겠나 하는 생각들이 쌓였다. 또 숟가락은 왜 그리 없어지는지 내무반 검사 때마다 숟가락 없어 기합을 받는다. 내 숟가락도 몇 번이나 없어져 빠다도 맞았다. 별수 없이 교회에 가서 임신영 상병에게 부탁하여 해결하곤 하였다. 임상병은 내가 신학생이라고 설교를 한번 시켜서 설교를 한 사이어서 나를 어려울 때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어느 날 대통령 영부인 하사품이 전달되었다. 하얀 옥양목으로 만든 벼개피였다. 너무도 좋아서 남자들만의 괴성과 음탕한 농담들이 터졌다. 논산훈련소는 짙은 황토흙으로 덮여있다. 행진을 해도 붉은 먼지가 인다. 그러니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잠을 자고나면 벼개피가 붉게 되어 어떤 친구는 “내 머리가 맨스를 하였나보다.”해서 깔깔 웃었다. 그런데 그 벼개피가 불행 피였다. 며칠 만에 벼개피 검사가 나온 것이다. 누가 이럴 줄 알았나. 대부분의 훈련생이 줄 빠다를 맞았다. 어떻게 대통령 영부인 하사품을 더럽힐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할 수만 있으면 수돗가에 가서 벼개피를 빨았다. 오랜만에 목욕을 시켜주어서 소대원 전체가 한꺼번에 들어가 씻는 바람에 삽시간에 물은 빨개져버린다. 돌아와 보니 내 벼개피가 없어져 버렸다. 화장실 다녀오면 벼개피가 바뀌어있거나 아예 벼개피 쟁탈전이 벌어진 것이다. 아 우리의 군대 생활은 이래서 괴로웠다.

   
 
논산훈련이 끝날 무렵 희망부대 신청을 한다. 나는 카튜사로 보내 달라고 하였다. 3년간 선교사들 강의를 들었지만 영어가 되지 않아서 영어라도 좀 배워 볼 량으로 그렇게 신청했다. “너 누구 장성 빽 있어?” 없다니까 꿈도 꾸지 말란다.

나는 주산도 못하는데 영주 경리학교로 배치가 되었다. 낮에는 주산연습과 복잡한 예금출납에서 부기까지 많은 서식과 부대원봉급계산표 작성 등 내 적성에 맞지 않은 숫자와 싸워야한다. 수리에 약한 나로서는 힘들었다. 그런데 밤은 무서웠다.

내무반을 지도하는 하사관을 백두산 호랑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그가 서울 을지로 모 극장 사장 동생이라고 하며 그가 대단한 빽줄을 갖고 있다는 식으로 두려워하였다. 그는 밤마다 우리를 연병장에 불러낸다. 하이바에 이불을 이고 나오라 거나 맨발에 워커를 신고 구보를 시킨다. 휘영청 달빛아래서 고향이 절로 그리워 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나는 훈련이 다 되어갈 때에 교회에 가서 군목을 면담하였다. 그리고 대대장 면담을 신청하고 그 소원이 접수되어 대대장을 면담하였다. 그리고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다 말하였다. 그는 상습적으로 부대 밖 창녀촌에서 살고 그 비용을 훈련생에게 부당한 기압으로 갈취하는데 그것을 방관한 부대장을 나는 더 큰 문제로 삼을 수도 있다고 못을 박았다. 그 다다음 날 조처가 취해졌고 며칠 뒤 나는 또 군용 트럭에 실려 의정부 위에 전곡으로 실려 왔다. 5.16군사혁명 참전탑을 자랑하는 6군단 822포대는 수도권을 지키는 마지막 대형 포 부대이다. 나는 인사과에 배치되어 경리사병으로 일하였다.

가르쳐 주는 선임자도 없이 처음부터 모든 경리업무처리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사무실에서 날밤을 세우기가 일수였고 대대장부터 이등병까지 5백 명의 봉급액이 1원도 안 틀리고 들어맞아야 하는데 몇 번씩 틀려서 일일이 주산으로 검산을 하는데 세월을 보냈다. 완성된 서류를 가지고 서울삼각지 육군본부 <경리대>에 가서 퇴짜를 맞고 다시 와서 밤을 새웠다. 이런 일도 해낼 수 있다. 문제는 서울을 오가며 쓰는 경비가 만만치 않는데 기차는 출장 완장을 차고 해결하지만 버스나 식비 등이 지급이 안 되어 어머니께 가서 돈을 타 쓰기 시작한 것이 꽤 되어 어머니도 힘들어 하시었다. 군인은 군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한다는 신념 따위는 이미 무너져 버렸다.

그런데 67년 대통령 선거철이 돌아 왔다. 군부대 안에 투표소가 설치되고 우리는 투표를 하려고 줄을 서있는데 선임하사가 지켜 서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투표 안 한 놈은 영창에 보낸다” “그런 놈이야 말로 빨갱이 같은 놈들이다.” 엄포를 놓고 있었다. 아예 만만한 장병을 따라 들어가 “여기야 여기” 하며 역성을 부린다. 내가 “그래도 되는 거예요?” 하자 “제가 잘 모르니까 가르쳐 주는 거지 뭐.”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무난히 당선되고 육영수 여사 하사품으로 소고기 국물을 먹게 되었다. 벼개피 보다는 낳은 것 같다.

얼마 안 있어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다. 장병들에게 총선은 각기 자기 고향 후보를 선택하는 부재자투표를 해야 한다. 투표일 며칠전날 대대장이 교육이 있다고 모이라고해서 우리는 본부 내무반에 모였다. 대대장은 교안을 보아가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의 중요성과 투표 방법에 대해 설명해 나갔다. 그런데 옆에 있는 장병에게 “너!”하니까 “예 상병 아무개”하고 관등성명을 힘 있게 댄다. “대통령과 국회가 서로 협력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나라가 잘 되려면 누가 국회의원이 되어야하나?” “예! 여당국회의원이 당선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잘 대답했어요. 다음에 “너 ” “예 병장 아무개” “지역이 발전하려면 여당 국회의원이 예산을 많이 따내겠나? 야당국회의원이 많이 따오겠나?” “여당국회의원 이어야 합니다.” “그래 그런 거야 그러니 어디에 투표할지를 잘 선택하는거야” 할 때 나도 모르게 손을 들며 “질문 있습니다.”하였다. “응 말해봐” 나는 작심하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3권 분립입니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너무 가까우면 부패가 만연 할 수 있기에 행정부를 견제하고 나라를 건강하게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독립적 기능을 발휘해야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기에 야당국회의원이 많아서 나쁠 것이 없으며 지역에 배당하는 예산은 급한데 부터 골고루 해야지 야당이면 예산 못 따내어 지역발전 안 된다는 생각은 무리한 논리 아닙니까? 하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 새끼 건방지게 어디서 감히 누구 앞에서 까불어” 하며 내 귀싸대기를 갈겨댔다. 역시 충성스런 개 같은 선임하사 이다.

그 다음날 나를 영창에 보낼 준비를 한다는 말이 들렸다. 나는 인사과장인 추영규 대령을 찾아가 만일 나를 영창에 보내면 대대장이 영농자금 다 착복하고 나는 농기구집 씨앗집 가짜서류 만들며 다닌 것 다 증거 잡아 고발 할 테니 알아서 하라고 전했다. 영창은 면 했다.

   
 
총선투표 후 연병장에 헌병차가 두 대 달려와 서더니 다짜고짜 인사과장에게 항의를 한다. 총선결과 우리중대가 전 부대에서 여당표수가 꼴찌라는 것과 이것은 대대장 문책감이라고 대들었다. 그들이 돌아간 뒤 우리는 저녁밥 먹다말고 완전무장 연병장 집합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밤늦도록 구보를 하였다. 구보를 하면서 나는 옆에 동료들과 투덜거렸다. “아니 우리가 찍은 투표용지를 분명히 내손으로 2중 봉투에 넣어 풀 발라 붙였는데 어떻게 헌병대에서는 대대장부터 쫄병까지 그 사람이 어디에 찍었는지 조견표를 만들어 왔지? 귀신 곡할 노릇이네.” 하였더니 옆에 있던 취사반장인 성 상병이 대답한다. 나는 이 말을 차라리 안 들었으면 군에 대한, 국가에 대한, 세상에 대한 불신이 덜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보리풀을 쑤었기 때문이야. 선거 때 마다 보리풀을 묵게 쑤라는 지시가 내려와” “보리풀이 왜? 보리풀은 물기가 있을 때만 붙었다가 말랐을 때 손가락으로 탁 치면 그냥 떨어져!”

선거란 일종의 사기이다. 민주주의를 한다는 명분을 갖기 위해 거대한 돈을 쓰며 벌리는 국가적 사기축제 이다. 정의가 없는 민주주의는 회칠한 무덤이다. 지금도 부재자투표 발표 때 마다 군부는 누가 감시하나? 이번에도 보리풀은 쑤었겠지.

나는 얼마 후 열이 오르고 시름시름 앓아서 병원에 갔더니 결핵이라고 해서 의정부 101 보충대병원으로 후송되었다가 다시 마산 육군병원으로 후송되어 다음해 의병제대를 하였다.

이해학 목사(주민교회 원로목사)  hebul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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