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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따르라는 신호인 표적<정현진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⑫-1> 출애굽기 10장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 승인 2015.02.10 13:30

 

이번 <정현진 목사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열 두번째 순서는 분량상 두차례에 나눠서 싣습니다. - 편집자 주

아홉 번째: 메뚜기 표적(10:1-20)

출 9:34-35 출 10:1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메뚜기 표적은 우박 표적에서 간신히 해를 입지 않은 농작물을 완전히 먹어치우는 것이었다(5, 12절). 출 9:14에서 재앙이라 불렀던 하나님의 표적이 다시 표적(오트 = 표징)이란 말로 되돌아 왔다(출 10:1). 아홉 번째 표적부터 성경은 파라오가 자신의 마음을 완악(완강)하게 하였다는 언급 대신에, 하나님이 그리하셨다고 표현한다.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냐 하나님의 섭리냐 하는 끝없는 토론의 실마리가 되고 있다.

출애굽기 10장에서 하나님은 ‘진실로 내가 그의 마음과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였다. 이는 그들 마음중심에(뻬키르뽀 ABr>qiB. = 그[마음]의 속에) 나의 표징들(표적들 오트)을 자리잡게 하기 위함이다 (직역)’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하시는 목적을 하나 더 추가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표적을 일으키시는 목적이 ‘파라오와 그 백성에게 여호와를 알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지금까지 언급되었다. 이제는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10:2)고 말씀하셨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행하시는 표적의 두 번째 목적이 밝혀졌다. 단순히 여호와를 알 뿐만 아니라, 그분의 구원행적을 찬양하고 대대에 전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이 일을 계속하신다는 것이다(사파르 rps의 피엘형). 이렇게 표적의 목적을 밝히신 하나님은 이번에는 메뚜기를 통한 표적을 예고하셨다(10:4-5). 나중에 예언자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메뚜기로 이스라엘의 농토를 초토화시키는 환상을 보고 질겁을 하였다(암 7:1-3)는 사시에서도 우리는 이 표적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예고에 앞서 하나님은 파라오의 태도를 ‘내 앞에 겸비하지 않다’고 진단하셨다(메아느타 레아노트). 여기에는 거절하다, 달가워하지 않다는 뜻을 가진 말(마엔)과 ‘아나’ (hn[) 동사의 단순재귀형(Niph) + 전치사()가 쓰였다. 아나동사가 이런 형식으로 쓰일 때에는 ‘스스로를 괴롭히다’는 뜻이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않은 것은 결국 자기가 자신을 스스로 괴롭히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 앞에서 겸비할 때 하나님은 이렇게 반응하신다: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왕상 21:29)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대하 7:14)

하나님은 피조물이 자신 앞에서 겸비하기를 원하신다. 파라오도 그리하기를 바라시지만, 그가 언제 이리 될 지 아직 미지수다(아드 마타이 = 언제까지?). 한편 여기서 ‘어느 때까지(언제까지)’라 한 것은 하나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그 때까지만 (때가 차기까지만) 심판을 보류하시는 것이다. 여기서는 일단 하루의 말미가 주어졌다: “만일 네가 진실로 내 백성 내보내기를 거절한다면, 보라, 내가 내일 네 영토 안으로 메뚜기를 가져 오리라”(4절 직역).

   
 
그 메뚜기 떼가 가져올 피해가 5-6절에 구체적으로 적시되었다. 우박 표적에 이어, 이번 표적도 이집트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극심하리라는 것이다(출 9:18; 10:6). 이 말을 들은 파라오의 신하들 가운데 일부가 기겁을 한 것 같다. 그들은 메뚜기 표적이 시작되기도 전에 파라오에게 적극 동조하던 태도를 바꾸어 자기 의견을 개진하였다(10:7). 그들도 파라오에게 ‘어느 때까지’(아드 마타이)란 말을 써 가며, 파라오에게 동조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음을 시사하였다. 더구나 그들은 ‘(아직도) 진정 이집트가 망하는 줄을 모르시나이까’ (키 오브다 미츠라임) 라고 말하면서, 지금까지 시행된 8가지 표적으로도 이미 이집트가 많이 망가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이것이 이 부분과 이전의 표적이야기가 다른 점이다. 거듭되는 표적과 그에 따른 후과(後果) 앞에 관료조직과 왕권 사이의 단단한 결합에 틈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파라오도 모세와 아론을 불러들였다. 이것은 지금까지 없던 일이다. 파라오는 모세가 자신을 찾아와 여호와를 경배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광야로 가게 허락해달라고 요청한 이래(출 5:1), 처음으로 모세와 아론을 자기에게 데려오게 한 것이다. 그는 이전보다 구체적으로 협상을 하였다: ‘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 자는 누구 누구냐’ (10:8). ‘누구, 누구냐’ 라며 의문사를 두 번이나 되풀이 쓰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대표 몇몇 사람을 염두에 둔 것일까? 수혜(협상) 대상자를 몇몇으로 한정지으려는 기득권자의 이런 태도는 오늘날에도 비일비재하다. 이미 모세는 광야로 나갈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 전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하였다(출 5:1; 7:16; 8:1, 20, 27; 9:1, 13). 그런데도 이렇게 묻는 것은 파라오가 그동안 모세의 말을 뒷등으로도 듣지 않았거나, 모세와 협상하는 척 하며 기만하려는 술책일 것이다. 그러자 모세도 구체적으로 대답하였다: ‘우리 젊은이 오 노인, 남성과 여성, 그리고 우리의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 (10:9). 전체를 강조하느라 모세는 매 대상자에게 ‘우리’라는 접미어를 붙여 되풀이 사용하였다. 이에 파라오는 노발대발하였다(10:10): ‘보라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 (직역: 보라, 너희 얼굴 앞에 악이 있다; 개역: 너희 경영이 악하니라; 공개: 허튼 수작은 부리지 마’; 표준: 어림도 없다! 너희가 지금, 속으로 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음이 분명하다!). 한마디로 말해 ‘악한 것이 너희 얼굴에 다 쓰여 있다’는 뜻이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남정네(각 가정의 가장?)만 광야로 가 여호와께 예배드리라고 허락하였다. 이것만 해도 파라오가 크게 양보한 것임에 틀림이 없지만, 이는 하나님의 말씀(계획 = 총체적인 그리고 완전한 출애굽)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이리하여 협상은 결렬되었다.

이제 메뚜기가 이집트 전역에 전무후무한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다(14-15절). 예언자 요엘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예고하였다: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 (욜 2:2).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들여 말하였다: ‘내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죄를 지었다. 자 이제 나의 죄를 이번 한 번만(제발) 용서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은 내게서 떠나게 하라’ (10:16-17). 죽음까지 언급할 정도로 심각한 일이 벌어지자, 그는 모세와 아론에게 바짝 엎드렸다. 하나님은 파라오와 이집트를 위한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서풍을 강하게 불게 하셔서, 메뚜기떼가 홍해바다로 밀려나 빠져죽게 하셨다. 이는 장치 파라오의 군대가 그 바다에 빠져죽게 된 것을 예표하는 사건일까?

이렇게 숨통이 트이자, 파라오는 약속을 저버리며 또다시 자신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였다. 이로써 제 입으로 스스로 ‘죄를 지었다’고 인정한 말이 진심이 아니라, 당장의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꼼수였음이 드러났다(출 9:27 참조).


열 번째: 온 땅에 흑암이 깔리다 (출 10:21-29)

파라오의 거듭된 변덕 탓인지, 이 표적은 아무 예고 없이 막바로 일어났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세가 하늘을 향해 그의 손을 내밀자(네테 야데카 알 핫샤마임) 이스라엘 자손이 사는 고센지역만 빼놓고, 사흘동안 밤낮없이 이집트 전역에 어둠이 깔렸다. 성경에 ‘...을 향해 손을 펼치다’는 말(hjn 나타 야드 알 ...)은 흔히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킨다. 예언자 이사야는 남왕국 유다의 죄를 열거하면서 저주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그 저주선언 말미에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는 것을 ‘...을 향하여 그의 손을 펴다’로 표현하였다(사 5:25). 예언자 에스겔도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이스라엘 가문 위에 펴서 그들이 사는 온 땅 곧 광야에서부터 디블라까지 황량하고 황폐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을 전하였다(겔 6:14). 이 표현은 외국인(외국)의 심판을 묘사할 때에도 쓰였다. 그 대부분은 이집트를 징계하는 문맥에서, 그리고 신명기 3:24에서는 동부 요르단의 여러 민족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사람들이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그 어둠이 짙었다. 여기 ‘더듬을 만한 흑암’이란 말(워야메쉬 호셰크 ← vvm)은 이삭이 에서인지 야곱인지를 확인하고자 더듬거리며 만질 때에 쓰였다(창 27:12, 21-22). 여기서도(직역: 그러면 그것이 ...을 더듬거리게 할 것이다) 이 말은 마치 눈먼 소경이 길을 갈 때 더듬거리며 가듯이 이집트 사람들도 그리 되었다는 뜻이다. 22절에는 어둠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낱말 두 가지(호셰크. 아펠라)가 칠흑같은 어둠을 강조하였다. 같은 혹은 비슷한 낱말이 되풀이 쓰는 것으로 그 의미를 강화시키는 용법인 것이다. 이렇게 어두운 상태에서는 사람이 자기 형제를 전혀 볼 수 없었다(로 라우 이쉬 에트 아카우)고 한다(23절).

“그러나 모든 이스라엘 자손의 거주지 안에는 빛이 있었다” (출 10:23b). 모기, 파리, 가축의 괴질, 우박 등에 이어 이 흑암에서도 이스라엘 자손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태양이 그 빛을 잃었다는 점에서, 사람들 중에는 이를 이집트의 우두머리 신인 태양신( 또는 아몬 레)의 신성이 사라진 사건이라고 보기도 한다. 어둠을 상징하는 뱀(아포피스 Apophis)가 태양을 거듭 공격하기 때문에 밤과 낮이 되풀이된다고 이집트인들이 믿었다는 사실에 착안하는 사람도 있다. 곧 사흘동안이나 어둠이 계속된 것은 아포피스가 태양신에게 승리하여, 이 세상에 혼돈과 악마의 세력이 자리잡았다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태양을 좌우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다. 여호수아(수 10:12-14), 히스기야왕(왕하 20:1-12)의 경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짙은 어둠 마 27:45 참조) 등에도 이런 사실이 밝히 나와 있다.

이 표적에 놀란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에게 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하며 협상을 벌렸다: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다만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게 하고 또한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10:24). 모세가 이를 거절하자, 그는 협박을 하며 모세를 내쫓았다: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정녕)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10:28). 이로써 열한 번째 표적이 일어나기 전 마지막 협상은 결렬되었다. 파라오는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만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파라오가 자신의 마음을 부드럽게 할 기회를 주셨다. 모세의 기도로(출 8:8, 28; 9:28; 10:17), 이집트 술사들의 고백으로, 자신의 측근들의 조언으로, 무엇보다도 그 자신이 협상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하심으로 그에게 기회를 허락하셨다. 그런 기회들을 그는 번번이 내던져 버리고 말았다.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psalm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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