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을 곧 ‘하느님’으로 이해한 함석헌 알기에 대전제가 곧 함석헌의 그 ‘뜻’의 이해다. 그러나 하나님까지 ‘영원한 미완성’이라고 말하는 함석헌의 경우 ‘뜻’이라 한들 확실한 답이 있을리 없다. 일반적인 기독교인의 경우,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나는 계시를 받았다.’, 조금 더 나아간 경우 ‘나는 하나님을 만났다.’는 말을 흔히 하지만 함석헌은 그것은 ‘개인의 체험’으로 이해한다. 하나님은 영원히 찾아가야 하는 이, 찾아가도 만날 수 없는 이, 그럼에도 믿어지는 이, 그래서 또다시 찾아가야 하는 이. 함석헌의 ‘뜻’ 역시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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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함석헌의 ‘뜻’의 의미는 찾아가는 데에, 찾아간다는 데에 있다 할 것이다. ‘무엇’을 예정하고, 결정하고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찾고 또 찾으면 찾아야 할 것이 오히려 날 찾아오게 된다. 그러면 된 게 아니다. 날 찾아온 그이는 나를 또다시 만나야 하는 자에게로 이끈다. 함석헌은 퀘이커 사상에서 찾는 자(Seeker)라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없다고 말한다. 찾고, 또 찾고... 언제까지도 없고, 어떤 것이라는 것도 없이 때로는 울면서, 때로는 박장대소(拍掌大笑) 하면서 어느 순간 ‘이거다.’ 했던 것, 어느 순간 ‘에이, 아니야.’ 내던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가면서 찾고, 찾으면서 가는 함석헌은 그렇게 가는 그것을 뜻 찾기, 뜻 찾아감이라 했다. 뜻이라! 인생은 곧 그 뜻 찾기이다.
‘뜻’으로 게시는 함석헌(咸錫憲)의 하나님
1965년, 함석헌이 그의 저서 <聖書的 立場에서 본 韓國歷史> (초판은 「... 韓國歷史」가 아닌 「... 朝鮮歷史」였음-필자 주)의 <聖書的 立場에서 본 ...>을 <뜻으로 본 ...>으로 개제한 이후 그가 쓴(받은-필자 주) ‘뜻’을 물론 점진적(漸進的)으로 된 것이었지만 인격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정통적인 기독교인의 말로 한다면 그 ‘뜻’이 곧 함석헌에겐 ‘살아계신 하나님’이 되셨다는 말이다. 그에게 태초에 뜻이 계셨고, 그 뜻이 그에게 하나님이셨다는 것이다.
이 함석헌의 ‘뜻’을 학술(?)적으로 풀어 밝힌 이가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함석헌의 전도사’로 자청하고 나선 이로, 박정희를 힘의 사람으로, 함석헌을 뜻의 사람으로 비유하면서 함석헌의 ‘뜻’을 다음과 같이 풀어 밝히고 있다.
“... 그리하여 힘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권력자는 독재에 흐를 수밖에 없는데, 박정희의 경우가 더도 덜도 아니고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가 모든 정치적 반대자들을 살인적으로 억압하고 마땅히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정치적 권리를 빼앗으며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성장 보다 대기업 중심의 집중적 계획경제를 선호한 것은 근본에서 보자면 모두 ‘힘’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던 그의 천박한 정신에서 비롯된 일이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함석헌은 힘이 아니라 뜻의 사람이었다. 뜻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편에서는 씨
들 각자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의지(Will)이며, 다른 한편 역사를 관통해 객관적 의미(Meaning)이다. 삶의 보람은 나의 주관적 의지와 전체 세계 및 역사의 객관적 의미가 하나로 만나는데 존립하는 것이다. 나의 삶을 전체의 선과 일치시키는 것이야말로 함석헌이 그리도 강조했던 천명을 따르는 삶이었다. 함석헌이 박정희식의 부국강병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까닭은 그것이 씨의 자유와 자발성의 관점에서도 결코 승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힘을 가진 자, 이긴 자의 편에서만 역사를 보는 것은 언제나 피상적인 역사인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함석헌처럼 엄정하게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다. 더 나아가 함석헌은 우리 역사의 모든 고난에 대해서도 그 원인을 힘이 없는데서가 아니라 뜻을 져버린데서 찾았다. 역사의 결정적 고비마다 뜻이 아니라 눈 앞의 이익을 선택한 것이 이익을 선택한 것이 오늘날 한국인을 이토록 위축되고 비천한 상태에 빠뜨렸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었던 것이다.”(씨의 소리 207호 「함석헌과 박정희」 105-106쪽)
이제 함석헌은 뜻에게 뜻을 묻는다. 뜻에서 뜻을 찾고, 그 찾은 뜻으로 명(命)을 삼는다. 뜻 외에 어떤 것도 함석헌에게는 우상이었다. 기독교의 야훼도, 불교의 붓다도, 이슬람의 알라도, 주체사상의 김일성도, 그 외의 ‘절대’라 불려지는 어떤 것도 함석헌에겐 그 뜻에 의해 검증되어야 하는 대상들이었다. 함석헌은 「聖書的 立場에서 본…」을 「뜻으로 본…」으로 개제하기 20년도 더 이전, 한국교회권(圈)에서는 물론 더 나아가 한국 기독교의 성서관(韓國基督敎聖書觀)에서도 일탈해 있었다.
기독교냐? 참이냐? 자신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함석헌을 교회 강단에 세워서는 안된다’며 정통을 강조하는 교권자들을 향하여 “내 즐겨 이단자가 되리라/ 비웃는다. 겁낼 줄 아느냐/ 못 될까 걱정이로다” 하며 그 저항에 거칠 것이 없었다.
…들으라 오 들으라
하늘이여
땅이여
그 사이에 소용돌이쳐 올는 인간의 회오리바람이여
내 즐겨 이단자가 되리라
비웃는다 겁낼 줄 아느냐
못 될까 걱정이로다
오 나로 늘 새 줄을 들게 합소서
앞으로 밖에는 모르는 몰아치는 영이 이를 명한다
내 감히 자신있어 지어먹는 맘에서랴
내 속에 분명 딴 뜻을 나는 듣노라
나의 나직하잠에는 거슬리는 뜻을
내 기독교에 이단자가 되리라
참이야 어디 딴 끝이 있으리요
그것은 교회주의의 안견에 비치는 허깨비 뿐이니라
미움은 무서움으로 설으고, 무서움은 허깨비를 낳느니라
기독교는 위대하다
그러나 참은 보다 위대하다
참을 위해 교회에 죽으리라
교회당 탑 밑에 내 뼈다귀는 혹 있으리라
그러나 내 영은 결단코 거기 갇힐 수 없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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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하늘이 준 본래의 모습을 바꿔치기 당한 채 있었다. 성서가 한 제도적 종교의 경전으로 유폐된 후엔 그 경전에서의 열심은 뜻의 체현(體顯)으로서의 인격이 아닌 미구에 풀어져 없어질 제도종교의 종살이로 추락케 한다. 그런 점에서 함석헌은 하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다.
그가 그 자신을 뜻의 사람, 뜻을 찾는 사람으로 선언하고 나섰을 때, ‘님’의 기쁨 얼마나 크셨을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 모든 역사, 모든 종교를 다 품고 계시는 이지, 어떤 ‘만’의 종교에 들어계시는 이가 아니시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까지나 남의 종교를 믿고 있을 수는 없었다. 처음에 오산에 있을 때,(함석헌의 30대-필자 주) 나는 우찌무라(內村)의 ‘무교회 신앙’을 믿고 있었지. 내 종교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남이 해준 사상, 그 말을 그대로 외우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그것이 싫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내게 준 성품이었다. 나는 차차 나로서 보고 싶은 내 생각, 내 믿음을 가지고 싶었다. 나는 선생에게서 해방되고 싶었다. …「성서적 입장…」을 「뜻으로 본…」으로 바꿔낼 때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많은 기독인 더군다나 무교회(無敎會) 신자들을 섭섭하게 할 것과 심하면 거침돌이 될 것까지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제 기독교인만 생각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들이 불신자라는 사람도 꼭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게는 이제 믿는 자만이 뽑혀 의롭다 함을 얻어 천국 혹은 극락세계에 가서 한편 캄캄한 지옥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 많은 중생들을 굽어보면서 즐거워 하는 그 따위 종교에 흥미를 가지지 못한다. 나는 적어도 예수나 석가의 종교는 그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함석헌의 ‘님’의 ‘뜻’은 실로 위대했다. 함석헌을 기독교권에서 이끌어낸 그 뜻, 그 뜻은 이제 함석헌으로 국가주의(國家主義)를 맞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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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 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 상임고문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교회 원로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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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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