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버려라 - 에큐메니안

김포시 민통선안에서 민통선평화교회를 개척해 18년간 목회를 해온 이적 목사의 자전적 성격의 에세이 <민통선 예수>를 매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전두환은 3년 만에 내게 자유를 주었다. 소위 계엄포고령위반이라는 죄목으로 삼청교육대에서 1년을, 죄명 없는 죄인으로 청송감호소에서 2년을, 총3년의 젊음을 소모해야 했던 것이다.

출소 후,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막막했다. 분명히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데 세상의 모습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니 세상 모습에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3년 만에 세상으로 돌아온 내겐 모든 것이 낯설었으며 무엇 하나 가깝게 다가오는 것은 없었다. 심지어는 공중전화 박스도 바뀌어 있어서 전화 거는 것 조차도 더듬거릴 정도였다. 사람들은 전부 내게 등을 돌리는 것 같았으며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들이 눈에 역력했다. 심지어는 가까운 피붙이 형제들도 내겐 낯설었으며 특히 누나의 남편인 매형들의 행동은 더 더욱 그랬다. 친형제들조차 그런 모습이니 집안 친인척들의 행동은 말해서 무엇하랴싶을 정도로 그들의 모습들은 냉랭했다.

나는 갈 곳이 없었다. 장가를 가서 처자가 살고 있는 집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친형제들이 하나뿐인 남동생 고생했다하여 자취방 하나 얻어줄 형편이 안 되었으니 천상 갈 곳이라곤 고향 어머니집 뿐이었다. 그러나 그곳엔 죽어도 가기 싫었다. 이미 그곳엔 나의 이미지가 추락 할대로 추락되어있어서 그곳으로 가는 순간 <빨갱이니 깡패니 사기꾼이니> 하는 말이 난무할 것이니 가봤자 자존심만 더 상할 것이었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다. 그러니 고향<섬>으로 가는 여객선을 탈수밖에 없었다. 고향<섬>은 여전히 옛날 사람들 그대로 단촐하게 살고들 있었다.

인구 7천의 작은 섬, 면(面)급 섬이었지만 농어촌의 인구 감소로 한때 1만 2천까지 육박했던 인구가 이제는 7천여 명 밖에 남아있지를 않았다. 내가 섬으로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의 눈은 역시 번뜩거렸다. 어딜 갔다 이제 돌아온 건달(？)이냐는 식의 눈빛들이었다. 그것은 고향에서 면서기를 하고 있던 중학교 동기 ㅈ을 만나면서부터 노골화되고 있었다. 중학교 동기 ㅈ은 학교시절 막역지우라 할 수 있었던 친구였는데 섬마을 옥동이라는 마을에 살고 있었다. 그 친구도 무녀 독남이고 나와 같은 독자아들이라 어릴 적부터 나와 동질감을 갖고 있는 외로운 친구였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찍부터 공무원 밥을 먹기 시작했던가 보았다. 나는 아버지 산소를 찾아보러 가는 길에 그를 맞닥뜨렸다. 3년 만에 이방인처럼 고향섬 마을에 숨어들어 그래도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아버지를 만나야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 생각했던 나는 섬 동네 사람들 눈을 피하여 호젓한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길은 옛날엔 오솔길이었는데 이미 섬마을 일주도로가 되어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길로 바뀌어있었다. 나는 바다 건너 고성땅 육지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걷고 있었는데 그때 산모퉁이에서 느닷없이 오토바이 한 대가 <부아앙>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 앞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나는 가능하면 그 오토바이를 탄 사내가 나를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그러나 오토바이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갑자기 내 앞에서 멎었는데 그가 바로 ㅈ이였다. 나는 약 10여 년 만에 만난 그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하마터면 큰소리를 지를 뻔 했다. 그러나 큰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큰소리 이상의 반가움을 표현 하며 <오랜만이야>를 연발했는데 나는 늦게서야 그의 눈이 너무도 싸늘하게 식어있음을 깨닫고 내밀었던 손을 금방 거두어들이고 말았다. 그의 시선은 나의 아래위를 한번 훑어보는듯하더니 <요즘, 뭘해>하는 한마디가 첫마디이자 마지막 마디로 나의 반가운 호의를 깔아뭉개고 있었다. 그리고는 더는 볼 것 없다는 듯이 다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는 금방 그 자리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져 버렸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그가 남긴 오토바이 먼지 속에서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나의심경은 비참함 그것으로 얼룩져 있었다.
눈에서는 금방 자존심으로 으깨어진 피눈물이 유리 파편처럼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와 나는 중학교 시절 유독 친한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았었고 이후 문학청년으로 성장한 나는 어느새 자존심이 무척 강한 청년으로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날 아버지의 성묘를 어떻게 마치고 돌아왔는지 기억이 없을 지경이었다. 고향 친구로부터 받은 모멸감은 그 후유증이 너무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나는 오랫동안 그 친구의 모멸감을 기억에 떠올리며 생활해야만 했다. 인간이란 확실히 그랬다. 불행한 사람이 느끼는 모멸감은 정상인이 느끼는 모멸감보다 갑절이 넘는다는 것을, 나는 그날 이후 어떤 사람이라도 불행함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말 한마디의 실수도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생활화하는 큰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어쨌든 ㅈ으로부터 받은 모멸감에 이어 예상대로 섬동네 사람들이 내게 보내는 시선은 한마디로 고통 그 자체였다. 섬마을 사람들은 그랬다. 말을 걸면 말 상대를 해주는 것 같으면서도 서둘러 나와의 대화를 거두려고 하는 점, 깊은 대화를 하면 반드시 그 말 속엔 빈정거림이 있다는 점, 술좌석이든, 어떤 모임이든 절대 끼워주지를 않는다는 점 , 그것은 폐쇄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냉대였다.

어머니는 나의 눈치를 읽었는지 아무 말씀도 안하시지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해 하셨던 모양이었다. 어머닌 자식이 건달 생활쯤이나 하다가 나쁜 곳에 끌려갔다온 것 으로 여기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아들의 행적이 무척이나 부끄러운 행적으로 생각되어지고 있었을 듯 했다. 하지만 고생하고 돌아온 아들에게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곤 나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소주를 한 번씩 마시곤 했다. 내가 아무리 이지적이고 큰 인격을 갖고 있다 해도 상대를 해주지 않는 무관심 앞엔 그 고통을 참아내기가 그리 쉽지가 않았다. 아무리 큰 학문이든 지식이든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집단속에서는 그것은 고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어쩌다 찾아오는 유일한 벗은 사촌동생이 술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었다. 그때 사촌동생은 서울에서 E대학을 다니다가 군 입대를 앞두고 휴학을 하고 있을 때 였던가 , 그가 시간나는 대로 자주 나를 찾아와 주었다. 나는 동생 권호가 찾아오면 외로움을 털어버리려는 듯 문학과 인생을 이야기하며 울분을 토해 내곤 했다. 주로 그 대담은 우리 앞집 구멍가게에서 소주를 마시며 이루어지곤 했는데 그때 동생과 나는 제법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한국문학과 문단, 그리고 사회의 모순을 지적했고 또한 모더니즘의 허무감을 지적하며 통분을 해댔는가 싶다. 그리고 한잔 술에 취하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논하며 슬픔에 못 이겨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던 기억도 떠오른다. 나는 당시 문학에 미쳐있었다. 전공했던 종교도 내겐 구원이 되지 못하였고 정치도 아니었으며 오로지 문학만이 나의 의지처가 되어 나를 구원 해줄 수 있다고 믿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통영(당시 충무)시내에 나갔다 오던 동생 권호가 나를 급히 찾는다고 했다. 나는 동생이기 이전에 유일한 벗이 나를 찾는다는 반가움에 녀석을 만났더니<형님, 반가운 친구가 한명 왔소. 형님처럼 유적(流謫)을 좋아하는 청년이오. 시(詩)도 좀 아는 듯 싶고…. 여객선에서 민박집을 찾기에 우리 토론장인 구멍가게를 소개해줬잖았겠소. 한번 만나보슈, 꽤 괜찮은 친구인듯 싶소> 권호와 나는 우리의 토론장인 구멍가게에서 그 친구를 만나 밤마다 소주를 퍼마시며 호기를 부렸다. 그 친구도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여행을 다니다가 <사량도>라는 이름이 예뻐서 이 섬에 왔노라고 했다. 그리곤 딱히 자신의 신분을 확실히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친구는 시낭송 테잎 하나를 죽으라고 좋아했는데 당시 누구 시(詩)인지는 몰라도 <선생님 비에 젖읍시다.>라는 시제목의 테잎이었다. 그는 내게 그 시를 한번 들어보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탈랜트 임예진씨가 낭송했다는 것 외엔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어쨌든 그 시가 유폐되어 있는 내 처지를 울릴만한 굉장히 슬픈 시였다는 것, 그것만은 틀림없었다. 나는 단번에 그 시낭송 테잎의 독자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술을 먹거나 술에 취하면 언제나 그 테잎을 틀어놓고 온갖 궁상을 다 떨곤 하였다. 아니 궁상이라기보다 이유없이 떠돌아다니는 이름 모를 그 친구의 정서나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내 정서나 그 처지와 생각이 무척이나 맞아 떨어져 우리는 그 시에 푹 빠졌던것 같았다.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촌동생 권호도 그 시를 별로 싫어 하지 않는 기색을 보니 그 시가 무척이나 대중적이었던 것은 사실인것 같았다. 어쨌던 우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테잎을 끼고 사량도에서 약 2개월 가량을 함께 보낸것 같았다. 사량도 에서의 유적은 사촌동생 권호와 이름모를 그 친구가 있어서 나는 적적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이곳에서 이렇게 귀한 시간을 노닥 거릴 때가 아닌데…나는 군부정권의 도덕적 취약점을 터트려야 할 책임이 있고 임근실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심리적 압박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술을 먹으나 잠을 자나 언제나 함께 따라다니는 화두와 같은 것이었다. <언젠가는 풀어야 할 영원한 숙제다…> 나는 머릿속에 화두를 꽉 붙들어 놓고 있으면서도 감히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잊고 지내는 듯 했다. 섬마을 사람들이 나를 아무리 경멸하고 조롱하여도 나는 그들에게 일희일비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들도 언젠가는 때가 오면 나의 행적을 알게 되리라. 그리고 나를 이해하게 되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 자위를 하곤 했다.

나는 이름 모를 친구 ㅂ이라는 사내에게 한동안 정을 주고 있었다. 아니 그는 우리가 정을 주도록 만드는 마력 같은 깊은 심성을 갖고 있었고 근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휴머니스트여서 우리뿐만 아니라 세상의 고뇌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좋아할 그런 스타일 이었다. 하여튼 그의 출현은 언제든 이곳을 탈출해야 할 계획을 갖고 있던 나로서는 당분간은 섬마을에 붙어 있을 수 있는 커다란 명분이 되어 있었다. 나는 정말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와 나는 인생을 논했다. 때로는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하여도 고뇌했다. 시를 화두로 삼을 때도 있었고 삶을 싫증나도록 이야기 하는 때도 있었다. 나는 이제 어디 가서 이런 친구를 만날 것인가？ 어느덧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내게 어떤 가슴 따뜻한 이가 인연이 되어 나의 멍든 가슴을 어루만지며 친구가 되어 줄 것인가. 어찌 보면 나는 당시 내 인생에 대한 자신감과 비젼을 잃어버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것은 출소하자마자 냉대로 부딪친 고향 사량도가 나를 그렇게 만들어 놓았는가도 모를 일이었다. 정말 자신을 잃어버려서는 안될 나는 차츰 세상의 분위기에 파묻혀 가는 폐인이 되고 있는 지도 몰랐다. 밤마다 적적하여 퍼마시고 고독해서 마시고 고통스러워 마시는 그 술은 내게 떨어질 수 없는 나만의 환락이었다. 그 속엔 문학이 인생이 철학이 나만의 세계가 있었으니깐.
또 B라는 낯선 친구는 나의 충분한 위안이 되어 주었고 나는 그 덕분에 그 해 여름을 깡그리 사량도에서 다 보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동생 권호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의 손에 밀폐되어 있는 봉함엽서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그는 내게 청천 날벼락 같은 슬픔을 폭탄처럼 던져 주었다.
“형님… ㅂ이 떠났소.”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했지만 이미 육신에 힘이 빠져 나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형님… 이 봉투 한번 보시오, 형님에게 남긴 것이오.”
동생 권호는 숨을 몰아쉬며 그의 떠남에 대하여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 봉투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맥 빠진 손으로 그 봉투를 뜯으며 알지 못할 고독이 가슴 밑바닥에까지 서서히 밀려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적형…. 계속 머물 수가 없어서 떠납니다. 만나 뵙고 가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바람이 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습니다. 바람이 된 저를 욕하지 마시고 다시는 뵙지못할 절을 크게 올립니다. 영원히 건강하십시오. q드림>

ㅂ이 남긴 편지에는 <촉수엄금>이라는 글이 씌여 있었다. 그 편지를 읽고 난후 동생 권호의 얼굴에도 아쉬움이 있었고 유폐생활이나 다름없는 나에게는 어느 듯 안개 같은 <외로움>이 온 몸을 에워싸고 있었다. 해풍이 한바탕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바다 멀리 대섬 너머로는 알수 없는 바다 새떼들이 구름위로 넘나들고 있었다. 갑자기 끝 간데 없는 허무가 엄습했다. 나는 풀이 죽은 채로 동생 권호에게 말했다.
<나도 떠날때가 온것 같다> 권호는 갈 데도 없는 형이 무슨 말이냐는 듯 뜨악한 얼굴을 해보였다. 순간, 임근실이 외치던 악쓰는 소리가 기억 너머의 세상에서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나는 멍-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떠오르는 환각, 그것은 내게 짐 지워진 고통이었다.
<용기없는 놈, 썩은 놈, 무엇이 두려운가 너는 두려움에 떨고 있어. 반겨주지도 않는 고향에서 그렇게 썩어 자빠져 있을 셈인가, 역시 삼청출신 건달답군>
어디선가 나를 짓누르는 듯한 음성들이 허공을 울리며 연이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참을 수가 없어 동생에게 작별인사도 없이 어머니 집으로 기다시피 하여 들어가 겨우 마루에 걸터앉았다.

나는 그때서야 내 자신을 돌아다 볼 수 있었다. 나는 출소하고 난 후부터 임근실을 잊고 있었다. 아니 잊으려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것은 본능에 가까운 의도였는지 모른다.
<아무도 떠올리기 싫어하고 말하기도 싫어하는 삼청의 주검들, 폭정의 인권유린, 아아 ,나 혼자서 해낼 수 있을 것인가, 권력이 날을 세워 펄펄 살아있는 이 무서운 세상에….> 내마음속 어디에선가부터 끊임없이 들려오는 작은 외침들, 그 작은 외침들은 ㅂ이라는 친구를 만나면서부터 내 마음 깊은 곳에 침잠 시켜 놓고 있었다. 나는 ㅂ이 떠나면서부터 <이대로 있어야 하나？>잠자고 있던 양심으로부터 굉음 같은 질책들을 듣고 있었다. 그것은 분노였다. 누군가가 알지 못할 또 다른 존재가 내게 부언 해주는 메시지와 같은 또 다른 나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또다시 나약한 의식에 함몰되어 너를 분해시키려하나, 이젠 다른 길을 걸어야지. 네가 해야 할 일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 네 스스로는 알고 있지 않은가, 일어서라 일어서라> 나는 일어서라의 외침을 끊임없이 듣고 있었다. 그랬다. 나는 고향을 과감히 떠나기로 하였다. 어쩌면 군사정권의 허상을 폭로하려 한 신념을 잃어버릴 뻔했던 순간을 극복하던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 나는 또 한 번의 고향에서의 잊을 수 없는 절망감을 겪게 되었다. 저녁밥을 먹고 난뒤 나는 바깥 마루바닥에 앉아 있었다. 이제 떠나면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나를 생각하며 상념에 빠져 있을 때였다. 그때 느닷없이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보니 약국집 박씨형이 <마침 있었구나> 하며 내 옆에 앉는다. 나는 창졸간에 당한 일이라 <아니, 형님이 어쩐 일로？>그는 갑자기 찾아온 것에 대하여 자신도 황망한지 <으응, 자네가 왔다기에 한번 들러본 것일세> 그의 손에는 맥주가 두어 병 들려 있었다. <우리 맥주나 한잔 할까？> 그는 사람 좋은 웃음끼를 내보이며 내게 술 먹기를 권했다. 나는 그의 느닷없는 방문에 의아해하면서도, 반갑기도 하여 부엌에서 맥주잔을 들고 나왔다. 그는 맥주를 먹으면서 이런 저런 말들을 걸어왔다.
<요즘 뭘 하고 지내느냐> <앞으로 뭘 할 것이냐> <힘들더라도 어머니를 잘 모셔라>등의 하잘데 없는 일상적인 말들을 끌어다 대화법을 구사해댔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별 희한한 사람도 다 있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관공서에서 서무일을 보면서 고향에 정착하고 있는 둘째누나와 동기뻘 쯤 되는 분이었다. 나보다는 10살 이상의 큰 형 뻘 되는 분이기도 했다. 그 형도 고등학교 때는 노는 세계에서 제법 잘 나갔다는 분이었으나 성장 한후 고향에서는 성실 하게 잘살고 있는 분이었다. 고향에 약국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약취급소 허가를 받아 그 집에서 운영하는 듯 했다.

나는 한 시간 가량을 그 형뻘 되는 분과 주로 우리집안 가족사에 대한 얘기로 대화를 나누었다. 한편으로는 고향 형뻘이 우리 집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듯 했고 어쩌면 고맙기조차 한 일이었다. 그런데 평소 때 말 한번 않던 분이 느닷없이 찾아와 우리 가족사와 내 사생활을 물어대는 것이 그렇게 고마운 일로만 받아들이기에는 새삼스러운 것이었다. 그 형은 아주 온화하고 다정한 모습의 대화를 나누다가 대문 밖을 나섰다. 나는 <내가 너무 과민했나？>하고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가 왜 우리 집에 왔는가는 뒷날 아침에 밝혀지고 말았다. 나는 내 토론장인 구멍가게 아줌마(나는 그분을 형수님이라 불렀다.)를 통하여 그가 사회정화위원이라는 것을 알았고 면사무소 직원을 통하여 그 형이 내 담당이라는 사실을 어렵사리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만 기겁을 하고 말았다. 군사정권은 이웃집 선배까지 후배를 감시하는 감시자로 써먹고 있다는 것을 안 순간 그만 머리끝이 쭈삣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현기증이 일었다. 나는 더 이상 고향에 있을 수 없었다. 고향사람들이 나를 냉대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만큼이나 철저할 줄은 모르고 있었다. 군사정권은 순백한 고향사람들까지 정보원으로 동원하여 뿌리를 내리려는 것이었다. 나는 떠나야 한다는 것이 더욱 굳혀졌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러 있다간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정보기관의 감시망과 고향사람들의 냉대는 나를 그곳 고향에서 버티고 살게 내벼려 두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내 고향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보기관이 흘리는 말을 액면 그대로를 믿어버리는 순박성과 어리석음을 동시에 공유하고 있었다. 소문이 나면 확인 절차 없이 믿어버리는 그런 순박한 인심이었다.

나를 담당한다는 Q씨도 그런 사람 중에 한사람에 들어 갈 것이었다. 나는 고향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토론장 주인 형수님에게 떠나야겠다고 인사를 했다. 그는 <삼촌, 어디로 가든지 힘내고 사세요> 하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왠지 그 형수님은 내 정체를 아는 듯 모르는 듯 알쏭달쏭한 인사를 했다. 나는 그녀에게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 역시 마을에서 흘러 다니는 소문을 들은 것인지 정보형사들에게서 무슨 말을 들은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10년 세월이 흐른 훗날 내게 어렵사리 고백을 했다. 내가 쫓기는 신세가 된 것도 다 알고 있었다고 정말 나는 그 이후부터 지명수배자 신세가 되는 운명을 겪었고 그럴 때마다 그 구멍가게에 들러서 몇 번이나 술을 마시고 간적도 있었다.
어머니께 작별인사를 했다. 어머닌 무감각했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대책 같은 것은 관심조차 없었다. 단지 모성본능에 의하여 눈물만 글썽거릴 뿐이었다.

나는 육지로 나가는 배를 탔다.
섬은 내 시야에서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또 다른 감옥을 벗어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기분도 잠시, 나는 어디로 갈지 몰라 막막함에 몸을 떨어야 했다. 고향이 바다안개에 가리어 사라질 때쯤 나는 부산으로 가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부산에도 나를 반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나는 고향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 했다.
고향이 나를 밀어 내고 있기에 나도 고향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 했다.
언제 다시 고향을 내 머리 속에 회복해야 할지는 모른다. 그것은 역사가 바로 잡혀야 가능 할 일이었다.
그때 까지 나는 고향을 버려야 살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안녕 사량도. 내 고향 사량도여 .
나는 여객선에서 멀어져 가는 고향 사량도를 눈물겹게 바라보며 서 있었다.
1985년 가을이 다가올 무렵 이었다.

<필진 소개>

이적 목사 약력

-1957년생 경남 통영 출생.

-1986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기관지 민족문학에 <안개속으로><연작시 삼청교육대10> 등으로 신인추천.

- <80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3년 구금, 88년 <미주중앙일보> 정화작전 연재 91년 <대한매일 창사기념/ 장편소설 적도> 당선, 80년대 군사독재 저항문인 단체였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회원> <민예총 창립회원> 1987년 삼청교육대사건을 최초로 폭로한<삼청교육대정화작전/전예원 87>발간. 이후 <장편소설 북방산계곡의비밀/90광야> 장편실록 <청송감호소 죽음의 그림자> 정치평론<대통령의 늦바람/남풍89>등이 있으며 시집 으로 <바스티유의땅/한겨레 88><이별과절망의둔주곡/ 푸른숲91>< 바다가 된 그대에게/ 새암바다/2000>등 기타 <김대중 살리기 공저><분단과통일시 1,2집/공저><사람과문학/ 공저>등 20여권의 작품집이 있다 현재 저항문인 단체인 <분단과통일시 동인>, <우리시대의시인들 동인>으로 활동 하고 있으며 경기도 김포시 <민통선평화교회담임 목사>로 시무 하고 있음.

이적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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