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람이야기 사람과 교회 단신
땔 감 4<안상님의 살아온 이야기-1997.1.26>
안상님 | 승인 2015.02.18 13:35

1996년 1월에 심야전기에서 불이 났다. 동네에서 한전에 연락도 해주고 하던 사람들이 이 동네에서 심야전기 사고가 여러 번 있었으니 아주 치워버리라고들 했다. 게다가 심야전기로 쓰던 온수 보일러까지 터져서 물이 새고 있었다. 벌써 두 번째 온수기인데 또 못쓰게 되었으니 그 동안 얼마나 비싼 온수를 쓴 셈인가. 아파트에서 온수 비용이 한 달에 10,000원이던 것을 생각하면 보일러를 쓰지 않는 여름철의 심야전기 요금과 같으니 결국 온수 보일러 값 두 대 백 여 만원은 그냥 없어진 셈이다. 화재보험도 들지 않았고  한전 사람도 모른 체 하니 화재원인을 규명하려면 나 혼자 여기저기 뛰어 다녀야 할 텐데 그런 것이 다 귀찮아 졌다. 불난 뒤로는 부엌 옆에 있는 내 서재에서 둘이 살면서 부엌과 화장실이 따듯한 것만도 천만다행이라 싶었다. 동네전기상에서는 불이 났는데 얼굴도 안 비치더니 자기는 심야전기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고 잡아뗀다. 자기가 고쳐주던 것인데 책임을 물을까봐 저러는구나 싶었지만 싸워 봐야 해결될 것도 아니겠기에 그냥 있었다. 봄이 되어 불난 데를 치우려니 기가 막혔다. 타다 남아 시커멓게 그른 보일러실이 꼴도 보기 싫고 심야전기라면 몸서리가 처져서 아주 다 없애 버리기로 했다. 반영구적이라던 그 시설을 뜯어내는데 또 산소 용접기를 들여다 놓고 사흘이나 걸렸고 쓰레기도 한 트럭이 넘었다. 철판 따위는 모두 고물로 거둬 갔는데도. 보일러 시설을 또 할 일을 생각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데 남편도 또 공사 벌이지 말고 이대로 살잔다. 안방을 쓰지 못한지가 몇 달이 지났는데 겨울에야 어쩔 수 없이 내 서재에서 살았지만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다.
 
하늘이 보이던 지붕을 고치고 먼저 파이프에 가스보일러 선을 끌어다 연결했다. 그것도 주 파이프선이 안방 뒤의 보일러실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안방 한쪽을 다 파내서 파이프 두 선을 묻었다. 도배공도 부르지 않고 나 혼자서 며칠이 걸려 땜질도배를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다 뜯고 새로 파이프를 깔고 싶었지만 또 큰 공사가 될 것이 무섭기도 하고 우선은 그대로 쓰고 다시 고장이 나면 그 때 고치자는 남편의 말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가스보일러의 점화가 잘 안 된다. 수압을 살펴보면 며칠이 안 되어 떨어져 버린다. 수압을 올려서 점화하기를 몇 번 하다 보니 아무래도 이상한데 문제가 있다면 겨울 전에 고쳐야 했다. 시공업자가 와서 파이프를 파보니 물이 치솟았다. 온수 파이프가 시커멓게 삭았단다.  그러더니 상수도 자체가 너무나 막혀서 수압이 낮으니까 이대로는 온수 파이프만 바꿔봐야 소용이 없단다. 그래서 뜯기 시작한 것이 온 집안의 상수도 선을 다 교체 하려니 보통 큰 공사가 아니었다. 그래도 남편은 자기 서재는 그냥 두란다, 지난겨울에 난방 없이도 살아냈다고. 결국 안방과 큰 화장실 바닥에 파이프를 깔았고 마루와 서재 두 방은 난방이 끊어졌다. 그러면서 또 일천 오백만원 돈이 날아갔다.
 
겨울이 되니 또 화초를 부엌, 이층, 마루로 들여놨다. 날씨가 추워지니 마루가 너무 추워서 화초도 문제지만 서재에 드나드는 남편의 움츠린 모습이 영 마음에 걸렸다. 그전에 혼이 났던 독일제 히터를 또 꺼내다 놨다. 아들네가 있을 때 그 방이 좀 춥다고 해서 그 히터를 쓰기는 했어도 보조 난방이어서 그랬는지, 양쪽  보일러를 돌리느라 전기요금이 의례 많이 나오겠거니 해서였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았었다. 이번에는 다른 난방이 없는 마루라서 전기요금이 많이 나올 것 같아서 낮에 만 켰었다. 그러다가 이왕 쓰는데 너무 안달하지 말자, 쓰면 얼마나 쓰겠나 하면서 계속 켜 놨다. 어느 날 전기 점검하러 온 사람이 소리소리 지르며 나를 불러댄다. “아주머니 전기장판 썼지요?” “아뇨” “그럼 뭐 했어요. 800kw가 넘었단 말 이예요. 뭐, 전기 많이 썼지요?” “ 아! 네, 라지에터요.” 그날 밤에 “할 수 없다 너희가 알아서 살아내라.” 화초들에게 혼자 중얼거리며 전기 히터를 껐다.

다음 달에 전기요금 고지서가 나왔는데, 271,000원이다. “아니 이렇게 많아?” 많이 나오리라고 기대한 것이기는 했어도 계산은 해보지 않고 그저 10만원은 넘겠지 했던 것이 평소의 9배가 된 것이다. 얼마 전에 서재와 마루에 심야전기 온풍기를 설치하려다가 하나에 77만원이 든다고 해서 다음에, 가을에나 한다고 밀어두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남편과 의논해봐야 또 하지 말라고 할 테니 그냥 주문해버렸다. 하나 만 먼저 하려고 했더니 그래도 심야전기 배선 공사할 때 전기 꽂이를 두 곳에  다 해두라는 것이다. 후에 또 하려면 일스러우니까. “둘 다 이번에 하면 좀 싸게 해주시겠어요?” “아, 둘 다 하시게요? 그러세요, 75만 원씩에 해드리죠. 내일이라도.” “그럼 내일 오세요.” 너무나 간단한 거래였다.   전기요금 27만원이나 내면서 따듯이도 못 지냈는데 이렇게 추운 것을 참을 것이 아니라, 아예 이번에 온풍기 설치하고 이제 난방 문제는 잊어버리자는 심산이었다. 그래서 오늘 온풍기 두 대를 설치했다. 그런데 지난번에 끊어 논 심야전기를 다시 이어주러 온다던 한전에서는 소식이 없다.  전기가 안 들어와서 가동을 못하는데 어떻게 하느냐니까 그래도 자기네 물건 가져다 설치를 끝냈으니 돈을 그냥 받아가겠다는 태도다. 소비자가 불편할 것에 대한 배려는 아예 안하나보다. 사실은 가동이 된 것을 보고 대금을 지불해야 할 텐데 가타부타 말하기 싫어서 그냥 150만원을 주었다. 점심 먹으라고 2만원 넣어주었으니 그 돈도 포함되어야겠지. 
 
그 날은 내내 기다리고 다음 날은 일요일이니 지나가고 월요일에 전화하니 오후에나 온단다. 2시에 약속이 있으니 다음 날로 미뤘다. 이러다간 설 연휴 전에 못하게 되지 않나 걱정이 되었다. 우선 난방이 되어야 그 사람들이 일하다 늘어놓고 가버린 방이라도 치울 텐데.  또 카펫을 조금 밀어놓고 온풍기를 설치해 놔서 바닥부터 가구 배치를 다 바꾸게 생겼으니 보통 큰일이 아닌데 이대로 두고 설을 맞을 수는 없다. 난방 때문에 또 당해야 얼마나 더 당하랴 싶어서 돈을 선뜻 주기는 했는데 그래도 이사람들이 돈 다 받은 것이어서 이렇게 늦장인가 생각하니 좀 언짢았다.  그런데 얼마 있으니 내일 오겠다던 사람이 지금 올 수 있다고 한다. 일하다 시간이 늦어지면 내가 먼저 나가면서 대문 만 잘 닫고 가라면 되겠지 또 내일 오랬다가 안 되면 어쩌나 싶어서 그냥 오라고 했다. 전기배선을 봐야겠다고 보일러실을 묻기에 다 타서 다 뜯어버리고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봐야 된단다. 그래서 요즈음 쓰지 않고 봉해 두었던 뒤꼍을 열어주었다. 배전판을 찾기에 여기 전기 스위치가 있었는데 바로 거기서 불이 났다고 일러주었다. 그래서 배전판이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또 타이머도 없고 하면서 자기네끼리 말하는데 타이머는 대문 밖 계량기 옆에 있다니까 이 여자가 뭐 이런 것도 아는 체 하나 하는 듯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간다. 일꾼들을 부릴 때 의례건 당하는 일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때마다 이 나라의 남자들이 언제나 여자들 무시하는 버릇을 고치나 싶어서 한숨을 쉬게 된다. 사실은 태양열 난방을 설치하고 싶어서 몇 번이나 골똘히 생각해 보았는데 서울의 오염이 맑은 햇볕을 막을 것이 걱정스러웠다.  이제는 우리 앞집이 5층을 지어서 남쪽을 막아 노니 아예 햇빛이 얼마 없으니 태양열 난방은 틀린 일이다. 더 이상 태양열 설치한 집을 부러워할 일은 없게 되었다.
  
이 집에 이사 와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돈을 없애면서 집수리에 정신이 없는데 그래도 이 집이 좋으니 어쩌랴. 땔감을 조금 쓰는 여름에는 이 집이 시원해서 좋은데 겨울이 되면 을씨년스러워진다. 우리 조상들의 작품이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목재가 많으니 이 집을 버리고 아파트로 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온 동네가 다 5층으로 올라가는데 우리 집만 쏙 들어가 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집을 뜯어다 시골에다 지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이제까지 이만큼 살 수 있도록 고쳐 논 것을 다 부수는 일은 자원을 낭비하고 쓰레기를 만드는, 환경운동을 거스르는 일이다. 또 이 나이가 되어서 어떤 새 일을 시작하고, 또 새로운 데서 살아 낼 자신이 없다. 더구나 은퇴를 앞둔 남편의 수입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아이들도 이 집 헐지 말라고 야단인데 그 애들 세대에 가서도 나처럼 이집 건사하느라고 이 고생을 해낼까? 때로는 이 집 건사만 하다가 내 인생 다 가겠다 싶기도 한데 그러면 어떠랴. 그 것도 내 천직인양 소중히 안고 하루하루 살아가리라. 이 나이가 되니 세상에 그리 대단한 일도, 아주 보잘 것 없는 일도 없는 것 같다. 생산 적인 일, 살리는 일은 다 소중하다. 낭비하고 소모하는 일이 아니면 다 소중한 일이겠지. 땔감은 소모되는 것 같지만 생산적인 일에 쓰인다. 한보 부도 사태로 가스 공급이 중단되어 제철 과정이 일부 중단되었다가 한보를 살리기로 한 정부 방침에 따라 가스 공급이 재개되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그렇게 소중한 땔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하나도 나지 않으니 언제까지 이 가스를 쓸 수 있는 것일까? 또 그 다음의 땔감은 무엇이 될까? 자연은 또 다른 땔감을 준비하고 있겠지. 신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시겠지. 우리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낭비하지 않도록 소중하게 여기며 필요한 만큼만 쓰면서 아껴야 하리라. 앞으로 여기서 살아 갈 사람들을 위하여.

안상님  sangnima@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