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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정사실로 된 하나님의 심판<정현진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⑬-1> 출애굽기 11장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 승인 2015.02.26 12:09

이번 <정현진 목사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열 세번째 순서는 분량상 세 차례에 나눠서 싣습니다. - 편집자 주

   
▲ 모든 맏이의 죽음에 애곡하는 이집트 가정(C. S. Pearce)

출애굽기 11:1-13:16에는 11번째 표적, 유월절, 그리고 무교절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와 있다.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출애굽은 파라오의 결심이나 자비로운 배려에 좌우될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파라오의 결단을 오래 동안 기다리셨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이르자 하나님은 기다림 대신에 행동을 시작하셨다. 11번째 표적은 이래서 일어난 것이었다. 처음에 일어났던 표적에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나중에 그것은 파라오의 그 측근의 힘을 무력화시키며,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보여주는 데로 발전하였다. 이제 그것은 이집트 전지역, 국민전체에게 미치는 재앙이 되었다. 단순히 피해를 끼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엄청난 것이다. 마지막이란 말에 걸맞게 가장 강력하였으며, 그 충격파도 가장 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백철현, 출애굽기. 356쪽):

11:1-10 유월절을 예고함(경고함)
12:1-14 유월절 규례
12:15-20 무교절 규례
12:21-27a 유월절 규례
12:27b-28 유월절 시행
12:29-42 열한 번째 표적 및 출애굽
12:43-49 유월절 규례
12:50-51 유월절 시행 및 출애굽
13:1-16 무교절 및 초태생 규례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출 11-13장의 관심은 더 이상 출애굽 그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를 바탕으로 한 유월절 및 무교절에 관한 규례와 그 시행에 있다(백철현, 출애굽기. 357쪽).

하나님은 열한 번째 표적에 대해 전례 없이 자세하게 예고하셨다. 이것은 출 11:1-10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 i)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1-3절), ii) 모세가 파라오에게 전한 예고(경고 4-8절), iii)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마지막 말씀(9절)과 이 문단의 결론(10절) 등으로 되어 있다(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출애굽기, 2011, 206쪽; U. Schneider & W. Oswald, Exodus 1-15, 2013. 237쪽 참조).

출11:1에는 ‘오드 네가 에하드 아비’(직역: = 내가 또 한 가지 재앙을 오게 하리니’(닥치게 하리니 아비 aybia' ⟵ awb의 히필 미완료형) 라는 표현이 나온다. 여기는 앞서 열 가지 표적을 언급할 때와는 달리 에하드 (= 하나, 유일무이)란 낱말이 덧붙여졌다(창 22:2 참조). 이 에하드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은 내용을 전달할 때에도(창 40:5; 욥 31:15), 그것과 전혀 다른 것을 지적할 때에도(겔 7:5) 쓰인다. 여기서는 이번에 일어날 표적이 이전의 그것들과 성격과 차원이 다른 유일무이한 것, 특별하다는 사실을 예고하는 뜻으로 쓰인 것 같다.

재앙이란 말(네가 [g:n<)를 칠십인역에서 플레게(plhgh,)라 옮겼다. 이 말은 재앙, 질병, 위해(危害)란 뜻이다. 그 뿌리는 나가 ([gn= 만지다, 건드리다) 인데, 창 12:17; 32:25[26], 32[33]에 나온다(구약성경에 약 100번). 천사(여호와?)가 자신과 씨름하던 야곱의 엉덩이뼈를 건드렸다. 이로써 그의 고관절(?)이 위골(違骨)되었다는데서 그 용례를 찾을 수 있다. 이 말의 주체(주어)는 거의 대부분 하나님(혹은 신적인 존재)이며, 하나님이 내리시는 벌(천벌?)을 나타낼 때 쓰이곤 하였다(창 12:17; 삼하 7:14; 왕상 8:37-38; 시 38:12 등). 레위기 13-14장에는 이 말이 61번이나 나오는데, 이는 (악성) 피부병을 가리켰다(疫病).

하나님은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쫓아내듯이 몰아내리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다(출 11:1b). 이제까지는 이런 것을 가리켜 (내)보내다(샬라흐)란 말이 쓰였다. 이제는 그것이 ‘쫓아내다, 몰아내다’ 는 말(까라쉬 vrg)로 대체되었다. 그것도 부정사(Inf. abs)와 정동사형으로 두 번 연거푸 쓰인 것도 모자라 ‘완전히’란 뜻의 부사(칼라 hl'K')까지 덧붙였다. 이는 이집트 사람들이 받은 커다란 충격을 보여준다. 그들은 마지막 표적으로 말미암아 망연자실하고, 겁에 질리고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질렸을 것이다. 한시바삐 그들이 이집트를 떠나기를 원하였으리라.

다른 한편 이것은 이제까지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다. 그동안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고 나서 이집트로 다시 되돌아 올 것이라는 뉘앙스로 파라오에게 말해왔다. 물론 출 11:1b의 말씀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미 출 6:1과 10:11에서 까라쉬란 말로 출애굽을 예고하셨다. 일찍이 히브리인을 학대하는 이집트인을 죽인 모세도 광야로 쫓겨났었다(출 2:17).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아 다곤 신전의 신상 곁에 두었던 블레셋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 때 여호와께서 다곤 신상을 쳐서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리게 했으며, 또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주변지역을 치셨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은 크게 당황하여 하나님의 궤를 이스라엘 사람의 진영으로 돌려보냈던 것이다. 하나님의 궤가 블레셋 진영에 머무는 동안 계속 재앙이 일어나는 바람에, 그들이 마지못해 또는 질려서 그것을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려보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말미암아 이집트에 여호와의 표적이 점점 더 강력하게 일어나자, 파라오가 그들을 쫓아내듯이 내보냈던 것이다.

페르샤의 벨사살왕이 귀족 천명을 불러들여 큰 잔치를 벌였다(다니엘서 5장). 이 자리에서 그는 예루살렘성전에서 느부갓네살왕이 빼앗아 온 금은 그릇을 가져오게 하여, 자신이 베푼 잔치용 그릇과 잔으로 쓰게 하였다. 그들이 이것으로 술을 마시고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우상들을 찬양하는 데, 갑자기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글씨를 썼다. 이에 벨사살왕의 낯은 흙빛으로 변하고, 간이 오그라들고,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였다. 바빌론의 술사와 박수들이 불려 들어와 그 글자를 풀이하라 하였으나, 능히 하지 못하였다. 이에 다니엘이 불려와서 ‘메네 메네 데겔 우르바신’이란 글자를 풀이하니, 그 뜻은 이러하였다:

26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27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28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단 5:26-28)

이 말씀대로 그 날 밤 벨사살이 암살을 당하고, 메대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차지하였다(단 5:31).

이런 사실을 강조하려고 출 11:1에는 ‘예솰라흐 에트켐 밋제 케솰르호’ (= 그가 너희를 내보내리라. 여기에서 그가 내보낼 때), ‘칼라 까레쉬 예가레쉬 에트켐 밋제’ (= 완전히 그가 너희를 쫓아내듯이[정녕, 기필코] 내쫓을 것이니라)등 같은 말을 반복하는 (미완료형 정동사 + 부정사 절대형) 구문이 두 번이나 되풀이 사용되었다. 이는 ‘반드시 ... 하겠다’는 뜻으로 주체(하나님)의 의지를 강력하게 표현하는 방법인 것이다. 이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또 다른 표현법이 2절에도 나왔다: ‘땁베르-나 뻬오즈네 하암’ (직역 = 자 이제 이 백성의 귀에 말하라).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백성에게서 보화를 받는 것은 출 3:21-22; 11:2-3; 12:35-36에 언급되었다 (시 105:37 참조). 출 11:2-3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귀에 들려주라(땁베르-나 뻬오즈네 하암 = 그 백성의 두 귀에 분명히 말하라)는 말씀의 내용은 ‘샤알’ (lav) 동사로 표현되었다. 이 말은 물질을 달라는 청구, 정보를 얻으려는 물음, 기도드리는 자의 탄원(간구) 등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KJV는 이를 borrow(빌리다)로 번역하였다. 출 22:13; 왕하 4:3; 6:5에서 이것은 잠시 쓰다가 되돌려준다는 의미로 쓰였다. 우리말 개역개정을 비롯하여 번역본 중 많은 것은 ‘구하다(요청하다 ask)’ 로 옮겼다. 삿 8:24; 삼상 1:27에서 이것은 되돌려줄 의사가 없이 요청하는(구하는) 때에 쓰였다. 이 낱말은 이렇게 다양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 그래서 주어진 문맥에 따라 그 뜻을 세심하게 찾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는 ‘청구하다’(request)는 의미가 더 어울릴 것이다. 삿 8:24에는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워 이긴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약탈한 귀고리를 달라고 청구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구걸이나 간청이 아니라, i) 그동안 이집트에서 고생을 많이 하였으니 이제는 당연히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처럼, 또는 ii)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상처럼 당당하게 받으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 자손이 도망자의 모습이 아니라, 마치 전투에서 승리한 자들과 같은 모습으로 이집트를 떠나는 것이었다. B. S. Childs, Exodus, 176-177쪽 참조.

11:3a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 대한 호의가(호감이) 이집트 사람들의 두 눈에 있게 하셨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갖게 만든다는 말은 창 39:21; 출 3:21; 12:36 등에 기록되었다. 이를테면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참소당하여 감옥에 갇혔을 때였다.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는 간수장에게 요셉에 대해 호감을 갖도록 만드셨다. 그 간수장은 그 감옥 안의 모든 죄수를 요셉의 손에 맡겼던 것이다.

11:3b에는 “더 나아가 그 사람 모세가 이집트 땅에서 파라오 신하들의 두 눈과 그 백성의 두 눈에 매우 위대하였다.” 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핍박과 이용대상으로만 보아왔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전하는 말에 귀를 막고, 행하는 일을 무시하였다. 그런데 이제 그들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달라졌다. 그들은 모세를 아주 크게(위대한 인물로) 우러러보게 되었다. 몇몇 성경번역(특히 NIV, 개역개정)은 이 문장을 수동문으로 옮겼다(was highly regarded). 모세를 위대하게 받아들인 그 백성은 누구일까? 바라보는 이집트의 시각에 강조점을 둔 것이다. 이는 모세가 위대하느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이집트인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뜻이다. 히브리성경이나 다른 성경번역(KJV, RSV, ESV)은 모세가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was a very great)라고 번역하였다. 뒤엣것에 따르면, 모세는 이집트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든 관계없이 위대한 사람이었는데, 이집트인은 이제야 그의 참모습을 보았다는 뜻이다. 이것은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표적을 일으키신 하나님께서 이집트 백성의 시각과 태도를 교정해놓으셨다. 이로써 출 7:1의 말씀(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리라)이 이집트에서 현실로 되었다.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psalm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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