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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공화국에서 울려퍼지는 만세삼창(?)<전순란의 휴천재일기-2015.2.26>
전순란 | 승인 2015.03.02 10:49

2015년 2월 26일 목요일, 맑음

대전 가는 길에는 실비가 내리고 있었다. “구름인가?” “안갠가?”를 가릴 문제가 아니고 “안개비인가?” “그냥 안갠가?”를 가려야 할 만큼이었다.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물방울은 봄눈의 껍질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세상에 눈뜨게 해준다. 계절은 서두르지 않아도 제 올 때를 안다.

자동차가 병원에 간다니까 큰 수술이라도 받을까 겁이 났는지 소나타는 시침 떼고 잘만 달린다. 대전 가양동에 있는 ‘현대사업소’는 어제 A/S 주문을 받던 아가씨부터 무척 친절했다. 로마에 5년을 살면서 벤츠를 사오지 않은 게 여간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입고하면서부터 차를 돌보는 기술자까지 상대방의 입장으로 성실하게 설명을 해주면서 고쳐야 할 부분을 일일이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제 전주 A/S 센터 아저씨가 자기네가 1차진료기관이라면 창원이나 대전에 있는 ‘현대사업소’는 3차진료기관, 말하자면 대학병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그런데 병원비도 특진에 고급진단비와 부속품비를 내야 하니까 일반 카센터보다는 30%는 더 내야 한단다. 때마침 그저께 우리집 ‘곰’이 종일 강연('공연'처럼 들린다)해서 이 ‘왕서방’이 챙겨온 돈도 있겠다, '왕서방'이 '곰'을 태우고 다니는 마차도 한번쯤은 '뿜빠이'에 낄 만하겠다 10년 만에 손질하는 만큼 잘만 고친다면 견딜 만할 게다.

미루씨 부부가 친절하게도 산청에서 대전까지 함께 와서 내 부탁을 받아 코스트코에 들러 정원용품 조립식 창고와 정원용 의자를 사서 휴천재까지 실어다 주었다. 남편 이사야씨는 3시 버스로 서울 모임에 가야 하는데도 우리 일로 차표를 미리 못 사서 4시 넘어서야 겨우 떠났다니 무척 미안했다. 친구가 된다는 건 아무래도 어려움을 감내하는 길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렇게 응답해야 하는 게 우정일 텐데...

   
▲ 보스코는 나 없는 새에 텃밭에 거름을 옮기고 조립창고를 받아놓고 점심을 혼자 먹고...
   
 
두 사람은 점심도 않고 떠났고 나만 코스트코 총각들이 ‘강추’하는 서대전역 앞의 ‘교동짬뽕’을 먹으러 혼자 갔다. 핏빛처럼 붉고, 혀가 아리도록 맵고, 국수가락만 건져 먹는데도 입안이 얼얼했다. 내 옆에서 휴가병 둘이 그 국물에 공기밥까지 말아 뚝딱 해치우는 걸 보고 “안 매워요?” 했더니만 “아뇨. 하나도 안 맵고 너무 맛있어요.” 란다. 매운 통증으로 맛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수법의 음식이랄까... 하루 두 끼 이상 식당을 전전해야 하는 직장인들은 ‘우리집맛’이라는 개념도 없을 듯하다. ‘엄마손..,’ 하는 식당이 인기를 끄는 이유를 알 만하다.

하기야 오늘 아침에 ‘국제적으로 인증 받은’ 라면 한 그릇씩 먹고 대전까지 다녀가며 쫄쫄 굶다 오후 3시에야 동태탕으로 끼니를 떼운 미루씨네 식구도 있으니 제때에 밥을 먹은 나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자동차를 맡긴 가양동까지 택시로 가려는데 짬뽕집 주방아줌마가 “613번 버스를 타면 단번에 가는데 뭣땜에 길에다 돈을 뿌리느냐?”면서 버스 타는 장소마저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그러니 “오늘 교동짬뽕은 맛있었다.”고 매듭을 지을 수밖에...

   
▲ 휴천재 가는 길은 언제나 아름다워라
   
 
차가 고쳐지는 동안 고객대기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TV에서는 간통죄가 어제까지는 범죄였는데 오늘부터는 아니라면서 법석을 피운다. 성인남녀 사이의 성생활을 법적으로 제재하는 게 말도 안 된다는 해설이 이어지고 시청자 코멘트가 이어지고 전문가들 좌담이 열리는 난리를 보자니 마치 간통공화국에 울려 퍼지는 만세삼창을 듣는 기분이다.

나 원 참. ‘말도 안 되는’ 법을 폐기하면서 방송을 온통 도배할 만큼 법석을 떠는 이유가 뭘까? 대한민국이 간통공화국인데 그걸 법으로 막느라 국정공백이라고 생겼다는 말일까? ‘박 아무개의 세월호 7시간’이 완전히 사면되었다는 말인가?

대기실이 하도 시끄러워 리모콘으로 소리를 줄이면서 옆에서 졸고 있던 열댓 명 남정들에게 내가 한 마디 했다. “무슨 뉴슨지 세 시간 들으셨으면 충분히 아셨죠? 그럼 소음을 팍 줄이겠슴다.” 아무도 이의를 발하지 않았다. 바람피우다 마누라에게 들킬 적마다 쫄았을 남정들에게 해방을 선포한 대법원에 속으로야 만세를 부르는 표정들이면서도 뭐라 했다간 일 날 것 같다는 내 인상착의에 쫄았나보다. 신혼 초 이혼율을 크게 앞지른 '황혼이혼'도 무서워해야 할 테니까... 
 

   
 
   
 

   
 

 전순란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아내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http://donbosco.pe.kr/xe1/?mid=junprofiie

전순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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