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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咸錫憲)과 장준하(張俊河), 그 이질(異質)의 짝 3<문대골 칼럼> 역사를 위해 선택된 제물(祭物) 장준하
문대골 목사 | 승인 2015.03.04 18:05

한국 현대사에서 항일의 전사(抗日戰士)를 말하라 한다면 북에서 김일성(金一成)을, 남에서 장준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나라가 남북으로 양단되어 괴뢰라는, 제국주의 앞잡이라는 악평으로 역사를 살아오는 동안 땅 위에 존재하는 어떤 나라의 경우에도 비할 수 없는 불행에, 부끄러움에 빠져버렸다 해도 사실의 역사만은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잃은 나라, 잃은 땅 찾으러 청소년 시절부터 항일의 전선에 투신했던 고마운 인물들을 말이다.

필자에게 있어서 김일성의 경우, 절세의 애국자도, 민족의 태양도, 수령도 아니다. 한반도의 남쪽에서 이승만이 국부(國父)일 수 없듯이 북에서 김일성이 어버이일 수 없다. 그것은 예외 없이 국가권력이 민(民)을 통제하기 위해 조작해낸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람 위에 어떤 유(類)다른 사람이 있는 것처럼 유도하는 정치(?), 교육(?), 문화(?) 분명히 말하지만 그것은 범죄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역사가, 민중사(民衆史)가 용서할 수 없는 범죄 말이다. 필자가 지금 김일성, 장준하를 ‘고마운 사람’이라 일컫는 것은 나라가 일제의 탄압으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절명의 전야에 거룩한 싸움을 싸워냈다는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을 두고 하는 말이다. 김일성에 대해서는 필자에게 전문적인 연구가 없어 더 말할 수가 없고, 또 있다 해도 말할 자리가 아니어서 지나가기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민중(씨)주의, 역사의 사람 장준하만은 말해야 한다. 우리는 장준하를 알아야 한다. 알아야 할 이유가 있다. 우리의 역사(役事·History가 아닌) 속에 그를 살려내기 위해서이다. 필자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장준하로, 죄(罪)로 점철(點綴)된 한국사를 정화할 수 있다.”고. 사람의 값을 무엇 하나로 지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역사와의 관계에서라면 “뜻”을 찾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사람의 값이 뜻을 찾는데 있는 거라면 장준하는 <참>사람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는 국가주의가 말하는 애국자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국가를 초월하는 참 나라가 있었다. 반공은 물론 경제마저도 국시이기를 거부하는 그만의 나라가 있었다. 그의 나라, 그만의 나라는 일본도, 조선도, 대한도 초월하는 나라였다. 기독교적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나라요, 대승불교에서의 말로는 인류의 이상향인 곧 정토(淨土·Buddah-Ksatra)였다. 이것이 필자가 주목하는 <장준하의 정신>이라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장준하 정신>

이미 앞서 약간의 언급을 한바 있지만 아직도 그가 입소했던 평양주둔 제42부대 기마중대 소속병이었던 때, 그는 주변 조선 학병들이 보기에 부질없는, 어쩌면 친일분자로 오해하리만큼 복무에 철저를 기하는 것이었다. 특히 기마관리엔 그랬다. 마발(馬髮)솔로 군마의 온몸을 정성을 드려 빗겨주고, 조금이라도 상처가 있는 경우 관리교육을 받는 대로 치료하고, 마구간의 손질 또한 내무실을 만지는 듯 했다. 그러면서 장준하는 스스로 대화를 한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결국 내 일이 친일이 되는 것은 아닌가?”
결국 장준하의 싸움은 일본과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장준하가 싸우는 대적은 <악(惡)> 자체였다는 말이다. 그런 장준하였기 때문에 그 일군의 군마를 그렇듯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장준하에게 그때 그 군마는 일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 군마를 돌보는 일은 하늘이 준 과제였다. 그래서 그건 <계약>이었다. 독립된 조국(?)에서의 장준하의 삶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천하의 어떤 자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애국자의 삶을 살아낸 장준하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의 정신 때문이었다. 필자는 이를 <장준하 정신>이라 일컫는다. 기독교적인 말로 하면 <계약의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질적(異質的)임에도 불구하고

장준하가 자신과는 전혀 이질적인 함석헌(咸錫憲)을 생명까지를 같이 하는 일신·일체로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참·(義)>을 추구하는 삶 때문이었다. 함석헌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지금 함석헌의 백골이 대전현충(?)사에 묻혀있다. 함석헌의 백골이 현충(忠=中心)(?)사에 묻혀있다니! 아, 함석헌의 백골이 운다! 함석헌과 장준하는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하나로 살았다. 그래서 그들은 동과 서와, 흑과 백이, 유일신을 주장하는 어떤 종교들도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그래서 각각을 주장하면서 저만으로 있을 때의 경우보다는 갑절의 역사(役事·歷史)를 이룩할 수 있다는 실증이 되어준 것이다. <뜻>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링컨을 모르고,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로망로랑을 몰라도 함석헌과 장준하, 장준하와 함석헌은 배워야 한다. 기독교는 유일신 종교라면서, 유대교도 가짜요, 이슬람도 가짜요, 불교도 가짜라면서 <나 홀로>를 고집하는 기독교라면 그게 이미 지옥이지.

조금 있다가 함석헌과 장준하가 어떻게 달랐고, 그럼에도 어떻게 하나로 살았는지를 찾아보기로 하겠다. 내가 한국인이 되고자 이 땅에 온 것은 물론 아니지만, 내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세계인이요, 세계인으로서의 삶이지만, ‘여기’ 아니고는 ‘거기’가 있을 수 없듯이 ‘한국인으로서의 나’ 없이 ‘세계0인으로서의 나’는 존재할 수 없다. 무릇 한국인으로 한국 땅에 온 자라면 한국 현대사에서 반드시 우리가 알아야 할 두 이름이 있다. 함석헌(咸錫憲)과 장준하(張俊河), 장준하(張俊河)와 함석헌(咸錫憲)이다. 적어도 한국의 현대사에서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름들이다.

   
▲ 장준하(왼쪽)와 함석헌

장준하, 쓰까다(塚田)부대에서 탈출 - 서주(西州)에서 임천(臨泉)까지

한번 결정을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장준하는 세 명의 동료와 더불어 쓰까다 부대를 탈출하게 된다. 원래 평양주둔 제42부대에서 전출해 온 서주 일군 부대는 일군의 보충대였는데 3,4개월쯤 후 이곳 주둔 한국학도병 전원이 서주보충대로부터 한 시간 가량 도보행진 구간의 쓰까다로 이동해야 했다. 이유는 공개되지 않고 있었지만 일군 관리병들은 물론 몇 달째 주둔한 경우 한국학도병들도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끊임없는 한국학도병들의 탈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쓰까다 부대는 일육군 한중(韓中) 주둔부대 중에서도 그 군율이 엄함은 물론 특히 한국학도병들, 한인병사들을 소위 황군(皇軍)으로의 교화, 교훈, 교련에 소문난 부대였다. 서주보충대의 쓰까다 부대로의 대이동은 그 교화 교육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한국학도병 쓰까다 이동은 한국학도병의 탈영을 막는 일과 더 나아가 철저한 황군을 만들자는 일군사전략에 의해서였다.

1944년 5월 30일, 이 날이 160여명의 한국학도병들이 쓰까다에 전입되는 날이었다. 여기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있다. 아무리 천당지옥 소리해도 죄짓는 놈 못 막는 것같이 군국(軍國)이 총출동을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쓰까다 부대는 그렇듯 뼛속까지 황국의 군대로 이제까지 한명의 탈출도 불허한 터였는데 근간에 정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한 놈의 탈영병이 발생하는데 장준하 사(張俊河史)에는 바로 그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한 놈”이 이후 장준하와 평생의 친기(親己)가 되는 김준엽(金俊燁)이었다고 전해진다.
이제는 쓰까다도 구멍 뚫린 제방 꼴이 되어 버렸다. 곧이어 장준하의 일단 4명의 탈출 사건이 이어졌고 뿐만 아니었다. 장준하 일단이 생명을 걸고 쓰까다를 탈출, 한 중국의 유격부대를 만나게 되는데 이 중국 유격대의 호의를 입어 그 유격대의 진에 들어가 보니 거기, 서주 일군보충대에 함께 근무하던 수 명의 한국학도병들이 와있는 것이었다. 장준하 일단이 험로와 원로를 돌아온 것과는 달리 장준하 다음에 탈출을 했지만 좋은 안내자, 좋은 길을 찾아 보다 먼저 이 중국유격대의 영접을 받게 된 것이었다. 이 유격부대의 사령관이 중국군 한치륭(韓治隆) 장군이었고, 놀랍게도! 김준엽은 이미 중국말을 익혀 한치륭 장군의 통역이 되어있었다.

<필자 소개>

   
 
문대골

* 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 상임고문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교회 원로목사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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