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 들어와 산지 어느새 15년이 넘었다. 자칫 관성과 교만에 빠지기 쉬운 때다. 가르쳐야겠다는... 그러나 돌아보면 너무나 허점이 많고 부끄럽기만 하다. 특히 농사부분에 있어 더욱 그렇다. 귀농관련 책을 다수 쓴 후배가 형! 책 한권 내주겠다고 했을 때, 참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 다시 시작이다. 처음마음으로! 흙으로부터!

흙 중에 가장 좋은 흙으로 산속에 부엽토를 든다. 오랜 세월 속에 쌓이고 썩고를 반복하며 검은 흙이된, 자연 그 자체인 흙 부엽토. 이 흙은 구조가 헐렁한 구조다. (때알구조, 단립구조)

이 헐렁한 구조이기에 빈공간이 많이 생기고, 그래서 다양한 생명들이 이 구조 속에 깃들게 된다. 물, 바람, 유기물, 미생물, 그리고 식물이나 나무의 뿌리 등. 그리고 이 때알구조는 열려있는 구조다. 타자와의 소통이 원활하고 신축적이기에 바람도 잘 통하고, 물도 잘 품고 있지만 잘 빠지기도 하다. 그래서 작물의 뿌리가 생명력을 갖게 되고 튼튼하니 표피에 작물의 생명이 왕성하게 자라고 열매 맺고 새도 깃들 수 있는 것이다.

성서의 겨자씨 비유처럼 가시적 천국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가시적 천국은 비가시적 천국이라 할 수 있는 흙속에 헐렁한 구조(때알구조)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흙속에 보물을 본 것이다. 성서에 모든 소유를 팔아 밭을 사고, 감춰둔 보물을 캔다는 비유가 있는데 저한테 온 순간적인 깨달음은 헐렁한 흙 자체가 보물이요 진정한 공동체요 천국 그자체가 아닌가 였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는 자연이 신이 수 억 년 수 천 년 가꾸어온 생명의 터전인 흙을 끊임없이 수탈하고 파괴해온 역사다. 특히 농업이 과학화되고 기계화 되면서 그 파괴와 착취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화화비료와 농약 그리고 대형기계들이 농사에 대거 투입되면서 흙은 급속하게 때알구조(헐렁한 구조)에서 홑알구조로 바뀐다. 이 홑알구조는 다양한 생명들이 공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개체로서의 폐쇄적인 자기완결구조를 갖고 타지에 배타적이다. 그래서 빈틈이 없기에 서로 견고하게 붙어버려 흙이 단단해지고 작물이 생명이 뿌리를 내리질 못한다.

 그래서 외부에서 계속 화학비료를 주고 뿌리가 약해 생명이 병이 많으니 많은 농약을 뿌려야 하는 악순환이 거듭 심화 악화되는 것이다. 여기에 돈이 되는 단일작물을 대규모로 심고(생물 다양성 상실), 대형기계를 누비고 다니며 흙을 반죽으로 만들고, 다 뒤집어 놓고, 그 무게로 눌려버리니 흙은 숨도 못 쉬고 죽어 버리는 것이다.

흙속에 보물, 때알구조를 죽이고 홑알구조만이 존재하는 인류문명은 그 미래가 있는가? 결국엔 공멸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면 흙속에 때알구조을 살릴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아무것도 아닌 무지랭이라 여기고 짓밟는 것이 아닌 진정 천국보물로 여기고 배우고 섬기며 우리의 삶 자체를 흙의 헐렁한 때알구조처럼 다양한 생명들이 공존하고 공생할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이다. 무엇보다 탐욕을 내려놓고 단순 소박한 삶으로의 전환이 시급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성서의 겨자씨 비유와 밭에 보물 비유를 21세기 오늘의 버전으로 바꾸고 싶다. 예수께서 오늘에 계셨다면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라고 상상해본다.
 

"천국은 헐렁한 흙과 같다. 그 헐렁함으로 다양한 생명들이 깃들 수 있느니라"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헐렁한 흙과 같으니 사람이 발견하고 기뻐하며 돌아가 자기 모든 소유를 팔아 밭을 사느니라"

안태용  azaz0106@me.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