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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간 이야기 3 - “들을 귀 있는 자”<주대범의 교회음악 산책 16>
주대범 장로 (중앙루터교회 성가대 지휘자) | 승인 2015.03.11 14:01

우리 교회의 공동예배(Common Service)에서는 교회력에 따라 시편과 구약, 사도서간문과 복음서 - 네 곳의 성서 말씀을 봉독한다. 특히 예수님의 말씀인 복음서는 모두 일어서서 듣는다. 굳이 일어서는 것이 형식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경건한 마음가짐의 표출로서 매우 적절하다.
3년 주기로 연구되어 정해진 <골라지고 저며진> 이 말씀의 조각들을 <패리커피스, Pericopes>라고 하며, 우리말로는 <성서일과>라고 한다.
가톨릭, 루터교, 성공회뿐 아니라 요즈음은 많은 개신교회들이 교회력에 따라 예배를 드리고, 전 세계 강단에서 절기에 맞추어 매 주일 같거나 유사한 성서 본문으로 말씀이 선포된다.

   
▲ 중앙루터교회 공동예배 순서
어제 사순절 셋째주일의 교회력 복음서 말씀은 요한복음 2:13~22, <예수님의 성전 정화>이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이 하실 때 만일 오르간이 있었다면 어찌하셨을까?
여하튼 경제적 논리나 탐욕적 부흥 도모로 아골 골짜기에서 돌에 맞아 죽은 아간과 같은 한국교회를 향해 채찍질하시는 주님의 <거룩한 분노>가 온 몸에 엄습하는 주일 하루였다. 정말 이제는 한국교회가 <들을 귀 있는 자>로 거듭나야 할 터인데….

누구나 <귀>를 가지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너저분한 것에만 귀를 연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분의 고상한 진리의 말씀에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아예 귀를 막아 버렸다.
소위 <Worship>을 드리는 교회는 울부짖듯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친다며 예배하지만 진정한 예배로서 부족함이 많다. 예배는 <내가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은총을 잘 받아먹고 응답하는 복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불러주시어 <Service>를 해 주시는 동안 우리는 <들을 귀>만 있어도 귀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물론 미세한 주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마음과 생각을 비우거나 일깨우는 <들을 귀> 훈련을 부지런히 하여야 하지만, <말씀>과 <성찬>을 통해 복된 삶으로 이끄시는 그 놀라운 은총에 그저 나를 던져버리면 된다.

교회음악을 통해 은혜를 받고자 할 때도 역시 <들을 귀>가 되도록 갈고 닦는 일이 필수적이다. 자신의 노래방 실력에 기대어 그 수준에만 머문다면 <들을 귀>가 점점 도태되어 좋은 찬송이 들리면 오히려 귀를 막게 된다. 우리 교회 성가대의 레퍼토리는 아주 다양한 편인데, 좋은 가사와 곡이라 무척 공을 들인 찬양 때는 <아멘> 소리가 없다가도 연습도 없이 대중성과 타협하는 성가를 불렀을 때 우리 교인들의 <아멘> 소리가 교회 천정을 찌르는 것도 몇 십 년 늘 경험했지만, <내가 좋으면 됐지!>라는 사고는 평생 <값 싼 은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마귀 새끼와 같은 것이라 여겨진다.

내가 십 수 년 전에 쓴 글이다.
“요즈음 불안장애로 지휘하기가 너무 힘들다. 꼬꾸라질 것 같은 몸을 보면대에 맡긴 채 겨우 연주를 끝낸 일도 여러 차례이다. 귀가 무뎌져 잘 들리질 않고 노래를 불러도 즐겁질 않다. 예배가 끝나면 성가대장이신 지영일 장로님께 ‘올해까지만 해야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려 마음먹었는데, 막상 장로님을 대하고는 다른 이야기만 한참 나눈 채 그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했다. 우리 성가대나 지휘자인 나를 심정적으로 크게 후원해 주고 계신 장로님의 미소가 나의 입을 막았다. 쩍하면 우리는 대장님 댁에 초청되어가서 기름진 음식을 공궤 받곤 하나 그것은 별로 큰 후원이 아니다. 진정한 그 분의 후원은 우리 교인 가운데 가장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또한 전문적 입장에서 우리 성가를 들어주신다는 데 있다. 언젠가 이런 대화를 나눈 일이 있다. ‘주 집사는 그 바쁜 와중에 어떻게 음악을 들어? - 자동차 안에서 많이 듣지요, 사놓고 듣지 못한 판이 아직도 많아요.’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의사이신 장로님은 언제 음악을 들으시는지 오히려 궁금했다. 그 분 댁에 있는 매킨토시 앰프와 판들이 전시용이 아니라는 점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수련회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주 집사, 김영환이라는 테너 알아? - 잘 모르는데요…. - 그 사람 리사이틀에 갔었는데 정말 잘 하더라!’ 다음 주일에 지 장로님은 김영환의 ‘Napoletano - 나폴리민요’를 사 가지고 오셔 나에게 주셨다. 녹음이 불충하여 무대에서의 그의 볼륨을 느끼기에는 부족했지만 차에 놓고 여러 차례 들었다. 그러다 결국, 미국에서 오신 이운영 목사님이 내 차에 타셨다가 몇 장의 합창곡집과 함께 그 판도 강탈했다. LP, CD, TAPE, LD 모두 돌아야 소리가 나니까,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 저 사람의 들을 귀를 따라 옮겨가는 것도 당연한 이치이다.”

이 글을 쓰던 해, 한국루터교회 선교 40주년 기념예배를 드렸다. 이 때 우리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인 이초롱(최근 독일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을 마쳤다) 선생은 예배 전주곡(prelude)으로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1637~1707)를 연주했고, 후주곡(postlude)으로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47)을 연주했다. 오르간 음악에 익숙하지 못한 회중들은, 심지어 목사들까지도 잡담을 나누며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 건성으로 들었다.
최고 수준의 오르간 주자이며 작곡자이며 루터교인의 곡이 루터교회에서 <들을 귀> 없는 루터교인들에게 천대 받으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그래도 최선을 다해 연주하는 이초롱의 안타까운 마음을 헤아리니 그저 답답함이 밀려왔다.

북스테후데는 독일 뤼베크에서 활동했는데, 1705년 대림절, 그는 그 곳 교회당에서 그의 곡을 저녁기도회 때마다 계속 연주하였다. (지금도 유럽 교회에서는 매 주 음악회가 열린다.) 그것을 듣기 위하여 음악의 아버지라 불릴 바흐는 4주간의 휴가를 얻어 천 리 길을 걸어서 갔다. 북스테후데를 한 번 들은 바흐는 자기 직책에서 파면당할 각오를 하고 넉 달 후에야 임지로 돌아갔다. (파면 정도가 아니라 당시는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오가던 군주제 시절이었다.)

멘델스존은 부유한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그 가문은 선대에 유대교에서 루터교로 개종하였다. 그는 오르간,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등 악기 연주뿐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작곡과 지휘에도 걸출했다. 미술, 문학, 체육에도 재능이 있었던 그를 평가하며, 좋은 집안의 완벽한 교육이 그를 키웠지, 결코 천재는 아니라고 비하시키는 경향이 있으나, 그것은 전혀 적절치 않으며 그를 경험하지도 않은 무식의 소치이다.
다음 달 결혼하는 우리 교회 오요셉 전도사에게 “루터교회에서 결혼할 때는 적어도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을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가운데 행진해야지.” 했더니, 어제 오르가니스트에게 부탁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시간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예술을 보고 싶다.”라고 고백한 마르틴 루터의 말로 지난 산책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며 본격적인 오르간 산책에 나서자.
 
교회에 따라서 오르간이 중요한 교회가 있고 그렇지 않은 교회가 있다. 예를 들어, 대중적인 전자악기 반주 속에서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며 예배를 드리는 교회라면 오르간이란 악기가 필요할 리 없다. 오히려 드럼이 필요할 것이다.

   
▲ 정교회(시카고)-어떤 악기도 없다
나는 1997년 6월 5일 주일에 미국 산호세에 있는 Hope Lutheran Church(진보적인 ELCA 소속)와 The Lutheran Church of Our Savior(보수적인 미조리시노드 소속)에서 예배를 드렸다. 앞의 교회에서는 강단의 목사님이 오르간과 함께 직접 전자기타를 치며 찬트를 하는 모습에 감명 받았고, 뒤의 교회에서는 예배당 뒤편 2층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통해 깊은 종교심을 경험했다. 교회에서 다양한 악기가 사용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 중에 오르간은 꼭 있어야 할 악기라는 생각을 했다.

동방교회는 애초부터 성악만으로 찬양했으며, 가톨릭이 강했던 이태리 등 남부 유럽에서는 르네상스 이후 여러 파트로 나눠 부르는 다성음악과 악기 반주 없이 부르는 아카펠라 합창이 유행함에 따라 오르간 음악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다. 따라서 음악적 문화가 훨씬 뒤떨어졌던 독일 쪽으로 그 중심이 옮겨지게 되며, 오르간 제작 기술도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특히 종교개혁은 개신교회에서의 오르간의 구실을 적극적으로 제한하기 시작했다. 칼뱅은 시편가를 제외한 기존의 교회음악을 거부했고, 음악적 재능이 출중했다던 츠빙글리는 오르간 파괴 운동에 앞장섰다. 1527년 츠빙글리의 허가 아래 취리히의 대주교좌 성당 오르간이 파괴된 이래 많은 오르간과 성상(聖像), 성화 등 훌륭한 교회 문화재가 수난을 당하였다. 그들은 결코 감정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오르간을 ‘교황주의자의 악마적 작품’으로 치부하여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종교개혁자들이 오르간이란 악기 사용에 민감했던 이유들은 이러하다. 첫째, 오르간은 가톨릭의 구습으로 당연히 개혁 대상에 올랐다. 둘째, 남성 성가대와 오르간이 미사의 음악을 맡았는데 오르간 주자들의 횡포가 컸다. 그들은 음악성을 이유로 세속적인 음악을 삽입하기도 했고 때로는 술에 취해 연주했다. 셋째, 오르간은 순수한 예배를 방해하는 요소로서 초대교회의 순수함으로 되돌아가려면 오르간 자체를 없애버리는 수밖에 없다.
 

   
▲ 온건한 개혁자-Philipp Melanchthon
따라서 루터 선생도 초기에는 오르간 사용을 어느 정도 제한하였다. 정규 미사보다 아침, 저녁 기도회 때만 사용하도록 권했고, 특히 수난절기 같은 때는 쓰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예술’을 예배 시간에 보기를 원했던 루터는 가톨릭 전통이라는 이유로 오르간을 없애지 않았으며, 오르간 음악에 대한 규제도 곧 완화시켰다.

교회의 전통을 아름답게 유지시키면서 진정한 개혁을 추진한다는 유연하고 온건하며 건강한 종교개혁 정신을 가진 루터와 멜랑흐톤(Philipp Melanchthon, 1497~1560) 같은 이들이 오르간 음악을 유지시켰음에 대하여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이들의 노력은 모든 예배 참석자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회중 찬송을 보편화시켰고, 라틴어 대신 모국어로 예배를 드리게 했고, 자국어 성경을 손에 쥐게 했으며, <코랄>과 함께 오르간 음악을 교회에서 활짝 꽃피우게 하였다.
이것은 <바로크 음악>을 여는 열쇠 구실을 했으며, 대(大) 바흐 등을 통해 풍부한 인류의 유산을 남기게 하는 선구자적 동기가 되었다.

<바로크>라는 말은 불규칙한 모양의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barroco>에서 왔다. 이것은 대략 1600년부터 1750년까지의 유럽 예술, 음악에 대한 시대 양식 개념인데, <르네상스>와 <고전주의> 사이에 위치한다. 잘 다듬어진 고전적 르네상스 양식이 타락하고 불균형해진 것이 <바로크>라고 예전에는 평가되었으나, 요즈음의 학자들은 그 자체가 독자적이고 적극적인 이념과 뛰어난 표현이었다고 평가한다.

흔히 교회의 음악은 이 바로크 음악에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지금까지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우리는 특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와 헨델(George Fredric Handel, 1685~1759)을 통해 바로크를 자주 만날 수 있다.

   
▲ Handel
바흐와 헨델은 1685년 같은 달에 독일의 아이제나흐와 할레에서 각각 태어났다. 헝가리에서 이주해 온 이후 대대로 음악가들을 수없이 배출한 가문에서 바흐는 태어났고, 헨델은 이발사와 의사를 겸했던 아버지와 루터교 목사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바흐는 죽을 때까지 별로 유명하지 못했고, 헨델은 당시 바흐가 흠모할 정도로 전 유럽에서 유명했다. 바흐는 상처한 후 재혼하여 20명의 자식을 낳았고, 헨델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두 사람을 비교하는 것이 끝없이 재미있는 일이지만, 두 사람 다 당대를 대표하는 오르간 주자며 작곡자였다는 점으로 마무리하고 오르간 이야기로 되돌아가자.

바로크 때의 뛰어난 오르간 작곡, 연주자들로는 바흐, 헨델, 북스테후데 뿐만 아니라 루터교 3S라 불리는 샤이트(Samuel Scheidt, 1587~1654, Halle)와 샤이데만(Heinrich Scheidemann, 1623~63, Hamburg), <캐논>으로 갑자기 유명해진 파헬벨(Johann Pachelbel, 1653-1706, Nuremberg, Erfurt), 뵘(Georg Böhm, 1661~1733), 텔레만(Georg Phillip Telemann, 1681~1761, Weimar), 그리고 바흐의 사촌형인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1642-1703) 등 바흐 가(家)의 여럿을 꼽을 수 있다.

<바로크> 정신에 힘입어 웅대하고 심원한 영적 음악으로 활짝 꽃피었던 오르간 음악은 <로코코 양식>이 표현하는 <섬세ㆍ우아ㆍ경쾌>함의 영향으로 오르간이 추구하는 영적 소리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많이 잃게 된다. 음악의 중심지가 <비엔나>로 옮겨지면서 이제 음악은 완전히 교회의 품을 떠나는 것 같기도 했다. 특히 <피아노 포르테>라는 혁명적인 악기가 발명되자 <고전주의ㆍ낭만주의> 작곡가들은 오르간을 단조롭고 생명력 없는 악기로 치부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시대적 조류에 따라 이제 대중들은 모차르트나 하이든, 베토벤 같은 작곡가들의 교향곡, 실내합주곡, 오페라에 심취하게 된다. 한 예로 19세기가 되어서도 영국 사람들은 바흐를 몰랐고, 지금 우리가 잘 모르는 음악가들은 당시 크게 명성을 떨쳤다.

다행히 독일에서는 멘델스존과 브람스에 의해 오르간 음악과 종교음악의 맥이 살아나게 되고, 프랑스에서는 <생명의 양식>으로 유명한 세자르 프랑크(Cásar Franck, 1822~90)에 의해 오르간 부흥 운동이 일어난다. 그는 독일계로 파리 성 크로틸드 성당의 오르간주자로 일을 하며, 게르만과 라틴을 조화시켜 새로운 프랑스 음악을 일군 음악가이다. 또한 영국에서는 <주는 나의 목자>로 유명한 헨리 스마트(Henry Smart, 1813~79)가 오르간 음악의 불을 지핀다.

서양 음계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는 바흐의 1722년 작품, 24개의 모든 조로 된 프렐류드(전주곡)와 푸가(오르간곡의 중요한 양식)인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모든 건반악기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소중한 교칙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그 첫 곡에 노래를 붙인 샤를르 구노(Charles Gounod, 1818~93)의 ‘아베마리아’는 지금껏 많은 이의 애창곡이다.

요즈음 각광받고 있는 부르크너(Anton Bruckner, 1824-96)도 10세 때 오르간을 쳤고, 소년 성가대원이 된 후, 24세 때 오스트리아 성 Florian 대성당 오르가니스트로 취임하여, 결국 비엔나 궁정 오르가니스트와 음악원 오르간 교수로 많은 미사곡을 남기게 된다.

이들 외에도 헝가리의 리스트(Franz Liszt, 1811~86), 프랑스의 생상스(Camille Saint Saens, 1835~1921), 뒤프레(Marcel Dupré, 1886~1971),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92), 독일의 레거(Max Reger, 1873~1916), 미국의 바버(Samuel Barber, 1910~81) 등의 작곡가들이 오르간 음악을 현대로 이어주었다.

다음 산책 때는 대 바흐를 중심으로 오르간 이야기를 나누자.

필자소개

   
▲ 주대범 장로

1955년 서울에서 출생, 교육에 종사한다.

대학에서 문학을, 개인적으론 작곡을 공부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10년 한 후, 출판사를 운영 했었다.

교회합창곡도 작곡하고, 글도 쓰면서

누가 부탁하면 목수 일도 하고, 시각디자인도 한다.

중앙루터교회 성가대 생활을 40년째 하고 있다.

주대범 장로 (중앙루터교회 성가대 지휘자)  bawee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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