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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기획연재] 제10회 사랑이 밥 먹여 주냐심은경 단편 성장소설 <마마보이와 바리스타>
이한수(인성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 승인 2015.03.22 11:25

유아기 때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으면 아이의 자존감이 제대로 자랄 수 없다는 점에 대해는 많이들 공감을 합니다. 하루 세 시간 이상 [엄마 냄새]가 육아의 기본 상식으로  회자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집안 살림이 여의치 않아 엄마가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얼마나 불쌍합니까. 가난한 집에서 자란 아이는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의기소침하여 재능을 찾기는커녕 친구도 잘 못 사귀어 외톨이가 될 수 있다니 참 가슴 아픈 말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늘 아이 곁에 붙어서 모든 일을 돌보아 주는 아이도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사회적 자아가 잘 형성되지 않아 매사에 제 욕심만 내세우는 유아적(唯我的)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니 타인과 진실한 관계를 맺기가 어려운 겁니다. 공부 잘 하고 재능이 있다 한들 타인과 진실한 소통을 하지 못하는 삶이 행복할 리 없습니다. 어느 누구 하나 감동시킬 수 없으며 미움만 사는 삶이란 얼마나 가련합니까.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기심을 넘어 대자적(對自的) 존재로 거듭나야 합니다. 아기일 때 엄마와 밀착되어야만 든든한 자아가 형성되는 만큼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엄마로부터 분리되는 자립의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아이가 청소년기에 접어들어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엄마의 보살핌에 역정을 낼 때 엄마는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출산할 때만큼 아프겠지만 새 생명의 탄생처럼 기쁘게 맞이할 일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공들여 키운 사내아이한테 여자 친구가 생기면서 엄마를 귀찮은 존재로 보는 듯할 때에는 그 배신감을 어찌해야 합니까.  

엄마가 보기에 아직 철없는 아이가 사랑에 빠졌다고 하니 얼마나 걱정이 되겠습니까. 아직 그럴 때가 아니지 않느냐, 그 아이 집안은 어떠냐, 이 비정한 현실에서 사랑 타령이 밥 먹여 주느냐, 걱정이 태산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도리어 엄마에게 되묻습니다.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해 본 적이 있습니까? 진실한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누군가 당신의 외모나 조건에 혹하는 거보다 변치 않는 마음으로 진실하게 사랑해 주길 바라 않나요? 이런 물음에 대해 ‘사랑이 밥 먹여 주냐’고 대거리 할 수 있습니까.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늘 가르쳐 왔거든요. 남이 나에게 해주길 바라는 대로 나도 남에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맺어지지 않은 인간관계는 서로에게 상처만 줄 뿐이란 것, 이 원리는 애틋한 연인관계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이라는 것, 이 원리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바람은 어김없이 모두 이기적 욕심에 불과하니 이런 욕심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거나 내세우는 관계는 나중에 참 지저분해진다는 걸 잘 알고 있거든요.

자식이 고생하지 않기는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야 동서고금이 다르겠습니까. 그런데 자기를 부정해야만 진정으로 대자적 존재, 참다운 인간이 될 수 있으며 사랑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것도 불변의 진리이지 않습니까.

진실한 사랑에 빠졌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알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데 그걸 알아내려고 할수록 그 진실이 나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마니 어찌 해야 합니까. 입장 바꿔 생각해 보세요. 누군가 당신 속마음을 떠보기 위해 눈을 반들거리면서 살피면 좋겠습니까? 당연히 싫지요. 그의 진심을 알아내기 위해 섣불리 머리를 굴리면 그는 금방 알아챕니다. '이 사람이 나를 떠보고 있구나' 하고 불쾌해 할 겁니다.

그렇다면 그의 진심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易地思之)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건 머리를 굴려 알아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야 합니다. '마음으로 느낀다'는 게 무슨 말일까요. 다른 사람의 진심을 마음으로 느끼려면 감수성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감성지수(EQ)가 높아야 합니다. 감수성이 무디면(EQ가 낮으면) 다른 사람의 진심(또는 양심)을 제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진심을 제대로 읽으려면 내가 먼저 진실하고 양심적이라야 합니다. 아기일 때에는 살 부비고 눈 맞출수록 아이의 감성이 따뜻해지는데 다 크도록 엄마의 케어를 받는 아이는 감수성이 무디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공부 잘하는 다재다능한 모범생으로 커온 아이가 남의 눈으로 자신을 되돌아 볼 줄 알까요. 그렇게 커온 아이가 진실한 사랑에 눈뜨게 될 수 있을까요. 한 ‘마마보이’의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자식, 멋진데.’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키며 안으로 들어갔다. 지평이는 청바지에 흰 셔츠, 검정색 앞치마 차림이었다. 교복을 벗으니 제법 어른스러워 보였다.
  “형, 제가 말했죠? 전교 일등을 놓치지 않는다는 공부벌레.”
  “엄마가 더 유명하다는 친구?”
  지평이가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지평이를 째려보았다.
  “사장님이셔, 인사해. 내가 전에 말했던 그 형이야.”
  지평이가 부러 유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사장이라는 형과 인사를 나눌 때였다. 종소리가 경쾌하게 울리며 카페 문이 열렸다. 어색함을 몰아내는 반가운 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홱 돌아갔다.
  “아이 추워!”
  그녀가 내뱉은 첫마디였다. 하얀 피부에 커다란 눈, 적당히 큰 키, 긴 머리. 마치 인기 걸 그룹 멤버 한 명이 걸어 들어오는 듯했다. 아니, 그보다 더 눈부셨다. 순간 찌릿한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녀가 제 집처럼 들어와서는 내게 시선을 멈추었다.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누구?” 하고 물었다.
  지평이가 나섰다.
  “우리 반 회장 류진우. 네가 궁금해 했던.”
  “아아, 마마보이? 안녕, 난 심석여고 1학년 도혜지야.”
  그러고는 팩 돌아서서 바자회 물건이 진열된 곳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카페 안의 모든 소음이 정지된 듯했다. 내 머릿속에는 오직 ‘마마보이’라는 단어만 둥둥 떠다녔다.

   
▲ 심은경 단편 성장소설 <마마보이와 바리스타>가 수록되어 있다.
유복한 집 마마보이 ‘진우’가 불우한 가정환경의 ‘지평’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가 알바하는 커피숍을 찾아갔다가 거기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혜지’한테 한눈에 반하게 됩니다. 진우가 ‘혜지’를 좋아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철없는 애인지 자각하게 되는데 고등학생 나이인데도 엄마가 하루 스케줄을 일일이 체크하고 그 덕분에 학급회장,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모범생일 수 있다는 게 영 낯부끄러워지게 된 것입니다.

‘혜지’와 사귀기 위해 친구 ‘지평’을 이용하려고만 했지 친구가 어떤 형편인지 도무지 관심도 없고 오로지 친구보다 자신이 더 잘난 사람이란 걸 확인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진우’는 요즘 소위 우등생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렇게 모범적(?)으로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어떤 사람이 될지, 그렇게 어른이 되면 진실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너무 성급하게 일반화하는지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수십 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제가 체험한 바로는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진우‘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진우‘처럼 길들여지지 않으면 우등생이 될 수 없는 게 작금의 교육 현실입니다.

‘진우’가 ‘혜지’같은 애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 큰일 납니다. 그동안의 공부는 어떻게 되겠으며 부모 없이 산비탈 판자촌에서 가난하게 사는 애들과 어울리면 어긋나지 않을까 걱정을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커피숍에서 알바하는 여자 애와 사귄다니 엄마한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진 겁니다. 이 나라 어느 엄마가 전교 수석 아들이 카페 알바 여자 애랑 사귀는 걸 용납하겠습니까. 말도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칠 만합니다.

그런데 마마보이 ‘진우’가 ‘혜지’한테 반하면서 달라지는 내면이 너무 인간적입니다. 참 아름답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진우’는 비로소 참다운 인간관계에 눈뜨고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외모, 성적, 간판에 눈이 멀어 사람 마음속을 볼 줄 모르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욕심에 눈이 멀어 사람 마음을 잘 못 읽으면 어떻게 되겠습니다. 누군들 그런 사람하고 같이 지내고 싶어 하겠습니까. 부자가 되면 뭐합니까. 어느 누구한테도 진실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한 사람도 감동시킬 수 없는 괴물로 사는 건 너무나 가련하지 않습니까.

이한수(인성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hansu8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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