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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집언봉사執言奉辭 8>『논어7권』술이편(述而編) 2
이은선(세종대교수) | 승인 2015.03.24 13:47

<명구>
述而編 6 : 子曰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遊於藝(禮).
(술이편 6 : 자왈 지어도 거어덕 의어인 유어예(예))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道에 뜻을 두며, 德에 의거하고, 仁에 의지하며, 藝(禮)에 거닌다.

<성찰>
이 말은 술이편 6절의 말씀으로 보통 학문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과 언행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된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더 나아가서 이 한 문장에 공자 전체의 삶, 유교 전체의 가르침이 핵심적으로 잘 집약되어있는 언술로 본다. 여기 드러나 있는 네 단어, 道, 德, 仁, 藝(禮)는 공자가 평생 동안 숙고하고, 배우고, 가르치고, 실천하고자 한 의미들인데, 모두가 그의 깊은 내재적 초월에 대한 신앙을 드러내주는 단어들이라고 하겠다.

공자는 이미 그의 ‘이인편’(里仁編)에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라는 말씀을 했다. 이런 말들에서 도란 예수의 언술 중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등의 ‘진리’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고, 예수가 하늘 부모님(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행하고, 가르치고자 일생을 사신 것처럼 공자도 유사하게 일생동안 道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고, 전하기 위해 사셨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 인생의 출발을 ‘도에 뜻을 둔’(志於道) 인생으로 밝히고 있다.

   
 
도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삶의 목표를 가지고 그 길에 들어선 호학자가 삶의 판단들에서 근거로 삼는 것이 덕이라는 것이다. 유학자 류승국 교수에 따르면 도와 밀접히 관계되어 있는 ‘덕’ 字는 ‘득’(得, 얻은 것) 또는 ‘직’(直, 곧은 것) 字와도 통한다. 그래서 덕이란 하늘로부터 얻은 인간의 기능, 곧을 수 있는 능력, 정직하게 무엇이 옳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 마음의 뛰어남 등을 말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즉 도를 지향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늘로부터 받은 덕에 근거해서 정직하게 판단하고 선택하면서 뛰어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함석헌 선생은 그의 『뜻으로 본 한국사』에서 덕이란 “자기 속에서 전체를 체험하는 일”이라고 했다. 덕 있는 사람이란 우리의 삶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전체에까지 확장해서 그 인식에 합당한 대가를 기꺼이 치르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은 옆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 타인에게 속하는 것을 빼앗지 않고, 그 타인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은 그에게 돌리면서 의롭고 덕 있게 살아가야 하지만 그 일이 쉽지가 않다. 공자는 그래서 ‘仁에 의지하는’ 삶을 말했다. 나는 이것을 우리가 실패해도 다시 우리가 상기하고 의지할 것은, 하늘로부터 받은 우리 마음 밭의 인간성의 씨앗이라는 것을 지시하는 뜻이라고 해석하고자 한다. 우리는 실수하고, 실패하고, 비인간적으로 타락하며 살아가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속마음의 인간됨을 상기하면서 거기에 의지하여 새롭게 발분하여 도를 찾아가는 삶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仁’은 우리가 익히 들어온 대로 인간성의 ‘씨’이며, ‘얼’이고, 예수의 언술대로 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다. 앞의 덕이 보다 인식적이고, 문화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라면 여기서 仁이란 보다 더 근본적이고 생래적인 하늘로부터의 시여를 지적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 단어인 ‘예’는 예술의 ‘藝’나 예절의 ‘禮’ 모두를 포괄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늘의 도를 추구해가는 길 위에서 인간성의 본래적 선함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아는 곧은 마음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살아갈 때 그 현재적 삶과 인격의 정조는 조화롭고, 평화롭고, 함께 함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아름다운 모습이 된다는 의미라고 여긴다. 공자 자신의 삶도 그렇고, 우리 모두의 삶과 정치가 지향하는 바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이러한 평화를 지향하는 공자의 일상에 대한 서술을 보면, 그는 집에서 한가하게 계실 적에는 “편안하고 화락한 듯하셨고”(申申如也 夭夭如也), 음악과 시를 아주 좋아해서 한 때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잃을 정도로 음악에 심취하시기도 했다고 한다. 그가 평소에 항상 하시는 말씀은 《시경詩經》과 《서경書經》, 禮를 행하는 것이었다고 전한다. 그는 상을 당한 사람 곁에서는 결코 배부르게 먹지 않았으며, 곡을 하신 날에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고, 낚시로는 고기를 잡았으나 그물을 쓰지는 않았으며, 주살을 쓰기는 했으나 잠자는 새는 잡지 않았다고 한다. 말씀하시기를, “仁이 멀리 있겠는가? 내가 仁하게 되고자 하면 그 仁이 다가온다.”(仁乎遠栽 我欲仁 斯仁志矣.)라고 하면서 우리 삶의 평화와 기쁨이 결코 먼데 있지 않음을 지적하신다.

러시아의 사상가 베르댜예프는 혁명의 진실은 우리 삶에서 큰 독을 끼치는 잘못되고 부패한 과거를 부순다는 사실에 있지만 그러한 방법론은 지극히 “평균적 인간에 의해서 평균적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즉 혁명을 통해 얻어지는 소득이란 커다란 공포와 무자비한 폭력에 비하면 너무도 작은 것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혁명이 인간 정신의 노예성에 대한 진정한 승리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이라고 밝힌다.(니콜라스 A. 베르댜예프, 『노예냐 자유냐』, 이신 옮김, 늘봄, 2015)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자의 길을 생각했다. 그는 혁명의 방법론보다는 인간 정신의 노예성을 진정으로 바꿀 수 있는 덕과 인의 길을 생각했고, 그것이 자신의 고유한 길이라고 여기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예수의 길은 그러한 學과 공부와 성찰의 길과는 다르다고 여긴다. 하지만 나는 예수의, 시대를 흔드는 성경 해석의 말씀과 그가 전해주는 복음이 그의 깊은 하나님 말씀 탐구와 기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공관복음서에서 끊임없이 ‘가르친다’를 표현으로 그의 공적 삶의 활동들을 묘사하는 글들이 의외로 많이 나오는 것을 발견한다. 공자는 하늘의 뜻과 도를 알기 위해서 易을 공부하면서 세 번이나 그 말씀 책을 묶은 가죽 끈이 끊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돌아가시기 삼여 년 전에 몇 해만 나에게 더 있다면 50년의 易 공부가 되어서 큰 허물을 저지르지 않게 될 것이라는 탄식도 하셨다(加我數年 五十以學易 可以無大過矣.)

그렇게 전해진 것과 그 전해짐의 기원을 하늘에까지 닿은 것으로 믿고 탐구해온 귀한 人子들의 삶 덕분으로 우리는 지금까지의 인류 문명에서의 수많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인간됨’의 핵심과 그 문화의 갈 길을 탐색하는 일을 그치지 않는다. 그 중의 한 으뜸인 공자는 그의 온 삶이 하늘에 대한 기도와 기원이었던 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내가 몹시도 쇠약해졌구나! 내가 꿈에 주공을 뵈옵지 못한 지도 오래되었구나!” 공자의 병이 심해지자 제자 자로가 하늘과 땅의 신에게 기도드릴 것을 권하자 그는 말하기를, “내가 그런 기도를 드려온 지가 오래다”(丘之禱久矣)라고 했다. 공자는 “군자는 마음이 평탄하고 너그럽지만 소인은 늘 근심에 차있다”라고 하셨고, “너희들은 내가 감추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감추고 있는 것이라곤 없다. 나는 무엇을 행하든 너희들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없다. 그것이 곧 나다.”라고 선언하신다.

오늘 나라의 지도자들과 위정자들이 온통 비리와 비밀과 의혹에 휩싸여서 조금만 건드려도 그 비인간적인 것이 드러나는 우리 시대, 우리의 위정자들에게 공자의 이러한 인격과 가르침은 참으로 진정한 신앙(信)과 혁명이 무엇인지를 가르친다. 덕 있는 사람은 “의 아닌 것으로 얻는 부와 귀는 뜬구름과 같은 것”(不義而富且貴於我如浮雲)이라는 사실을 안다.

이은선(세종대교수)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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