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퓨전음식

음식만 퓨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즐기는 음악과 미술, 문학에 이르기까지 퓨전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몸과 정신조차 퓨전이 된지 오래다. 지구화 시대, 인터넷 시대에서 쇄국정책을 하는 닫힌 공간에서 살지 않는 한, 모든 문화는 국적 불명의 퓨전문화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문화의 소통 중에 어느 문화가 특정한 시공간에서 다른 문화들 보다 더 호감을 갖게 되면 그 특질을 십분 발휘한다. 일단 시공간이 정해지면 그 조건이나 성질에 적합하게 스스로 수정하고 변화하여 그 시공간 안에 일시 정착하게 된다.

한식집, 일식집, 양식집, 중국집이 따로 없이 어느 간판이든 간에 한 간판 아래 한국인들의 식성에 적절하게 변화하여 생산된다. 이 음식은 일식도 중국식도 한식도 아닌 복합적인 짬뽕 퓨전음식이지만 그 자체가 음식의 한 장르가 된다. 일본에서의 퓨전음식과 한국에서의 퓨전음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 디즈니랜드 이미지 교회.

고딕(Gothic), 언제나 크리스마스 카드 겉장을 장식하던 사진과 그림들, 흰 눈으로 덮인 교회지붕과 뾰족한 종탑, 반짝이로 장식한 상록수, 우리에게 고착이 되어버린 이러한 형상의 교회 건물은 언제나 고딕을 원형으로 한 것이었다. 르네상스 전까지 축조된 고딕양식은 중세 스콜라신학을 토대로 로마 가톨릭 전례를 담기에 적합하도록 신학적으로 기술적으로 고안된 산물이었다. 보편논쟁 이후 유명론의 득세로 인해 더 이상 보편주의(Catholicism)가 명분을 잃자 그 보편주의를 담았던 가톨릭교회의 고딕양식은 더 이상 축조되지 않고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그 후 19세기 초 엽, 영국에서 러스킨(J. Ruskin), 그리고 영국 국회의사당을 설계한 퓨긴(Pugin)과 같은 사람들이 중세를 그리워하며 고딕양식을 재건하는데 그것이 '네오고딕'이다. 동시대에 윌리암 모리스(W. Morris)를 중심으로 기계가 아닌 손으로 제작하는 중세적 공방운동으로써 미술공예운동이 일어나는데, 이 시기는 문학, 미술, 음악, 건축, 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에서 일어났던 낭만주의시대이다.

특히 영국성공회의 옥스퍼드 운동은 중세 가톨릭교회에 봉사하였던, 라파엘 이전으로 되돌리고자 했던 미술공예운동가들과 네오고딕운동가들과 협연하여 교회전례를 중세로 복원시키려는 고 교회(High Church) 신학자들의 종교낭만주의 운동이었다. 아일랜드 국민들이 기근으로 백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던 동시대의 낭만주의 사조는 이러한 문제에 아랑곳하지 않은 귀족취향의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아폴로 이미지 교회

유네스코 유산으로 보존되어 여행객들에게 눈요기를 주는 유럽 중세의 엄청난 규모의 대성당들도 그 공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민중들의 목숨을 앗아갔는지 상기할 필요가 있다.

모두 신의 영광을 위해 익명으로 강제 봉헌된 결과물들을 후손들은 탐닉하거나 애용하고 있는 것이다.

네오고딕,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된 것은 1890년 붉은 벽돌조의 가톨릭 명동성당이다.

터를 구입할 때부터 조선정부와 마찰이 있었던 명례방에 아마추어 건축가인 프랑스 신부가 설계하고 프랑스 외방전교회가 주된 재정적 주체가 되어 중국인 벽돌공들이 쌓아올린 교회당이다.

토착화를 떠나 명동성당은 가톨릭교회이기 때문에 양식과 그 내부공간을 네오고딕양식으로 구성한 것에 관해 명분을 내세울 수 있겠지만, 가톨릭이 싫어 종교개혁을 하고 전례를 단순화한 장로교회가 고딕으로 축조하는 것에는 어떤 신학적 명분이 있는 것일까.

▲ 고딕 처럼 첨탑을 높인 교회이미지

교회는 고딕이라는 러스킨의 말이 전 세계 교회에 적용되는 것일까. 장로교회의 대표적인 영락교회는 1950년 전쟁 중에 네오고딕으로 축조된 교회이며 십여 년 전에 건축한 충현 장로교회는 네오고딕이 아닌 프랑스 중세 고딕성당을 그대로 옮겨 놓은듯하다. 많은 개신교회들은 네오고딕이든 고딕이든 이와 비슷한 양식으로 자신들의 교회를 재건축하려고 한다.

건축 재료나 기술의 발전으로 굳이 중세풍의 고딕을 그대로 재현할 신학적이며 재정적인 명분을 찾지 못한 한국의 대다수 대형교회들은 중세 유럽 고딕교회 건축물을 원형으로 삼아 그것을 변형하여 주변 교회들과 차별화된 퓨전의 양식으로 축조하여 국토의 풍광을 바꾸고 있다.

▲ 전투기 이미지교회

경부고속도로 판교톨게이트 주변에 전투기처럼 솟아 있는 교회도 그 원형은 고딕을 모델이며, 수원 산업도로 주변 논 자락에 서 있는 아폴로 우주선과 같은 교회도 고딕을 원형으로 삼아 변형시킨 양식이다.

만약에 내 교회를 무슨 양식으로 축조하든 상관하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내 돈 내 마음대로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자가 돈을 쓸 때도 가난한 이웃을 의식하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다면, 적어도 지나친 사치나 도박 따위는 스스로 절제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도 지역사회 안에 존재하면서 지역주민들과 소통을 하고 지역풍광과 어떻게 하면 어울릴 수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의식한다면 스스로 지나침을 절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치가 건축에 대한 도덕성이다. 주변과 주민들을 의식하지 않은 건축한 특이하고 거대한 건축물이 그 신앙 구성원들에게 자랑이 된다면, 그것을 탓하지도 못하는 주변 사람들이 갖는 교회에 대한 속내의 이미지는 그 교회건물이 무너질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덴마크 아폴로 이미지 교회

교회가 그 어느 다른 목적의 건축물들보다도 더 환경을 파괴하고 특이한 양식으로 축조하는 것에 대해 지역주민이 혐오감을 갖고 비난을 한다면 그것을 탄압이나 박해라고 여기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주변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참고 견디라고 한다면, 그것은 21세기 교회가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 중세기 신학적 명분으로 포장하는 시대착오적 명분일 뿐이다.

언제나 환경을 최소로 파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지역 풍광과 어울리며 지역주민과의 소통을 극대화 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공공성을 담지 하는 교회건축이라면 그것이 고딕이든 국적과 시대를 초월한 퓨전이든 그 양식이 중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신학으로 무장한 교회가 천문학적인 건축헌금을 모아 환경을 심하게 파괴하면서 차별성 있는 퓨전양식으로 예배당을 마련할까 싶다. 대체로 보수적인 성향의 교회들이 전투적인 양식으로 교회건물을 축조하고 있는 것도 퍽 흥미로운 일이다.

‘교인 군사 같이 구주 지휘로’

이정구  jkl@s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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