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칼럼 고정칼럼
오르간 이야기 4 - “슈바이처와 오르간”<주대범의 교회음악 산책 17>
주대범 장로 (중앙루터교회 성가대 지휘자) | 승인 2015.03.27 14:08

우리 교회는 매년 종려주일을 앞두고 사흘간 사경회(査經會)로 모인다. 사순절 막바지에 깊고 곧은 성서 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뜻 깊은 잔치인데 정작 새겨듣고 자신의 삶에 반영해야 할 젊은 교우들이 많이 불참하여 늘 아쉬움이 남는다.
올해는 <하나님 나라의 씨앗>을 주제로 경동교회 박종화 목사님을 강사로 모셨는데, 첫 날인 어제 저녁, 참석했던 모든 이들이 주님의 말씀을 배불리 먹고 행복해서 돌아갔다.

   
▲ 15사경회
사경회가 시작되기 전 30분 동안 아직은 쌩쌩하게 <준비 찬송>을 인도했다. 교회음악을 좀 안다는 이들 중에는 <준비 찬송>이란 말이 그릇된 것이라 가르치지만 그 주장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려지는 찬송에 어찌 <준비 체조>처럼 <준비>가 붙을 수 있느냐는 것인데, 그것은 <안식일이 하나님을 위해 있다>고 어기대는 <율법주의자>들의 억측이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듯이 찬송도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 분명한데, 모임 전에, 말씀을 듣기 전에 찬송을 통해 우리 가슴을 따뜻하게 데우며 활짝 여는 <준비 체조>는 매우 바람직하며, 나아가 주님께 영광 돌리는 충실한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모임 후 박 목사님은 준비 찬송 인도를 한 나에게 <가수인줄 알았다>며 추기어 주셨는데 후계자를 아직 못 세운 나는 오히려 겸연쩍었다. 35년 전, <베델의 노래>를 편집한 후 <베델성서연구> 강습회 때마다 목사님들 앞에서 찬송 인도를 하며 <시건방진 평신도>의 잡설(雜說)을 토로(吐露)하곤 했는데, 지금껏 기타나 피아노를 치며 찬송 인도를 하니 정말 오래도 해먹었다.

대 바흐가 죽을 때까지 27년 동안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교회의 오르간 주자로, 합창 지휘자로, 전속 작곡자로 일한 것을 보고는 나도 그 햇수만큼 채우자 하며 지휘하고 트럼펫도 불며 작곡도 하면서 흉내를 냈다. 물론 바흐가 일한 내용과 나의 일의 내용을 비교한다는 것은 아예 가당찮은 일이지만 이제는 적어도 바흐보다 훨씬 더 오래 해먹었다.

자 각설(却說)하고 바흐를 통해 오르간 이야기를 이어가자.
 
밀림의 성자라고 일컫는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라면 모를까 내가 대 바흐의 오르간 음악 세계를 논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모한 일이다. 나는 파이프 오르간을 만져보지도 못했고, 오르간 음악을 그리 많이 듣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바흐의 오르간 음악세계로 이끌 가장 훌륭한 인도자로는 슈바이처를 능가할 사람이 아직 없다.

   
▲ 슈바이처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에서의 의료 활동은 말할 것 없고, 그의 <종말론>, <생명 경외>, <역사적 예수>를 통해 탁월한 신학자이며 철학자인 것을 우리가 잘 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그가 다니던 귄스바흐교회의 오르간 주자였으며 파리 유학 시절 저명한 오르간 연주자인 찰스 마리 위도의 영향을 받아 18세부터 본격적인 파이프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였다. 또한 <음악가 시인 요한 세바스찬 바흐, 1905>와 <독일과 프랑스의 오르간 제작법과 오르간 음악, 1906>을 출판했으며 1911년부터는 아내와 함께 (학자들에 따라 잘했다, 못했다 의견이 다소 갈리지만) 엄청난 <바흐의 오르간 작품>을 교정ㆍ편집하여 출판했다.
 
1685년, 종교개혁의 중심지 아이제나흐에서 음악가 집안의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난 바흐는 열 살 때 잇따라 부모님들을 여읜 후, 당대 유명한 오르가니스트인 파헬벨(Johann Pachelbel, 1653~1706)의 문하였던 사촌 형 요한 크리스토프(1671~1721)를 따라가 오르드루프에 가서 음악 공부를 했다. 그 곳 고등학교에서 루터교 정통파 신학, 라틴어, 역사, 자연과학을 배우기도 했지만, 역시 그의 관심은 음악이었다.

형이 가지고 있던 당대의 오르간 곡들을 6개월이 넘도록 달빛 아래에서 필사했다가 결국 그 악보들을 형에게 빼앗겼다는 이야기를 이미 한 바 있지만, 이 일로 결국 바흐는 말년에 눈이 멀게까지 되는데, 그는 오르간 작품 속에서 성장하고, 작곡가로서보다 오르가니스트로 알려졌고, 이 고상한 악기로 연주하는 것을 행복으로 알았으며 전 생애를 통해 오르간에 몰두했을 뿐 아니라 오르간 제작ㆍ개조에 전문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삶을 살았다.

1708년, 23세 때부터 10년 동안 그는 교회음악을 중요시한 루터교 정통파 영주 에른스트가 통치하던 바이마르에서 궁정예배당 오르가니스트로 일한 적이 있다. 괴텐의 궁정 악장직을 맡기 위해 사표를 제출하자 영주는 그를 한 겨울에 한 달 동안 불복종 죄로 감옥에 가두었다. 바흐는 감옥 안에서 친근한 찬송가 곡조를 넣어 <오르간 소곡집>을 작곡하였다. 그 속표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하늘 위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그리고 또 만민에게 그의 영광이 더 널리 전파되기를…!”

그는 괴텐 궁정 악장 시절, 전임자 두 배의 급료를 받았으며 전문 음악가 못지않은 영주 레오폴트와는 친구처럼 지냈다. 괴텐은 칼뱅파에 속했기 때문에 교회음악을 중요시 하지 않아 이 시절 6년 동안 그는 종교적이지 않은 많은 곡을 이곳에서 만들었다. 괴텐 시절 그는 상처하였고 1721년 궁정 트럼펫 주자의 딸이며 소프라노였던 안나 막달레나(Anna Magdalena, 1701~60)와 재혼하였는데, 그녀는 남편의 예술을 깊이 이해하는 좋은 반려자였다. 남편의 작품을 부지런히 필사하다보니 부부의 필체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우리 교회 성가대도 가끔 그녀가 필사했던 악보를 연주할 때가 있다.

그는 이곳에서 뼈를 묻을 결심을 하며, 아내를 위해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 장남에게 음악기술을 전수하기 위한 <프리데만을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 등을 쓰며 인생의 행복을 만끽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곳에 두지 않으셨다. 새로 결혼한 영주의 부인이 음악을 좋아하지 않아 음악적 분위기가 사그라지기도 하였고, 자식들의 대학 교육을 위하여 그는 결국 1723년 라이프치히로 옮기게 된다. 

라이프치히는 지금도 서양음악의 중요한 본거지이지만, 당시 시 전체가 루터교 정통파에 속하여 성 토마스교회와 부속학교의 음악감독(칸토르)인 쿠나후(Jojann Kuhnau)가 죽자 그 후임으로 바흐를 채용했다. 텔레만 같은 당대 일류로 평가 받던 이들이 고사하여 결국 B급인 바흐가 채용된 것이긴 해도 그는 성 토마스교회, 성 니콜라이교회의 예배용 칸타타를 작곡하여 제공하고 합창 지휘를 하고 오르간을 연주하였다.

특히 음악관이 달라 상관들과의 인간관계가 어려웠던 시절, 그는 칸타타ㆍ수난곡ㆍ모테트ㆍ전례음악 등 성악곡과 오르간을 위한 코랄 전주곡, 즉흥 연주에서 발달한 토카타(Toccata), 전주곡(Prelude)과 푸가(Fuga) 등 많은 교회 음악 장르들을 1,000여 곡 작곡하게 된다.

   
▲ 오르간 연주하는 Bach
바하는 1739년 루터의 대교리문답서ㆍ소교리문답서의 다양한 서주와 오르간을 위한 찬송가를 모아 <건반 연주>를 펴냈는데, 전체 3권으로, 3개의 부분으로, 3개의 가락으로, b(flat)이 세 개 붙는 내림 마장조로 일부러 만들어 그의 삼위일체의 신앙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작품은 음악 전문가들의 영혼을 새롭게 하기 위한 본래의 구실답게 하이든ㆍ모짜르트ㆍ베토벤ㆍ쇼팽ㆍ슈만ㆍ브람스ㆍ바그너ㆍ멘델스존ㆍ쇤베르크ㆍ힌데미트ㆍ스트라빈스키 등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바흐가 당시 독일의 대표적 오르간 제작자로 꼽은 사람은 슈니트거(Arp Schnitger, 1648~1719)였지만, 독일 중부에서 오르간 제작과 발전에 힘쓴 질버만(Gottfried Silbermann, 1683-1753)과는 친밀히 교류하며 악기 제작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바흐는 질버만이 제작한 드레스덴 소피아교회의 오르간과 프라우엔교회의 오르간을 모두 연주해 보았고 그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색과 깊이 있는 표현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그 두 오르간은 안타깝게도 2차 세계대전 중에 불에 타버렸다.

당시 바흐의 오르간 연주 모습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그는 페달을 마치 그의 발에 날개가 달린 듯 날렵하게 밟았으며, 그가 만드는 오르간 소리는 풍요로웠고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의 귓전에 천둥소리처럼 울리며 꿰뚫는 힘이 있었다. 카셀의 공작 프리드리히는… 놀라고 감탄하여 그의 손가락에서 값진 보석이 박힌 반지를 빼어 연주가 끝나자마자 바흐에게 주었다.”

독일의 맹인 오르간 연주자인 헬무트 발햐(Helmut Walcha, 1907~1991)의 고백으로 바흐의 오르간 음악을 정리하자.
“궁극적으로 바흐는 우리들이 우주에 눈을 뜨도록 만들어 준다. 우리들은 그의 음악을 접한 후, 결국 삶이 의미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지난 번 산책에서 미국의 두 루터교회 예배에 참예했던 경험으로 “교회에서 다양한 악기가 사용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 중에 오르간은 꼭 있어야 되는 악기라고 생각했다.”라고 했는데, 문성모 목사 같은 분들은 한국교회가 물량공세로 무조건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는 일에 대하여 상당히 경계하고 있다. 그는 국악을 전공하고 신학을 하신 후, 독일에 가서 예배학과 음악을 공부하신 분이기 때문에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교회음악 토착화에 관하여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시는 분이다.

   
▲ 홍성훈과 성공회 작은 오르간
한국 개신교 최초의 파이프 오르간은 정동감리교회에 설치되었다고 하는데 문 목사의 말대로 모든 교회에서 오르간이 ‘악기의 왕’이 될 수는 없다. 많은 교회의 대형 파이프 오르간보다도 오히려 안동교회의 작은 파이프 오르간이 훨씬 제 구실을 하리라 쉽게 짐작된다. 그 교회는 평소 기독교 문화가 살아 움직이는 교회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영락교회 50주년 기념관을 지나면서는 <IMF 이전, 16억 원짜리 오르간이라는데…> 하듯 큰 교회당 옆을 지날 때마다 <저기는 얼마짜리?> 하며 부러워하는 내 자신이 다소 창피하다.

십여 년 전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소성당에 높이 3m에 넓이 2m, 280개의 파이프를 가진 작은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었다. 한국인이 제작하였다는 점과 국악기 음색이 들어 간 악기라는 점에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독일 루두빅스부르크에 있는 전 세계 유일의 오르간건축 전문학교에서 3년 6개월의 오르겔바우어(오르간 건축가)의 과정을 밟고 5-6년간의 최고 오르간건축 기술자인 오르겔바우마이스터(Orgelbaumeister) 과정과 국가시험을 통해 한국인으로서는 구연갑에 이어 두 번째로 마이스터라 일컫는 장인(匠人)이 되어 귀국한 홍성훈 선생이 제작한 이 악기에는 퉁소ㆍ아쟁ㆍ생황ㆍ나발ㆍ피리 등의 우리 악기 소리가 담겨 있다 한다. 정말 뜻 깊고 바람직한 일이다.

반면, 돈 자랑하느라 들여놓은 대형교회의 파이프 오르간 중에서 제대로 쓰여지지 못하는, 적어도 몇 대의 악기는, 최악의 경제 상황에 처한 우리 현실에서, 팔아 구제하는 일에 쓰여져도 억울할 게 없다 싶다. 역사적인 예로 스코틀랜드 홀리루드장로교회는 1633년 오르간은 게으르고 좀먹고 소비적인 것이므로 적당한 값에 팔아 가난한 이들을 구제키로 결정한 바 있다.

우리나라 주요한 오르간 연주자로는 곽상수(1923~2013) 선생을 필두로 백금옥, 배성연, 조명자, 채문경, 윤양희, 유희자 등을 꼽을 수 있다.

   
▲ Boardwalk Hall Auditorium-Organ in Atlantic City NJ.
세계에서 가장 큰 오르간은 미국 Atlantic City's Boardwalk Auditorium에 있는, 세너트 에머슨 리차드가 설계하고 롱아일랜드의 Midmera Losh사가 제작 후 헨리 윌리스가 조율한 두 개의 연주대가 있는 악기인데, 그 중 하나는 움직인다고 한다. 큰 연주대는 7단의 건반을, 움직이는 연주대는 5단의 건반을 가졌다니 어떤 소리를 낼 지 막연히 상상해 본다.

요즈음은 전자공학이 발달하면서, 전기오르간을 거쳐 전자오르간, 신서사이저라 일컫는 Synthetic Organ이 파이프 오르간의 구실을 대신하곤 한다. 국내에서도 영창악기가  K-2000이란 신서사이저를 개발했으며, Aria, Sonorex(Rextone) 등이 교회 전자오르간을 생산하고 있으나, 정작 현재 국내 시장에서 각축을 벌이는 악기들은 외국의 전자오르간들이다. 그 중 미국의 Allen, 독일의 Ahlborn, 네덜란드의 Johannus, 이태리의 Viscount, 일본의 Rodgers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제품들은 대부분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를 디지탈로 녹음ㆍ합성ㆍ저장한 칩을 사용하고 발달된 음향 증폭 장치를 통해 완벽한 소리를 낸다고들 자랑한다. 이런 전자오르간들도 파이프 오르간에 비해서는 값이 싸지만 웬만큼 좋은 악기들은 1억 원을 쉽게 넘는다.

오르간의 주요 부분 명칭은 다음과 같다.
  ▶오르간 연주대 (organ console) - 연주를 위한 콘솔
  ▶손건반 (manual) - 1건반 Great/Hauptwerkㆍ2건반 Swell/Schwellwerkㆍ기타 건반 Choir, Solo 등
  ▶발건반 (pedal) - 저음을 낸다.
  ▶스톱 (stop knob) - 음색 선택 장치 (16”, 8”, 4”, 2” 등은 파이프의 길이를 의미함)
  ▶연동장치 (coupler-tilt tablet) - 두 개 이상의 손건반을 연결하는 장치를 조절
  ▶스웰 페달 (swell pedals) - 음량 조절
  ▶크레센도 페달 (crescendo pedal) - 파이프들을 결합
  ▶발가락 피스톤 (toe piston) - 발로 파이프를 미리 준비함.

주요 오르간 연주자
  ▷헬무트 발햐 (Helmut Walcha, 1907~1991, 독일)
  ▷올리비에 메시앙 (Olivier Messiaen, 1908~1992, 프랑스) 
  ▷칼 리히터 (Karl Richter, 1926~1981, 독일)
  ▷마리-클레르 알랭 (Marie-Claire Alain, 1926~2013)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Gustav Leonhardt, 1928~2012, 네덜란드)
  ▷리오넬 로그 (Lionel Rogg, 1936~ , 스위스)
  ▷사이먼 프레스턴 (Simon Preston, 1938~ , 영국)
  ▷아르투로 사케티 (Arturo Sacchetti, 1941~ , 이태리)
  ▷질리언 위어 (Gillian Weir, 1941~ , 뉴질랜드)
  ▷토마스 머레이 (Thomas Murray, 1943~ . 미국)
  ▷톤 쿠프만 (Ton Koopman, 1944~ , 네덜란드)
  ▷봅 반 아스페렌 (Bob van Asperen, 1947~ , 네덜란드)
  ▷나지 하킴 (Naji Hakim, 1955~ , 레바논)

다음 주(聖週間)에는 <마태수난곡>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에 나서자.

필자소개

   
▲ 주대범 장로

1955년 서울에서 출생, 교육에 종사한다.

대학에서 문학을, 개인적으론 작곡을 공부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10년 한 후, 출판사를 운영 했었다.

교회합창곡도 작곡하고, 글도 쓰면서

누가 부탁하면 목수 일도 하고, 시각디자인도 한다.

중앙루터교회 성가대 생활을 40년째 하고 있다.

주대범 장로 (중앙루터교회 성가대 지휘자)  bawee1004@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4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