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택시강도 사건이 있었다. 인사발령 직후의 사건이라 모두 긴장한 채 사건을 접했다. 노상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단서가 될 만한 증거들이 속속 발견되었다. 강력팀 형사들의 예리한 눈과 밤낮을 가리지 않는 집념, 그리고 과학수사의 발달로 어떤 사건도 흔적을 지우기 힘든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프로파일러로서의 내 역할은 강력사건이 발생하여 조기에 범인이 검거되지 않으면 범죄를 재구성하여 사건을 분석하고 그를 바탕으로 범인상을 예측하고 용의자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번 사건과 같이 범인이 검거된 사건의 여러 가지 데이터를 축적하는 일이 선행되지 않으면 수행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따라서 범인이 검거된 사건의 경우에도 피의자를 만나 성장배경부터 지금의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과 심리상태 등을 분석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피의자가 범죄환경에 노출되기까지의 과정과 범행을 선택하게 될 당시의 심리상태를 접하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상황에서 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타고난 성품이나 성향에 따라 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선택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버리기도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사건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특히 이번 경우처럼 젊거나 어린 피의자의 경우에는 주어진 환경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30대 초반인 피의자는 키가 180이 넘고 외모도 준수한 청년이었다. 실제 수감생활 경험도 없으며 면담에도 순응적이었다. 얼핏 보면 멀쩡한 사람이 도대체 왜 이러한 사건과 관련되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고, 힘든 일이 하기 싫어 이러한 선택을 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쩌면 모두 맞는 판단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도 부유하고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모두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모두 정답은 아닌 것 같다.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고 싶은 소망을 피의자는 가족들이 지척에 살고 있는데도 맘 편히 집에 들어갈 수 없었고 힘들게 일해 번 돈을 관리하는 방법도,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도, 힘들 때 도움을 청하는 방법도 모르고 있었다. 같은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음을 생각할 줄도 몰랐다.
 
면담을 마칠 무렵 눈을 흘리며 자신이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이 두렵다며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은 없냐는 질문에 한참을 생각하다가 많이 원망했지만 단 한 번도 말할 기회는 없었다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의 의미는 잘 모르겠다. 참회의 눈물인지? 원망의 눈물인지? 두려움과 공포의 눈물인지? 그러나 심리적 지지가 부족할 때, 누구와도 의논할 수 없을 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때 사람들은 극단적 선택을 한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 많은 범죄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여유가 없고, 들여다 본다하더라도 제대로 탐색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런 방법을 알기만 해도 지금보다는 훨씬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데 현재의 시스템 상에서는 그러한 일을 수행하기 힘들다. 이들이 자신의 범죄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이러한 방법을 가르치는 일을 해 줄 수는 없는 걸까? 이 일이 재범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오늘도 스스로에게 자꾸 의문을 던진다.

이진숙(인천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프로파일러)  hmimo@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