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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지리산천일기도 구례기도회<전순란의 휴천재일기-2015.3.24>
전순란 | 승인 2015.03.30 11:50

2015년 3월 24일 화요일, 맑음

산동 산수유 노랑 꽃밭이 그렇게 온 동네를 태우고 있을 줄은 몰랐다. 세월호 그 노랑 여린 꽃송이들의 죽음이 우리의 무딘 가슴에 분노의 불을 이렇게 오래오래 불붙일 줄도 우리는 몰랐었다. 시간이 가면 산수유 노랑꽃은 흔적 없이 지고 지리산 저 발치마다 아무렇지도 않게 푸르름만 남을 줄 알았는데... 세월이 가도 세월호는 용암처럼 뜨겁게 우리 양심을 끓어오르게 하면서 산수유 붉은 열매로 가슴마다 알알이 씨앗으로 심겨지고 있었다.

   
 
   
 
   
 
가려진 진실이 환하게 드러나서 가신 이는 한을 풀고 편히 쉬어야 할 텐데...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비탄에 빠진 유가족들의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원상회복이 되어야 할 텐데 박근혜정권의 파렴치, 인간이기를 포기한 기득권세력의 행패 앞에 온 국민의 가슴앓이가 심해지기만 하고 있으니...

며칠간의 숨 가쁜 일정을 마치고 평상으로 돌아온 휴천재의 아침은 참 평화롭다. 밝은 햇살이 집안 깊숙이 찾아들어와 붉은색 꽃잎들을 더 달뜨게 만든다. 뜨거운 햇살로 물기가 마른 화분마다 물을 듬뿍듬뿍 주고 제라늄 떡잎들을 뜯어주었다. 모종으로 얻어다 심은 고추도 훌쩍 커서 꽃망울이 터질 기세다. 어제 전주 나무시장에서 사온 감나무 두 그루를 오전에 보스코가 텃밭 가장자리에 심었다. 늙고 커다란 감나무가 베어져 나간 빈자리에다 심었다.

2시에 구례산동에서 있을 지리산종교연대 행사에 참석하려면 1시에는 떠나야 한다. 점심에 뭘 먹을까 궁리하며 냉장고를 여니 엊그제 회의 차 휴천재를 다녀간 정한길 선생이 잘 띄운 청국장과 무말랭이와 깻잎을 가져다 놓았다. 청국장국을 바글바글 끓이고 깻잎과 무말랭이를 내놓으니 촌부의 밥상으로는 최상이 아닌가? 이틀간 길거리 밥만 먹은 보스코는 한 그릇 뚝딱 먹는 것으로 아내의 밥상에 감사를 표한다.

   
 
   
 
   
 
   
 
산동면을 ‘내비’에 표시하고 출발했는데 자꾸만 이상한 데로 데려간다. 그걸 무시하고 구례산동 면사무소에 도착했더니 산동면이 남원에도 있어서 그렇단다. 구례산동은 노란 산수유 꽃으로 온 천지가 노랗다. 면사무소 앞마당에 차를 세우고 노재화 목사님의 봉고차로 밤재까지 올라가 거기서부터 산허리를 돌고 돌아 ‘산수유 시목지(始木地)’까지 걸었다.

지리산에 내려와 살면서 여려 종교를 가진 성직자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종교가 민중을 구원으로 이끄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배우니 크나큰 은덕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아버지를 여읜 장 교무님이 어머니와 함께, 또 어머니 친구와 함께 걸어 더욱 의미 있는 산행이었다.

   
 
   
 
5시부터 성직자 중창단이 노래 연습을 하러 구례교당으로 먼저 가고 보스코와 나는 구만리 저수지를 찾아가 아름답게 꾸며진 호숫가를 거닐면서 한 시간 가량 산보를 하였다. 바람 끝이 아직 차지만 멀리 보이는 산수유 마을들과 푸른 물결이 지루함을 모르게 하였다. 오늘 행사는 약초교실 수업을 마치고 달려온 미루씨 부부도 국시모 윤주옥씨 부부도 만나는 자리였다.

   
 
   
 
저녁 7시에 지리산종교연대 천일기도회가 주관하고 구례지역 사회단체들이 참석한 세월호 추모 기도회는 원불교 교무님들이 원불교 교당에서 원불교식으로 주례하여 올렸고, 인사는 화엄사 총무 효광스님이 하고 박두규 시인이 "별 하나가 빛난다는 것은"이라는 제목의 시를 낭송하고, ‘세월호 그 다음’이라는 ‘편지’가 방영되었다. 죽은 딸처럼 욕조에라도 빠져 죽고 싶은 엄마, 노랑 리본을 엮어 목을 매고 싶은 아빠의 이야기를 그려 지금 유가족의 삶이 삶이 아니고 죽은 삶임을 보여주었다. 가수 김미린 님이 꽃의 노래를 슬프게 불러 장내를 숙연케 만들고 지리산종교연대 성직자중창단의 합창이 '세월호 공동기도문'  합송과 더불어 아름답고 장엄하게 기도회를 마무리하였다.

   
 
   
 
   
 
   
 
   
 
   
 
   
 
   
 
세월호 사건 일주년이 되는 4월 16일은 다가오는데 단 한 가지도 변한 게 없고 기득권자들의 온갖 은폐와 폭언과 비인간성만 발휘되는 이 시점에 해마다 피울음 울던 4.19보다 더 아픈 가슴을 안고 남원, 주천, 이백, 운봉을 돌며 밤길을 달려 휴천재로 돌아왔다. 파아란 초승달이 한 맺힌 비수처럼 지리산을 비추고 있다.

* 박두규 시인께 오늘 저녁 낭독하신 당신의 시를 보내주십사 부탁드렸더니 이메일로 보내주셔서 독자들과 시인의 마음을 나누고 싶어 여기 싣는다.

별 하나가 빛난다는 것은

                                                         박 두 규

 
저 하늘의 별이 아름답지 않느냐고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

별 하나가 빛난다는 것은

세상을 통째로 다 잃어야만 하는 일이고

누군가를 잃고 그 세월을 다 지워야만 하기 때문이다.

 

저 언덕 위의 꽃이 아름답게 피었다고

그리 쉽게 말하지 말라.

꽃 한 송이가 피어나는 것은

너와 나 모두의 꿈들이 하나 되는 일이고

세상의 모든 분노와 설움을

딛고 일어서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별 하나가 빛나고

꽃 한 송이가 피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가 변해야만 하는 일이다.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기 위해서라면

새가 되어야 하듯이

내가 원하는 세상을 살기 위해서라면

내가 먼저 그 원하는 세상이 되어야만 한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어야 하고

세상의 정의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정의로워야 한다.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 사는 세상을 원한다면

내가 먼저, 우리가 먼저 사랑으로 가득 차있어야만 한다.

   
 
   
 
   
 
   
 

   
 

 전순란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아내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http://donbosco.pe.kr/xe1/?mid=junprofiie

전순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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