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부터 성서나눔마당에서는 “구약성서의 여성들”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구약성서에 간헐적으로 나오는 여성들의 이야기들이 당시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어떻게 이용되었으며, 교회의 역사 속에서 그 이야기가 어떻게 해석되었는지를 살펴보고, 그 결과 오늘날 사회와 교회에서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성서의 여성 제대로 보려면 남성문화 먼지 제거부터

그런데 대부분의 여성들은 부정적으로 묘사되거나 남성들이 역사를 이끌어 가는데 희생하거나 순종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때로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거나 의도적으로 왜곡되어 여성의 역할이 평가절하 되기도 합니다. 물론 3-4천년의 시간과 공간의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역사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성서에서 숨겨진 여성들의 억울한 역사는 남성인 제가 보아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성서의 모든 문서는 예외 없이 남성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성서의 여성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또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그 당시 가부장적 사회의 남성중심적 가치관으로 덧칠되어 있습니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이야기의 참모습을 찾아내려면 먼저 이 남성문화의 두꺼운 먼지를 제거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이 본문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남성 신학자들이 쌓아 올린 그릇된 전통의 벽을 깨뜨려야만 합니다. 또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왜곡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 또한 벗겨내야 합니다.

따라서 성서 속에 있는 여성의 이야기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성서본문의 사건 자체와 전승과정, 각각의 역사적 상황에서 일어난 편집과정, 수천 년 동안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진행된 해석의 역사, 그리고 오늘날 성서 번역과 교회에서 외쳐지는 설교에 있어서의 의도적인 왜곡 등을 모두 밝혀야 하기 때문에 참으로 많은 수고를 해야 합니다. 이는 여성들이나 민중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길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성서마당을 준비하면서 제가 더 많이 배웠습니다. 여성의 시각에서 이야기들을 재구성해야 하는데, 여성의 경험이 없는 저로서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습니다. 또한 스스로 생각하기에 미숙했던 부분은 현실 적용에 있어서 완전한 감정이입이 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성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렴풋이 그 한계가 벗겨질 때도 있었습니다. 매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참여하신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 때로는 화가 나서 분노하기도 하고, 새로운 깨달음에 기쁨을 느끼기도 하고, 두터운 껍데기를 벗기느라 지루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16주 동안의 여정이 여러분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더 깊은 해방의 기쁨이 삶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다말의 아름다움이 성폭력의 원인(?)

오늘 본문은 성서나눔마당에서 나누었던 '다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38장에는 예수님의 족보에도 나오는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있는데, 본문의 압살롬의 누이 다말 이야기입니다.

다말과 관련한 성폭력 이야기는 주로 암논의 개인적인 욕망에 초점을 맞추어 그 본질이 희석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성폭력 문제를 개인의 인격이나 정신이상으로 욕망을 참지 못하거나 심지어 욕망을 참지 못하게 하고 여성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본문에서 다말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하는 것도 암논의 욕망을 부채질 하는 요인으로 여겨진다면 암논의 잘못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습니다. 암논은 다말을 사랑하였으나,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 알고, 병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암논의 병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사랑(’ehab)은 결혼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성을 성적 매력의 대상으로 사랑하거나, 단순한 성행위를 말할 때에 사용하는 말입니다(창 24:67; 호 3:1).

결국 다말은 위기를 면하기 위해서 애를 쓰지만, 암논은 아버지 다윗의 권위와 남성의 힘으로 다말을 욕보이고 맙니다. 욕보이는(’anah) 행위는 억압이나 착취에 의해 인간이 파멸되고 굴종될 때(출 1:11; 신 26:6) 사용된 것으로 보아 다말의 위기는 억압자의 의지가 강요된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의 욕망을 채운 암논은 다말을 잔인하게 내쫓습니다. 그 때에 “다말은 머리에 재를 끼얹고, 입고 있는 색동 소매 긴 옷도 찢고,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로, 목을 놓아 울면서 떠나갔다.”(19절) 라고 합니다. 재는 애곡(욥 2:8)과 회개(욥 9:3; 42:6)의 표시이고, 옷을 찢는 것은 슬픔을 나타내는 행동(수 7:6; 욥 1:20; 2:22)입니다. 고통과 비탄에 젖은 다말이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목을 놓아 우는 것뿐이었습니다.

억압받는 공동체를 향한 다말의 외침

우리가 오늘 함께 생각할 부분입니다. 목을 놓아 우는 것(ts’q), 울부짖음과 부르짖음은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의 강제노역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할 때 사용한 단어로, 부당한 고난을 겪는 자가 도움을 요청하는 법률상의 용어입니다(신 22:23-29).

울부짖음은 그가 속한 공동체에 법적 보호를 요구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합법적인 행위입니다. 목을 놓아 부르짖는 소리로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것은 힘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절규이며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그런데 다말의 부르짖음에 돌아온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은 다말에게 “아무 말도 입 밖에 내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말의 아버지인 다윗은 사건의 내막을 다 들은 후에 “몹시 분개하였다”고 합니다. 다말을 욕보인 암논은 그렇다 하더라도, 압살롬과 다윗의 반응은 ‘왜 그랬을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셋째 아들로서 장남인 암논과 왕권을 향한 경쟁관계에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이야기에서 그는 정치적 경쟁자인 암논을 살해하고(13:23-29), 다윗에게 반기를 들고 다윗의 후궁들과 동치하는 것을 통해 다윗의 후계자임을 선포하였으나, 끝내는 다윗의 반란 진압군에게 피살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볼 때에 압살롬이 다말에게 침묵하라고 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누이가 성폭행을 당한 일을 자기의 정치적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데에 적극적으로 이용합니다. 따라서 압살롬의 침묵 명령은 다말의 부르짖음에 대한 법적 보호자로서의 행동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 사건에 대하여 몹시 분개하지만, 다말을 위한 어떠한 배려나 법적 조치도 취하지 않습니다. 사실 다윗은 이 일에 끼어들 처지가 못 됩니다. 바로 앞에서(11장) 다윗은 자기 부하의 아내 밧세바가 아름다웠다는 이유로 그녀를 취하고, 그 부하 우리아도 죽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부전자전인가요? 또한 암논의 죽음과 자신을 반역했던 압살롬의 죽음에 통곡하는 다윗의 모습은 다말에게 아무런 대책도 마련해 주지 않는 행동과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암논의 공권력, 압살롬의 정치 - 약자 다말의 진실 덮진 못해

다말의 운명은 어떠했습니까? “다말은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의 집에서 처량하게 지냈다.” 라고 합니다. 왕이라는 권력과 남성의 힘 앞에서 다말은 숨죽이며 자기의 처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압살롬의 집에서 애처롭게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폭력 앞에서 비참하게 짓밟힌 다말이 야훼 하느님의 법에 의지해서 공동체에 호소하였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권력자의 무관심과 정치적 빌미로 이용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말의 아픔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말의 부르짖음은 허공을 맴돌다 그녀에게 돌아와서 그녀를 더 비참하고 처량하게 만들었습니다. 힘없는 사람의 부르짖음을 외면하고, 억울함과 아픔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무참히 짓밟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의 속성인가 봅니다. 야훼의 율법도 권력 앞에서는 무시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곳곳에서 부르짖는 소리에 정부와 정치인들이 귀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권력을 남용하여 불법적인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더 심한 폭력을 자행하면서 부르짖는 소리를 억압하고 있습니다.

암논처럼 공권력을 사용하여 불법적 행위를 하기도 하고, 압살롬처럼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자기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선거에 이용하기도 하고, 다윗처럼 권력남용을 선동하거나 묵인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킵니다.

그러나 아무리 다말을 침묵시켜 자기들의 악한 행위를 숨기려 한들 숨겨지지 않습니다. 힘으로 자기의 목적을 성취했다고 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다말의 “목을 놓아 부르짖는 소리”는 권력과 남성들의 철저한 외면 속에 먼지에 덮여 있다가 오늘 우리에게 들립니다. 자기 오라비의 집에서 처량하게 지내던 다말이 오늘 그 집을 뛰쳐나와 다시 우리에게 부르짖습니다.

다말의 외침은 권력을 배경으로 자행되는 인권 유린 현장에서,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현장에서, 일부 정치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희생당하는 국민들의 격렬한 외침 속에서 다시 들려옵니다. 다말의 부르짖음은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참다가 부르짖는 예수님의 외마디 비명이 되어 우리에게 들려옵니다.

오늘의 공동체, 오늘의 다말에 응답해야 

다말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특히 권력에 의해서 부당한 억압을 받아야 하고, 여론몰이의 사냥감이 되는 일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다말이 암논에게 합법적으로 절차를 밟아서 결혼할 것을 요구했으나 힘에 의하여 욕보임을 당한 것처럼, 평택의 미군기지 확장은 주민들이 합법적 절차를 요구했지만 정부와 공권력은 오히려 법을 무시하고 불법적 무력 행위로 농민들을 위협하고 행정집행을 감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법을 무시한 군사시설보호구역 설정으로 내 땅에서 농사 짖고 살겠다는 주민들을 고립시키고 쫓아내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부르짖음을 마음에 담고 몸을 움직여 반응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제 다말은 오라비의 집에서 처량하게 지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이웃의 아픔을 귀 기울여 듣고, 눈을 크게 뜨고 보고,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의 의식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르짖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그 소리를 듣고, 부르짖음의 원인으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킨 분입니다. 권력자들이 덮어씌운 죄의식에 사로잡혀 움츠리고 있는 사람들의 죄의식을, 전통이라는 틀에 얽매여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유도 억압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너무 오랜 세월 차별받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자포자기한 사람들의 공허함을 깨뜨리고 해방시킨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른 다고 하는 것은 생명과 평화를 향한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고 함께 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밖에서 들리는 부르짖는 소리뿐만 아니라 자기 내면의 부르짖음에도 귀 기울여야 합니다. 다말의 외침을 듣는 입장에 있는 사람도 있지만, 다말처럼 억울하고 분통해서 가슴이 답답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다말의 부르짖음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 사치일정도로 오늘 우리는 더 많은 한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의 아픔과 어려움은 다말처럼 공동체의 위로와 보호를 위해서 부르짖어야 합니다. 맺힌 한과 억울한 마음을, 그로 인한 고통과 아픔을 내어놓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공동체의 구성원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고, 예수님께 아픈 상처와 억울함을 내려놓고 해방을 간구해야 합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에서 들리는 부르짖음, 그 소리가 크든지 작든지 정당한 자리를 찾고 올바르게 해결되는 것은 하느님 나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도 함께 나누는 가운데 이뤄집니다.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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