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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그 거룩한 경청과 소통과 분별의 공간<이진권의 온전한 삶을 찾아 떠난 여행 : 펜들힐 이야기 5>
이진권 목사 | 승인 2015.04.02 12:26

합의(Consensus)에 의한 의사결정.

퀘이커들은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 진리를 말해주는 ‘내면의 그리스도’가 있다는 믿음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물론 이 ‘내면의 그리스도’의 음성을 바르게 듣기 위해서는 안팎의 여러 왜곡과 굴절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개인이 이러한 ‘내면의 그리스도’의 음성을 제대로 듣고, 따르기 위해서, 공동체의 지지와 지원의 과정이 필요한데, 이것이 명료화 모임(clearness committee)라는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면의 그리스도’가 말하는 진리에 입각한 삶을 따르려는 고민과 노력은 퀘이커 공동체의 의사결정방식에서도 드러납니다. 퀘이커 공동체의 의사결정은 민주주의의 일반원리라고 여겨지는 다수결의 원칙이 아닙니다. 완전 합의(Consensus)에 의한 결정입니다. 온전한 합의란 외적으로는 만장일치로 드러납니다. 아무리 작더라도 반대하는 소수가 존재한다면, 결정을 유보하게 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합의의 과정은 내면적인 과정입니다. 다수라는 힘의 논리에 의해 자신의 소신과 입장을 포기하게 만드는 무언의 압력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압력에 굴복하는 개인들이 생기지 않도록, 전체적인 분위기가 고요하고, 겸손한 입장을 견지합니다. 파커 파머가 이야기 하는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한 두 가지 요소 - 자신의 입장을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히 말하는 ‘뻔뻔스러움’과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겸손함’- 가 퀘이커의 의사결정과정에 동시에 존재하는 듯 합니다. 

   
▲ 1804년에 건립, 현재도 사용되고 있는 필라델피아의 퀘이커 예배와 회의 공간(Meeting House)

이런 합의에 기초한 의사결정은 다른 방식보다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비효율적이고 낭만적으로 보이는 이 방식이 제대로 작동된다면, 훨씬 더 선도적이며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그 한 역사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존 울만에 의해 제기된 퀘이커 공동체 내에서의 노예해방에 관한 합의과정은 무려 20년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공동체 내의 갈등과 분열의 조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의 시간들을 인내하며, 서로 다른 입장들을 끌어 앉고, 설득하고, 기다리는 과정을 통해서, 노예해방이라는 대의에 퀘이커 공동체 전체가 합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미국 정부에 의한 공식적인 노예해방 선언보다 80여년이나 앞선 선도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이런 합의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 궁금해서, 퀘이커들의 지방총회라 할 수 있는 모임에 참여해 보았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첫 번째로는 여러 안건들을 다루기 위한 모임이었지만, 모임의 첫 순서는 침묵으로 고요히 예배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퀘이커들은 예배를 meeting for worship(예배를 위한 모임)이라 부릅니다. 또한 공동체의 의사결정을 위한 모임을 meeting for business 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용어사용은 예배와 의사결정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의 의사결정 또한 공동체 가운데 활동하고 있는 ‘성령님, 내면의 그리스도의’의 음성을 제대로 잘 듣고, 이를 분별하며, 이에 책임감 있게 응답하는 과정이라는 판단이 들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회의 진행자의 태도와 진행방식이었습니다. 제가 참석한 회의는 상당히 뜨거운 쟁점들이 있었고, 이를 두고 참석자들이 할 이야기들이 많았던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회의를 진행하는 사회자(clerk 이라 부르는데요,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에 해당하는 분들이 이 역할을 맡습니다)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면, 잠시 눈을 감고, 1-2분 정도 침묵을 합니다. 그리고 이 논의를 정리할 지, 아니면 계속 논의를 계속해 나갈지를 판단하면서 회의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회의참석자들은 손을 들어 발언요청을 하게 되는데, 사회자의 지명이나 진행에 큰 소리로 이견을 제시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전체적인 회의 분위기는 상당히 뜨거웠는데, 그것을 진행하는 방식과 분위기는 호수처럼 고요하고 평안한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회의 분위기를 위해서 발언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침묵가운데서 회의의 결정이 진리에 따르는 결정이 될 수 있기를, 각 사람들이 내면의 교사의 소리를 경청하며 발언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회의에 참석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펜들힐에서 함께 생활했던 한 60대 할머니는 자신은 총회에서 거의 발언을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그 회의가 진리의 빛에 의거한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침묵으로 기도하며 그 회의에 참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서의 회의를 관상적(contemplative)으로 진행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들.

교회에서 회의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는 뜨거운 감자입니다. 회의를 통해서 공동체를 위한 하나님의 초대하심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깊이 있게 경청하고 분별하는 과정을 통해 소위 ‘은혜로운’ 결정과 합의에 도달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대립되는 의견들이 난무하고, 소위 전문가들이나 회의꾼들에 의해서 회의가 좌지우지되며, 침묵하는 선량한 다수의 의견은 사장되어 버리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요?

퀘이커의 전통은 이런 난제를 풀어가는 데 좋은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 같습니다. 일단 교회에서의 회의 또한 성삼위 하나님을 경배하며, 뜻을 구하는 예배행위만큼이나, 신앙공동체의 중심에 있는  하나님의 영, 예수님의 영, 성령님의 현존에 늘 깨어 있으면서, 세상의 지혜나 영민함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찾고 분별하는 과정임을 새롭게 각성해야할 것 같습니다. 

   
▲ 펜들힐의 예배 및 회의 공간 - 아침 침묵예배와 다양한 회의와 강연이 함께 열리는 곳

또한 영적 행위로서의 회의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회의에서 성령의 현존과 활동을 알아차리고, 경청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다음의 방법들을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사용해 보면, 회의 분위기가 조금은 영적이고, 성령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에 귀를 기울이는 ‘거룩한 경청’의 분위기로 서서히 변화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1) 안내에 따른 짧은 침묵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참석자들에게 더 큰 현존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과 우리를 갈라놓고 있을 수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이 회의에서 성령께서 그들의 갈망을 이용할 수 있도록 몇 분 동안 마음을 열어 놓도록 요구할 수 있다. 또는 그것을 말로 일러 줄 수 있다. 또한 이 회의에서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아젠다. 사랑의 아젠다를 경청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2) 참석자들이 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성령의 현존에 대한 개방성을 잃었다고 느낄 때, 또는 지금까지 나눈 내용들 중에서 성령이 말한 것을 가려내기 위해 침묵이 필요한 지점에 이르렀다고 느낄 때, 잠시 침묵을 위해 종을 울릴 수 있는 권한을 참석자 중에서 한 사람에게 줄 수 있다.

3) 회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이 정해진 시간(15분 혹은 20분) 간격에 맞추어 종을 울리고, 그 순간 모두 잠시 침묵하며 회의에 함께 계신 하나님의 현존을 의식하면서 회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현존 지킴이”(Presence keeper)를 둘 수 있다.

4) 참석자들은 성령의 임재를 상기시키는 한 방법으로, 돌이나 십자가 또는 다른 적당한 물건을 회의하는 동안 몇 분 동안 차례로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 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회의에 계속 참석할 수도 있고, 또는 그 물건을 갖고 있는 시간 동안 대화에서 빠지는 대신에 5분 발언을 하고 회의 동안 참석자를 위한 침묵의 중보자가 될 수 있다. 통제욕구가 강한 사람에게 대화에서 빠지는 체험은 놀라운 충격일 수 있다. 그 사람은 회의에 참석함에 더 수용적이고 신뢰하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다.

5) 회의 때 참석자들과 함께 하는 하나님/그리스도의 현존 표시로, 빈 의자나 책상을 마련하여 그 위에 예수 이콘이나 성경을 펼쳐 놓고 그 앞에 촛불을 켜 놓을 수 있다. 또는 참석자들이 앉아 있는 곳 뒤로 대표적인 성인과 성경 위인들의 이콘이나 그 분들의 이름이 놓인 빈 의자를 놓을 수 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참석자들은 그들이 성인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 분들의 현존 안에서 이 회의가 열리고 있다는 의식을 가질 수 있다.

6) 회의 때 회의장의 사방 구석에 4명의 중보자를 세우고, 이들이 회의 기간 내내 성령께서 회의의 진정한 주체가 될 수 있기를, 참여자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판단 너머의 성령의 음성을 인도하심을 잘 분별하여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하도록 한다. 이들의 존재와 모습을 통해서 참여자들은 성령의 현존과 보호하심가운데 회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식과 각성을 가질 수 있다.

7) 회의 참석자들이 그 회의가 그들의 영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발전되기를 원한다고 판단되면, 회의의 말미에 짧은 검토 시간을 갖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 회의를 하는 동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깊은 음성을 경청하고 있었음을 느꼈는가?
- 성령께서 전에 있던 곳 너머로 우리를 새롭게 이끄심을 느낀 특별한 시간이 있었는가?
-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지 못하고 자아의 두려움과 통제하고 깊은 욕망에 굴복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 때가 있었는가?
- 회의 말미에 이런 검토시간이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참석자들은 회의에 더 집중할 것이다. 이런 시간은 참석자들로 하여금 더 큰 관심을 갖고 다음 회의를 준비하게 할 것이다.  
( ‘성공회 교회위원회 교육자료’ 에서 인용 )

실제로 회의에서 종소리를 도입하고, 정해진 시간마다 침묵의 시간을 잠시 갖는 것으로도 회의 분위기가 새로워지고, 무언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전국에 있는 각 노회별로 노회가 열리는 ‘회의’가 난무하는 때입니다. 일상에서도 이런 저런 회의가 우리 삶에 이곳 저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회의 하나 하나가 ‘거룩한 경청과 소통의 공간’으로 이해될 때, 그래서 우리 안에 온전하게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합의가 점차적으로 이루어져 갈 때, 이러한 지난한 과정을 위해 소리 없이 기도하고, 인내하며 회의에 참여할 때, 우리의 삶이, 공동체가 한발짝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이진권 목사  ljkbara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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