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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을 공격하라<이적의 민통선 예수 16>
이적 목사 | 승인 2015.04.07 12:02

김포시 민통선안에서 민통선평화교회를 개척해 18년간 목회를 해온 이적 목사의 자전적 성격의 에세이 <민통선 예수>를 매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이적 시인 수기집 <삼청교육대 정화작전>
이 책은 나의 눈물과 한과 기도가 뒤범벅되어 만들어진 책 이름이었다.
강형철 형이 처음에 이 이름으로 책명을 정하자고 했을 때 나는 두말도 하지 않고 그 책명이 내 운명과 함께 할 이름이라는 것을 직감하며 단숨에 그러자고 말했다.
“삼청교육대 정화작전”
이 책은 출간이 된지 1주일이 지나자 언론에서부터 그 호기심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신문들은 일제히 내가 펴낸 <삼청교육대 정화작전>에 뉴스의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삼청교육대를 깡패 집단이라며 군사정권의 홍위병 노릇을 자처했던 대형 언론사들도 이제는 내 책을 앞에다 놓고 굵직 굵직한 제목들을 뽑기 시작했다. 그것은 세상이 뒤바뀌는 소리였다.
 
<가슴에 묻어둔 옥중수기 충격>-한국일보
<한국판 죽음의 강제수용소 삼청교육대>-부산일보
<생사 넘나든 140일 강제 노역>-한겨레
<삼청교육대 사망자 사인(死人) 의혹 많다>-조선일보
<이것은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자비한 폭력, 중노동, 의문의 사건들이 쌓여있는 삼청교육대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생체험의 수기다.>-중앙일보
<하늘도 막힌 바스티유의 땅> <초법적 분노와 절규를 고발>-일간스포츠
<추적 삼청교육대 -한국판 수용소군도의 인권유린과 그 참상>-동아일보

참으로 기괴할 노릇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상상치도 못할 언론의 관심이 삼청교육대 정화작전(이하 정화작전)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삼청교육대는 전두환, 노태우 쿠데타 세력들이 벌인 인권유린의 직접 당사자들 이었고 또 그들 정권이 지금도 벌겋게 눈을 뜬 채로 지속되고 있는데 겁도 없이 그들의 범죄가 담긴 책이 출간 되었다는 점, 또 88올림픽의 문턱에 서 있는 시점에 이 책이 나왔다는 점, 또 깡패집단이라고 소개되고 불량배들만 잡혀 간줄 알았는데 웬 시인이 직접 피해자라며 책을 출간 했다는 점, 이런 것이 호기심이 되어 언론은 제 정신이 아닐 정도로 연일 <톱기사>로 매일이다시피 삼청교육대 기사를 대형기사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어떤 신문이든 기사 안에는 <정화작전> 책 내용이 인용되지 않는 곳이 없었고 내 이름 두자가 빠지는 신문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자 자동으로 출판사와 나의 집 전화통에는 불이 났고 인터뷰 요청과 사진기자들의 촬영 요청이 사람을 못살게 굴 정도였다. 동아일보에서 임채청 기자(지금은 편집국장)라는 분은 나와의 인터뷰를 하기 위하여 부산까지 내려와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묵어가면서까지 기사를 따내려 애를 쓰기도 하였다.

방송사 중에서는 KBS와 MBC는 정권의 눈치만 보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눈치였고 KBS는 한 시간 동안 인터뷰 대담까지 했으나 외압으로 불방이 되었다. 그때 발 빠르게 CBS 중앙방송에서 생방송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기도 하였다. 나는 몰래 서울로 잠입했다. 그리고 낮방송에 출연하여 약 40여 분간을 삼청교육대의 충격을 주제로 적나라한 폭로를 했다. CBS의 낮방송을 들은 지인들이 집으로 부리나케 전화를 걸어와 사실이냐고 나를 다그치기도 했다.

전국의 신문 방송은 마치 나를 위해 존재 하는 것처럼 내게 카메라 앵글들을 맞추고 있었다. 마치 무슨 연예인이라도 된 듯이 나는 어느새 신문 방송의 단골 고객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강형철 주간에게 전화를 하여 이러다간 어디서 맞아죽을지 모르겠다는 초조감이 생긴다고 했더니 당분간 한적한 곳에 피하여 노출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나는 그길로 친구가 주지로 있는 창녕의 효자사라는 절로 몸을 피신시켰다. 그곳에서 출판사에 전화를 하여 동정을 살폈고 정세 돌아가는 것을 시시각각 점검을 하기도 하였다.

효자사에서 한 15일을 견디고 있을 무렵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 선생님, 내려오세요. 절에서 나오셔도 될 것 같아요”
나는 상대방 출판사 직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김 교수의 안부부터 물었다.
“김 교수님은요?” 나의 그 짧은 물음 속에는 김 교수님의 안전을 묻는 뜻만 포함되어 있었다.
“선생님, 김 교수님은 전혀 이상 없어요. 학교 출퇴근도 혼자 하세요.”
“그래도 될까요?”
나의 염려스런 질문에 출판사 직원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선생님 책이 줄을 이어 팔려 나가고 있어요, 대박이에요. 대박. 책이 이정도 나가면 정권에서 머리털 하나 손대지 못해요. 이젠 여론화가 너무 많이 진행되어서 정보기관 놈들이 함부로 못할 것이라는 것이 변호사님들의 조언이에요. 내려오세요. 그리고 내려오시면 곧장 서울로 와주셨으면 해요. 외국어대와 덕성여대에서 강연요청이 들어왔거든요.”

나는 그길로 효자사에서 내려와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로 올라가니 고속버스 터미널에는 내가 올라온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었는지 카메라 기자들과 사회부 기자들이 차머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차에서 하차하자마자 카메라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TV에서 보던 연예인이 나타났는가 하고 내 옆에서 얼굴들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카메라 조명을 받는 내가 모르는 얼굴이어서 궁금증이 이는 듯 나를 누구냐고 옆 사람에게 묻는 모습들도 보였다. 기자들의 질문 초점은 삼청교육대의 기획입안자가 누구겠냐고 묻는 질문이 단연 1위였다. 나는 대강 지피는 인물들을 열거했다.

나는 제일 먼저 3 허씨를 지명했다.
허삼수, 허문도 허화평이 관여됐을 것이고 김만기 사회정화위원장이 주도적으로 관여해 왔을 것 이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물론 전두환의 직접적 지시에 의하여 만들어졌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위치라는 말도 곁들여 주었다. 기자들은 내게 계속 따라오며 말을 붙여 왔으나 강연 일정이 빠듯해 충분한 답을 해주지 못한 채 터미널을 바쁘게 빠져 나왔다.

나는 빨리 덕성여대로 향해야 했다.
내가 덕성여대에 도착했을 때는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강당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어느새 강형철 형이 강연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형철 형은 <이형, 이거 보라구. 당신 말 들으러 대학생들이 꽉꽉 모여 들어, 전두환 쿠데타 세력들을 한방에 날려 버리라구!> 나도 강형의 격려에 고개를 끄떡였다. <좋습니다, 공격 해야죠> 나는 강형철 형의 의미 있는 충고를 들으며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목청을 낮추어 인사말을 했다.

<여러분 제가 삼청학살대를 다녀온 이적입니다>
내가 인사말로 여대생들을 처음 만났을 땐 여기저기서 호기심 있는 박수들이 터져 나왔다.
<여러분, 삼청교육대는 깡패들로 위장된 양민들의 억울한 한이 서린 곳임을 여러분께 고발합니다. 삼청교육대는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세력이 정통성 없는 정권의 인기를 만회하려고 만든 국가권력이 저지른 국가범죄임을 고발합니다. 삼청교육대는 겉모양으로는 몇 명의 깡패를, 그것도 피라미 깡패를 몇 명씩만 마을마다 붙잡아다 놓고 속 모양은 전부 양민들로 채워 넣은 가짜라는 사실을 여러분께 공개합니다. 여러분, 저는 전과도 없고 감옥을 가본적도 없습니다. 글을 쓰고 문학을 사랑하던 순수한 대학민국의 청년이었습니다. 이러한 내가 여러분 깡패입니까? 내가 만약 깡패라면 대한민국 남성들 100%가 깡패가 됩니다.>

강연이 무르익어 전두환 정권에 대한 막말이 터져 나오자 한쪽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오고 한쪽에서는 웃음보를 터뜨리고 강연장이 순간적으로 시끌벅적해졌다. 그때 누군가가 연단에 올라와 쪽지를 단상에 놓고 내려갔다. 아마도 학생회 간부인듯 싶었다. 쪽지에는 <선생님 A직원이 나와 있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A란 안기부직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말을 조심하라는 암시를 미리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쯤에서 강연을 멈추지 않았다.

<여러분, 양민을 깡패라 뒤집어 씌워 놓고 몽둥이로 패서 죽이고 총으로 쏴서 죽이는 정권이라면 이 나라에 백성노릇을 할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전두환 일파들은 민주화가 싫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우리나라 백성들이 원시인이나 미개국 나라의 백성이 되었으면 속이 시원할 인간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좀 더 자유롭게 독재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또 웃음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여러분, 나의 동료 임근실이라고 있었습니다. 그 양반은 군부대가 요구하는 군기를 지키지 않았다고 얼마나 구타를 당했던지 ‘전두환 물러나라, 교도소에서 10년을 살았지 여기에선 하루도 못살겠다.’고 항변하다 집단 군홧발에 짓밟혀서 죽은 사람입니다. 그가 죽을 때 내게 남긴 말, ‘이형, 나의 억울한 죽음을 사회에 나가거든 알려주시오. 전두환 정권의 학살극을 고발해 주시오.’라고 말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여러분, 임근실의 그 억울한 죽음을 여러분께 고발합니다.>

나는 임근실의 죽음을 드디어 공개된 장소에서 처음으로 고발했다. 그리고 임근실의 죽은 과정도 목이 터져라 설명했다. 나의 강연을 듣는 사람들은 쥐 죽은 듯 침묵했다.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침묵의 바다에 외쳤다.

<여러분, 이 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되려면 억울한 양민을 잡아다가 개 패듯이 패죽이고 총으로 쏴 죽이는 정권이 아니라 백성을 무서워하지 않고 권력욕에만 사로잡혀 있는 쿠데타 세력들을 이 땅에서 영원히 축출하는 일입니다.>

나는 또다시 그들에게 잡혀가는 일이 있더라도 이 땅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죄 없는 양민들을 총칼로 짓밟는 일이 없어야 하겠기에 이 강연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쿠데타세력에게 끝까지 저항할 것임을 마지막으로 약속드린다며 강연장을 빠져나왔다.

강연을 마쳤을 때는 여대생들이 뛰쳐나와 나의 손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써댔다. 내가 무슨 스타도 아니고 영화배우도 아닌데 사람들은 나의 인권 강연에 매우 감동들을 받아 그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날 이후 수많은 대학교에 강연 연사로 초청받기 시작했다. 부산의 동아대학교, 부자여자대학(현, 신라 대학교), 심지어는 내륙지방에 안동대학교, 안동보건전문대학교까지 초청강연을 받는 등 전국 대학교를 샅샅이 뒤지고 다닐 정도였다. 대구계명대학교에서는 개교기념일 강연에 초청받아 강연을 했는데 내 강연이 끝나자마자 학생회에서는 미리 준비를 했었든지 거리<가투>가 격렬하게 벌어졌다. 경찰은 그 정보를 미리 알았는지 교문 밖에는 내 강연 중에도 몇 개의 경찰 중대벽력이 진을 치고 있었다.

나는 강연 중에 전경대를 보고 외쳤다.
<여러분! 군사정권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군에 온 여러분을 잡아다가 자신들의 충견노릇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들의 범죄를 알고 여러분도 행동 하십시요!> 그날은 강연장이 교문 노천극장에서 행해졌으므로 스피커가 학교 바깥까지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강연 전에는 <삼청교육대정화작전>의 내용으로 만들어진 마당놀이가 펼쳐졌고 그곳에도 학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삼청인권학살극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폭발하고 있었다. 그날 내 강연이 얼마나 격렬했던지 학생 데모대가 배로 늘어났다며 학생회장이 내 귀에 귀띔을 해주었다. 나는 학생들의 호위를 받아 학교 뒷문을 통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학교를 빠져 나갔다. 나는 강연 기간 중에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군사정권이 나에게 어떤 위해를 가해 올지 모르기 때문에 내가 있는 소재를 최대한 숨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권력과의 저항, 나의 권력에 대한 도전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싫든 좋든 그것이 나의 길이었고 나의 운명이었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운명이었다. 그것은 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낡고 비뚤어진 가치관과의 전쟁인지도 몰랐다. 모든 것을 수직선상에 세워놓고 높고 낮음의 상하관계로 세상의 가치를 평가하려고 하는 한 이 땅의 민주주의와 사람에 대한 진정한 가치는 올바르게 정착되기 힘들 것이었다. 그렇게 가치기준을 두고 이 땅의 정서가 정착된다면 무엇이든 뒤집어서 판 갈이를 해버리는 폭력적 우월성과 일등주의 밖에 남는 게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그것들이 싫었다. 잘못은 잘못으로 굴복할 줄도 알고 수직선상의 계급주의가 아니라 수평선상의 인간주의가 사회에 만연 하는 그런 세상을 바라고 싶었다.

예수는 수직선상에서 인간관계를 상하로 규정짓는 계급주의와 권위주의와 율법주의로 점철된 로마법과 싸운 사람이었다. 그는 인간을 평등주의에 기준을 두었으며 가난하고 버려지고 소외된 약자들을 기준으로 세상 삶을 가르치려 들었다. 예수의 죄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를 처단한 당시의 기득권자들은 수직관계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수탈과 인권의 실종, 기득권 유지를 위한 율법주의의 권위를 지키고자 예수를 로마의 인간법으로 재단을 하여 죄인 중의 죄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진정한 삶의 가치 기준이 <진실 된 삶>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예수에게 뒤집어씌운 형식에 얽매인 율법주의와 같은 가치판단으로 죄를 뒤집어씌운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종교적인 순교가 아니겠는가.

나는 이 정권의 아킬레스건인 뇌관을 가지고 있다. 그 뇌관을 잡고 있는 나를 괴롭히는 또 하나의 이중적 탄압이 따른다면 나는 과감히 순교를 할 것이라는 각오를 했다. 가장 예수적으로 죽는 것이 권력가들에 의하여 죽는 길이라면 나도 가장 영광되고 거룩한 종교적 순교의 길을 택할 것이라는 각오였다.

나는 내가 펴낸 <삼청교육대정화작전>으로 인하여 사회가 좀 더 화들짝 놀라주기를 바랐다. <세상에 이런 일이… 우리 민족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강한 전류처럼 우리 백성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었다. 바스티유 감옥에서 일어난 유대민족의 상흔이 타국에서 일어난 타민족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도 그 같은 일이 있었음을 말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책으로 인하여 이 땅의 인권이 신장되는 복지 민주국가로 성장되길 강력히 기원하였다.

<필자 소개>

이적 목사 약력

-1957년생 경남 통영 출생.

-1986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기관지 민족문학에 <안개속으로><연작시 삼청교육대10> 등으로 신인추천.

- <80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3년 구금, 88년 <미주중앙일보> 정화작전 연재 91년 <대한매일 창사기념/ 장편소설 적도> 당선, 80년대 군사독재 저항문인 단체였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회원> <민예총 창립회원> 1987년 삼청교육대사건을 최초로 폭로한<삼청교육대정화작전/전예원 87>발간. 이후 <장편소설 북방산계곡의비밀/90광야> 장편실록 <청송감호소 죽음의 그림자> 정치평론<대통령의 늦바람/남풍89>등이 있으며 시집 으로 <바스티유의땅/한겨레 88><이별과절망의둔주곡/ 푸른숲91>< 바다가 된 그대에게/ 새암바다/2000>등 기타 <김대중 살리기 공저><분단과통일시 1,2집/공저><사람과문학/ 공저>등 20여권의 작품집이 있다 현재 저항문인 단체인 <분단과통일시 동인>, <우리시대의시인들 동인>으로 활동 하고 있으며 경기도 김포시 <민통선평화교회담임 목사>로 시무 하고 있음.

이적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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