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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진 약속<이적의 민통선 예수 17>
이적 목사 | 승인 2015.04.12 11:16

김포시 민통선안에서 민통선평화교회를 개척해 18년간 목회를 해온 이적 목사의 자전적 성격의 에세이 <민통선 예수>를 매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강형철 시인이 내게 말했다. <이형, 성공했소, 이쯤 되면 삼청교육대를 규명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거요, 신문마다 온통 당신 얘기뿐이야, 성공이야 대성공> 강형철 시인은 출판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자 편집주간으로서의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을 시큰둥하게 받아들였다.

“성공은, 아직은 성공했다고 말하긴 일러요, 정치권에서 진상규명 약속을 해줘야….”
“그렇지가 않아요. 이 책 판매 조짐이 장난이 아니요. 책의 판매 부수가 만권만 넘어서도 여론이 얼마나 크게 조성되는 줄 알아요? 벌써 이만여 권이 팔렸고 앞으로도 수 만권이 더 팔릴 거요. 두고 보시오. 절대 정치권에서 침묵만 하고 있지 못할 테니….”

나는 그렇게만 된다면 더 말할 소원이 있겠냐 싶었다. 나는 강형철의 표현대로 이 사건이 정치권에서 진상규명 조사가 들어가야 임근실과의 약속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임근실씨, 그렇게 될 거요. 꼭 그렇게 될 거요. 같이 기다려 봅시다.>

나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 줄을 모를 정도로 눈, 코 뜰 사이가 없이 바빠졌다. 대학초청 강연뿐만 아니라 전국대학교 학보와 언론사에서 밀려드는 원고청탁도 만만치가 않았으며 방송출연, 신문사 인터뷰, 이것들을 감당해내기에 정신이 없었다. 특히 여성지들에서도 인터뷰요청이 많이 들어왔는데 여성지와 인터뷰를 하면 하루 종일이 소요가 되었다. 페이지가 많은 만큼 그만큼 글 쓸거리도 많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주부생활에서는 전두환에게 수산시장을 뺏긴 모 재벌과 대담토론을 함께 벌이기도 했다. 원래 부천서 성고문사건의 주인공인 권인숙씨와 함께 셋이서 하기로 했는데 권양은 그 자리에 나오지를 않아 두 사람이 전두환 정권의 파렴치한 폭력을 고발하는 대담을 실었다. 그 외 우먼센스, 여성자신 등 이름을 다 외울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잡지들과 인터뷰를 했으니 내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이 비정상일 것 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휴식 차 부산 양정동 집에서 잠시 머물고 있었는데 여동생이 <오빠, 전화 왔어. 서울 전화야>하며 송수화기를 건네주었다. 나는 출판사에서 온 전화겠거니 했는데 상대에서는 뜻밖에도
“김대중 총재 비서실입니다.”
하고 정중하고도 공손한 목소리로 나를 확인했다.
“이적 선생님 맞으십니까?”
나는 뜻밖의 전화였지만 침착하게
“제가 본인입니다만.”
하고 내 신분을 밝혔다.
“아, 선생님 반갑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선생님을 총재님께서 찾으시는데, 시간이 나시겠습니까?”

나는 잠시 멍해졌다. 정치권에서 진상규명을 할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 믿었지만 이렇게 빨리 신호가 올 줄은 몰라 갑자기 가슴을 진정시킬수가 없었다. 그것도 야당 총재가 찾는다는데 잠시 정신이 멍해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곧 정신을 가다듬었다.

“네, 시간을 내겠습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시간과 장소를 가르쳐 주시면 그날 그 자리로 올라가겠습니다.”

상대방에서는 의외의 즉답을 얻어 기분이 좋다는 듯 아주 기분 좋게 장소와 시간을 일러 주었다.
“장소는 국회 평민당 총재실입니다. 오전 10시 까지는 와 주실 수 있을런지요?”
나는 그러마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이렇게 하여 평생 민주화투쟁으로 인생역정을 보내고 있는 야당총재를 만날 첫 기회를 만난 것 이었다. 그것은 내게는 엄청난 기쁨이었다. 정치인 같으면 공천 자리 하나 얻으려 그 만남이 기쁘겠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임근실과의 약속을 지키는 자리가 되고 6만 삼청피해자와 7천명의 사회보호법 부칙 피해자의 배후를 밝힐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데 그 기쁨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뒷날 무궁화열차로 서울로 올라갔다. 아침 10시까지 국회로 가야겠기에 미리 여의도에 가서 준비를 하고 있을 요량이었다. <중요한 만남이다. 이 기회를 떨구면 영원히 삼청은 파묻힌다.> 나는 김대중 총재와의 만남을 역사적인 만남의 자리라고 정의하고 싶었다. 정치인과 군사정권 피해자와의 만남, 그것도 미궁에 덮여 있는 이 정권의 뇌관을 가지고 만나는 자리, 어쩌면 엄청난 일이 이제 터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자리인 것이다. 아니? 어쩌면 엄청난 사건이 나의 펜을 통하여 이 세상에 이미 알려진 상태다. 거기다가 제1야당에서 이 사건을 정치 쟁점화까지 시킨다면 아, 이것은 이제 정권을 강타하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되어 일파만파로 퍼져 나갈 것이었다. 어쩌면 김대중 총재는 그 점을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산전수전 다 겪은 야당 정치수장이라면 그런 것쯤은 이미 읽고 있었을 테고 나의 한을 알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김대중 총재를 만난다는 것이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자리라 가슴 설렜지만 무엇보다도 임근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더 가슴이 설레였다.

국회의사당에 들어간 시간은 10시 30분 전, 나는 총재 비서실에 대기하였다. 그 시각에는 이미 TV로 낯익은 정치인들이 비서실로 들어와 총재면담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였고 자기네들끼리 뭐라고 얘기를 해놓곤 껄껄대고 웃고 있기도 했다. 그때 비서실 차장이 나를 보더니 <이 선생님 인사하시죠. 권노갑 의원님입니다.> 나는 이미 TV를 통하여 낯이 익은 권노갑씨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권노갑씨에게 비서실 차장이 내 소개를 시켰다. <의원님, 이번에 삼청교육대를 폭로한 이적 작가님입니다.>
 
권노갑씨는 그새 사람 좋은 얼굴로 <아이쿠 이거, 반갑습니다. 큰일 해냈습니다. 용기도 있으시고요.> 그는 사람 좋은 얼굴로 내 손을 마구 흔들었다. 그리고 <고생 많으셨네요. 나쁜 놈들, 어찌 시인, 작가까지 끌고 가는 만행을 저질러. 천벌을 받을 놈들이야. 이놈들이 자기 죽을 짓들을 너무 많이 저질렀어. 이번엔 용서 안 해.> 권노갑씨는 내가 폭로한 <삼청교육대>에 대하여 몹시 분노 하는 것 같았다. 이미 그도 광주항쟁 등의 사건으로 구속까지 당한 바 있는 백전노장이라 정권에 대한 욕을 겁 없이 늘어놓았다. 권노갑씨, 나는 그날 처음으로 권노갑씨를 만났으나 그 첫 만남으로 인하여 인연의 끈은 아주 길게 연결이 되기 시작했다.

권노갑 의원과 얘기를 주고받고 있을 즈음 비서실 차장이 <이 선생님, 들어가십시오.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는 총재를 선생님이라고 바꾸어 말했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드디어 만나는 것이다. 역사적인 만남, 그 만남으로 삼청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 오르리라. 나는 권 의원과 악수를 나누고 총재실로 들어갔다. 국회총재실은 생각보다 아주 넓었다.
그 크고 넓은 방 가운데에는 어느 낯익은 노신사 한분이 앉아 있었다.
멀리서 느끼기엔 표정 없는 모습이 시야로 느껴져 왔다.
나는 뚜벅뚜벅 걸어서 그가 앉아 있는 소파 옆에까지 갔을 때 그는 나를 힐끔 바라봤다. 차고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나는 조용히 허리를 굽혔다.
“선생님, 이적이라고 합니다.”
총재는 그때서야 얼굴에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오신다고 수고했습니다. 부산서 오셨죠”
그는 내게 깍듯한 경어를 쓰고 있었다. 그를 처음 본 순간 처세의 정치인이라기보다 난세의 무장이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느껴져 왔다.
“그렇습니다. 어제 밤에 열차로 올라왔습니다.”
나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용기 있는 작가 선생을 여기까지 오시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고생을 참, 많이 하셨더군요. 세상에 그런 미친 사람들이 어디 있어요. 멀쩡한 양민들을 끌어다가 깡패로 위장을 시키고….”
나는 순간 귀를 의식했다. <아니 벌써 그가 삼청교육대의 본질까지 다 알고 있단 말인가?> 순간 나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밀고 올라왔다.

나는 김대중 총재에게서 함부로 근접할 수없는 카리스마를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우리 광주는 비록 역사의 그늘 아래 묻혀 있지만 그 저항정신은 세계적으로 알려졌는데 여러분들이 고생한 삼청은 얼마나 억울합니까? 전두환 정권은 이 세상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자신의 백성들을 무참히 살육했어요. 그러고도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말하고 진실 어쩌구 하는 걸 보면 기가 차요. 이 작가님, 삼청교육대 파헤칩시다.”

나는 순간 눈을 감았다. 총재는 그런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손이라도 덥석 잡고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고 싶었다. 그는 쉬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달변이었다.
“이 사건은 그냥 넘길 수 없어요.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나라 지키라고 총을 줬더니 지키라는 나라는 안 지키고 도리어 거꾸로 자기 백성에게 총질이나 해대고 죄 없는 양민들 잡아다가 몽둥이질, 거기다가 강제노역이나 시키고 이 나라가 전부가 감옥이에요. 감옥. 담장만 없을 뿐이지 나라 전체가 감옥이 아닌 곳이 없어요. 이런 전대미문의 사건을 그냥 덮어두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특별위원회를 설치할 겁니다, 우리당 안에. 그리고 국회에서 따질 겁니다.”

나는 그때서야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제가 있던 부대에도 임근실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억울하게 군홧발에 짓밟혀 죽었습니다. 제게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려달라며 눈을 감았습니다. 오늘 총재님께 이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 마음의 빚이 조금 갚아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오면서 역시 살아나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습니다. 총재님 말씀대로 이 전대미문의 수수께끼 같은 학살 사건을 꼭 진상규명해 주십시오. 얼마나 많은 죽음의 수수께끼가 군부대 안에 널려 있는지 모릅니다. 수수께끼 죽음을 파헤치는 것은 광주항쟁이나 삼청사건이나 다 살아 있는 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나는 잠시 목이 울컥 메였다. 그러나 김대중 총재 앞에 한마디라도 더하기 위해서 침을 삼키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역사는 피를 먹고 발전한다지만, 수수께끼의 피는 숨겨져서는 안 됩니다. 다행히 저희들보다 총재님께서 우리 사건을 더 잘 알고 계시니 안심입니다만 총재님 진상규명, 확실한 진상규명을 부탁드립니다.”

그날 김 총재와 나는 약 한 시간여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수많은 역사적 실례를 들어가면서 오욕의 역사를 이야기해 주었다. 큰 식견이었다. 나 역시 이 땅의 역사를 말했다. 그리고 나는 글쟁이로서, 글로서 민족의 역사의식을 심어 나가는데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김대중 총재는 비서가 바쁜 일정을 말하여도 그 일정을 뒤로 미루어가며 내게 충분한 시간을 내어주었다.

김대중씨와의 첫 만남!
그것이 나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첫 인연이 되었다. 그리고 후로도 수많은 횟수의 만남이 이어졌고 후일 정치권으로 들어오라는 권유까지 받아 아내가 날 대신 해 국회의원에 출마까지 했을 정도로 그와의 만남은 특별한 관계로까지 발전되어져 갔었다. 김 총재는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나올 때가지 <걱정 말라. 삼청규명은 내가 꼭 해낸다.>는 약속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나는 드디어 나의 역사적 책무가 끝났다는 책임감에서 해방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글쟁이가 글로써 말했고 입으로까지 말했으니 이제 더 이상 무엇을 말 할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더 길고 긴 나의 여정이 펼쳐져 있음을 나는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시작이었다. 그 후 고난의 길로 가는 그 여정은 참으로 아픔의 큰 연속으로 내게 이어져왔다.

나는 김대중씨를 만나고 돌아온 날 북쪽 하늘을 향하여 말했다. <임근실씨, 두고 봅시다. 당신의 억울한 죽음을 지금 이 땅에 우리를 대변해 줄 유일한 정치집단의 수장에게 고했소. 이젠 당신의 죽음이 밝혀질 차례요. 내게 더 큰 용기와 희망을 주시오.>
그날 밤은 참으로 따뜻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필자 소개>

이적 목사 약력

-1957년생 경남 통영 출생.

-1986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기관지 민족문학에 <안개속으로><연작시 삼청교육대10> 등으로 신인추천.

- <80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3년 구금, 88년 <미주중앙일보> 정화작전 연재 91년 <대한매일 창사기념/ 장편소설 적도> 당선, 80년대 군사독재 저항문인 단체였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회원> <민예총 창립회원> 1987년 삼청교육대사건을 최초로 폭로한<삼청교육대정화작전/전예원 87>발간. 이후 <장편소설 북방산계곡의비밀/90광야> 장편실록 <청송감호소 죽음의 그림자> 정치평론<대통령의 늦바람/남풍89>등이 있으며 시집 으로 <바스티유의땅/한겨레 88><이별과절망의둔주곡/ 푸른숲91>< 바다가 된 그대에게/ 새암바다/2000>등 기타 <김대중 살리기 공저><분단과통일시 1,2집/공저><사람과문학/ 공저>등 20여권의 작품집이 있다 현재 저항문인 단체인 <분단과통일시 동인>, <우리시대의시인들 동인>으로 활동 하고 있으며 경기도 김포시 <민통선평화교회담임 목사>로 시무 하고 있음.

이적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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