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패척결을 다짐하는 결의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유행인 모양이다. 아울러 검찰의 조사대상이 된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도 많이 보도되고 있다. 어떤 영역에서든 지도층에 들게 된 사람들이 버릇처럼 하는 말이 “봉사하는 자세” 아니면 “섬기는 자세”로 일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검찰에 들락거리거나 이미 구치소나 교도소에 들어간 지도층에 들었던 사람들도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부정부패(不正腐敗)라는 말 그대로 부패는 예외 없이 그 동반자인 부정과 함께한다. 부정의 본질이 거짓이고, 그 결과가 부패로 나타날 것이니 부패한 지도급 인사들은 “위선자”이고 “거짓의 아비”들이면서도 “양의 탈”을 쓰고 지금까지 우리를 속여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거짓과 위선이란 무엇일까?

앙리 베르그송의 자리를 이어받은 라벨(L. Lavelle)은 "거짓“을 자신의 실재적 지향과 반대되는 말과 자세와 태도와 행동을 통틀어 말하는 것하고, "허위"는 진실에 위배되는 규정짓기 어려운 일정치 않은 형태로서 계속적인 외양의 날조를 통해 애매한 태도로 자신의 개별적인 뜻을 속일뿐 아니라, 자신을 위장하는 비진실성이라 진단했다. 이 두 가지 모습을 모두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부정과 부패에 깊이 연루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라벨의 말을 들어보자. 거짓은 배신이라는 특성을 띠고 있고, 우리는 배신당하기를 원치 않는다. 거짓은 의식적으로 갈라놓으려는 언행으로, 우리는 우리를 속이는 자가 거짓 언행으로써 자신만이 알고 우리에게 숨긴 목적을 위해 우리를 자기에게 봉사하게 하려는 그 지향을 혐오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부정부패의 반대말이 투명성(transparency)이고 자신의 행위를 떳떳하게 설명할 수 있는 책임성(accountability)임을 알 수 있다. 그 누구든 겉으로 보여준 애매모호한 언행과 둘러대던 말이 사실은 중립적인 입장을 나타낸 것이 아니었고, 투명성과 설명책임을 회피하면서 우리를 이용하려는 속임수였다는 것이 드러날 때 혐오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렇게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일수록 자신이야 말로 그가 속한 단체나 기관, 기업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는 사람인양 공공연히 행세하였을 것이니 그 사람의 동료나 부하, 상사들뿐 아니라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화를 내는 정도를 지나 구토증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람이 만든 모든 법은 깨어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 이런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법을 관장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 법을 위반한다면 우리 모두가 법에 대하여 불성실하게 되지 않겠는가? 범법행위를 한 모든 사람들이 법아래 평등의 원리를 내세워 벌칙의 적용을 거부하거나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은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더 많은 벌을 받게 된다 하시어(루가 12: 47 참조) 형벌에 있어 “비례의 원칙”이 올바른 것임을 확인해 주셨는데 우리는 그와는 정반대로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까지 만들어내었으니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부패와의 전쟁을 관전하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교회나 성당을 나가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보여주신 참된 지도자의 자세와 모습을 잘 알고 있으니, 부정부패로 잡혀가는 사람들 중에 “예수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주장한다면 비그리스도교인들이 화를 낼 것이고, 그들이 “거짓의 아비”들이라면 실제로 성당이나 교회나 사찰을 열심히 들락거리면서 일반 신도들 뿐 아니라 성직자와 수도자들 속였을 것이다.

우리 속담에 “사흘 굶고 남의 집 담장을 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은 중립적인 말이 있는데, 토마스 아퀴나스도 “극도의 궁핍 상태”에서는 남의 것을 조금 훔쳐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극도의 궁핍 상태”에 있지도, “사흘 굶은” 사람들도 아니니 우리는 이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

예수님은 돌을 빵으로 만들어 이즘 말로 하면 재벌 총수가 되라는 유혹, 권력을 쟁취하여 세상을 지배하는 왕이 되라는 유혹, 남의 눈에 띄는 큰일을 하여 명성을 얻으라는 유혹, 그 모두를 거부하신 후에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기 시작하셨다. 그런데 지금 문제가 되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면서 악마가 제안한 세 가지 모두를 수락한 사람들인 것 같다. 사회생활 당초부터 이 세 가지 유혹에 넘어갔는지 아니면 지도층에 들면서 넘어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지도자를 가진 것은 우리 모두의 불행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혹시라도 우리가 그들을 부추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티베리아 호수 건너편 산등성이에서 장정만 해도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신 다음 날, 사람들이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에” 다시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그분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요한 6:27. 공동번역)고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오해한 군중들은 이 글을 쓰는 사람과 같은 보통 사람들이라 열심히 땀 흘려 벌어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선생님, 그 빵을 항상 저희에게 주십시오.”(요한 6:34 공동번역)하였다.

미국 유니언신학대학 교수로 오랫동안 성서공동연구를 통해 에큐메니컬 운동에 기여한 브라운(Raymond E. Brown) 신부는 이 사건을 두고 40일간 단식 중에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악마의 유혹을 반영한 것이고, 또한 예루살렘에 올라가 기적을 행하라는 형제들의 권고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 한 것도 악마의 다른 2 가지 유혹과 다름이 없는 것으로 보았다.

사실 우리는 덕담 삼아 공직에 있는 사람에게 장관이나 장군이 될 사람이라,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겐 사장될 사람이라, 학계나 예체능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노벨상이니 금메달이니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유혹한 악마의 입에서 나온 말과 별반 차이가 없고, 예수님을 찾아서 왕이 되라, 빵을 달라 하던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올라가 명성을 얻어라 부추기던 고향 사람들의 말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게 된다. 이것은 부패한 지도자의 책임을 사회에 전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모습의 유혹에 넘어간 것은 이성적인 판단 능력이 있는 우리 각자의 책임이지만, 우리가 덕담을 할 때 정도가 지나쳐 혹시라도 상대를 유혹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재물과 권세와 명예에 대한 욕심은 내용과 모습은 서로 다르지만 같은 뿌리에서 돋아난 것이고 같은 열매를 맺는 아닌가? 이 모든 것은 그 악마가 예수님에게 차례로 제시한 것이다. 악마는 한 가지 유혹을 수락하면 결국에는 다른 두 가지도 수락하게 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서 대들었을 것이다. 이 셋을 다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세상이 모두 자기 것이란 과대망상증에 걸려 7년 동안 미쳐 지내다 세상은 통치하시는 분은 하느님뿐이라 사실을 알고서야 비로소 제 정신이 든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처럼 되는 것이 아닐까?

이런 말을 하는 중에 나 또한 “날마다 우리에 양식을 주십시오.”할 때 하느님께 오늘 하루를 잘 지낼 수 있는 지혜와 영감, 즉 성령의 은총을 구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찾아갔던 그 사람들과 다름없이 “그 빵을 항상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면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하늘에서 공짜로 떨러질 것을 아직도 고집스럽게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 반성하게 된다.

<필자 소개> 박상조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 공부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정책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  천주교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중앙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사)기업책임시민센터 이사장(2010-2014.3)을 역임하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이사로 있다. 저서로는 "인간중심발전론적 시각으로 본 대기업정책의 평가"(한국학술정보/2007), "기업의 사회적 책임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사람인가 돈인가" (이담북스/2011), "경제시평 -무너지는 바벨탑 수리하기"(이담북스, 2014)가 있다. 2011.11부터 내일신문 에 경제시평을 기고하고 있다.

박상조  pxzsimon@gmail.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