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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노이아<김명수 칼럼>
김명수(경성대명예교수,충주예함의집) | 승인 2015.04.23 13:27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15."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막1:14-15;새번역)

Now after John had been taken into custody, Jesus came into Galilee, preaching the gospel of God, 15.and saying, "The time is fulfilled, and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repent and believe in the gospel."(Mark1:14-15;NASB)

세례자 요한이 체포된 후, 예수께서 가버나움 저자거리에서 행하신 첫 설교가 무엇이었나요? “때가 찼고 하나님나라가 박두했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께서 3년에 걸친 공생애public life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공공성公共性의 하나님나라 복음(public Gospel of the Reign of God) 전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 설교말씀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때가 찼다는 것, 하나님나라가 박두했다는 것, 그러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때’ 번역된 그리스어 ‘카이로스(kairos)는 하루 스물 네 시간, 1년 열 두 달을 가리키는 연대기적인 시간이 아닙니다. 한 인간에게 있어서 삶의 운명이 뒤바뀌는 시간이나, 역사의 방향이 바뀌는 전환점을 가리켜 카이로스라고 합니다.

때를 가리키는 또 하나의 개념이 그리스어에 있는데요. 크로노스(kronos)입니다. 연대기적인 시간을 가리킵니다. 크로노스가 양적量的인 시간을 가리킨다면, 카이로스는 질적質的인 시간을 가리킵니다. 수평적 시간인 크로노스의 흐름을 단절시키고 들어오는 수직적인 시간이 카이로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역사에 개입하여 들어오시는 때를 가리켜 카이로스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때가 찼다는 말은 하나님의 통치 곧 하나님의 역사 개입 시간이 임박했다는 뜻이지요.

   
 
바울의 다마스쿠스 회심사건도 일종의 카이라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목에서 갑자기 강한 빛에 의해 눈이 멀게 되고 하늘 소리를 듣게 되지요. 천어天語를 듣고, 바울은 인생의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가 신봉했던 율법종교를 버리고 예수메시아 종교에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율법을 행함으로써가 아니라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삶에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을 바꾸었던 것입니다. 예수 박해자였던 바울이 이제 예수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자가 예수복음의 전도자로 바뀐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탄생 자체를 가리켜 카이로스라고 합니다. 로고스가 육肉이 된 사건,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화육(化肉; incarnation)사건으로 믿습니다. 예수의 탄생을 기점으로 인류역사는 기원 전前과 후後로 나뉘지요. 하나님께서 인류역사에 개입해 들어온 사건이라는 뜻에서죠.  

한국 근대휴머니즘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는 동학에서는 후천개벽사상을 말합니다. 후천개벽사상은 하늘의 운運이 다해 지금세상은 끝을 향하여 치닫고 있고, 새 세상인 용화세계가 동터오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후천개벽사상은 현실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구한말 조선민중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존재라는 수운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이나,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예수의 보편주의적인 휴머니즘, 그리고 모든 인간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한 존재(천상천하유아독존)라는 서가모니의 인간존재의 평등성에 대한 깨달음은 당대 사회의 중심부에서 배제된 변두리의 고통 받는 씨알민중에게는 희망의 복음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억압받는 씨알민중의 자기존재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각성은, 모든 개벽사상에서 나타난 카이로스 의식과 연계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때가 찼다’는 말에 이어 예수는 “하나님나라가 박두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어 바실레이아basileia는 장소적인 개념이라기보다 시간적인 개념에 가까운데요. 하나님통치sovereignty의 때가 임박했다는 선언이지요. 당시가 로마제국 통치 시대였음을 감안할 때, 하나님통치가 임박했다는 선언은 로마황제의 통치시대가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고, 놀라움과 산고産苦 가운데서 하나님 통치의 여명黎明이 동터오고 있다는 선언이지요. 불의와 폭력이 로마통치의 특성이라면, 하나님 통치의 특징은 정의와 사랑에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로마황제의 통치가 제국 구성원 1%에 해당하는 특권층을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 통치는 99% 피압박 식민지 씨알민중의 인권옹호를 위한 것이었지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는 것이 마지막 부분입니다. 개벽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메타노이아metanoia는 ‘한 생각 바꾸기’입니다. 기존 사회질서나 가치에 길들여지고 순치馴致된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에고ego 중심의 사고에서 참나Self 중심의 사고에로, 생각의 방향을 트는 것입니다. 자리(自利)에서 이타(利他)에로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paradigm change)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보고 듣는 대로 따라가거나 생각하기 쉽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다’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말하고 행동합니다. 보이고 들리는 대로 따라가고,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방에게 화내고 성낼 때는 언제인가요? 상대방이 내 말을 듣지 않을 때이지요. 화를 내는 이면에는, 내가 옳고 너는 틀렸다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닌데, 눈에 보이는 게 다라고 성급하게 결론짓고 행동할 때 오해가 생기지요. 온갖 문제가 발생하고요. 인간관계가 파괴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따라가 행동하기 전에 상대방이 왜 저런 행동하는 가를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저런 말을 하나? 왜 저런 행동을 하나? 물어서, 그 동기를 알아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대방이 어떠한 행동을 하든지, 그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면 화낼 일이 없습니다.

심리학에서 이런 개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해의 심리학’이 중요합니다. 누가 나에게 욕을 하면 화부터 내지 말고, 먼저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하지요. 상대방이 내게 욕을 하면, ‘저 사람이 내게 욕을 하고 있구나’를 알아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이와 같이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하면, 설령 그가 욕했다고 해서 나도 덩달아 욕하거나 맞받아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해는 다른 것이 아니지요. 나의 고착된 생각이나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것입니다. 에고를 내려놓고 사태를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생각하는 것이 ‘회개’로 번역된 메타노이아meta-noia의 본뜻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을 뜻인데요.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한 생각 바꾸는 깨달음의 삶이 회개입니다. 회개의 삶, 곧 깨달음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로잡혀있는 고정관념에서 해방돼야 합니다. 선입견preoccupation이나 편견prejudice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불교의 대승경전 반야심경에 ‘불구부정’(不垢不淨)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더럽고 깨끗하다는 것이 본래 없다는 뜻인데요. 원효는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크게 깨쳤다고 합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한 밤중에 동굴 속에서 손을 더듬어 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셨을 때 어떠했나요? 청량하고 시원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것은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구역질이 났습니다. 같은 바가지에 담긴 같은 물이 아니었나요? 헌데, 어젯밤에 마실 때는 그토록 청량했고요, 아침에 보니 구역질이 날 정도로 더러웠습니다. 청량하고 더러운 것은 바가지나 물에 있었던 것인가요? 아니지요. 단지 마음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 원효는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는 화엄경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사상을 체득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꽃이 피듯이 한 생각이 생기니 만물이 생기고, 꽃이 지듯이 한 생각이 사라지니 만물이 사라진다는 일심一心 사상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성스러움과 속된 것(聖俗), 옳고 그른 것(是非), 귀하고 천한 것(貴賤), 선하고 악한 것(善惡)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의 일체 관념들(도그마)도 마찬가지이지요. 본래 있던 실체實體들이 아니지요. 마음(관념)이 지어낸 허공에 핀 꽃들과 같은 것들일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세계의 이치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분법적 분별마음에 습관적으로 갇혀 지내고 있어요.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있는 그대로 여실如實하게 보질 못합니다. 양극단에 치우쳐 보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지요. 본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종의 습習이 지구역사에서 축적되어 본성(DNA)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습習이 변화 가능한 것이라면, 습習을 바꿈으로써 본성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습習이 축적되어 업業을 이루게 되고, 인간의 운명은 업業에 의해서 결정되지요.

   
 
회개(meta-noia)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습習을 바꿈으로써 인간의 운명을 바꾸는 것이며, 집단의 습習을 바꿈으로써 사회의 운명을 바꾸는 것이지요. 기존 사회의 운명을 바꾸는 것, 곧 개벽開闢을 예수는 하나님나라가 임박했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셨다(creatio ex nihilo)는 것이 성서의 기본가르침입니다. 보이는 세계(visible world)는 보이지 않는 세계(invisible world) 의해서 지탱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에 비해 일차적이지요. 정작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영의 세계, 바람,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를 불교에서는 공空이라 하고요. 도가에서는 무無라 합니다. 한국의 영성사상가 유영모는 ‘빈탕한데’라는 말로 쓰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없이 계신 분’으로 설명하고 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있게 하시는 분이라는 뜻에서입니다. 있음을 가능하게 하고, 있음의 바탕이 되는 세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없음의 세계이지요. 

예수시대에 사람들은 하나님나라를 눈에 보이는 것에서 찾아 헤맸습니다. 귀로 듣는 것에서 찾았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눅17:20-21)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면 후회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을 꿰뚫어보는 지혜를 터득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양극단에 치우치지 말고, 사물을 전체적인 시각에서 관계적으로 보는 안목을 길러야합니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하지요. 

4.16세월호 참사사건 1주년이 되었습니다. 그 날 오전에 진도 앞바다에서 304명의 목숨이 서서히 수장되어가는 모습을 온 국민은 손 놓고 바라보아야만 했습니다. 헌데, 아직 밝혀진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현 정부나 조중동, 제1tv 언론이 1년동안 보여준 행태는 무엇이었습니까? 진실과 정의를 은폐하려는 일뿐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보이고 들리는 것 너머에 있는 진실과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혜안과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여러분이 되길 빕니다.

김명수(경성대명예교수,충주예함의집)  kmsi@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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