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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또는 과월절(peschach = passover, 逾越節 = 過越節)<정현진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⑯-1> 출애굽기 12장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 승인 2015.05.06 12:24

이번 <정현진 목사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열여섯번째 순서는 분량상 두차례에 나눠서 싣습니다. - 편집부-

출 12:21-28에는 유월절 의식을 치르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의 내용은 모세가 유월절과 무교절에 관련하여 하나님으로 받은 말씀 (출 12:1-20)을 이스라엘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주시는 말씀은 늘 이스라엘 장로에게, 그리고 백성에게 차례로 전달되었다 (21절). 성경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따로 따로 떼어 설명하기도 하고, 같이 섞어서 언급하기도 한다. 별다른 설명없이 이 둘을 연결시켜 언급하기도 하였다. (출 13:8; 23:15; 34:18)

출 12:21-28의 내용은 출 12:1-20과 비교할 때, 특징이 두 가지 있다. i)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비해 그 길이가 놀라울 정도로 짧다는 점이다. ‘먹는다’는 말(아칼)이 출 12:1-20에는 13번 나오는데, 여기에는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 그는 유월절이나 무교절 그 자체보다는 어린 양의 피와 그 효능에 역점을 두고 말씀을 전달하였다. ii) 대대로 기념할 영원한 규례라는 말씀은 가나안에 정착한 세대에게 구체적으로 적용되었다. 이는 물음과 대답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26-27절).

출 12:3, 5에는 양(염)이란 말로 세가 쓰였는데, 여기서는 가축으로 바치는 희생제물을 그냥 페사흐 (빠스카)라고 하였다. 유월절이란 말은 아람에로 ‘파스카’ 그리스 말로는 ‘빠스카’이다. 이는 히브리어 ‘페사크’를 음역한 것이다. 그 동사 파사흐는 ‘(한 쪽 발로) 뛰다(뛰어넘다), 건너가다, 넘어가다, 지나다, 면해주다’ 란 뜻이다(출 12:13. 23. 27). 이는 이집트에 속한 사람과 동물의 맏이를 모두 치실(죽이실)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사는 집,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문상인방에 바른 집, 을 건너뛰신 것에 유래한다. 이로써 그들은 해를 당하지 않았으며, 마침내 종살이에서 해방되었던 것이다.

22절의 중심낱말은 우슬초와 양의 피다. 우슬초란 식물은 출 12:1-20에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레위기 14:4, 6, 49, 52; 민 19:6,18; 시 51:9 참조) 이를 본디 다른 식물인 히숍 (hissop) 이라 옮기는 것은 칠십인역의 영향이다. 이것에 희생제물(어린 양)의 피를 묻혀 문설주와 문 상인방에 바르면, 하나님의 표적을 시행하는 자가 들어오지 않으리라고 하나님이 일러주셨다. 성경에 12차례 나오는 이 식물은 요 19:29을 빼놓고는 모두 다 예배와 직간접으로 관계되어 있다.

여기서 하나님은 피는 그 집이 이스라엘 자손의 집임을 알려주는 도구이지, 그 자체에 어떤 주술적인 능력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셨다. 피가 표적의 도구로 사용된 이유는 피가 생명의 본체를 이루는 활력 또는 생명력으로 받아들여지는 까닭이다(창 9:4; 레 17:11, 14; 신 12:23; 시 72:14). 여기서 피를 바르는 행위로 인해 그 집에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사람이 살고 있는 신호가 된 동시에, 그로 말미암아 그 거주자의 생명이 보존되었다.

하나님께서 유월절 의식을 치르는 동안에 이스라엘 자손은 아무도 문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출 12:22) 이는 아마 이 일을 집행하라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에게 해코지를 당하지 않게 하려는 뜻으로 풀이되었다. 1차 세계대전 시기에 반전운동을 하였던 랍비 아론 사무엘 타메렛(Aaron Samuel Tameret of Mileitchitz)은 이 부분을 보복금지로 해석하였다. (성서와 함께, 어서 가거라 179쪽) 곧 이때야말로 히브리 노예들이 그동안 당한 설움을 풀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데 주먹을 쓰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먹을 쥐게 하기보다는 그런 때에도 주먹을 펴기(손을 들어, 손을 펴서)를 원하셨던 것이다.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너희가 이집트인에게 복수하기를 단념한다면, 복수의 재앙, 곧 멸하는 자의 손길이 너희에게 미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분명히 밝히신 것이다. 비록 조금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이것은 전혀 나쁘지 않은 풀이이다.

유월절과 관련하여 23절에는 (13, 27절 참조) 파사흐 (페사흐의 동사형)란 말이 쓰였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문자 그대로 옮기면, 넘어가다(pass over)이다. 또한 ‘(한 쪽 발로) 뛰다(뛰어넘다), 건너가다, 넘어가다, 지나다, 면해주다’ 란 뜻도 있다. (출 12:13. 23. 27) 이것은 이집트에 속한 사람과 동물의 맏이를 모두 치실(죽이실)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사는 집,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문상인방에 발라놓은 집을 건너뛰신 것에 유래한다. 이로써 그들은 해를 당하지 않았으며, 마침내 종살이에서 해방되었던 것이다. 출 12:23은 이 낱말의 의미를 밝혀준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아바르 rb[)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파사흐 xsp)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이 구절을 잘 살펴보면, 넘어가다는 말(파사흐)은 ‘건드리지(해치지) 않고 그냥 넘어가다, 보호하다 또는 지켜주다는 어감으로 다가온다(V. Hamilton, Handbook on the Pentateuch, 218-219쪽). 여호와는 이집트 전 지역의 맏이를 치는 사자를 보내셨다. 그런 분이 어린 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라져 있는 집에는 그 사자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몸소 지켜주신다(막아주신다)는 것이다.

14, 17절의 ‘영원한 규례’라는 말 대신에 24절에는 “... 너와 너의 아들들을 위한 규례로 영원까지” 라고 되어 있다. (출 12:14, 17; 28:43; 29:9; 30:21; 레 3:17; 16:29; 23:14, 21, 31, 41; 24:3, 9 등 참조) 형용사(수식어)였던 것이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로 쓰인 것일 뿐 그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자녀들이 물었다 (26절): “이 제사가 어르신들에게 무엇(무슨 뜻)입니까?”

27a은 이 물음에 대답하는 형식이다. (출 13:14-16; 신 6:20-25; 수 4:6-7, 21-22 참조) 우선 27절에는 ‘집’이란 말(빠이트)이 두 차례 나온다. 이것은 개개인의 집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성경에서는 가족과 가문 및 그에 딸린 사람과 소유물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집은 성전을, 다윗의 집은 다윗의 왕조를 뜻하는 등 매우 폭넓게 쓰였다. 여기서 빠이트는 이스라엘 자손의 공동체 또는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신 4:9b)

이는 하나님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자손 대대로 기념하여 가르치라고 말씀하신 것에 따른 것이다. 이는 메뚜기 표적에서 일부 소개된 것처럼(출 10:2), 대를 이어가는 신앙의 중요성을 반영하고 있다. 곧  유월절의 의미를 깨닫고 이를 창조적으로 되살려내 오늘과 내일의 교훈과 밑거름으로 삼으라는 뜻이다.

세데르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이 기간에 나누는 세데르 식사는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출애굽을 자신의 영적인 사건으로 되살리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때 가장은 흔히 흰색 예복(kittel)을 입고 포도주 잔을 놓고 축복하는 것(Qiddush)과 함께 그날을 축성함으로써 의식을 시작한다. 모두 합해서 4잔의 포도주(arba⁽ kosot)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마신다. 사람들이 손을 다 씻은 다음, 참석자들에게 식초나 소금물에 담근 셀러리, 익히지 않은 야채(karpas)를 나누어준다. 그다음 유월절 양을 상징하는 짐승의 정강이뼈와 완전히 익힌 달걀을 세데르 접시에서 옮기는데, 그동안 모두가 기도문을 암송한다. 2번째 포도주를 따른 뒤 그 자리에서 가장 나이 어린 아이가 이 의식에 관해 4가지 사항을 질문한다. i) "왜 오늘 밤은 다른 날 밤과 달라요? 다른 날 밤에는 누룩있는 빵을 먹든 누룩없는 빵을 먹든 상관없는데, 왜 오늘 밤에는 누룩없는 빵만 먹어야 해요? ii) 다른 날 밤에는 아무 나물이나 먹어도 되는데, 왜 오늘 밤에는 쓴 나물만 먹어요? iii) 다른 날 밤에는 나물을 한 번도 물에 담그지 않아도 되는데, 왜 오늘 밤에는 반드시 2번씩이나 담그어야 해요? iv) 다른 날 밤에는 앉아서 먹든 기대고 먹든 상관이 없는데, 왜 오늘 밤에는 기대고 먹어요?" 이 질문에 모든 사람이 한 목소리로 준비된 대답을 암송하는데, 그 내용은 세데르 축제를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참석자들은 다시 손을 씻고 누룩 없는 빵(matza)과 으깬 과일과 포도주를 섞은 액체에 담근 쓴 나물(maror)을 모두 먹는데, 이는 자유와 영적 진보가 고난과 희생에 대한 보상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서 실제로 식사를 한다. 모든 사람이 식사를 마치고 감사기도를 암송한 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3번째로 포도주를 붓는다. 의식이 끝나갈 무렵 참석자들은 한 목소리로 찬양의 시편(할렐, 전에는 일부분만 읽었음)을 암송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에 대해 경의를 표하기 위해 4번째로 포도주를 붓는다. 어떤 사람들은 미래의 세데르 때에 나타날 메시아의 전조가 될 엘리야를 기리는 의미로 5번째로 포도주를 붓는다(마시지는 않음). 식사가 끝나면 흔히 민요를 부른다.
(참조: http://en.wikipedia.org/wiki/Passover)

시대가 흐름에 따라 유대인은 희생제물을 송아지로 대체하였으며,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의식을 생략하였다. 그 대신 유월절과 무교절의 의미를 묻고 대답하는 의식(하가다)와 유월절 식사(세데르)가 점점 더 중요하게 되었다. 이 식사에는 새 가지 음식이 나온다: 어린양의 고기, 무교병(무교병 matzah, matzot), 쓴 나물.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을 먹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받는 과정에 고난이 있었음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후 1:7에서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고 말씀하였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벧전 4:12-14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권고하였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쓴 나물을 먹을 때처럼 인생의 고난을 당하도록 되어있다. 그 때 잘 참고 견뎌내야 할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를 기뻐하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 유월절 (사라예보하가다 1350)
오늘날 유월절의 의미가 무엇일까?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새로운 존재인 것을 감사하며, 성결한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을 기뻐하며 살아야 한다.

이 식사에는 기도와 전승의 내용을 암송하는 의식도 포함된다. 아슈케나지 회당에서는 안식일에 예배의 한 순서로 다섯 두루마리 (메길로트) 가운데 아가를 낭독하였다. 유월절은 유대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을 회상하며 큰 즐거움을 누리는 절기이지만, 엄격하게 식사법을 지켜야 하고, 절기의 시작과 끝에는 특별한 규정에 따라서 노동을 제한하였다.

유대교가 '하가다'라고 불리는 이 행사는 율법에 따라 결정된 예식 규범 및 결정에 따라 엄격히 시행되었다. 그에 따르면 니산월 10일부터 식사 때 먹을 어린양을 골라 '세데르'라 불리는 위에서 나타난 유월절 식사를 니산월 14일 밤마다 먹는다. 이 '세데르' 식사 자리에서 유대인 가정 아들 한 명이 지명을 받아 어른들로부터 '왜 오늘 밤은 다른 밤과 구별되는가'에 대해 질문을 받으며 이집트로부터 해방된 이야기와 로마 지배에서 해방되어야함을 기도형식으로 대답하며 식사를 끝낼 때, 모인 사람들은 '내년 예루살렘에서'라고 말한다. 이는 유월절이 이집트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과거를 기념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도래할 메시아를 향해 품은  희망이 실현되기를 기원이라는 뜻이다.

27a에 나오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왔다. 제사를 가리키는 말(제바흐)에는 도살이란 뜻이 들어 있다. 이는 피의 제사를 의미한다. 레위기 32장에 기록된 화목제에도 이 낱말이 쓰였다. 사실 유월절 제사는 화목제의 일종이었다. 이것은 제사와 공동식사가 함께 어우러진 것이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유월절은 모세나 아론의 착안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이 선물에 대한 반응이 출 12:27b-28에 소개되었다. 그 내용은 두 가지이다. i) 머리숙여 경배하였다. ii)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따랐다.

27b에 머리 숙이다 (공개, 표준: 엎드리다)는 말(카다드 ddq)에는 몸을 앞으로 굽히며 절한다는 뜻과 무릎을 꿇는다는 뜻 두 가지가 다 들어있다. 이 말은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기도응답을 받았을 때(창 24:2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모세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출 4:31), 사울 임금이 이미 죽은 선지자 사무엘의 영혼을 보았을 때(삼상 28:14) 등에서 보이는 반응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그에 이어지는 경배하다는 말(카와 hwx)에도 경배하며 찬양하다는 뜻과 허리를 완전히 굽히다 (온전히 복종하다)는 뜻 등 두 가지가 다 들어 있다.

28절에 ‘... 행하였다’는 표현이 두 차례 되풀이 나온다. 이는 주어진 말씀에 충실하게 따른 것을 강조하는 표현법이다. 이런 것은 ‘정확하게’라는 부사를 덧붙인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은 되돌아갔다. 그리고 정확하게 행하였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그대로.” 학자들은 이를 흔히 수행형식(execution formula) 라 불렀다. (Blenkinsopp 1976, 275-277; Hamilton, 190-191) 이 형식은 창세기-민수기에 여러 차례 나왔다. 그 형식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i) 모세 (또는 다른 이)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다. ii) 이스라엘 사람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다. iii) 이스라엘 사람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다.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선언(열한 번째 표적, 12:29-36).

여기서부터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다룬다. 이야기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출 12:28-29은 그 앞의 내용과 그 다음에 전개될 내용을 집약하여 기록하였다. 이곳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시려고 얼마나 세심하게, 철두철미하게 준비하시는 지를 실감하게 된다. 이 구원의 도구는 역시 피(희생양의 피)였다. 기념비적인 이 구원사건을 기억(기념)하는 수단은 어린 양의 피와 함께 성결한 생활이었다. 이 부분은 크게 i) 이집트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29-30절), ii) 이집트에서 탈출 (31-39절), 이 구원사건에 대한 역사기록의 요약 (40-42절) 등이다.

하나님은 드디어 열한 번째 표적을 시행하셨다. 그것도 모세 및 아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몸소. 여호와께서는 이집트의 맏이․맏배가 모두 죽임을 당해야 파라오의 굳어진 마음이 깨어질 것을 이미 예상(예고) 하셨다 (출 4:22-23; 11:4-6). 출 11;4에서 이미 예고하신 그대로 이다.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출 11:4).

井蛙疑海 夏蟲疑氷 (정와의해 하충의빙)

우물 안의 개구리는 바다를 의심하고 여름 벌레는 얼음을 의심하니, 이것은 보는 것이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군자라 일컬어지는 이들 역시 조금 이상하다 싶은 자연의 현상이나 변화에 대해서 듣기라도 하면, 문득 손을 내저으며 믿지 않고 말하기를 “세상에 ... 그럴 리가?”라고 한다.

井蛙疑海。夏蟲疑氷。所見之局也。然世之君子。每聞物理事變。稍涉異常者。輒斥之不信曰。世豈有此理。

이것은 그 안에 없는 것이 없는 천지의 위대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자기 소견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여, 그 일체를 황당무계한 것으로 여겨 무시한다면, 이 얼마나 옹졸한 것인가.

不知天地大矣。無物不有。今以己見所未達。而一切誣之爲無。何其陋也。

옛날 魏(위) 文帝 조비(曹丕)가 《전론(典論)》을 지을 때, 처음에는 화완포(火浣布 = 불에 타지 않는 직물이데 석면포 石綿布를 가리킨다)가 없다고 생각했다가, 나중에서야 그 잘못을 깨닫고 다시 고쳐 바로잡았다. 위 문제(魏 文帝)처럼 박학(博學)한 인물에게도 오히려 그런 실수가 있었는데, 하물며 후대의 사람들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昔魏文帝作典論。初謂無火浣布。後知其誤刊正之。以魏文之博學。猶有此誤。況後人乎。

성인께서 많이 들으려 하시며 [논어(論語 술이 述而 편: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행하는 짓을 나는 하지 않는다. 많이 듣고서 좋은 점을 가려 따르며, 많이 보고서 기억한다면, 원래 알던 사람 그 다음은 될 것이다. (蓋有不知而作之者 我無是也 多聞 擇其善者而從之 多見而識之 知之次也)”], 의심스러운 것을 그대로 놔 둔 채 전하기를 귀하게 여긴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공자가 춘추(春秋)를 지을 때, 진상이 확실하게 밝혀진 사건은 분명히 기록하고, 의심스럽거나 확인이 안 된 경우에는 의문사항으로 남겨둔 것 (春秋之義 信以傳信 疑以傳疑)을 가리킨다. [春秋穀梁傳 桓公 5年)]
聖人之欲多聞而貴傳疑。其以是夫。
      --- 장유, 계곡집(谿谷集) > 谿谷先生漫筆卷之二 > 漫筆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앞서 10가지 표적에도 그런 측면이 있었지만, 열한 번째 표적이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이었다. 그 밤에 이집트 전국에서 곡성이 터졌다.

출 11:5의 예고편에는 이집트 땅에서 처음 난 것 모두, 곧  파라오와 몸종과 짐승의 처음 난 것이 그 대상이었다. 여기에는 그 대상이 파라오와 갇힌 자와 가축의 처음 난 것으로 언급되었지만, 그 내용의 차이는 없다. 이 일은 부르짖음 (출 3:7, 9), 큰 부르짖음 (출 11:6; 12:30), 부르짖음 (출 22:22)을 유발하였는데, 히브리 낱말로는 체아카가 쓰였다. 출 12:30에서만 그리 크게 부르짖는 사람이 이집트인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생각할 맏이․맏배에 대한 존중은 동서고금에 널리 퍼져있는 풍습이다. 성경에서 보자면, 이 세상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맏이이다(출 4:22 ...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이런 뜻에서 하나님의 맏이를 괴롭히고 억압한 이집트인을 하나님은 그들 자신의 맏이를 처형하심으로 심판하셨다.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이니 그를 삼키는 자면 모두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2:3)

그 일은 한밤중에 일어났다. (29-31절에 세 번 나옴) 이것은 아침까지 기다릴 여유가 전혀  없을 정도로 긴급하였다는 뜻과 함께, 열 번째 표적인 ‘흑암’과 연결된다. 이집트는 곡성과 죽음이 자자한 곳으로 변하였다. 이는 수차례에 걸친 경고와 표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을 비인간화시키는 강제노동, 유아학살, 억압정책을 고집하는 파라오가 자초한 것이었다. 어느 한쪽이 평화공존을 거부하고 모든 것을 독차지하려고 상대방을 천대하고, 무시하며, 죽음을 몰아가는 정책이 결국 자신에게도 죽음 가져온 것이다.

이제 ‘다시 한 번 자신 앞에 나타나면 죽여버리겠다.’ 고 모세와 아론을 위협하던 (출 10:28) 그는 모세와 아론을 한밤중에 저 스스로 불러들였다. 31절은 '그리고 그가 모세와 아론을 밤에 불러들였다.' 라며 불러들인 주체가 파라오인 것을 꼬집어 말하지는 않았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여기서 말하는 '그'가 파라오인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말하였다:

31절: 일어나라 (), 나가라 (야차르), 가라 (할라크), 섬겨라 (아바르)
32절: (가축들을) 가져라 / 취하라(라카흐), 가라 (할라크), 축복하라 (바라크)

이렇게 명령형이 여섯 차례나 되풀이 나오는 것은 파라오가 그만큼 충격을 받았다는 뜻이리라. 그는 출 10:24에서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하였다. 그리고 여호와(모세)의 요구를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였다. (31절: 케답베르켐 = 너희가 말한 그대로; 32절: 카아쉐르 띱빠릇템 = 너희의 말 그대로), 그리고 자신을 위하여 복을 빌어달라 (출 12:32)고 통사정 하였다.

이집트인들도 이스라엘 자손이 더 이상 자기들 곁에 있다가는 또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두려워하였는지, 어서 떠나 달라고 재촉하며, 이스라엘 자손이 달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내어주었다(출 12:33, 36). 33절에는 강하다는 뜻을 지닌 말(µ¹zaq)이 여성형 단수로 나와 있다. (출 10:7 참조) 그 주어는 이집트(미츠라임 = 이집트인들)이다. 본디 파라의 마음이 완고해진 것에 쓰이던 이 말이 여기서는 재촉하다, 추진하다, 강요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삼하 24:4; 왕하 4:8)

이스라엘 자손은 모세가 일러준 대로 (출 11:2) 이집트인에게 금은붙이와 옷가지 등을 달라고 청구하였다. 이 행위가 이집트인을 일시적으로 속이려고 ‘빌려 달라’한 것일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므로 그냥 ‘달라’고 한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이집트인의 환심을 사게 하셔서 이집트인 스스로 내어주게 하신 것일까, 아니면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인의 것을 털은 (약탈한; 개역개정은 취하다로 옮김) 것일까? (출 11:3, 36) 어떤 이들은 이것을 이스라엘이 승리자의 모습으로 나가게 하시려는 하나님 계획으로 풀이하기도 하고, 최후의 복수라든가, 그동안 무보수 강제노동에 대한 대가(신 15:13-15 참조)라고 풀기도 한다.

후기 유대교 전승은 이것을 다른 각도에서 풀이한다. 곧 여기서 피엘형 나찰(lcn)은 매우 다양한 뜻을 지닌 말이다(다의어): 구출하다, 벗기다, 빼앗다 등. 유대인 랍비들은 이 낱말이 ‘...을 위험이나 곤고한 상황으로부터 끄집어내다, 구하다’는 뜻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에 주목하였다. (이를테면 겔 14: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곧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 자손은 이집트인들을 구해주었다는 것이다. 곧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과 헤어지는 마당에 자신들이 받아야 할 정당한 대가를 받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들 마음의 빚을 털어주었으며, 그들과 대등한 위치(자유인)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때 받은 금은붙이와 기타 물품은 나중에 성막을 세우는데 요긴하게 쓰임으로써, 결국 이집트인들도 여호와의 성막을 세우는 데 일조하였다는 것이다. 지혜서 18:2-3이다:

2 또 전에 학대를 받았으면서도 지금 자기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음을 고맙게 여기면서 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에 대하여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3 당신께서는 그들에게 암흑 대신에 타오르는 불기둥을 전혀 모르는 여행길의 인도자로, 영광스러운 이주 길의 해롭지 않은 태양으로 주셨습니다.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psalm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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