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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집언봉사執言奉辭 11>『논어10권』향당편
이은선(세종대교수) | 승인 2015.05.06 12:46

<명구> 
 향당篇 1 : 孔子於鄕黨 恂恂如也 似不能言者. 其在宗廟朝廷 便便言 喩謹爾.
(향당편 1  공자어향당 순순여야 사불능언자 기재종묘조정 변변언 유근이)

<해석>
공자께서 향당에 계실 때는 공손해서 말할 줄 모르는 사람같이 하셨고, 종묘와 조정에 계실 때에는 사리를 따져서 말씀하시되 다만 신중하셨다.

<성찰>
이 편의 이름이 연원된 ‘향당’이란 가족과 친척들이 사는 고향마을을 가리키는데, 이 편은 공자의 어록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향리에서 일상생활을 이끌어나가셨는지, 고향마을에서 윗사람과 아랫사람, 친척과 동료들, 어려운 이웃들과 지내시던 모습, 그리고 공적 인물로서 나라의 ‘권위’와 당시 위정자들과는 어떤 자세로 임하셨는지 등을 볼 수 있다. 그의 의식주 생활과 재산에 대한 의식 등도 나타난다.

일찍이 서구 중국학자 후레드릭 W. 모오트는 유교 종교성의 핵심은 오히려 지난 2천5백여 년의 시간 동안 공자를 신성화하려는 무수한 시도가 있었지만 그것을 모두 물리치고 그가 여전히 인간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에 있다고 했는데, 이 편에서 우리는 그의 섬세한 인간성과 그가 어떻게 하늘에 연원을 둔 것으로 강조한 ‘인간다움’(仁, 禮, 德)을 자신의 구체적 일상의 삶으로 체현하고 살았는가 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그의 개인적 인격 속에 깊이 내재화된 초월을 말하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성장해서 이름을 이룬 사람들에게 제일 어려운 곳이 어린 시절을 보낸 향리이다. 부모형제와 친척들이 살고, 미약했던 어린 시절을 아는 이들이 사는 곳에서는 아무리  현재 이룬 위치가 뛰어나다고 해도 함부로 할 수 없다. 그것이 인간다움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그 향리에서는 마치 말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절절매며 공손해 하셨다고 한다. 의례(儀禮)의 전문가로서, 조정의 일을 함께 논하는 사람으로서는 신중하게 사리를 분명하게 따져서 말씀하셨지만 향리에서는 그는 달랐다.

향리에서는 특히 ‘나이’(長幼有序)가 중시된다. 그는 마을 사람들과 술을 드실 적에는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나간 뒤에라야 나가셨다고 한다. 이 나이에 대한 존중이 후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유교문화권에서 많이 변질되고 타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심지어는 가까운 관계에서도 사람들과의 관계와 자리매김이 온통 후천적으로 이룬 업적과 능력 위주가 되다보니 이 보편적인 나이의 의미가 다시 다가온다. 그래서 맹자도 인간 삶의 義를 한 마디로 “경장”(警長)이라고 하면서 이 ‘오래된 것(나이)에 대한 존숭’이 깨어진 사회에서는 인간 삶의 정의가 바로 설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자신의 탄생과 성장을 있게 해준 ‘오래된 것’을 무시하는 사람이 현재의 존재들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리라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편에는 공자가 조정에서 공적 인간으로서 윗사람과 더불어 대화할 때와 자신과 동급의 사람, 그리고 특히 그가 어떻게 나라의 최고 권위(임금)와 더불어 관계하셨는가가 두루 그려져 있다. 윗사람과 더불어는 ‘정중하고 조리 있게’(誾誾如也), 동급의 장관들과는 ‘기탄없이 강직하고 화기애애하게’(侃侃如也), 그리고 당시 공동체 삶의 최고 구심점이었던 임금, 그의 ‘권위’에 대해서는 지극히 공경스럽고 삼가는 태도를 보이셨다고 누누이 이야기한다(蹴踖如也 與與如也). 예를 들어 임금이 부르셔서 손님을 대접할 때면 얼굴빛을 엄숙히 하고 발걸음을 빨리했고, 대궐문을 들어갈 때나 외교사절로 군주의 권위를 상징하는 규(圭, 임명장)를 잡고 있으면 몸을 굽혀 마치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이었고, 임금이 오라고 명하면 수레가 준비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떠나셨다고 한다.

이런 임금에 대한 극진한 섬김을 보고 당시 사람들조차 아첨이라고 오해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사실 공자가 공직에 있었을 당시 노나라 제후 정공(定公)은 정치 개혁에 대한 뜻만 있었지 실권은 없었다고 한다. 실제 권력자는 계씨(季氏)였는데, 공자는 이 권력자에게는 자주 비판을 가했지만, 나라가 인간다운 공동체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인간적인 뜻으로 섬기는 권위가 다시 굳건히 서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임금에게는 지극한 공경을 표한 것이다.

즉 그는 당시 몇몇 힘 있는 집안의 사적 욕망으로 무너져 내린 공적 영역과 권위를 다시  세우고자 했고, 그 바르게 세워진 공적 영역과 권위로써만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당시 임금의 권위는 오늘 민주사회에서의 법과 같다고 하겠는데, 그것이 힘 있는 권력자나 정당, 부자나 법을 다루는 사람들의 사적 욕망과 이익추구를 위해 유린될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 오늘 우리는 잘 경험하고 있다.

공자는 사적 영역에서는 편안하고 소탈한 사람이었고, 그러면서도 분명한 자신만의 취향과 규모를 드러냈다. 옷 색깔과 종류를 때에 따라 분명히 달리 했고, 조정에 나갈 때와 제의 때와는 다르게 평상시 옷은 반드시 잘라서 간편하게 했고, 특히 오른 쪽 소매는 짧게 잘랐다고 한다. 음식에 있어서도 분명한 취향을 드러내셨는데, 음식의 빛깔과 모양도 중요한 요소였고, 제철과일과 생강을 즐겨 드셨고, 먹는 고기 양이 주식 양보다 많지 않게 한 일, 술은 정도를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즐기신 일, 특히 육식을 할 때 조심하신 일 등을 전한다.

공자가 고향에서 나이를 돌아보지 않은 경우는 바로 상을 당한 사람을 만났을 때인데, 그는 상복을 입은 사람을 만나면 비록 친밀한 사이라도 반드시 안색을 바꾸고 상반신을 굽혔다고 한다. 또한 ‘면복을 입은 사람’(공직을 수행하는 사람)과 맹인을 만나면 자주 만나는 사이라도 꼭 예모를 갖추었으며,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에게 안부를 전할 때는 그 심부름하는 사람에게 두 번 절을 해서 보내셨다고 한다. 친구가 죽었는데 의지할 곳이 없으면 “내 집에 빈소를 차려야겠다”고 하셨고, 마구간에 불이 났을 때 돌아오셔서 묻기를,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느냐?” 하실 뿐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공자의 배려심과 인간 사랑의 마음은 섬세했다. 공적 영역에 대한 한없는 존중과 위엄, 강직한 책임감과 더불어 향리의 윗사람에 대한 따뜻한 공경심과 친밀감, 어려움을 당한 이웃과 친지들에 대한 연민과 생명존중의 마음으로 그는 높은 인격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인격성이 그의 깊은 신앙심과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상례나 제례를 참으로 중시했다. 제사에 쓰였던 음식은 특히 경건함으로 다루었고, 자연의 변화 속에서도 초월의 힘을 감지했다. 별안간 천둥이 치거나 바람이 세게 불면 반드시 안색이 변하셨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나례’(儺禮, 연말에 지내는 전염병을 몰아내고자 하는 공동체적 연극적 제의)를 지낼 때면 예복을 갖추고 함께 참여했고, ‘태묘’(太廟, 노나라 시조인 周公을 모신 사당으로서 가장 중요시됨)에서 제사를 지낼 때면 아무 것도 모르시는 듯이 매사를 물으며 전전긍긍하는 공경심으로 치루셨다고 한다.

이렇게 공자의 종교성은 일상 속에 체화되어 있다. 그에게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은 일관되게 인간성으로 관통되어 있다. 오늘 한국 기독교에 이러한 종교성과 영성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말로는, 겉으로는 종교가 엄청 번창해 있지만 실제 삶에서는 철저히 무신론자와 물질주의자가 되어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런 일상적 삶의 영성은 많은 가르침을 준다. 예전 유교 선비들의 권위는 결코 어떤 외적인 성직제도 등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인격적 권위였는데, 오늘 기독교회의 경직되었고 부패한 성직제도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현대 여성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한 공동체의 번성과 안녕을 위해서 ‘종교’, ‘전통’, ‘권위’의 삼중주가 살아있어야 한다고 했다. 종교가 살아있고, 전통을 통해서 전해져 온 것과 오래된 것이 존중받고, 그래서 누구나 함부로 할 수 없는 권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살 때 그 공동체는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 문화의 지속성을 위한 참다운 ‘보수’(conservatives)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인데, 문제는 이러한 참다운 보수, 사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진정한 보수를 우리가 어떻게 이루어내는가 하는 것이다. 정치와 종교는 둘이 아니고, 보수는 무조건 그른 것이 아님을 지적해 주는 지혜이다.(2015.5.5)
 

이은선(세종대교수)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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