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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약속의 땅’ 중경(重慶)을 향하여 5<문대골 칼럼>
문대골 목사 | 승인 2015.05.08 10:52

노하구 시내의 다섯 병원을 거치면서까지 장준하의 응급조치를 거부당한 김준엽은 여섯 번째 스웨덴 출신 선교사의 병원에서 정말 화급히 장준하의 신원을 인수, 긴급히 처방해 그 의식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 50여 명의 중경향단(重慶向團)의 전체 대원들은 물론 김준엽의 기쁨은 실로 말할 수 없었다.

장준하의 졸도가 가져온 두 가지 축복

   
▲ 김준엽(왼쪽)과 장준하
이 장준하의 졸도사건은 전체 단원들에게 나눠지는 두 가지 축복을 가져왔다.
첫째는 이 중경행도상의 장준하 일단의 중경행을 저지, 노하구에 주둔케 하여 자신들의 세력을 증강하려는 <광복군 제1지대 분견대>로 하여금 그 획책(劃策)을 완전히 폐기케 한 것이고, 둘째는 중국중앙군 제5전구 보급대로부터 장준하 일단의 중경행에 과분하리만큼의 보급품을 지급받게 된 것이다.

노하구의 한국광복군 분견대는 장준하 일단의 중경행을 단념하게 하기 위해 비열하기 짝이 없는 분열책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중국군부대와의 접촉과 협상에 주역을 담당해온 윤재현을 비롯 장준하, 김준엽 등 지휘선으로부터 단원들을 분열시키기 위해 갖가지 술수를 행하는가 하면 더러는 금품의 유혹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준하의 <광명의 길> 공연 끝에 의식불명으로 쓰러져 긴급처방을 받기위해 자정이 넘기까지 노하구 소재 온갖 병원을 다 찾아다녔으나 거부를 당했지만 천만다행으로 한 병원애서 그 신원을 받아줘 긴급처치가 가능했고 드디어 회복되었다는 이 소식이 50여 명의 대원들로 그 방해책동을 완전히 털어내고 중경에로의 결심들을 다시 새롭게 하게 한 것이다.

이종언 장군의 제5전구의 이 대원들에 대한 시각 역시 놀랄 정도로 선화(善化)되었다. <광명의 길>의 공연이 단순히 잘 다듬어진 연예만이 아닌 장준하가 연단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이후 전해진 한 연출자의 애국적 행동이 제5전구 지휘관들의 감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중경을 향하는 그 일단들의 요구를 가능한 한 들어주라.” 이종언 장군의 명령이 그랬지만 예하 실무자들의 관심은 지휘계층보다 더 했다.

윤재현과 김준엽이 중경행 소요의 보급품과 현금을 협상, 수령하기 위해 제5전구 사령부를 찾았을 때, 이들을 맞은 이가 제5전구의 보급부대장이었다. 그것은 실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여인들도 있고 어린 애들도 있지만 50명 전원을 중국군 준위로 인정(학병 탈출자 전원은 임천 한광반 수료 후 일괄 준위로 임관되었음-필자 주), 육로와 수로를 통해 중경까지의 소요 일수 23일에 일주일 분을 더하는 보급품과 비용을 수령, 25일 동안 희비 속에 머물렀던 그 땅 노하구를 떠나 험준하기 전설처럼 전해지는 파촉령을 향하게 되었다. 수령한 보급품 중엔 방한복, 방한화, 방한모 등 동복들이 넉넉했다. 모든 대원들에게 방한의 무장을 든든케 했다.

파촉령(巴蜀嶺)에의 도전

이제 노하구를 떠나간다. 그리고 파촉령을 넘을 것이다. 그 “제비도 넘지 못한다”는 파촉령(巴蜀嶺)을 말이다. 1945년 1월 9일이었다. 엿새 길을 더듬어 오르면 파촉령의 고원. 그 고원을 가로질러 3일 길을 더 나아가야 파촉령을 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4-5일 길을 더듬어 내려가야 그 소위 <중경6천리>라 일컬어져 오는 <한(恨)의 길>을 마감하게 된다. 노하구를 떠나 이제 육로가 끝나게 되는 파동(巴洞)까지의 길은 그야말로 하늘에 맡겨진 길이었다.

장준하는 그 파촉령 지형의 험준함이 어느 정도였나를 당시의 중일전략사(中日戰略史)를 들어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대부분의 오름길은 층암절벽이어서 때로는 계곡으로, 때로는 절벽으로 밧줄에 의지해야 한다. 다행히 준비해온 밧줄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제비도 날아서 넘어가지 못한다는, 말도 넘지 못하는 파촉령의 험로다. 국민정부가 중경으로 쫓겨 간 후 비로소 생긴 이 통로는 그 후 계속 전후방을 연결하는 유일한 전령로(傳令路)가 되어버린 것이다. 국민정부는 모든 장비와 병참지원 보급을 등짐으로 져서 이 파촉령을 넘어보내곤 했다. 그 대신 일본군의 기동대는 도저히 이 파촉령을 넘을 수가 없었다. 일본의 기동력은 말과 자동차였다. 포대에서 대포를 끄는 말과 보급지원과 수송을 담당하는 자동차가 주로 점(點)과 선(線)을 점령 확보하는 전략에 쓰였는데, 이 파촉령에서는 오히려 그 기동력이 무력한 것이 되고 만다.”

그랬다. 어쩌면 파촉령 또한 성지(聖地)였는지 모른다. 군마와 군용차, 철갑차들과 각종 대소포(大小砲)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 칼도, 창도, 활도 전혀 무용지물인 곳, 거기가 바로 성지 아니겠는가! 그러나 몸으로는 해낼 수 있다. 연약하기 그지없는 인체일망정 그 몸, 그 몸이 불가능이라 할 수밖에 없는 현상을 싸우며 새 역사를 열어간다. 그 몸이 엉켜있는 곳, 거기가 바로 성지 아니겠는가?

장준하와 그의 동료들을 믿고 견디게 하는 오직 하나, 기어이 우리의 나라, 우리 역사의 옷을 입은 우리의 정부, 우리는 거기 이르고야 말 것이라는 오직 한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 있었다. 쉰 생명이 하나로 엉킨 <몸뚱이>였다.
그 몸으로 칼바람을 이기고, 그 몸으로 설상(雪床·snowbed)에 눕는다. 폭설, 폭풍, 폭한이 온몸을 얼려온다. 그러나 신비하지 않은가? 현상에 학대받기를 계집종같이 하는 터에도 그 몸 아니고는 새 역사를 이룰 수 없다니 말이다.

노하구를 떠나 감히 파촉령을 발로 넘겠다며 파촉령의 동정을 시작한지 엿새, 드디어 일단은 그 꿈의 등정을 이루었는데, 그러나 그것은 등정(登頂)이 아니었다. 무한대의 설평선(雪平線)이 펼쳐져 있었다. 그 고원을 횡단해야 한다. 그 고원의 횡단이 사흘길이었다. 피할 곳, 쉴 곳이 전혀 없는, 그저 가고 또 가야하는, “거칠 것이 없다”는 말이 결코 좋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심각(深覺)케 하는 길이었다.

무릎까지 빠져드는 길, 차라리 파촉령을 오르는 그 길이 좋았다 해야 할 것이었다. 고원의 한밤을 지냈는데 둘째 날 태양이 떠오르면서, 그 아름다운 태양이 두려움을 가져다 안겼다! 두렵다! 더 못 걸어갈 것 같다. 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걷는 것인데 둘째 날 석양이 이를 때는 이미 대원들 간의 일체의 대화가 끊겨 버렸고 철석같은 두려움이 온 대원들을 지붕처럼 덮어왔다. 어둔 밤, 거기 그 눈 위에 모두가 주저앉아 버렸다. 어찌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온몸은 이미 얼어버렸고, 그런데도 그런 채로 잠들고 있었다.

   
 
“잠이 들면 죽는다. 잠이 들면 죽는다.” 실로 장준하는 독종이었다. 자신의 다리 살을 후벼 뜯으며 자신과 몸을 기댄 채 누워버린 김준엽을 흔들어 깨운다.
「“김동지.......” 나는 언뜻 무서워졌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김동지를 흔들어 깨웠다. “응? 으응!” 밤 두어점이나 되었을까? 내 몸의 3분의 2 이상이 이미 내 몸이 아닌 동태였다. 내 의식은 분명히 내 몸의 3분의 1 안에서만 작용하는 것 같았다. 피의 순환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기도 했고, 점점 느려지는 것 같기도 했다. ... 책상다리를 하고 주저 앉았던 구두발이 그대로 얼어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고원의 길 3일째의 아침, 장준하는 태연했다. 태연해야 했다. 그리고 의기 정연했다. 50명의 생사가 바로 자신에게 맡겨진 거 같았다. 착각이었을까?
“여러분, 주저 앉으면 죽습니다. 오늘 하루를 버티면 고원길이 끝납니다. 우리가 여기서 죽을 수는 없습니다.” 준하는 대원들의 행보를 격려하는 일에 진액을 쏟았다!

그에게는, 소명자(召命者)에게만 주는 ‘위로부터의 어떤 힘’이 일고 있었다. 죽지 않고 살아서 버틴 장준하의 일단이 드디어 고원의 설평선을 뚫고 이제는 파촉령의 내리막길에 들어선다! 거기 수 채의 민가들이 있었다.

아, 그 파촉령을 넘었다!

“이런 지대인데도 군데군데 주막이 있었다. 그것은 동화 속의 주막처럼 연기를 피어 올리고 있었고 우리는 그 주막들을 찾아 몸을 던졌다. ... 주막에서의 두부탕이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파촉령을 오르는 길은 엿새 길이었는데 파동까지의 내리막길은 닷새 길이었다. 나흘 길에 흥산(興山)이라는 농촌에 이르러 온 하루 깊은 휴식을 취했다. 흥산! 중경에 이르려면 중국 군용선을 타야하는 파동까지 하룻길을 더 나아가야 하지만 이 땅 흥산이 지난 해(1944년) 7월 7일 그 악명의 <스까다>를 떠난 이후 6개월 13일 간 계속 된 육로의 진군을 끝마치는 곳이다.

장준하로서는 감격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흥산의 이 밤이 지나면 내일은 그 파동을 향한다. 모처럼 하늘을 날 듯 한 자유의 시간을 가졌다. 수없이 넘어온 아, 그 죽음의 준령들...
“다시는 부끄러운 조상이 되지 않으리라...”

이튿날 이른 아침, 파동행 여객선에 그 몸을 실었다. 파동에 이른 것이 당일 자정 무렵 1월 20일! 이제야말로 중경 직행의 중국군 군용선을 탄다. 그래서 그의 꿈의 땅, 약속의 땅, 그 중경에 상륙케 되는 것이다.

<필자 소개>

   
 
문대골

* 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 상임고문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교회 원로목사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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