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8일 금요일 어버이날, 맑음
평소엔 아침 7시에 전화를 드리지만 첫새벽부터 노래를 부르면 엄마가 어리둥절하실까 봐 10시경에 전화를 드렸다. “나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엄마는 2절까지 노래를 듣고 나서 “싱거운 년!”하신다. 오늘은 순행이네가 엄마한테 와 있다. 엄마 방문은 다섯 형제가 번갈아가로 정해져 있다. 예컨대 이번 달에는 1일은 막내 호연이네, 5일은 호천네, 오늘 어버이날은 순행이네, 그리고 우리는 20일에 정해두었다.
요즈음 어르신들 사이에 도는 말 중에서 “애들 재롱으로 때우지 마라!” 아니면 “카네이션으로 때우지 마라!”는데 나는 카네이션도 손주들 재롱도 아닌 늙은 딸내미 전화 재롱으로 어버이날을 때웠으니 싱겁다는 말을 하실 만하다.
행여 돈을 드려도 만 원짜리로 드려야지 오만 원짜리는 오천 원 권과 혼동하여 엉뚱한 데서 그 돈을 받게 된다. “엄마, 이 돈 어디다 써요?”라고 물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교회!”다. 주일헌금도 내야하고, 월정헌금도 내야하고, 교회 늘이려고 땅 사는데, 교육관 개축하는데... 엄마는 목사님이 입력시키는 그 많은 헌금종목들을 잘도 외우고 계신다. 우리 부모님은 평생 교회를 네 개나 헌당하시고 그 일을 내내 자랑하실 만큼 교회에 많은 투자(?)를 하셨다. 단순한 ‘십일조’가 아니라 교장 월급 ‘삼일조’는 하셨을 게다. 집안 무사하고 자식들 다 잘되는 건 오로지 당신의 기도와 헌금이라는 굳은 신념이 엄마에게는 있다, 세상 어찌 돌아가는지는 도통 관심이 없으시고....
 |
||
손주들이 멀리 산다는 핑계로 인기를 얻고 할머니 품위를 유지할만한 기회가 통 없기도 하지만 심지어 손주들 생일마저 잊어먹고 지나가니 나는 두 아들들에게만 계모(繼母)가 아니라 두 손주에게도 계조모(繼祖母 이런 말이 있기는 하나?) 아닌지 모르겠다.
 |
||
 |
||
노모가 살아계시는 친구들을 늘 부러워하는 보스코(그는 중딩 1 때에 혼자서 어머니의 임종을 지켰다)는 내가 오늘처럼 엄마에게 전화로 재롱을 부리는 모습이 부러운 시선이다. 놀랍게도 방상복 신부님, 최종수 신부님, 김종봉 신부님, 최원오 박사가 전화로, 이메일로 그에게 축하를 해주었다.
저녁은 빵기가 냈다. 아빠가 좋아하는 함흥냉면을 샀다. 보스코의 첫마디가 “빵기가 사면 만두도 먹어야겠다.” 평소에 그는 함흥회냉면, 나는 물냉면을 먹고 그 걸로도 배가 부르는데 왜 만두냐니까 빵기에게는 얻어먹어야 한단다. 그는 만두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 이북 사람인 나(아버지는 평강, 어머니는 해주)는 만두를 좋아하는 걸 알고 나 먹으라고 챙기는 편이다.
우리 어렸을 적에 만두를 하면 한꺼번에 250개씩 빚었고 오라비들은 3, 40개씩을 먹어댔다. 둥글 반상에 둘러앉아 아버지가 잡아오신 꿩을 뼈 채 두드려넣고 김치를 다져서 비지랑 꼭 짠 속을 넣어 온 식구들이 만두를 빚었다. 아귀처럼 먹어대던 다섯 자식을 지켜보며 흐뭇해하시던 아버지의 얼굴, 가신지 벌써 30년이 되어 내 눈에도 가물거리기만 하다. 만두, 동치미국물에 말아놓는 국수, 김치국말이 국수 등은 언제나 아버지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
||
이해인 수녀
엄마를 부르는 동안은
나이든 어른도
모두 어린이가 됩니다...
세상에 엄마가 있는 이도
엄마가 없는 이도
엄마를 부르면서
마음이 착하고 맑아지는 행복
어린이가 되는 행복
▲ 보스코가 어제는 죽은 감나무를 베어내고 오늘은 단풍나무 가지치기를 하였다
|
전순란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아내이다. |
||||||
전순란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칼 라너와 니시다 기타로, 두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