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2일 화요일, 흐림

“따르릉~~~” “여보세요?”
“아침 이른 시간에 미안해요. 빵기네 북나무가 쓰러져 담에 걸쳐 있고 길을 막아 차가 통행을 못해요. 아셔요?”
간밤에 태풍을 겸한 호우가 왔는데 그 동안 비스듬히 누워 몸통과 가지의 엄청난 무게와 한없이 감고 오르는 능소화의 무게를 감당 못하여 부러진 것일까?

▲ 집앞을 가려주던 저 큰 북나무가 쓰러졌다

지나가는 사람이나 우리 담 밑에 주차한 차량이 다치지 않았을까? 나무는 밑둥에서 그대로 잘라져 담 안에다 아랫도리를 걸친 채 한길에는 몸통과 가지를 눕히고 쓰러져 있었다! 119를 호출하여 상황을 설명했더니만 세 명의 소방대원들이 손도끼와 전기톱을 들고 등장한다. 10분도 안 되어! 방금 어디서 불을 끄고 오는 길이란다. 일행은 연장으로 순식간에 가지를 자르고 몸통을 조각내어 차량이 통행하게 해 주고 또 순식간에 사라졌다. 역시 “119 아저씨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뢰받고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공무원임을 실감하는 아침이었다.

9시가 넘어 구청 녹지과에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했더니 반시간쯤 지나 늙수구레한 남자들이 트럭을 몰고 와서 잘라낸 나무를 다시 적당한 크기로 토막내 싣고, 우리 마당으로 내려앉은 커다란 밑둥 두 조각도 다시 토막 내 트럭에 실었다. 우리 집 골목이지만 작은 트럭도 들어올 넓이여서 아저씨들이 일하기 수월하였다.

우리가 이 집에 처음 이사 왔을 적에도 손가락만한 나무가 마당에 저절로 자라 오르고 있었으니 오늘 이별한 북나무는 40여년을 우리와 함께 살아왔다. 몇 번이나 심한 가지치기에도 밑둥이 다 썩고, 한 뼘 폭의 좁다란 껍질로 물을 올리며 여태까지 목숨을 부지했음이 한 눈에 보인다. “공터에서 우리 집을 가려주고 초여름이면 능소화로 동네를 환하게 밝게 해주던 나무야, 참 고맙다!”

“사람도, 나무도 늙으면 죽어야 해요. 저 북나무를 손수 베어냈다면 얼마나 힘이 들었겠으며 또 어디다 실어 날랐겠소? 간밤 태풍에 쓰러졌으니 우리 119가 베어 치우고 구청에서 실어 날을 테니 그것도 아주머니 복이오.” 가는 길도 깔끔하게 떠나준 북나무와 이렇게 작별했다.

사흘 들이로 우리는 정든 나무 두 그루와 영이별을 한 셈이다. 1986년에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니 우리가 마당에 심었던 모과나무들은 간데없고 단감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이듬해부터 단감이 열리기 시작하여 해마다 2000여개의 단감이 열려 친정식구들과 온 동네가 잔치를 벌여왔다(서울 지역에서는 감나무가 잘 안 자란다.)

▲ 30년 넘게 해마다 수백, 수천 개 단감을 맺어주던 단감나무

그러다 2012년 혹독한 겨울을 난 뒤 잎을 떨구기 시작해서 싸매주기도 하고 약을 주기도 했지만 결국 말라죽었다. 엊그제 보스코가 전기톱으로 자르고 토막 내고 잔가지까지 분질러 지금은 부대에 담겨 우리 자동차 트렁크에 실려 있다. “30년간 단감을 실컷 먹게 해 주고 나무까지 휴천재 땔감과 불쏘시개로 남겨준 감나무야, 참 고맙다!” 밑둥에서 올라온 가지 셋을 보살피는 중인데 단감인지 본래의 돌감인지는 지켜봐야 한다.

▲ 2013년부터 잎을 피우지 못하더니...

오후에는 동대문 시장에 들러 빵고가 로마에서 입을 간이한복을 사고 기독교 회관으로 향하는데 미루씨가 카톡을 날렸다. “네팔에 7.6도 강진 발생! 시우 아빠는요?” 긴급구호를 지휘하러 어제 네팔에 도착한 빵기가 집더미 흙더미 속에 묻혀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일순간 내 몸의 피가 빠져나간 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신이 나 보스코에게 굿네이버스에 알아보라고 부탁하고 국제협력부에서 일행이 무사하다는 전화를 받고서야 정신이 돌아와 몸을 겨우 추슬렀다. 세월호 엄마들이 일 년 내내 당해온 맘고생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조금 뒤 빵기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 제 걱정은 마시고 날마다 이런 위험 속에서 살아가는 네팔인들을 위해서 기도나 해주세요.” 아직도 “금요일에는 돌아오렴!”하며 잠 못 이루는 엄마들을 헤아리면서 3주후에는 무사히 돌아올 아들을 기다리는 내 맘이 되레 죄스럽다.

6시 30분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문동환 박사님의 「예수냐 바울이냐?」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95세 나이에 책을 쓰시다니! (내가 설령 저 나이에 살아있더라도 이런 책을 읽을 수나 있을까?) 더구나 정정하고 열정적인 음성으로 책 이야기를 펼치시는 강연이라니! 알츠하이머가 심한 부인 문혜린 여사를 모시고 나와서 옆에 앉히셨고, 당신 나이 42세였을 적에 25세 처녀로 시집와서 아직까지 함께하는 아내에게 책을 바치신다는 말씀도 하셨다.

오랜만에 한신동문과 선후배들을 만나고 한신에서 가르치던 선배 교수님들을 만나 한신의 추억을 새롭게 하는 자리였다. 유원규 목사님더러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니까 “얘 보는 재미로 살지.”란다. 손주를 가리켜 “애 보는 재미”를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곁에 앉은 아내 한선희를 가리키는 “얘 보는 재미”였다!

전순란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아내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http://donbosco.pe.kr/xe1/?mid=junprofiie

전순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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