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이웃종교 칼럼 고정칼럼
출애굽과 유월절 1<정현진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⑰-1> 출애굽기 12장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 승인 2015.05.20 10:38

이번 <정현진 목사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열일곱번째 순서는 분량상 두차례에 나눠서 싣습니다. - 편집부-

출애굽 (출 12:37-42)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11번째 표적이 시행된 후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들은 라암셋을 떠나 숙곳으로 향하였다. 이것이 광야여정의 첫발을 내딛은 사건이었다. 출 12:40-42가 이 단락의 배경이다.

숙곳의 뿌리가 되는 말(사카크)은 덮다는 뜻이다. 숙곳은 천막이란 말(수카)의 복수형이다. 구약성경에서 이 말은 여기처럼 지명이거나 또는 초막절이란 절기를 나타내기도 한다. (레 23:42-43; 신 16:13-17 등) 떠나다는 말(나사ㅇ)은 당겨서 뽑다, 천막을 거둔다는 뜻이다. (민 10:2) 이는 이동을 위해 천막의 말뚝을 뽑아내는 동작을 연상시킨다. (삿 16:3) 이것은 길을 떠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었다. 이에 그 뜻이 ‘여행하다, 길을 떠나다’로 확장되었다. (신 1:7; 2:24) 이 말은 목적지를 정해 두고 지금의 거주지를 떠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창 25:16; 46:1)  이제 이스라엘 민족은 숙곳으로 향하여 길을 떠났는데, 그곳은 마지막 목적지인 가나안을 향한 여정에서 첫 번째로 거쳐 가야 할 목적지이다.

출애굽기의 표적이야기는 성경의 다른 곳에 다음과 같이 비슷한 내용으로 나온다. (S. Trevisanato. 김회권 옮김, 이집트 10가지 재앙의 비밀, 새물결플러스. 2005. 143쪽)

   
 
이렇게 430년 만에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해 출발한 이스라엘 자손의 숫자가 엄청났다. 장정이 육십만이나 되었다. (민 11:21 참조) 가히 파라오가 두려워할 숫자가 아닌가! (출 1:10) 여기서 1000에 해당되는 엘레프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성경에서 이 말은 i) 숫자 1000 (출 18:21; 민 10:36; 31:4, 5; 수 7:3; 삼상 23:23), ii) 가축의 떼, 무리(cattle, herd 신 7:13; 28:4, 18, 51), iii) 지파, 씨족(clans 수 22:14; 삿 6:15; 삼상 10:19; 사 60:22; 미 5:2), iv) 분파(divisions 민 1:16), v) 가족, 가문(수 22:21, 30), vi) 황소 (oxen 사 30:24; 시 8:7), vii) 부족(tribes 민 10:4), viii) 부대의 단위 (삿 18:11, 16, 17; 삼상 13:15; 14:2; 27:2; 30:9; 삼하 15:18) 등 다양한 의미로 쓰였다. (D. Stuart, Exodus. 316-317쪽; V. Hamilton, Exodus. 194쪽 참조).

   
▲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을 홍해바다로 인도하였다 (1180년경 Hortus Deliciarum der Herrad von Landsberg)
장정들이란 말(께바림)은 강하다, 이기다는 뜻을 지닌 동사 (까바르)에서 나왔다. 이 말은 아담, 에노쉬처럼 사람을 가리킬 때 흔히 쓰이는 용어가 아니다. 이것은 혈기왕성한 남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런 사실을 잘 표현하느라 본문에는 ‘걷는 걸음’이란 말(라글리 = 보병?)이 특별히 덧붙여졌다. 38절의 첫 부분에는 ‘그리고 또한 수많은 잡족과...’에서 ‘에레브 라브’라는 말을 느 13:3에서는 ‘섞인 무리’라고 옮겼다. 렘 50:37에는 바빌론 포로로 혼합된 종족을 가리키고, 렘 25:20과 겔 30:5에는 이방인 출신 용병을 의미하였다. 레 24:10-16에 이스라엘 자손의 여성과 이집트 남성이 결혼하여 낳은 어떤 사람이 나온다. 출 3:22(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과 이에 착안하여 어떤 학자는 그들이 이스라엘인과 이집트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두 개의 이 낱말은 자음 r-b, b-r로 되어 있다. 그래서 쉬테른베르크(Sternberg)는 서로 비슷한 문자 ±¢reb-rab 두 개가 모인 것이라고 보았다: eber 또는 ibri. 그를 이를 문자놀음(word play)으로 보았다. 이에 해당되는 것을 민수기는 아샆수프 (°¦saps¥p)로 썼다. 이는 모으다(모이다), 수집하다, 제거하다 등의 뜻으로 고대 근동에서 널리 쓰이던 말이다. 이것은 모으다, 제거하다는 뜻을 지닌 아사프 (°āsaph) 의 명사형이다. 민수기는 이것을 이스라엘 주변에서 그 안으로 들어 온 사람들을 나타내는 말로 썼던 것이다. 아마도 사라의 몸종이던 하갈은 이런 부류의 사람으로 성경에 나오는 첫 인물일 것이다. (V. Hamilton 195) 룻 또한 그런 사람이다.

개역개정이 그들을 외국인 또는 이국인이라 하지 않고 ‘잡족’이란 말로 옮긴 것이 조금 맘에 걸린다. 이 말의 핵심은 출애굽 공동체가 단순히 이스라엘 자손만으로 구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창 12:3에서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은 혈연공동체라기보다는 언약(신앙)의 공동체라고 볼 만한 단서가 된다. 룻의 고백이 이런 신앙공동체의 모범답안이 될 수 있으리라. (룻 1:16-17)

 16 ...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

이스라엘 자손은 쫓겨나듯이 서둘러 이집트에서 나왔다. (39절, 출 6:1; 11:1 참조) “그리고 그들은 반죽을 구웠다. 이는 이집트에서부터 가지고 나온 무교병, 곧 발효되지 못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집트로부터 쫓겨났기 때문이다. 누룩은 랍비문서나 신약성경이 누룩에 대해 부패라는 신학적 의미를 부여했던 것과 사뭇 다른 의미이다. (김이곤, 출애굽기의 신학. 132쪽) 출애굽 할 때 그들은 시간을 지체하며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아무런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다.” 충분히 발효시킬 경황이 없이 가지고 나온 이 무교병을 가리켜 성경은 고난의 떡이라고도 부른다. (신 16:3)

40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 머문 기간을 430이라고 하였다. (창 15:16 참조). “그리고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거주함이다. 곧 그들은 이집트에 430년 동안 살았다.” 430년의 범위나 의미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이 의견을 내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각각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였다. 그 중 어느 것도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설득력은 없었다.

41절은 출 12:17과 조화를 이룬다. 다만 거기서 ‘군대’ (체바오트)라고 하였던 것이 여기서는 ‘야ㅎ웨의 모든 군대’ 라고 한 것만 다를 뿐이다. (군대라는 용어는 여기 말고도 출 6:26; 7:4; 12:17, 50에 나온다) 그들을 이렇게 부른 것은 아마 광야에서 각 지파대로 마치 군대의 진영을 편성하듯이 하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민 1:52 참조) 만일 이들을 ‘군대’라고 부른다면, 그 지휘관(사령관)은 누구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사령관은 야ㅎ웨 하나님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군대가 사령관의 지휘에 따르듯이, 야ㅎ웨의 말씀에 따라 움직이는 백성이 된 것이다. 41b의 ‘봐예히 뻬에쳄 핫요옴 핫제’에서 에쳄은 뼈, 핵심 등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리고 바로 그 날(낮)이 되었다’ 라고 옮겨야 할 것이다. (창 7:3; 24:10 참조) 출애굽기는 출애굽 한 날짜를 야곱(이스라엘)이 이집트로 온 바로 그 날이라는 점을 이런 식으로 강조하였다.

42b는 앞선 ‘봐예히 뻬에쳄 핫요옴 핫제’에 대칭되는 표현으로 후 하라일라 핫제 라야ㅎ웨 (= 이는 야ㅎ웨를 위한 바로 그 밤이었다)란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로써 낮도 밤도 다 야ㅎ웨께 속한 것임을 나타낸 것이다. 이 야ㅎ웨를 위한 낮 또는 밤은 후대에 가서 ‘야ㅎ웨의 날’로 언급되었다. (욜 1:11; 습 1:14-17; 슥 1:12-14 등) 그 날 야ㅎ웨에게 속한 의인에게는 완전한 구원(해방)이, 야ㅎ웨의 뜻을 저버리고 거역하는 자들에겐 완벽한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야ㅎ웨의 날(야ㅎ웨의 낮, 야ㅎ웨의 밤)을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맞이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psalmen@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