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파독 광부였던 최정규 선생님의 노동자의 삶과 교회, 신앙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편집부-

1974년 5월 9일 난 파독광부로 독일에 도착했습니다.
독일중부지역인 루르지역 함보른시에 있는 schacht 2/5 광산이었습니다. 한국에는 박정희 대통령 부부가 다녀간 곳으로 유명합니다.
광산기숙사는 현대식 아파트처럼 지어져 놀랐습니다. 한방에 2명 내지 3명이 지내게 되어있는데 놀랍게도 세면장과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식사는 기숙사식당에서 제공해서 편했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가자고 해서 따라가려는데 함께 온 형들이 난리들인 것입니다.
“야! 너 소문 몰라? 그 교회목사가 빨갱이래, 그 교회 다니면 귀국하면 남산(중앙정보부)행이란다.”

지금 생각하니 그 빨갱이 목사들이 얼마나 좋은 분들이었는지 모릅니다. 그 이야기를 쓰기위해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1974년 파독광부로 독일에 가서 내가 만나, 많은걸 배우고 삶의 진로도 생각하게 했던 목사님들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장성환, 이영빈, 이화선, 손규태, 이해동, 권호성, 박명철, 정하은, 신흥섭, 채수일 등과 이 목사님들의 인연으로 만나게 된 김재준, 안병무, 문동환, 인명진, 오충일 등입니다. 나이가 들어 기록이 아닌 기억으로 하는 글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겠네요.

그리고 한국 현장으로 와서 만났던 참 좋았던 목사님들이 몇 분이 있습니다.
이해학, 김해성, 윤인중, 최의팔 목사님이 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목사님들을 거론하는가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네요. 제 삶에 많은 영향을 주신 분들이라 거론합니다. 교회를 다니게 하고 졸업(?)하게 한 분들이기도 합니다.

자, 이제 파독광부로 간 사연이야기 해 볼까요.

저는 1950년 음력 4월 7일(양력 5월 23일) 전북 부안군 동진강가 장등리라는 마을에 사는 가난한 농부의 넷째로 태어났답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내 이름보다 "꺼먹둥이" 라는 애칭으로 불러서 전 어릴 적에 제 이름이 그냥 “꺼먹둥이”인줄 알았습니다.

나를 낳은 어머니가 태몽이야기를 하는데,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작은 아버지가 달구지(구루마)에 나락(벼) 가마를 가득 실은 검은 황소를 끌고 우리 집으로 와서 황소에게 여물을 먹이는 꿈을 꾸셨답니다. 어머니는 그게 태몽이라고 가끔 말씀하시면서 내게 "넌 밥을 굶지는 않을 거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낳았는데 피부색이 검은 검둥이였습니다.

몇 달 후 작은 집에 동생이 태어났는데, 그 동생은 나와 달리 하얀 피부색이라 할머니가 그 동생에게는 흰둥이, 저에겐 꺼먹둥이라고 불렀답니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꺼먹둥이 양반"이라는 소리를 듣는답니다. 
 
작은댁에 양자로 가다

▲ 4살, 양자로 갔을 때 외삼촌이 찍어준 사진

내가 4살 때, 나락 가마를 가득 실은 황소를 몰고 우리 집에 왔던 태몽 속의 김제에 사시던 막내 작은아버지는 자식을 갖지 못하자, 둘째 작은 아버지의 셋째 아들을 입양하기로 하고 데리려 오셨습니다. 그러나 작은 어머니가 양자를 줄 수 없다고 하자 우리 집으로 와서 대성통곡을 하시면서 형수인 어머니께 신세한탄을 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본 저희 어머니가 "그놈만 자식인가? 꺼먹둥이 데리고 가시오."하고 나를 양자로 보냈습니다. 그때 작은집은 아들이 넷이고, 우리 집은 셋인데 어머니는 둘째 아들인 나를 양자로 보낸 것입니다.
 
나는 다음 날 마른 명태를 등에 소총 메듯 메고서, 막내 작은아버지의 자전차를 타고 나룻배로 동진강을 건너 김제군 죽산면 종남리 작은집으로 갔습니다. 작은집 양자로 가서 무척 호강하면서 살았습니다.
작은 아버지는 자그마한 동네 이장 일과 농사로, 아주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넉넉했던 것 같았습니다. 저의 양아버지, 양어머니, 외갓집, 외숙들, 이모들이 저를 무척 귀엽게 대해 준 기억들이 아련하게나마 떠오릅니다. 양아버지, 양어머니는 일을 마치고 집에 오시면 막걸리를 드셨는데 어린 나에게도 한 대접씩 마시게 했습니다.
"정규야! 술은 어른한테 배우는 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그때 양아버지한테 배운 술이 지금도 술술술 잘 넘어가나 봅니다.

1958년쯤 죽산 국민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양아버지는 저를 자전차로 꼭 학교까지 실어다 주셨습니다. 저의 양어머니께서는 제가 걸핏하면 솜이불에 오줌을 싸도 꾸짖기보다는 달래주셨습니다. "좀 더 크면 안 쌀꺼여." 하시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학교에 가도 오줌을 싸니 꾸짖기도 하시고 나중에는 온갖 처방을 다 하셨습니다.

제가 오줌을 싼 어느 날 아침에 키(치)를 쓰고 앞집 아줌마네 가서 소금을 얻어오라고 해서 갔더니, 그 아줌마는 키에 물 뿌리면서 "너 이놈 또 오줌 쌌구나!" 하면서 부지깽이로 키를 막 두드려 깜짝 놀라 엉엉 울면서 줄행랑을 쳐 집으로 온 적도 있습니다.
                                                  
또 한 번은 오줌을 이불에 흥건히 싸놓은 채 코를 골면서 자는 제가 너무 얄미워서 서리가 내린 마당 뒤엄자리(마당을 쓸어서 모아두는 거름장소)에다 던져 놓았답니다. 그런데도 아무 소리가 없어서 다시 뒤엄자리로 가보니, 글쎄 제가 코를 골며 자고 있더랍니다. (양어머니께서 제가 청년이 되었을 때 해주신 이야기입니다)

명절 때나 제사 때, 양아버지는 큰집(제가 태어난 집)으로 저를 데리고 다니시고, 방학 때는 아예 부안에서 형제, 자매들이랑 놀라고 하면서 보냈습니다.
큰집에 오면 저는 또 왕자 대접을 받았답니다.
친자식인 제가 엄마인 줄도 모르고 "큰엄마" 하고 부르는 게 안쓰럽게 느껴져서 잘해 주셨습니다. 누나, 형들이 시샘할 정도로 저에게 잘하자 동네 누나와 형들이 자꾸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야, 느그 집이 여기야! 큰어머니가 아니고 엄마야! 이 바보."

또한 양어머니도 이상하게 제가 느낄 수 있을 만큼 대우가 확 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학교를 마치면 동진강 나루터로 와서 큰집으로 가는 횟수가 많아졌습니다. 그때마다 데리러 오셨던 양아버지가 하루는 "형수님! 아무래도 저놈을 여기서 키워야겠네요. 강물이 무섭기도 하고, 실은 저놈이 터를 팔았어요."라면서 눈물 바람으로 가셨습니다.

터를 팔아 동생을 낳으셨습니다.(‘터를 판다’는 것은 ‘동생을 낳는다’는 지방의 언어입니다. “언제 터 팔래?” = “언제 동생 낳니?”이런 의미이지요.)
양자로 가서 살면서 마을 사람들이나 외가로부터 제일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정규야! 터 팔았어? 언제 팔래?"라는 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는데, 제가 터를 팔아야 양어머니가 아이를 가져서 동생을 낳는다는 거였습니다.
                                                                             
학교를 다닐 때였습니다. 초가을 무렵에 학교를 갔다가 와서 낮잠을 자는데 마당 뒤엄자리에서 제가 터 판다고 코피를 흘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후 저는 사람들이 물으면 "터 팔았어요. 마당 뒤엄자리에"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동네 아줌마들은 "오~메 아들이다. 아이고 이쁜 거" 하면서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터를 밭에 팔면 딸, 논에 팔면 아들인데 마당의 뒤엄자리는 논이라는 것입니다.

그 후 저는 부안군 동진면 동진국민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꾼 태몽대로 저는 작은집으로 갔다가 다시 온 것입니다.

최정규  choi504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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