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등포에 위치한 '영등포산업선교회'의 건물. 1층에는 재활용가게와 생활협동조합이 위치해있다. ⓒ에큐메니안

‘영등포산업선교회’
기독교사회운동은 물론 노동환경에 조금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그러나 ‘영등포산업선교회’(이하 영산선, 총무 진방주 목사)가 이름처럼 ‘산업선교’를 담당하는 단체로만 알고 있을 뿐,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런 궁금증을 안고 따뜻해진 5월의 어느 날, 영산선이 있는 영등포로 향했다.
영산선 건물은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지만, 마당은 1층에 있는 ‘재활용가게’의 사람들로 분주했다.

취재에 응한 홍윤경 부장(노동자생명살림)은 “밑에 재활용가게는 재작년, 마을기업으로 선정 되서 만든 가게에요. 교회와 개인에게 기증받은 물건들을 잘 손질해서 팔고 있는데, ‘노느매기’라는 노숙인협동조합에 속한 노숙인(주거취약계층)들이 직접 운영하고 있어요”

홍윤경 부장은 그들 스스로가 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재활용가게와 같은 공간들이 그런 곳이라고 말했다. 그들 스스로가 텃밭을 가꾸고, 비누를 만들어 팔고, 조합원 교육이나 인문학 교육을 받으며 즐거워한다고 말할 때는 본인도 즐거운 듯 두 눈이 반짝였다. 

노동자와의 첫 만남, ‘전도’에서 ‘인권’으로

1957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정기총회에서 산업사회에 복음을 전하기로 결의되어, 다음해 산업전도위원회가 조직되었고, 당시 10대 청소년들을 비롯해 많은 청년들이 시골에서 올라와 일하고 있는 영등포 공단지역을 주 활동 범위로 정했다.

이렇듯 영산선의 시작은 노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가 목적이었다. 

활동을 시작한 실무자들은 모두 노동현장에 가서 훈련을 받고 온 목회자들이었다. 실제로 1대 총무였던 조지송 목사도 강원도 탄광을 찾아가 노동현장에 대한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사장님이 장로이신 공장을 찾아가서 예배를 드렸데요. 24시간 맞교대인 노동자들 퇴근도 안 시키고요. 그러다 ‘이건 아닌 것 같다’라고 생각한거죠”

그 후 이들은 ‘노동자 인권문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신우회를 조직하여 예배드리고, 노동법을 배우게 했고, 노조가 없는 공장에는 노조 결성을 도왔다. 그렇게 점점 노동자들의 입장에 다가가게 되었다.

“가장 어려운 시대에 그들과 함께 하고, 친구가 되어 도움을 주고, 그러다 민주화 투쟁과 노동자 투쟁이라는 격변하는 역사를 고스란히 겪게 된 거죠. 그 중심에 영등포산업선교회가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의 해방구였던, 영산선

“지금 영산선 건물은 1978년도에 세워졌어요. 그 전에는 조그만 사무실이나 시영 아파트에 모여서 활동했죠. 그러다 WCC를 통해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이 알려지면서 저희 영산선도 알려지게 됐어요. 그 후 독일 교회를 비롯해서 미국연합장로교회, 영락교회가 후원해서 지어졌어요. 당시에는 이 근방에서 가장 좋은 건물이었죠”

▲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받은 공로패와 각종 상패들. 가운데 영등포산업선교회 건물이 지어질수 있도록 후원한 각 나라와 교회가 명시되어 있다. ⓒ에큐메니안

영산선은 당시 노동자란 이름으로 모이기 어려웠던 시기에 활발히 집회를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가장 많이 모였을 때는 2000여명 까지 모여 집회를 할 정도로, 노조 출정식을 비롯한 노동운동 관련 활동들이 많이 열렸다.

“여성 노동자들도 많이 모였어요. 여성 인권교육이나 꽃꽂이, 요리모임 같은 소모임이 방이란 방마다 모여 진행됐어요. 따로 여가활동을 할 수 없는 그들에게 유일한 장소였던 거죠. 영산선은 당시 노동자들이 모이고, 권리를 찾을 수 있는 해방구였어요”

이렇게 활발하던 영산선에도 어려움은 존재했다.
정부는 1978년 당시 영산선 실무자였던 인명진 목사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시킨 것을 시작으로, 82년 ‘제3자 개입금지법’을 제정하여 산업선교회가 노동문제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개정했고, 점차 언론과 여론을 통해 산업선교회를 고립시켜나갔다.
그러나 방지일 목사를 비롯한 교단의 목회자들이 영산성의 정신은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영락교회 측에서 총무 월급을 책임지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영산선을 지켰나갔다.   

또한 80년 중반 이후로 점차 노동자의 수가 급격히 많아지면서 산업선교는 더 이상 특수선교의 형태를 띠지 않게 되었다. 이에 많은 교단의 산업선교회는 운영을 중지하고, 교단은 외국인노동자와 노숙인, 공부방 등으로 전환했다. 현재 교단에서 운영하는 산업선교회는 영산선이 유일하다.

노동자의 행복, 우리의 행복

현재 영산선은 ‘교회생명살림’, ‘노동자생명살림’, ‘지역생명살림’, ‘아시아생명살림’로 나눠 활동하고 있다. 그 중 ‘노동자생명살림’에서는 ‘노동자 품’이라는 치유·회복·의사소통 교육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노동교육활동에 집중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자의 ‘내면치유’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 영등포산업선교회의 역사와 활동을 소개한 책자들. ⓒ에큐메니안

“자신이 노동자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몸과 마음은 지쳐있는데,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죠. 그러다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청’을 하다보면, 본인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알게 되죠. 그렇게 치유가 시작되는 것이죠”

홍윤경 부장은 프로그램에 참여할 노동자들을 모으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멀리 창원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석한 사람, 자신이 배운 것을 다른 노동자 모임에서 가르치려는 사람, 삶의 의욕이 생긴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 것 같아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영산선은 교회내의 광범위한 공감대 형성을 위한 교육훈련 사업을 하고 있는데, 현장심방 프로그램인 ‘발바닥으로 읽는 성서’가 그것이다.

‘발바닥으로 읽는 성서’는 기독청년들과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쌍용차, 콜트콜텍, 기륭전자와 같은 노동투쟁 현장, 노숙인 시설 등을 방문하여, 관련 강의와 토론을 통해 기독인으로서 사회가 실천해야할 과제를 찾아보는 3박4일 숙박프로그램이다.

“2010년부터 매년 방학마다 진행했어요. 이번 8월에 14기가 진행 되는데, 장신대 ‘교회 밖 현장실천’이라는 과정을 듣는 학생들을 포함해서 기독청년들, 고3 졸업한 학생들처럼 다양한 청년들이 참여하고 있죠. TV나 신문으로만 보던 노동현장을 직접 눈으로 체험한 학생들이 많이 깨우치는 시간이 되고 있어요.”

그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과 청년들은 세상에서 가장 억눌린 자를 찾아가 연대하며, 행복하게 하는 것이 곧 우리 모두의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교회와 세상을 구분 짓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로운 기독교사회운동의 틀이 필요할 때

홍윤경 부장은 이랜드 노조 간부로 활동하며, 영산선과 함께 투쟁에 앞장섰고, 그 인연으로 현재 영산선 일하게 되었다. 목회자들이 주로 포진된 기독교사회운동에 평신도 활동가는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그는 기독교사회운동단체 대한 전반적 느낌과 전망을 묻는 질문에 ‘한계가 있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 일에 참여하면서 느낀 건, 어느 현장이나 모임을 가든 매번 보이시는 목사님들이 계시다는 거예요. 그만큼 참여하는 인원이 적기 때문에 모든 영역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인거죠. 부족한 운영자금이나 과도한 스케줄로 힘에 부쳐하는 모습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 (왼쪽부터) 홍윤경 부장, 진방주 총무, 함영원 간사. ⓒ에큐메니안

홍 부장은 적은 예산이지만 그것을 잘 관리하고, 집중하며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독교사회운동의 통합적 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영산선이 노동자의 마음에 집중하며 지금까지 일해 온 것처럼, 이제 기독교사회운동단체들도 그곳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에 집중해야 합니다”라며 “박봉과 장시간 노동에 지친 젊은 활동가들이 신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야해요. 그것이 앞으로 기독교사회운동단체들의 미래를 더 밝게 보장하는 길이겠죠”

박준호  webmaster@ecumen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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