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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훼퍼와 헤른후트 로중 3<홍주민 칼럼>
홍주민(한국디아코니아) | 승인 2015.05.26 14:36

홍주민 박사의 '본회퍼와 헤른후트 로중'은 3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아우슈비츠와 세월호 이후의 교회이야기-디아코니아를 통한 재구성’이란 주제의 글을 얼마 전 세월호 참사 1년 되는 즈음에 몇몇 신학자들이 한권의 책으로 역은 ‘남은 이들의 신학-세월호의 기억과 분노 그리고 이후(2015.동연)’라는 단행본에 기고한 적이 있다.

지난 4월 중순, 세월호 유가족 분들을 모시고 출판기념회를 하는 자리에서 나는 개신교 역사상 가장 오래된 말씀 묵상집인 ‘헤른후트 로중’ 80권을 유가족 분들께 드렸다. 그 날이 우연히도 디트리히 본훼퍼가 70년 전 교수형에 처형당한 날이라서 그 책의 의미가 더했다. 본훼퍼는 처형당한 날 아침까지 이 로중의 말씀을 하루의 슬로건으로 살아왔다. 사형수로 죽음을 기다리면서 본훼퍼가 의지하고 힘을 얻고 지탱하게 해준 힘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한국역사의 제로지대에 선 세월호 참사를 당한 유가족분들께 로중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 글은 본훼퍼가 평생 자신의 삶의 슬로건으로 삼고 애독한 헤른후트 로중과 본훼퍼 목사와 관련된 이야기다. 한국어로 2009년부터 이제 7년째 번역하여 매년 ‘말씀 그리고 하루(2009-2015.한국디아코니아연구소)’라는 제목으로 출간한다. 현재 50여개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285년 째 한해도 빠짐없이 출간된 로중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도관이 되기를 소망한다. 본훼퍼와 로중에 관련된 이야기를 앞으로 세 번에 걸쳐 게재하고자 한다. -필자 주

영적인 기본양식으로서의 로중

   
▲ 테겔 군사형무소
교수형 당하기 전, 감옥생활 2년 여 동안 본훼퍼에게 있어 파울 게르하르트의 찬양과 시편외에 로중은 본훼퍼에게 있어 영의 양식이었다. 이러한 것들은 그에게 위로를 주었고 감옥생활을 견디게 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히틀러 암살이 좌절된 것에 절망하지 않고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을 떨쳐내게 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로중은 당면한 상황과 직접 연관하여 말씀으로 전해졌다. 1944년 7월 20일, 슈타우펜베르크에서 히틀러 암살시도가 있던 날, 로중과 가르침의 말씀은 시편 20장 7절 “어떤 이는 전차를 자랑하고, 어떤 이는 기마를 자랑하지만,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의 이름만을 자랑합니다”와 로마서 8장 31절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이었다. 하루 후 1944년 7월 21일, 시편 23장 1절 “주님은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요한복음 10장 14절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였다.

암살시도가 좌초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본훼퍼는 1944년 7월 21일, 베트게에게 다음의 편지를 쓴다. “짧은 인사의 말을 전한다. 너와 신학적인 대화가 멈춰진다 해도, 삶의 징후를 넘어 나는 늘 너와 함께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신학적 사고를 끊임없이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얼토당토않은 삶과 신앙 사건들이 닥치기도 한다. 그런 경우 로중은 어제도 오늘도 내가 기쁨가운데 살아가도록 기쁨으로 나를 몰고 간다. 그리고 파울 게르하르트의 아름다운 찬양으로 이끈다. 그러한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자체가 내겐 기쁨이다.” 이 사실은 로중과 가르침의 본문이 본훼퍼에게 있어 감옥에 살아가는 동안 신앙과 삶에 아주 커다란 힘이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본훼퍼는 신학의 도움으로 그의 운명을 극복했다. 그것은 슈타우펜베르크에서의 히틀러암살 좌초이후 한 달이 지난 1944년 8월 21일, 로중과 가르침의 본문을 명상한 것에서 증빙이 된다. 그 날의 가르침의 본문은 고린도후서 1장 20절이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안에서 ‘예’가 됩니다.”본훼퍼는 에버하르트 베트게에게 편지를 쓴다. “다시금 나는 로중을 잡고 명상을 하였다. 모든 것이 ‘그 분 안에서’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을 바르게 소망할 수 있다. 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이 약속하고 성취하고자 하는 것을 알기 위해 예수의 삶과 말, 행동과 고난 그리고 죽음을 오래토록 조용히 몰두해야 한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현존 가까이에서 살 수 있고 이러한 삶은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 준다. 즉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뜻이 아니면 이 세상의 권력이 우리를 함부로 못한다. 위험과 곤경이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밀어낼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고난속에서 우리의 기쁨이 있고 죽음가운데 우리의 생명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우리를 이끄는 공동체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예수안에서 예와 아멘이라고 말씀하셨다.”

마지막으로 감옥안에서 본훼퍼의 영성과 관련한 로중의 큰 의미는 다음의 관찰에서 드러난다. 그는 마지막 기도시간인 1945년 4월 8일, 그의 감옥동료들과 함께 주일 설교본문이 아니라 로중과 가르침의 본문으로 행했다. 이사야서 53장 5절 “그가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가 치료받았다”. 베드로전서 1장 3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이 두 개의 성서말씀은 그리스도교의 영원의 희망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에버하르트 베트게는 여기에 덧붙인다. “그는 감옥생활의 마지막 결론을 이러한 성숙한 언어로 말했다.” 교수형에 처형당할 프로센뷔르크로 이송되면서 본훼퍼는 영국인 동료 S. 페이네 베스트에게 유언을 남겼다. 페이네 베스트는 본훼퍼의 소식을 편지로 벨 주교에게 전달했다. “제 소식을 치체스터 주교에게 전달하고자 한다면 그분께 다음의 말을 전해주십시오. 이제 나에게는 마지막 순간입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나는 우주적인 그리스도교적 형제애에 기초하여 국가간의 증오를 극복하고 긍국에는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본훼퍼는 민족간의 불화와 미움을 넘어서서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신뢰가운데 숨을 거둔다.

본훼퍼의 로중사용에 대한 신학적 결론

   
▲ 1939년, 런던에서
1. 먼저 놀랍게도 본훼퍼는 그의 저술된 책에서 로중을 모호하게 표현했다. 그는 “공동의 삶”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우리는 성서낭독이 중요하며 오늘을 위한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들 한다. 때문에 성서낭독이 많은 이들에게 있어 하루를 이끄는 말씀으로 몇몇 구절만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형제단의 로중이 실제적인 축복의 말씀으로 될 때까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하여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교회투쟁 기간에도 크고 감사한 놀라움을 로중을 통해서 경험했다.”본훼퍼는 여기에서 로중이 성서의 사용에 대한 하나의 형태로서 그의 시대에 분명하게 역할을 한 것을 소개한다. 그것은 단지 몇 개의 선택된 구절안에서만 하루의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했었던 형태이다.

본훼퍼는 이러한 인용을 하면서 그러한 성서사용이 성서의 전체적인 연관성에 대한 이해를 훼손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성서는 하나님 말씀을 단순히 개별 그리스도인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단지 개인적인 신앙심 고양 차원의 것이다! 성서는 교회와 세계를 위한 하나님 말씀이다. 본훼퍼는 더 나아간다. “하지만 짧은 로중 말씀이 성서독경의 지위에 가까이 갈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루의 로중은 종말의 시간까지 관통하여 남는 성서말씀은 아니다. 성서는 로중 이상이다. 성서는 ‘하루의 빵’이상인 것이다. 성서는 모든 시간과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성서는 개별적 경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 관철되고자 하는 종류의 것이다. 이와 함께 본훼퍼는 로중의 창안자인 니콜라우스 루드비히 폰 친첸도르프의 의도에 동의하여 로중을 이해한다. “성서의 빛”으로서 로중은 사람들에게 성서를 전체적인 연관성속으로 찾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로중은 독자로 하여금 지속적인 독경으로 이끈다.

2. 로중을 읽는 것은 영성을 열어주는 장이다. 지성적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도 그러한 근본적인 신앙의 과정으로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은 감옥에서 보여주었던 본훼퍼의 예에서 나타난다. ‘성서의 빛’으로서 로중은 누구에게나 신학적인 전제교육이 없이도 읽을 수 있고 이해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로중이 선택되어지는 과정에서도 직접적인 이해의 기준점은 기본적으로 있다.

3. 국가사회주의로 인해 그리스도교 신앙이 위협을 당하던 시대에 고백교회 구성원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한 교회의 중요성을 새로이 발견했다. 그것은 심리학적으로 추론된다. 외부로부터의 공격이 오면 한꺼번에 여러 사안이 몰려오고 함께 하고 있다는 동류의식의 근거들이 검증된다. 헤른후트 로중이 이러한 순간에 본훼퍼와 다른 고백교회 구성원들로부터 발견되어졌던 것은 그들의 공동체에 대한 잠재력과 연관된 것이다. 이미 매일 아침 작은 로중을 펴서 선택된 말씀을 읽는 외형적인 관습은 하나의 동질감을 가져온다. 게다가 위협과 박해의 시기에 동일한 말씀을 통하여 개인이나 전체 교회가 용기를 받고 경종을 울리는 것에 대한 경험이 이를 입증한다.

4. 제 3제국 시대에 로중이 고백교회안에서 계속적으로 확산되었다는 사실은 추정컨대, 매일의 로중이 오직 구약성서를 통해 선택되어졌다는 사실과도 연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로중은 그리스도교적인 하나님의 음성이 전체 성서로부터 들려져야 한다는 것을 견지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구약성서를 포기할 수 없다! 로중이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유대교와 관련없이 그리스도교 신앙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백교회는 이러한 입장에서 주석적으로 아주 중요한 논쟁을 독일-그리스도교 신학과 진행하였다. 디트리히 본훼퍼 자신이 옥중에서 구약성서를 점점 더 가까이 함으로 영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혹시 이러한 것은 구약성서가 신약성서보다 더 하나님의 역사속에서의 행동이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하나님은 말하면서 축복하면서 구원하면서 역사속으로 개입하신다.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막연한 섭리로 축소되어질 수 없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과 축복, 심판 그리고 구원에 관해 설명함을 통해서만 증언되어질 수 있다. 이를 위하여 로중은 독자에게 용기를 주고자 한다.

5. 본훼퍼는 로중속에서 사랑하고 위로하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다. 그는 로중으로 인해 회개와 돌이킴, 그리고 실존을 완전히 흔들어버리고 경고하는 하나님 말씀을 듣는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심판과 은혜의 긴장이 넘치는 장에서 만나신다. 나는 이러한 하나님의 일면이 오늘날 많은 개신교 교회의 설교단에서 사라졌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랑하는 하나님만 남겨져 있고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현실이다. 사람들에게 순종과 섬김의 실천의 장으로 부르는 하나님은 거의 없다. 본훼퍼의 로중 사용은 모든 이가 심판하고 용서하는 하나님께 마주쳐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6. 모든 로중 독자는 자신이 로중에 대한 자전을 서술한다. 디트리히 본훼퍼도 로중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서술하였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러한 것은 본훼퍼에게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먼저 그는 지속적인 전체 성서의 독경으로 로중사용을 게을리 하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강조했다. 그런 다음 그는 로중의 공동체 형성의 성격을 발견했다. 결국 후에 전쟁초기 미국방문 시 독일로 귀국을 하는 문제에 있어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것을 경험했다. 마지막으로 옥중에서 로중은 그에게 파울 게르하르트의 찬양과 시편외에 가장 중요한 영적 기본양식으로 역할을 했다.         

<필자 소개>

   
 
홍주민

한신대신학대학원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디아코니아학 디플롬(Diakoniewiss.Dip)
동 대학 신학박사(Th.D)
전 한신대 연구교수
서울과 성남에서 이주민과 민관협력현장활동
현 한국디아코니아 상임이사

홍주민(한국디아코니아)  juminh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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