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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과 유월절 2<정현진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⑰-2> 출애굽기 12장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 승인 2015.05.27 17:11

이번 <정현진 목사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열일곱번째 순서는 분량상 두차례에 나눠서 싣습니다. - 편집부-

유월절 (출 12:43-51)

유월절 표적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선택과 구원을 보여주는 영원한 상징이 되었다. 그것을 직접 체험한 세대에게는 물론 그 후손들, 자손만대에게 기념할만한 가치가 충분한 은총이었다. 43-51절은 가나안 정착 이후의 상황을 생각하게 한다. 이 부분에서 야ㅎ웨는 유월절 규례 (훅카트 핲파사흐)를 다시 한번 말씀하셨다. 여기에는 유월절 절기 그 자체보다는 그 때 나누는 음식에 관한 규정이 들어 있다. 43b의 주어 ‘콜-벤-네카르’ (= 이방 땅의 모든 아들 = 외국인들)은 아마 출애굽 당시보다는 그 이후 시대 유월절을 지키던 때의 상황을 묘사한 듯하다. 우리말 개역개정에 빠져 있으나, 43절에는 '' (모두, 누구나 다)이 들어 있다: '콜 뻰-케카르' (= 이방인의 자손은 누구나 다). 혈통으로 볼 때,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사람을 가리킨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유월절 식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방인이란 자기 스스로 야ㅎ웨와 아무 관련이 없는 듯이 사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 절의 마지막 구절 요칼 뽀(= 그들은 그것으로 [그것을] 먹지 말지니라)는 유월절 음식을 암시하고 있다. (46절 참조)

먹는다는 말(아칼)은 출 12:1-20에 13번 나왔다. 21-27b에는 그것이 나오지 않았다가, 이 단락에 다시 등장하였다. 다섯 구절에 5번이나. 이것은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 언제 먹느냐가 아니라, 누가 먹느냐에 강조점이 있다. 곧 누가 이 식사에 참여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이 단락의 주요 관심사이다. 참여 여부와 관련하여 네 부류의 사람이 여기 나왔다:

i) 외국인 (직역: 모든 이방인의 아들들 43절)
ii) 단기 혹은 장기 체류 중인 외국인 & iii) 타국 품군 (45절)
iv) 국적(출신)에 관계없이 할례자냐 무활례자냐 (48절)

44절에는 돈으로 산 ‘종’, 그리고 할례받은 종을 가리킨다. 이는 출애굽 당시의 상황이 아닌 듯하다. 여기서 종은 주인의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 곧 가족 중에 하나처럼 묘사되었다. 물론 이들은 할례를 받아야만 유월절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45절에 나오는 거류민과 타국 품군(머슴?)인데, 거류민 (토샤브) 은 아마 i) 이스라엘에 사는 고용된 외국인이거나 ii) 이스라엘에서 사는 누군가의 종이 아닌 자유로운 외국인을 의미할 것이다. 일찍이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헷사람에게서 샀다. 이 때 그는 스스로를 가리켜 ‘나그네이자 거류하는 자’ (께르-토샤브) 라 불렀다. 타국 품군 (사키르)은 이스라엘 사람에게 고용된 머슴을 가리킨다. 이런 보통의 경우 체류기간이 길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유월절 음식을 먹는 자리에 함께 있을 수 없었다. 물론 이들 가운데 할례를 받은 사람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포함되는 동시에 유월절 예식에 참여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 유월절(사라예보하가다 1350)
유월절 음식은 반드시 같은 (한) 집 안에서 먹어야만 하였다. (46절) 그것을 집안으로부터 밖으로 가지고 나가 먹지 말아야 하였다. 양의 뼈를 꺾지 말아야 할 것은 물론이었다. (민 9:12; 요 19:36 참조) 여기 ‘한 집에서’란 말(뻬바이트 에카드)에서 에카드는 그 용법이 매우 다양하다. 이것은 관사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형용사, 명사, 부사, 지시대명사 등으로 쓰였다. 히브리말에는 정관사만 있고 부정관사는 없다. 불특정 사물이나 하나 (단수)를 가리키고자 할 때, 정관사를 붙이지 않으면 그대로 단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에카드가 붙으면, 그것은 유일한, 독특한, 첫 번째, 일치된 것 등을 강조하는 것이다.  (창 1:9; 2:24; 11:1; 22:1 참조)

이렇게 하는 까닭을 우리는 충분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렇게 해야 할 이유와 목적이 분명 있으리라고 생각할 뿐. 그냥 생각나는 것을 하나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유월절 의식은 매우 특별하고도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 음식을 아무나 먹을 수 없을 만큼 거룩하게 성별하였다. 그런데 위에 언급된 사람들 중에 그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만일 그들도 배가 고픈데, 자신에게는 나누어주지 않고, 유대인끼리만 나누어보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된다면, 더구나 소풍 나오듯이 밖으로 가지고 나와 유대인끼리 즐기는 것을 보게 된다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온 회중 (콜-아다트 이스라엘) 이 이 규례를 다 같이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47절) 곧 이스라엘 민족 구성원이 된 표지들 중에 하나는 유월절 규례를 준수하느냐 여부에 있다는 것이다. 48절은 할례받지 못한 자는 누구든지 (콜-아렐) 유월절 음식을 (또는 이스라엘 회중에 끼어) 먹지 못한다 (로-요칼 뽀) 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였다. 거류하는 타국인이란 말(야구르 ... 께르)은 혈통이 같지 않은 사람들과 같이 사는 이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앞서 나왔던 토샤브(거류민)보다는 더 받아들여진 사람이다. 이들은 아마 일시적인 거류민이 아니라, 정착하여 오랫동안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 구절에는 말 (= 할례받다, 할례를 시행하다)의 수동 명령형이 쓰였다. 이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외국인이 너희와 함께 살고, 또 야ㅎ웨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자신을 위하여 할례가 행해지게 하라. 모든 남성은 그 후에야 그것을 지키려고 가까이 나아오리라. 그리고 그는 그 땅의 토박이처럼 되는 것이다.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을 (그 안에서, 그 때에) 먹지 못하리라. 이로써 하나님은 이스라엘인에게나 그들 중에 사는 외국인에게나 동일한 법(토라 에카트) 이 적용되게 하신 것이다. (49절) 여기서 토라는 유월절 규례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이는 외국인이라도 일정한 자격을 갖추면 곧 할례를 받으면, 이스라엘인과 동등하게 출애굽 공동체에 속한다는 뜻이다. (레 16:29; 17:8-15; 18:26; 민 9:14; 15:16, 29; 35:15 참조) 이리하여 곧 이스라엘 안에 사는 외국인 중에는 신앙공동체에 온전히 속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공존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은 유월절 규례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따랐다. 출 12:28과 이곳의 차이는 이스라엘 자손 앞에 ‘모두 다’ () 라는 수식어 붙은 것뿐이다. 51절 말씀은 출 12:41과 거의 일치한다. 이 구절의 첫 부분 ‘그리고 이러하였다, 바로 똑같은 그날에’ (봐예이 뻬어쳄 핫욤 핫제) 라는 말은 이스라엘 자손이 야ㅎ웨의 말씀 그대로 실행한 그 날을 가리킨다. 곧 50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야ㅎ웨의 말씀 그대로 행한 것에 상응하여 하나님께서도 약속하신 그것을 즉각 행하셨다는 것이다. 곧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이미 약속하신 그것을 곧바로 그리고 그대로 행하시는 분이다. 여기에도 출 12:17처럼 챠바 (알-치브오탐 = 그들의 부대 단위로, 그들의 무리 별로)란 말이 쓰였다.

* 오늘의 적용

1) 씨족(부족, 민족)의 벽을 뛰어넘는 신앙공동체

37 마침내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으로 갔는데, 딸린 아이들 외에, 장정만 해도 육십만 가량이 되었다. 38 그 밖에도 다른 여러 민족들이 많이 그들을 따라 나섰고, 양과 소 등 수많은 집짐승 떼가 그들을 따랐다. (출 12:37-38 새번역)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 안에는 히브리족속이 아닌 다른 민족들도 끼어 있었다. 출애굽 공동체는 이들도 품에 껴안았다. 이들도 가나안땅에 정착하는 이스라엘 해방공동체에 끼게 되었다. 이는 출애굽이 오로지 야ㅎ웨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긍휼과 자비라는 사실과 더불어, 이 세상 어느 민족, 누구도 그 은총을 혼자 독차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사 56:3, 6 참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기쁜 소식도 이와 같다. 신앙공동체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 10:8)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명령 따라서 자신이 받은 은혜와 축복을 이웃과 더불어 나누는 공동체이다. 그 은혜와 축복조차 특권으로 여기고, 끼리끼리만 어울리는 공동체는 결코 해방 받은 공동체가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인인 공동체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적인 생각이 좌우하고, 자기들이 주인행세를 하는 것이다. 진정한 해방과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온전히 비우면서도 가장 충만한 기쁨을 안고 사신 것을 본받으며, 자신을 죽기까지 낮추면서도 가장 충만한 인생을 사신 것을 본받는 데서 완성된다. 스스로 낮추고 이웃을 섬기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 문을 열어놓는가에 따라서,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공동체인가 아닌가가 판가름나는 것이다.

2) 말씀하신 그대로

이스라엘 자손은 야ㅎ웨께서 자신들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행하였다. 이는 각 사람에게는 물론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지켰다고 하였는데, 그 내용은 유월절 규례를 준수하는 것이었다. 그 안에는 할례가 포함되어 있다. 48절에 ‘할례받지 않은 사람은 그 누구든지’라는 표현에서 ‘그 누구든지 (히브리원어로는 모두 다)’ 유월절 식사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이 누구든지라는 말 속에는 이스라엘 자손도 포함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할례의식은 없다. 그렇다면 할례에 관한 이 말씀을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롬 2:28-29)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갈 6:15)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 2:11-12)

오늘날 할례란 세례의식을 거쳤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자신의 생각과 몸과 활동으로 살아내는 것을 가리킨다.

3) 약속하신 그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시행하자, 하나님은 바로 그날에 자신이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주셨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사람이기에 이 의지 그대로 실천하지 못할 경우가 있기도 하겠지만, 최소한 마음과 생각과 행동은 그 방향으로 향해야 하는 것이다.

4)  전무후무한 일을 체험한 민족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베푸신 출애굽 사건은 전무후무한 은총이었다. 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은혜체험을 그들은 유월절과 무교절 의식을 통해 자자손손 이어나갔다 . (민 9장, 수 5장, 왕하 23장 참조)

이 기억(기념)은 틀림없이 그들에게 힘과 소망이 되고, 어떤 경우에도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psalm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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