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생명이란 무엇일까요? 진화생물학에서는 흔히 생명을 유전자형과 표현형으로 구분해서 설명하곤 합니다. 생명체는 유전자형과 표현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여기서 유전자형이란 생명체가 형성⋅유지되는데 필요한 정보의 출처를 말하고, 표현형이란 이러한 정보에 의해 단백질과 지방질 같이 거대한 분자들로 구성되어 겉으로 드러나는 생명체의 구체적인 여러 특징들을 말합니다. 유전자형에 의해 사람이면 사람, 호랑이면 호랑이의 특징을 갖는 표현형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렇듯 유전자형과 표현형의 관계를 통해 ‘살아 있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라는 진화생물학자는 8가지 생명의 특징을 이야기합니다. 38억 년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유전정보가 축적된 결과인 진화된 유전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고, 핵산, 펩티드, 효소, 호르몬, 세포막의 구성요소 등과 같은 화학적 속성들을 가지며, 생명의 체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제어 메커니즘이 있고, 이 메커니즘에 의해 유지되는 복잡하며 질서 잡힌 조직을 갖추고 있으며, 단지 조직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환경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목적론적 활동을 하고, 각 종마다 고유한 크기 범위를 갖고서 일정한 영역을 차지하며, 수정란으로부터 성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가지며, 끊임없이 외부환경으로부터 쓸모 있는 에너지와 물질을 흡수하고 쓸모없는 것들은 배출하는 열린 체계가 바로 생명이라는 것이지요. 한 마디로 생명이란, 외부와 상호작용하며 자기 스스로를 유지하고 만들어가는 열린 체계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생명을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굳이 생명을 단일한 개체로 보지 않아도 될 겁니다. 에드워드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은 ‘초유기체’라는 말로 이런 생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개미나 흰개미, 벌, 말벌 중에서 약 2퍼센트에 달하는 2만 종(species)의 곤충들이 이른바 진정한 의미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데요, 이들은 여러 세대가 함께 모여 살며 적어도 겉보기에 이타적인 분업을 하는 등의 특징을 보입니다. 이러한 특징을 진사회성(eusociality)이라고 부르는데, 이들 진사회성 곤충들은 전체 곤충 종들 중 극히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육상의 무척추동물 세계를 광범위하게 지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의 여왕과 이 여왕이 낳은 자식들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자식들은 여러 역할을 나누어 맡는 일꾼으로 평생을 살면서 거대한 집단을 이룹니다. 그런데 윌슨에 의하면 이 “일꾼들은 어미인 여왕이 만들어 내는 자기 표현형 중 이동성을 띤 부분인 로봇”으로서 여왕의 통제 하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유기체와 다름없다는 의미에서 초유기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초유기체는 보금자리를 중심으로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집단을 유지하고 만들어가는 열린 체계라는 점에서 하나의 생명으로 보는 것이 가능합니다.

살아 있음과 사회적 성격이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다는 사회생물학의 견해는 일찌감치 생명을 ‘조에(zoé)’와 ‘비오스(bíos)’로 나누고는 비오스를 더 소중하게 여겨온 역사를 갖는 서구 문명사와 미묘한 긴장을 이루고 있는 듯합니다. 여기서 ‘조에’란 단순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면, ‘비오스’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 특유한 삶의 형태나 방식을 뜻합니다. 서구의 역사는 가치 있는 삶이 그저 살아 있음과는 다른 차원을 갖는다는 생각을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여왔는데요, 그런 까닭에 조에, 살아 있음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만 보더라도 단순히 살아 있다는 사실과 정치적으로 가치 있는 삶이 서로 상반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오늘날 근대 정치는 자본주의와 더불어 성장하면서 “일련의 적절한 기술들을 통해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이른바 ‘순종하는 신체’를 산출해낸 새로운 생명권력의 규율적 통제”를 완성함으로써 작동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조에, 살아 있음 자체를 국가 통치의 대상으로 끌어들여 정치화시킴으로써 비오스, 가치 있는 삶을 만들어가려고 시도하는 사회가 오늘날의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살아 있음과 가치 있음을 구분하여 생명을 이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살아 있음을 치밀하게 통제하고 관리함을 통해 다른 누군가의 가치 있음을 보장하는 사회가 오늘의 사회라는 것이지요.

살아 있음을 치밀하게 이용하면서 동시에 무시함으로써 가치 있음을 실현하려고 하는 이 자본주의 시장사회의 모순적인 자기기만을 엿보게 됩니다. 시장과 권력기관이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선전하는 것은 가치 있는 삶이지만,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살아 있음이 고통을 받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숨깁니다. 도시의 불빛이 ‘가치 있는 삶이란 이런 거야’ 하면서 현란하게 번쩍일 때, 이 불빛을 유지하기 위해 희생당하고 있는 자연과 노동과 농촌의 생명, 그 적나라한 살아 있음은 무시되고 밀려납니다.

어쩌면 리처드 르원틴(Richard Lewontin)이나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등이 “현상유지를 유전적으로 정당화하고 불균형을 영속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적으로 보았던 윌슨의 사회생물학에서 오히려 지금의 시장근본주의 사회, 생명관리정치의 세상을 뒤집어볼 수 있는 단초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 있음이 사회성 자체와 다르지 않다는 통찰을 제시함으로써 살아 있음과 가치 있음의 경계를 허물 수 있도록 하니까 말이지요. 윌슨은 이러한 경계선 허물기가 ‘기억’이라는 기제를 통해 가능하다고 봅니다. 기억 중에서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 생명의 인간다움을 보장한다는 것이지요. 인간의 뇌는 100억 개도 넘는 신경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신경 세포 하나는 평균 1만 개 이상의 연결망과 접속하고 있는데요, 이로 인해 탁월한 기억능력을 발휘할 수 있답니다.

아감벤(Giorgio Agamben)은 기억을 통해 ‘지금 이때’를 과거와 현재의 수축으로 만들게 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에게 과거는 숱한 살아 있음들이 그 억울함을 다 해소하지 못한 채 켜켜이 쌓아온 한(恨)의 퇴적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 한은 끊임없이 사회적으로 되새김질되어 다양한 이야기로 거듭날 때에야 비로소 현재로 복귀하고, 이를 통해 구원을 예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기억은 미래를 전망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무기로 살아 있음에도 무시되고 있는 이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외면하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지 말고 미래를 향유하라는 달콤한 유혹 속에는 생명의 적나라한 현실은 과거로 묻어두고 영원히 도래하지 않을 가치의 미래는 소비해버리는 이중적인 비정함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조에에 기생하면서도 조에에 가해지는 착취를 은폐하고 비오스로 포장하려는 거대한 시장 앞에서, 오늘의 무기력한 제도권 종교에게 에드워드 윌슨이 던진 말, “인류는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를 다음과 같이 고쳐 말해 봅니다.

“생명은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이를 위해 지금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살아 있음을 살아 있음 자체로 기억하는 것이며, 기억하는 이들의 연대와 공동체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미래를 소비함 없이 현재에 성실하게 등장하는 것, 메시아의 도래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살아 있음은 사회적인 삶에 다름 아니며 언제나 기억을 통해 질적 변용을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필자 소개> 신익상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후 감리교신학대학교 박사원에서 종교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학연구원과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그리고 변선환아키브를 중심으로 학술활동을 하면서 감리교신학대학교, 협성대학교, 성공회대학교 등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편으로는 신학과 과학의 대화에,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간 대화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이 해방적인 삶에 기여할 수 있는 바를 모색하고 있다. 현재 NCCK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KCRP 종교간 대화위원회 위원으로서 종교의 사회적 책임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신익상  yotyo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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