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통일 칼럼 연재
중경(重慶), 장준하(張俊河)의 그 약속의 땅 3<문대골 칼럼>
문대골 목사 | 승인 2015.05.29 14:16

여기는 중경 그 약속의 땅

임정의 김구주석이 단상에 올랐다. 환영 및 격려사를 위해서다.
일본의 철권정치, 아시아를,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제국 일본을 뒤흔들어 놓은, 뒤흔들고 있는 백범 김구(白凡 金九) 주석, 주석(主席)이라면서도 국가가 없고, 통령(統領)이라면서도 정규자국군(正規自國軍)이 없는 지도자!

장준하는 기가 막혔다. 임정청사의 앞마당은 광장이 아니었다. 그저 한 뜰이었다. 거기 흙과 돌로 쌓아 만든 사방 10자가 채 안 되는 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청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원래 이 청사는 엄백용(嚴佰容)이라는 중국의 한 사업가의 소유로 호텔업을 하던 것을 중국정부가 지원해준 1천만 원에 입주한 임대건물이었다.

   
▲ 김구(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장준하(셋째 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 출처 연합뉴스

그러나 장준하의 단장(斷腸)의 설움은 임정의 청사가 임대건물이라는 것, 광장없는 청사 앞에 놓은 토단 때문에도 아니었다. 장준하의 눈에 들어오고 있는 청사와 그 주변의 모습들에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해도 장준하의 가슴 속을 가차 없이 휘돌고 있는 국가 없는 민족의 현실이 어떤 것인가를 실감하는 데서 오는 것이었다. 죽을 수밖에,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가 이렇게라도 살아있었구나! 장준하의 단장의 설움은 그래서였다. 그 서러움은 한편 자신도 알 수 없는 비장함과 함께 휘돈다.

“백범 김구! 내가 저 어른과 함께 빼앗긴 내 조국을 다시 찾으리라. 이분을 찾아 6천리. 기고 걷고 뒹굴며 달리기, 피하여 숨고 숨 몰아쉬기를 간단없이 계속해온 반년이 넘는 세월, 다 이 한순간을 위해서였다 생각하니 주석의 격려사가 시작되기 전인데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내가 지금 김구 선생을 맞고 있다니 이게 사실인가? 그 소름 끼치던 중국의 눈길들, 산길들, 벌판들 위에 뿌린 우리들의 땀과 한숨과 갈망이 들꽃으로 가득히 대륙에 피어나고, 그 들꽃 속에서 일제히 합창의 환영곡이 들려오는 듯한데...”

신익희(申翼熙) 내무부장의 사회로 김구 주석의 격려사가 전해진다.
“오랫동안 해외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국내소식에 아주 감감합니다. 그동안 일제의 폭정 밑에서 온 국민이 다 일본인이 된 것 아닌가 염려해왔는데, 그것이 한낱 나의 기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왜놈들에게 항거하여 이렇게 용감하게 탈출해서 이곳까지 찾아와 주었으니 더 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낍니다. 나의 지금까지의 착잡하고 헛된 고민이 일시에 사라집니다. 조국의 혼이 살아있다는 분명한 증거가 무엇이겠습니까? 결코 한국사람은 한국사람 이외의 아무것으로도 변하지 않는다는 산 증거로써 여러분은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지금 일본인들은 한국사람들이 예외 없이 일본인이 되고자 원할 뿐만 아니라 다 되었다고 선전하고 있고 또한 젊은이들은 한국말조차도 할 줄 모른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한국의 혼은 결코 죽지 않는 다는 것을 여러분은 스스로 보여주었습니다. 내일은 이곳에 와 있는 전 세계 신문기자들에게 이 자리에서 이 산 증거를 알려주고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중경에 와 있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진정 내 가슴은 터질 것 만 같고, 이 밤중에라도 여러분과 함께 이 중경거리를 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훌륭한 열중이요. 여러분 자신들이 한국의 혼입니다.”

장준하(張俊何)의 답사, 만장(滿場)을 울리다

장준하는 물론 주석 김구를 비롯해 한 사람 빠짐없이 환영장에 모인 모든 임정위원들과 임정 업무원들이 흐느끼기 시작하여 호곡의 장(場)이 돼버렸다. 백범의 격려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눈물을 쏟기 시작한 장준하는 백범이 격려사를 마치자 답사를 하게 된다. 그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무슨 환영회의 순서가 정해진 것도 아니고, 그저 환영회장이 마련되어 참여한 것인데, 사회자였던 신익희 내무부장이 대원들 중 누구라도 좋으니, 답사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해서 장준하가 단에 오르게 된 것이었다. 김구 주석의 환영, 격려사에 답사를 하게 된 장준하는 한편 두렵기도 했지만 사람으로서 자신이 할 일은 이제 끝나도 좋다는 심정이었다. 그렇듯 지극한 감격의 시간이었다.

“저희들은 왜놈들의 통치 아래서 태어났고, 또 그 밑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국기조차 본 일이 없었던 청년이었습니다. 어려선 본 것은 일장기였습니다. 철이 들면서 그것은 우리 기가 아닌 일본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우리나라의 국기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전국에 나부끼는 것이 일장기가 아니고, 우리의 국기라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하고 생각하던 옛 그리움이 이제, 오늘 여기에서 다시 살아나 깊은 감회에 젖게 됩니다. 왜놈들에 대한 증오와 혐오는 그래도 순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일군에 강제로 끌려나오게 되고, 고국에 남은 가족들이 폭력에 시달리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저희는 우리들 자신을 다시 생각해야 했습니다. 누구를 위해 이 고생을 하며, 왜 왜놈 상관에게 경례를 붙여야 하며, 왜 나의 조국은 사라졌는가 하는 분노가 용암으로 끓어 화산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이 임정청사에 높이 휘날리는 태극기를 바라보고 우리가 안으로 울음을 삼켜가며 눌렀던 감격, 그것 때문에 우리는 6000리를 헤쳐 온 것입니다. ...
저는 조금 전 이청천(李靑天) 총사령관께서 사열을 받으실 때, 전 정성을 기울여 차렷 자세를 취했습니다. ... 아! 우리도 우리의 상관 앞에서 참다운 사열을 받고 있구나. 꿈만 같았습니다. 김구 주석님 앞에 서면서는 더 말할 것이 없었습니다. ... 우리의 몸 바칠 곳을 찾았다는 기쁨 속에 몸을 떨었습니다. 이제, 저희에겐 더 이상 한이 없는 것 같습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라면, 그리고 선배 여러분들의 그 노고에 다소나마 보답이 된다면 무엇이든지 어디든지를 가리지 않고, 명하는 대로 할 각오로 이 답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원고는 물론 메모 한 줄 없는 즉석의 답사였다. 장준하의 혼, 그대로의 분출이었다.
김구의 흐느낌이 통곡이 되면서 회장은 통곡의 바다로 변했다. 누구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쯤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눈물이 그렇듯 아름다고, 고귀한 세제(洗劑)임을 모두가 처음으로 경험한 듯 했다.

장준하(張俊何)의 반동

   
 
장준하에겐 전혀 개인적인 경우였지만 이상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었다. 걸핏하면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너무 자주, 너무 심히 반복되는 일이라서 주변의 동료들도 달리 어쩔 수가 없었다. 장준하 자신마저도 “왜 이렇게 우리가 중경까지 와서 걸핏하면 울게 되었는지 스스로도 반문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했지만 그것은 그저 애국일념 하나에 존재의 의미를 담고 있는 특히 몇몇의 동지들에겐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것은 오직 하나, <중경 임시정부의 실상> 그것을 너무도 쉽게 간파하면서였다. 중경에 도착한 첫날, 환영회를 마치고, 변소를 찾았을 때도 언짢은 감 없지 않았지만 평심만은 유지할 수 있었다. 가리켜 주는 이의 가리켜주는 데로 변소라고 찾아들었는데, 변소라는 게 정말 가관이었다. 4-5미터쯤 될까싶은 길다란 땅 구덩이를 파고, 네, 다섯 자쯤의 통나무를 걸쳐 놓았는데, 그것이 변소칸의 전부였다. 칸막이도 물론 없고, 그리고 사방으로 몇 개의 기둥을 세워 마름으로 둘러놓고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다음날 하루를 푹 쉬었고, 다음 날이다.

청사의 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위로회가 있다고 했다. 사전에 무슨 연락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장소는 대원들이 숙소로 쓰고 있는 건물의 아래층 식당이라고 했다. 대원들이 타종이 있자마자 모두들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임정의 각료들, 거기 따르는 직원들, 광복군 총사령부의 간부들까지 100여명이 넘는 수였다. 그런데 차림상이 더 이상 가관일 수가 없었다. 간단한 마른안주들이 식탁 맨 바닥에 놓였고, 술은 중국의 고량주(高粱酒)인데, 잔은 따로 없이 뚝배기에 몇 그릇을 담아 그걸 돌려가면서 몇 모금씩 마셔대는 식이었다. 그래서 돌고 다시 또 돌고…….

서러운 감이 다시 왔지만 그래도 좋았다. 내 나라의 국기, 국가(國歌)를 찾았으니……. 정확히 일주일이 지나면서는 장준하의 가슴에 묘한 감정이 일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분노 같은 것으로 바뀌고 있었다. 우선 청사의 살림이 무계획, 무질서, 저질인데다가 매일처럼 계속되는 환영회, 위로회는 견딜 수 없는 고역이었다.

어느 날은 오전, 오후, 밤 세 번의 연회에 끌려가기까지 해야 했다. 몸들이 녹초가 되기도 했지만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그 환영회라는 것의 실상을 파악하면서부터였다.
당파심으로 하는 행사라는 것이었다. “셋집을 얻어 정부청사를 쓰고 있는 주제에 정파수는 의자보다 많았다.” 그런데 들리는 소리가 내각에 한자리를 요구하면서 또 하나의 당이 창당된단다! 그렇게 그 환영회라는 것이 장준하의 대원들이 중경에 온 이후, 두 주간 동안 계속되었다. 장준하의 몸이 불덩이가 돼가고 있을 때, 노능서(魯能瑞)가 혼자서 하는 말이 장준하의 귓전을 때렸다. “아, 죽고 싶다!” 그것은 천둥이었다.

장준하, 노능서는 김준엽, 윤재현을 찾았다. 정파 싸움으로 전락한 소위 환영연이라는 것을 일체 거부하자는 것이었다. 전 대원이 소집되었고, 전원일치로 이후 이유여하를 막론 환영연을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기이하게도 그 거부의 첫 대상이 김구 주석의 한독당이었다. 대원들의 분위기는 철근처럼 무거웠지만 역사 앞에 서원한 결단은 흔들릴 수 없었다. 그랬다. 이후 일체의 환영연을 거부한다는 결의는 역사 앞에서의 서원이었다.

<필자 소개>

   
 
문대골

* 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 상임고문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교회 원로목사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