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만불의 사나이와 쿤타킨테를 회상하며

600만불의 사나이와 쿤타킨테. 인공 생명이 논의되는 현시대에 뜬금없는 이름들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낯설기조차 하다. 어린시절 나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만나는 통로 중 하나가 티비였다. 그리고 외국드라마에 등장했던 600만불의 사나이와 쿤타킨테는 나에게 적잖게 충격을 주었던 주인공들이었다. 사고로 다친 평범한 인간이 거금 600만불로 특수임무 수행자가 되었고, 그는 600만불의 사나이로 불렸다. 움직일 때마다 ‘뚜드드드’라는 효과음과 함께 600만불의 사나이는 여느 인간과 다른 비범한 기능을 가진 괴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한 마디로 ‘비싼 놈’이었다(600만불의 사나이를 세 글자로 줄이면 무엇일까라는 문제가 당시 유행했고, 정답은 ‘비싼 놈’이었다).

반면, ‘뿌리’라는 연작에 등장했던 쿤타킨테는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끌려온 노예였다. 한 백인에게 팔려 여러번 탈출을 감행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폭행과 수모 속에 발이 잘린 검은 피부에 두터운 입술을 가진 사람. 그의 이름이 쿤타킨테였다.


▲ 6백만 불의 사나이(리 메이저스 분)와 뿌리의 쿤타킨테(르마 버튼 분).

그 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들, ‘비싼 놈’과 쿤타킨테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누군가의 “살아 있음”이 무시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깊은 공감 때문이었다(앞글, 신익상, "기억하라, 살아 있음을!"). 밤이면 옆으로 누워 심장의 울림소리를 들으며 그저 살아 있음, 곧 나의 존재를 아직은 내가 인식할 수 있다는 신비감이 어느 순간 위협받기 시작했다. 관계로부터 비롯된 위협이었다. 살아 숨쉬는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 이전에 나의 살아 있음은 얼마의 값어치가 있을까, 곧 가격으로 환산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가격표에 나는 때로 반응하기도 했다. 살아 있음을 느끼며 나의/너의 존재 자체가 주는 감격, 벅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람들과의 크고 작은 관계성 속에서 존재의 가벼움에 상처를 받기도, 너의 존재를, 살아 있음을 가볍게 여기기도 했다. 소중한 존재, 때로는 ‘비싼’ 존재가 되지 못할 때 살아있음이 상처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의/너의 살아 있음에 가격과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사회에서 생산해낸 등급표에 따른다는 것을(신익상, "기억하라, 살아 있음을!").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보내며 믿기지 않았던, 아니 믿기 싫었던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미래의 노동 가능한 인구가 줄었다/사라졌다”는 답이 있었다는 방송이었다(Podcast, 파파이스 45화). 충격이었다. 한 생명을 가격화하고, 모든 것을 물질화하는 풍조가 자연스럽게,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들의 현실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만 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에게는 비싼 인간이라는 가치를, 또 누군가에게는 쿤타킨테의 모습을 강요한다.

비싼 인간도 아닌, 쿤타킨테도 아닌 중간값의 사람들은 비싼 인간이 되고자 몸부림친다. 출발부터 비싼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은 선망의 대상이 된다. 비싼 인간으로의 재탄생을 바라며 때로 사람들은 너의 살아 있음을 밟아버린다. 사회는 지속적으로 헐값으로 너의 살아 있음을 착취하고, 너의 살아 있음이 얼마나 가벼운지 주입시키기도 한다. 하나, 둘 살아 있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사회는 낙오자라며 또다시 그들을 죽인다.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죽음은 단지 26번째라는 숫자로 환산되고 묻혀 지면서,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은 점차 사라진다. 비참한 현실이다. 그러나 값싼 흑인 노예, 쿤타킨테의 얼굴 중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의 강렬한 눈빛이다. 그의 눈에서는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 자신을 옭아매는 현실을 온 몸으로 거부하는 알 수 없는 힘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비록 600만불의 사나이처럼 만들어진 비싼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는 못했고, 발이 잘리는 현실을 탈피하지는 못했지만 쿤타킨테는 자유를 찾아 수차례 탈출을 감행하며 자신이 살아 있음을 각인시킨다. 그의 살아 있음을 가볍게 하는 모든 억압을 향한 끊임없는 저항의 몸짓이 아직도 나에게는 나의/너의 살아 있음을 기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사회가 규정한 비싼 인간은 아니더라도, 나의/너의 살아 있음 자체가 충분히 의미 있음을, 가치 있음을 기억할 수 있는 또다른 원동력이 있다. 현시대에 어쩌면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는 “신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성서의 인간 생명에 대한 선언이다. 비싼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무작정 뛰고 있는 경쟁 사회 속에서, 때로는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존재의 가벼움이 주는 아픔으로, 기억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선언이기도 하다. 너의 살아 있음의 의미를 밟기 위해 알고 싶지 않은 선언이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기독교에서조차 무관심한 선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성도의 숫자가 곧 헌금의 액수와 동일시되고 있는 기독교의 현실. 죽어간 생명을 미래 노동 인구의 사라짐과 동일시하는 사회 현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살아 있음을 자발적으로 거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신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성서의 선언은 말하기조차 민망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생명을 가격화하는 사회를, 나와 너에게 가치를 책정하고 부여하는 현실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모든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내 속에/네 속에 끊임없이 뛰고 있는 심장의 울림 저편에 우리의 존재 자체, 살아 있음 자체의 소중함과 가치가 이미 내재되어 있음을. 내 속에/ 네 속에 끊임없이 뛰고 있는 심장의 울림을 오늘 다시 한 번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박지은 박사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밴더빌트 대학(Vanderbilt University)에서 구약(히브리)성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강사로, 여성 및 생태문제를 비롯하여 현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응답할 수 있는 구약성서 읽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박지은 jemondie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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