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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張俊河), 그 다시 시작되는 생명장정(生命長程) 1중경(重慶)에서 토교(土穚)로
문대골 목사 | 승인 2015.06.05 17:19

통첩(通牒)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어느 당, 어느 기관도 예외 없이 이제부턴 일체의 환영회에 참석하지 않기로 한 이 학도장교단은 이 결정사실을 임정에 알리기로 하고, 그 대표로 김준엽(金俊燁)을 선임, 임정에 파견했다. 이때 김준엽이 만나야할 사람으로 한독당의 부위원장 조소앙(趙素昻)이었다. 김준엽을 맞은 조소앙은 몹시 기뻐했다.

김준엽은 이미 중국 인사들과의 교류에서 통역을 할 정도의 대원으로 알려지고 있는 터였다. 무슨 일로 김준엽이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아보기도 전에, “어서 오게 김군, 그렇지 않아도 사람을 보내려 했어. 내일 저녁 우리 한독당에서 우리 일군탈출학도 사관들의 큰 환영회를 갖기로 했네. 물론 백범 주석께서도 참석할 것이고, 전 대원들에게 잘 알려서 한 대원도 빠짐없이 참석하도록 해야겠어. 수고 좀 하시게나...”

   
 
김준엽은 참으로 난감했다. 가부의 대답이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백범 주석께서 참석하시겠다니…….” 조 부위원장이 청하는 데로 자리에 앉은 김준엽은 지그시 입술을 물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순간 장준하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화난 얼굴이 아니었다. 그 잘생긴 얼굴의 장준하가 방긋이 웃으면서 “김 동지”하면서 다가오는 것이었다. 깍지 낀 두 손에 힘을 들었다. 그리고 조소앙을 주목했다.

“못합니다. 선생님, 제가 찾아온 것은 이 후로 어떤 환영회에도 참석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리러 온 것입니다. 우리의 중경 진입으로 여러 선배님들 사이가 벌어진다면 우리가 죄를 짓는 것입니다. 독립당 뿐 아니라, 어떤 정당이나 어떤 단체의 환영회에도 일체 참석하지 않기로 우리는 뜻을 모았습니다. 우리는 선배 여러분이 한 덩어리가 되어 우리의 독립운동을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것은 일종의 통첩이었다. 한독당에 환영회 참석불가 통첩을 하고, 돌아 나오는 김준엽은 마치 호랑이 굴을 헤쳐 나온 것 같았다. 아, 어찌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져버린 각 정파의 파벌책략은 요지부동이었다. 대원들의 각개격파 작전에, 그것도 모자라 어떤 정파에선 미인계의 행사까지도 서슴지 않는 것이었다.

폭탄선언(爆彈宣言)

그런데다 또다시 대원들의 속을 뒤집는 소리들이 흐르고 있었다. 아직 사실이 확인된 것은 아니라 해도 은밀히 모, 모 대원에게는 협조를 요청한다는 부탁까지 있었다는 소문을 보면 결코 터무니없는 보고 같지는 않았다. 신당(新黨)이 또 하나 생길 거라는 것이었다. 모든 대원들의 속이 하나같이 뒤틀리는 소리였다. 오장육부(五臟六腑), 어떤 것 하나도 편할 수가 없었다.

김준엽이 조소앙을 만나고 온 후, 그리고 또 하나의 당이 생긴다는 소문을 들으면서 장준하는 정말 잠 못 이루는 밤을 지새야했다. 그런데 중경사회에 일대 파란을 몰고 온 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시 중경의 한인사회는 월 1회 정기적으로 모이는 모임이 있었다. 이번 모임은 일군을 탈출, 중경에 입성한 이 학도장교단이 합석하는 모임으로 치러지게 되는 것으로 처음부터 이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주최는 석익희가 부장인 내무소관으로 김구의 환영과 격려사, 그리고 장준하의 국내 실정보고가 계획되었다. 바로 이 장준하의 국내실정 이것이 도대체 화근(禍根)이었다. 이전의 경우론 이 월례회에는 김구 주석은 거의 참여하지 않았지만 특별히 학도단 환영의 성격으로 치러지는 모임이어서 참석한 것인데, 바로 이 자리에서 그 어처구니없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터져버린 것이다.

필자가 말하는 소위 그 “폭탄선언”(爆彈宣言)이라는 것이다. 확실히 그것은 기라성 같은 조국의 지도자들, 새까만 선배들에 대한 무례였고, 금도(襟度)를 넘은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장준하의 그것은 국내 실정보고와는 전혀 무관한, 어쩌면 오히려 임정을 향한 전쟁선포 같은 것이었다. 좌중의 눈물을 자아낼 만큼 처연하기만 하던 보고가 비장(悲壯)의 목소리로 바뀌어 가는가 하더니, 말의 톤만이 아니라 말의 방향이 달라져간다.

“우리는 여기 모이신 여러 선배님들께 조금이라도 힘이 되자며 수 천리 사선, 사경을 헤쳐 이곳을 찾아왔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한인 일병이라면 모두가 기피하는 중국 땅으로 배치되는 것을 큰 다행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여러 선배님들을 뵐 수 있다는 희망하나 대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은 요즈음 하루빨리 이곳을 떠날 길을 찾고 있습니다.”

장준하의 언성이 오히려 낮아지고 있었다. 격한 말을 쏟으려 할 때 장준하의 버릇이었다. “우리는 이곳에 오지 말고 멀리서 여러 어른들을 사모할 수 있었더라면 훨씬 이보다 행복했을지 모릅니다. 저 자신도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입니다” 장준하의 말소리는 더 낮아졌다. 모든 사람들이 전심으로 귀를 기울여야 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

“오히려 가능하다면 이곳을 떠나 다시 일본군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제 심정입니다. 제가 만일 일본군에 다시 돌아간다면 꼭 그들의 항공대에 지원하고 싶습니다. 일본군 항공대에 들어간다면, 저는 중경 폭격을 지원하여 여기 임정청사에 폭탄을 투하하고 싶습니다. 임정이 이렇게 네당, 내당 하면서 싸우고 있을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그 많은 사선을 넘으며 중경을 찾아온 것은 조국을 위하여 죽을 자리를 찾자는 것이지 결코 여러 선배들이 일삼고 있는 당쟁의 이용물이 되고자 해서가 아닙니다.”

장준하의 다음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임정 내무부 주관의 1945년 2월 워례회는 폭격맞은 폐허가 되어버렸다. 임정 요인들, 교민사회의 리더들은 전구동성으로 이미 회의장을 나가버린 장준하를 향해 “그놈 불러와라”, “임정을 감히 이렇게 욕되게 할 수가 있는가?”, “내무부장, 어디서 저런 놈을 불러온거요. 사과하시오” 그러나 그 누구도 죽기로 결심하고 말하는 사람을 제어할 수는 없었다. 장준하 사건은 그대로 묻혀버렸고, 한인 교민사회에 “무서운 젊은이들”이란 말이 회자(膾炙)되기 시작했다.

몽둥이부대와 화약탄

   
 
장준하의 그 폭탄선언이 있은 후에도 임정의 지휘부엔 결코 회심이 없었다. 이미 망해버린 나라, 또 망할 리가 없어서인가 장준하의 눈엔 이 임정마저도 사망선고 아래 있는 듯 했다. 교민월례회를 마치고, 2, 3일이 지나니 내일은 또 교민회관에서 댄스파티가 있다는 것이었다. 신한민족당(新韓民族黨) 창당을 위한 기금마련을 위해서라 했다.

장준하의 그 교민월례회에서의 폭탄선언의 도화선이 바로 그 정파놀음이라는 것 때문이었는데, 여전히 또 하나의 당을 만들겠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 기금을 모으자며 하는 행사라 했다. 장준하는 다시 일을 꾸민다. 그 파티장소를 급습, 파티장에 모인 무리들을 내몰아 버리겠다는 계획이었다.

이튿날 정한 시간, 파티가 무르익고 있는 시간이었다. 장준하를 비롯한 애국열혈대원 20여명은 각각 몽둥이 하나씩을 준비하는가 하면, 화약탄을 준비했다. 이 화약탄은 광탄이었다. 탁구공 크기의 원탄으로 바닥에 굴리면 밟혀 터지면서 파랑빛줄기를 발산하는 것으로 인체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었다.

먼저 진입단이 몽둥이로 경비원을 제쳤다. 실내엔 거나하게 취한 수많은 남녀들이 껴안고 춤을 추며 돌아가는데 진입한 대원들이 댄스홀 바닥에 화약광탄을 뿌렸다. 여기저기서 광탄이 터진다. 취해 돌아가면 춤꾼들은 기절초풍, 게다가 사면 벽을 따라 몽둥이를 든 무법자(?)들이 온 홀을 휘둘러 주시하고 있다. 댄스파티는 그것으로 끝나버렸다. 이런 일이 있은 후 8.15 해방으로 임정이 환국하기까지 다시는 중경의 한인사회에 이런 유의 파티가 열리는 일은 없었다.

장준하 중경(重慶)을 떠나다.

장준하가 <약속의 땅>으로 믿었던 중경은 약속의 땅이 아니었다. “내 조국을 찾지 못한다면 내 백골을 거기 묻으리라 던 그 땅 중경이 내가 묻힐 곳이 아니었다니…….” 장준하의 울어살이가 다시 시작이 된다. 약속의 땅이란 어떤 공간의 땅이 아니라는 사실을 장준하는 절감한다. 약속의 땅 그것은 내 안에 우리 안에(in me, in us)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장준하와 함께하는 50여명의 이 일단은 그 뿌리를 장준하에게 두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장준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할 씨앗들이기도 했다. 중경을 떠나자는 의견을 묶어낸 장준하는 김구 주석의 연대를 청했다. 금번 일군을 탈출해온 사관일단은 새 군단을 이루고 싶다는 간청을 올려 놀랍게도 그 허락을 받아냈다. 그렇지 않아도 김구는 그간 이 일단의 일거수 일 투족을 주시하고 있었고, 임정의 현재의 분위기, 현재의 자세로는 이들을 실제로 장악하기가 어렵다고 결론을 내려가고 있는 터였다.

김구는 장준하의 요청을 허락정도가 아니라 흔쾌히 지원하고 나섰다. “토교로 가라” 간청이 크게 수용되었지만 장준하의 가슴 속엔 날빛이 아닌 깊은 흑암이 덮쳐오고 있다. 중경에 더 이상 이대로 머물 수는 없다. 이후 얼마나 더한 분쟁, 분란이 있을 줄을 알 수 없다. 중경을 떠나는 건 옳다. 그래서 전 대원의 의사를 집합했고, 그래서 임정의 허락이 아닌 협조까지 받아낸 터인데 내 가슴의 이 먹구름은 어째서인가?

<필자 소개>

   
 
문대골

* 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 상임고문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교회 원로목사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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