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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하지 말라<김명수 칼럼>
김명수(경성대명예교수,충주예함의집) | 승인 2015.06.17 13:37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6:34;개역개정)

 "So do not worry about tomorrow; for tomorrow will care for itself. Each day has enough trouble of its own.(Matthew6:34;NASB) 

법정스님이 쓰신 책 중에 『무소유』가 있습니다. 스님은 살아생전에 많은 글을 모아놓은 것인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 대목이 있습니다. 법정스님은 송광사 불일암에서 작은 암자를 짓고 20년간 살다가, 강원도 평창 오대산 자락 화전민이 살다 버리고 간 쯔데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겨 여생을 보냈습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니 봄이 온 것입니다. 꽃은 우연히 피지 않습니다. 모진 더위와 추위, 장마와 가뭄을 참고 견디며 온 세월 속에서 꽃이 핍니다. 우리 자신은 어떤 꽃을 피울지 살펴야 합니다. 매화는 반만 필 때 좋고, 벚꽃은 활짝 필 때가 좋습니다. 복사꽃은 멀리서 보아야 좋습니다. 봄날은 갑니다. 여러분 자신의 씨앗을 활짝 피워보세요. 무소유란 무엇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 주어진 가난은 가난이지만,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진정한 만남은 서로에 대해 눈뜸이다. 그런 만남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살피고 가꾸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지 말아야 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좋은 친구감이 돼야 한다. 

   
 
스님의 무소유의 삶에서 우러나온 이와 같은 주옥같은 말씀들은 제 인생길을 밝혀주는 등불이었습니다. 법정스님이 산속 작은 암자에 기거할 때였습니다. 방문객들이 하나둘 선물한 난초가 여러 개가 되었습니다. 난초들은 홀로 지내는 스님의 적적함을 달래주는 벗이었습니다. 무엇이든 돌볼 대상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외로움을 달래주지요. 축복입니다.

어느 날 스님이 다른 절로 동안거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꽤 긴 시간동안 집을 비우게 되었는데요. 집안 살림살이가 없으니, 문단속 할 필요도 없이 몸만 훌쩍 떠나면 되는데, 한 가지가 스님의 마음에 걸렸습니다. 방에 있는 난초들이었습니다. 그냥 놓아두면 물을 줄 사람이 없으니 죽게 생겼고, 그렇다고 해서 산속에서 다른 집에 옮겨 돌봐달라고 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고민하던 끝에 스님이 알아차린 게 있다고 합니다. 한갓 난 한 포기를 소유하는 것조차도 번뇌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법정스님이 말씀하신 바대로, 소유하는 게 많아질수록 그에 비례하여 번뇌걱정도 늘어나는 게 인생살이인데요. 헌데 사람들은 그 반대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소유가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하고 돈이 많을수록 걱정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보다 적게 소유할수록, 걱정하는 일이 많이 생기고. 형제끼리 다툼이 생긴다고 생각하기 쉽지요. 돈 없으면 살림살이가 궁하게 되니 불행하고요. 친구들 사이에서도 무시당하기 쉽고, 마음에 상처받는 경우도 종종 생기지요.

헌데 생각을 깊이 해보면, 반드시 돈이 없어 불행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어요. 사실 부유하고 가난한 것은 고정된 기준이 따로 있는 게 아니지요. 얼마큼 가져야 부자이고, 얼마큼 가져야 가난한가요? 사실 고정된 기준이 없지요. 소유의 많고 적음에 의해서 부와 가난이 결정되는 게 아니지요.

원래 부요와 가난이란 실체는 없습니다. 부요와 가난이라는 것이 따로 별도로 있는 게 아니지요. 모두 남과 비교하는데서 부요하게 느끼기도 하고요. 가난하게 느끼기도 하지요. 행복과 불행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소유가 많아 행복하다거나, 소유가 적어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하고 돈이 적으면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남과 비교하는데서 행복과 불행이 생기는 것이지요.

원래 부요함과 가난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부요하고 가난하다는 생각이 있을 뿐입니다. 원래 행복이나 불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행복하고 불행하다는 생각이 있을 뿐입니다. 원래 더럽고 깨끗한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요. 다만 더럽고 깨끗하다는 생각이 있을 뿐입니다. 원래 많고 적음도 따로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적다거나 많다는 생각이 있을 뿐입니다. 선하고 악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요. 다만 선하고 악하다는 생각이 있을 뿐입니다. 성공과 실패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다만 성공했다, 실패했다는 생각이 있을 뿐입니다. 길고 짧은 것, 옳고 그른 것, 예쁘고 추한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런 것들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것과 비교하여 다만 그러한 생각이 있을 뿐이지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모든 문제는 결국 생각의 문제입니다. 마음의 문제이지요.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나의 행복과 불행이 엇갈리고요. 성공한 인생을 사느냐, 실패한 인생을 사느냐는 결국 내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경영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뇌구조는 단순해서, 생각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끌고 간다고 합니다.

법정스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스스로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라고요. 맞는 말씀입니다. 가장 강한 사람만이 스스로 약자가 될 수 있고요. 가장 부요한 사람만이 스스로 가난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가장 부자로 사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생각합니다. 온 세계와 그 안에 들어있는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라고 생각해요. 온 세상의 소유자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기독교인은 왜 예수를 믿나요? 예수를 믿어 복 받고 부자 되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요. 예수의 전지전능하신 힘을 빌려 살아생전 복을 받아 부자 되고, 죽어서는 천당에 가서 열 두 고을을 다스리는 축복을 받으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 이기주의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헌데, 막상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어떻게 사셨나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눅9:58) 세상을 창조하신 세상의 주인이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고 살았어요. 부자로 살지 않고요. 무소유의 삶을 사셨어요. 스스로 가난한 삶을 선택하셨어요. 예수님은 자기 소유의 집 한 칸 없이 사셨어요. 머리 둘 곳 없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걸식자의 삶을 사신 분이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삶의 스타일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먹고 입을 것에 대한 염려걱정으로 의기소침해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까마귀를 보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이 세상에 존재한 모든 생명체, 심지어 까마귀나 이름 없는 들꽃 하나의 생명까지, 그것들을 만들어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먹고 사는 문제로 머리 싸매고 고민하거나,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먹고사는 문제는, 내 문제가 아니라 나를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께서 책임져야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일 살아야 할 일로 걱정에 쌓여있는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 오늘 당장 머리 둘 곳도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에, 내일 잠잘 곳까지 미리 걱정해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돈이 없어 불행하다고 하지만, 실상 우리는 내일 일을 앞당겨 걱정하기 때문에 오늘을 불행하게 사는 경우가 많지요. 내일에 필요한 돈 걱정, 명품을 갖고 싶은 걱정, 내일 병에 걸리면 병원에 갈 걱정, 자식의 미래 걱정, 나보다 돈이 더 많은 사람과 비교하여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까 하는 걱정을 가지고 오늘을 걱정에 싸여 사는 경우가 많지요. 어떻게 하면 내일 더 큰 평수의 아파트, 더 좋은 자가용, 더 좋은 가구를 들여놓을까 하는 내일 걱정으로 오늘을 불행하게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실은 돈 없어 문제가 아닙니다. 남보다 돈을 더 많이 벌려는 욕망, 남보다 더 좋고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 하루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서,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산다면, 내일 생길 일을 앞당겨 걱정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인생에서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않는 무소유의 삶의 행복에 대해서 미국의 <무소유 연구소>(Simplicity Institute)가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첫째, 소유를 줄이면 마음이 편안하다고 합니다. 전 세계 2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87%가 소유물이 많을 때보다 적을 때 더 행복하다고 답했습니다. 소유에 대한 욕심을 줄이면, 돈 더 벌려는 욕망이 줄어들어 마음이 더 편안해진다고 합니다. 많이 소유할수록 소유한 것을 잃게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깊어져 걱정이 쌓이게 되지요.

둘째, 돈과 소유를 늘리는데 가치를 두고 이를 목표로 정신없이 살다보면, 정작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된다고 합니다. 돈 많이 벌어 멋진 물건을 소유하는데 정신을 팔리게 되어, 돈의 노예가 되어 살게 되지요. 소유하려는 마음에서 자유할 때, 정작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치 있고 자기가 하고 싶은 세상에 기여하는 일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셋째,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면, 남과 비교하는데서 따라오는 콤플렉스나 상대적 박탈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누구는 몇 평 아파트에서 살고, 무슨 브랜드 옷을 걸치고, 고급 헬스클럽을 다녀 몸매를 날씬하게 만들고, 성형하며 코를 오똑하게 세우고,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데, 지금 내 꼬라지는 무엇인가? 60대가 되면 흰 머리가 반백이 되고, 얼굴에 주름살이 패겨야 정상이고요. 아름답습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40대 피부를 가지려고 안달하고, 30대 생체나이를 유지하려고 발버둥 친다면 비정상이지요. 예쁜 게 아니라 추하한 것이지요. 젊으면 젊은 대로 아름답고, 늙으면 늙은 대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억지로 젊어지려고 안달할 일이 못됩니다.

비교하는 마음이 소유욕을 부추깁니다. 비교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도 줄어들지요.

소유하려는 욕망을 줄이고, 남과 비교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인생을 경영해야 합니다. 내일 일의 걱정에서 벗어나야 오늘의 삶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지금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육체의 욕망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얻으려는 온갖 명예욕을 벗어놓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참 인간으로써 사람다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김명수(경성대명예교수,충주예함의집)  kmsi@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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