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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그 다시 시작되는 생명장정 3토교(土穚)에서 서안(西安)으로
문대골 목사 | 승인 2015.06.18 17:59

서안(西安)으로 가다
토교부대의 대원들을 빼가는 임정의 내무부를 혼살내기 위해 몽둥이를 들고 임정청사로 달려간 대원들이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장준하를 비롯한 토교대원들에게 천우신조였을까? 어쩌면 전후좌우를 가릴 것 없이 몸뚱이 전체를 턱 내던질 수 있는 그 같은 엄청난 천명(天命)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천명(?)을 전하는 철기의 말 또한 거침이 없었다.

“나는 지금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찾고 있소이다. 지금 당장 그런 젊은이들을 찾고 있소이다.” 철기는 자신의 몇 마디 말에 순식간에 비장한 모습으로 바뀌어 버리는 토교부대원들을 임정청사의 일상 회의실인 듯한 한 방으로 안내했다.

철기 장군은 따라 들어온 대원들을 자리에 앉게 하고 잠시간 숨을 죽인 채로 있더니 입을 뗐다. “나는 정파 싸움이나 하는 이 중경이 싫소이다.” 장군의 그 첫마디가 또 다른 폭탄이었다. 모두를 멍한 넋 빠진 곳으로 몰아넣어 버렸다. 말하자는 입이었지만 철기 장군의 그 선언 앞에서의 토교대원들의 임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다시 장준하는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장준하만이 아니었다. 모든 대원들이 그랬다. 하나같이 이를 악물고 쏟는 눈물이었다.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눈물을 쏟으면서도 누구하나 우는 소리가 없었다. 죽기로 이를 악물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 임정에선 광복군 참모장인 나를 선두로 서안(西安)에서 미 전술 부대와 합작, 한국 침투작전을 위한 구체적인 훈련을 계획하고 있소이다. 나는 솔직히 말해 이 중경이 싫소이다. 빼앗긴 조국을 되찾는데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오. 나는 그대들의 애국의 눈빛, 애국의 자세에서 우리 조국의 탈환에 더할 수 없는 동지들을 만난 것 같소이다. 내가 곧 최용덕 장군과 연락을 해서 여러분을 한번 찾아가겠소이다. 오늘은 여러분들의 감정이 너무 격해 있는 듯하고, 나도 오늘 안으로 달리 처리해야 할 일이 있소이다. 자, 그럼 오늘은 크게 아쉬움이 없지 않소이다만 돌아들 가시오. 곧 다시 한 번 만나기로 합시다.”

   
▲ 광복군 시절 장준하(출처: 장준하기념사업회)
철기는 바로 그 계획, ‘한국침투작전’(韓國浸透作戰) 문제로 주석 김구와 숙의(熟議) 차 다녀 나오는 길이었다. 철기와 헤어진 후, 한동안 토교의 대원들은 멍해있었다. 말문을 잃은 것도 어이없어, 어처구니없어서도 아니었다. 한 절대 거룩의 실체에 잇대이는 것 같았다고 할까? 이제까지 ‘생사를 불문’하고, ‘목숨을 걸고’, ‘조국의 광복이냐? 죽음이냐?’ 말로만 지꺼려온 것들이 이제는 구체적 사건으로 덜커덕 목전에 놓여 버린 것이라고나 할까. 칠흙 같은 어둠의 중압을 들쳐낸 것은 역시 장준하였다. “주석님을 뵈야겠다. 주석님을 뵙고 진상을 확인해 봐야겠다. 사실의 확인이 없이 나는 돌아갈 수가 없다.” 빼앗긴 나라 망명 정부라해도 한 나라의 원수 아닌가? 그러나 장준하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는 비서실이며, 경호원이며 개의치 않았다. 거침없이 주석실로 달려가 주석실 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견제없이 장준하는 김구 주석을 대면했고, 대면하자마자 일언지하 광복군의 한국침투작전계획 사실여부를 물었다. 장준하의 가슴에 김구는 대인(大人)으로 모셔졌다. 체제 안에서라면 무례하기 그지없는 장준하였지만 연만(年滿)의 동지처럼 김구는 그 투박한 큰 손으로 장준하의 두 손을 꼭 쥐어주며, “장군, 그건 사실이야. 너무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어서 심사숙고 하고 있어,...” 김구도 장준하도 더 다른 말이 있을 수가 없었다. 장준하는 조용히, 정말 조용히 주석실을 뒷걸음질로 돌아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부대 안에 전령이 내려졌다. “내일 정오, 부대장인 최용덕 장군이 철기 장군을 모시고 토교부대를 방문, 도교대원들과 점심을 함께 하게 될 것이다”라는 전령이었다. 전령 그대로 다음 날 정오 과연 최용덕 대장과 함께 그 신화적 전투지도자 이범석이 토교를 찾았다. 이날 점심은 정말 풍성한 오찬이었다. 토교의 모든 주민들의 정성과 애정이 듬뿍 담긴 식탁이었다. 철기 장군이 손수 자비를 내놓아 준비한 것이라 했다. 점심을 마치고, 최 장군이 철기장군의 내방 이유를 잠시 설명한 후 이어서 철기 장군이 그 입을 열었다.

“지금 조국은 목숨을 바칠 젊은이들을 찾고 있소. 지금 당장 말이요.” 철기 장군은 한국광복군 참모장으로 서안에 주둔한 광복군 제2지대장으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O.S.S 작전수립, 수행에 있어 광복군 총책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O.S.S는 Office of Strategic Service의 약자로 미국의 전략첩보대를 의미한다. 현 CIA의 전신이다. 중국에서의 O.S.S 활동은 앞으로 있을 미군의 일본(日本) 상륙작전을 위한 고도의 예비공작 단계였다. O.S.S 본부는 곤명에 있었고, 그 본부장은 위기지역의 근무만을 자원하는 지휘관으로 미국방 라인에서는 이미 소문이 나 있는 다나반(Gen. Donavan) 소장이었다. 그는 해외전략기구로서 정보활동과 유격활동을 병행해 적의 후방지역을 교란시키는 공작을 그 사명으로 하는 O.S.S 중국 책임관으로서의 자신의 중책에 더 할 수 없는 자존감을 지니고 있었다. 서안지구의 O.S.S 대장은 싸젠트 소장이었고, 그를 중심으로 문관, 위관, 하사관 등을 포함 20여명의 교관들이 일군(一群)을 이루고 있었다.

철기 장군의 본론이 시작된다. “나는 여러분들이 금번 이 작전에 참여해주었으면 하오. 여러분들은 우리나라의 환난기 속에서도 대학교육을 받은 자들이고, 게다가 목숨을 걸고, 일군 탈출에 성공한 자들이고, 불같은 조국애로 충만한 사람들이요. 우리 O.S.S에서는 여러분 같은 이들을 찾아왔소. 내가 여러분을 만난 것은 나 철기에게가 아닌 나라를 강탈당하고 망국에 호곡하고 있는 대한민국 백성들에게 내리신 천우신조가 아닌가 하오. 내가 엊그제 청사에서 잠시 말한 바 있소이다만 이제 우리는 우리나라의 일을 흐르는 역사에만 맡겨둘 수는 없소. 우리가 새역사를 만들어야 하오. 그러나 이 일은 오직 한길이 있을 뿐이오. 그것은 우리가 죽어야만 한다는 것이외다. 해서 털끝만큼도 강제하고 싶지 않소. 결정권은 분명히 말하건데, 여러분의 것이오. 결과는 최 장군을 통해 알려주시오. 시간이 많지 않소이다. 이상.”

철기는 장군이었다. 생사가 명확히 걸려있는 거사에도 그의 언명은 간단했다. 전선의 생명은 그런 것인가? 철기는 돌아갔고, 최 대장이 부대원들 앞에 다시 섰다. 어떻게 할 것인지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결정하자는 것이었는데, 역시 장준하였다. “대장님, 시간적 여유가 왜 필요하다는 것입니까? 조국의 독립, 민족의 해방을 위해 이미 중경을 향할 때부터 결단했던 일이었습니다. 조국을 위해 죽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니 그것만으로도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모든 대원들 위에 칠흑 같은 중압이 왔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까지도 들릴 것 같았다. 그러더니 한 둘씩 흐느끼기 시작한다. 드디어는 모두가 얼싸안고 호곡을 한다. 누구 한사람 진정하라며 달래는 이도, 어떻게 할거냐며 입을 여는 이도 없었다.

이날이 1945년 4월 25일, 중경에서 토교에 온 것이 2월 20일이었으니 토교에 온지 꼭 25일째 되는 날이었다. 임정에 개인적 야욕을 품은 이들의 사주(使嗾)로 인해 10여명에 이르는 대원들이 이탈한 것은 장준하를 비롯한 전 대원들에 전신을 후비는 비통이었지만 그들을 제외한 대원들은 「죽음의 선택」에 일자진을 이루었다. 장준하는 요즘 몇날, 지신의 비품을 제정리하는 일, <등불> 5호의 발행과 그 배포하는 일로 정말 바쁘게 움직였다. 그것은 장준하의 천품이었다. ‘그에겐 지금 해야할 일’보다 우선해야할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죽어도 미결이 없는 삶’그것이 장준하의 삶의 좌표였다. 1호부터 5호까지의 <등불> 다섯 권, 쓰까다 탈출 이후 어젯밤까지 써온 일기 여섯 권, 그리고 백범 주석의 친필 서신 한통을 보자기에 쌓아 가방에 담았다. 그것은 고국을 떠난 이후 이제까지의 장준하가 살아낸 항일의 역사였다.

1945년 4월 29일, 아직 어둑한 미명의 새아침! O.S.S 첩보훈련을 자원한 대원들이 임정청사 앞마당에 집결했다. 서안 두곡(杜曲) 첩보부대로의 이송팀이었다. 장준하는 후에 자신이 ‘거기’ 서 있던 때, ‘치미는 기쁨’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마치 임정수립기념식을 방불케 하는 대열이었다. 한 사람 빠짐없이 주석 김구, 부주석 김규식을 비롯해 20여명의 국무위원들이 참석했고, 중국 전구의 장성들 수인이 이 대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만장을 이루고 있었다. 김구 주석이 단에 올랐다.

“여러분들의 젊음이 부럽소이다. 여러분의 젊음이, 여러분의 훈련이 끝나기 전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 서안을 한번 방문하겠소.” 백범은 주먹으로 눈물을 문지르며, 비장을 토했다. “오늘 이 바로 4월 29일, 내가 바로 13년전 윤봉길 군을 죽을 곳에 보내던 날이오. 또 하늘이 꾸민 일인지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오.” 백범 주석은 손목의 시계를 풀어 들더니 대원들에게 들어 보이며, “여기 윤봉길 군의 손목시계가 있소. 윤군이 그 죽을 곳으로 가며, 내 시계와 바꿔 차고 갔소이다. 나와 시계가 아니라 생명을 바꿔간 거지요. 바로 같은 날 오늘, 앞으로 윤 의사와 꼭 같은 임무를 담당할 여러분을 또 떠나보내야 하는 내 심정은 괴롭기 그지없소. 그러나 그날 윤의사의 눈망울이 여러분의 눈동자로 빛나고 있음을 보오. 우리 대한민군은 반드시 여러분의 생명과 그 해방을 바꾸게 되리라 믿소…….”

백범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자, 이제 출발.” 이범석 장군의 고성이었다. 미군용 트럭이 대기하고 있었다. 서안으로의 행군은 중경 비행장에서 미군용기를 이용하게 된다. 서안으로의 비행은 약 세 시간쯤 소요되는 거리란다. 장준하의 가슴 속에 ‘치미는 기쁨’, 사람이 어느 지경에 이르면 죽음의 도상에서도 기쁨이 가능한 것일까? 죽음을 기쁨으로 대할 수 있는 지경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필자 소개>

   
 
문대골

* 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 상임고문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교회 원로목사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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