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 전 몇 명의 동료들과 대구와 카레를 먹으면서 잡담을 나누다가 릴레이 칼럼이 탄생했고, 그 첫 주제로 ‘생명의 가치와 가격’이 채택되었다. 거기에는 생명의 가치가 가격으로 환원되는 오늘의 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겨있다. 나의 순서가 되어, 이 명료한 주제를 언급하기 위해서 자판을 두들기지만 글이 나가질 않는다. 왜일까?

생명에 관한 수사학은 허무에 굴복하고, 윤리학은 위선의 명분이 되어버린 현실경험이 생각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성과 영성에 관한 많은 담론이 생명을 짐승화 하는 구도를 깨뜨리는 돌파구가 되기보다는 그 하부체계나 종속변수가 되어버리는 이 현실에서 ‘생명의 가치’에 대한 담론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지식인과 종교인이 구걸하는 모습을 비일비재하게 목도한다. 하나님께 참 생명을 구하지 않고, 제도에 목숨을 구걸한다. 생명의 특징인 자기초월이 인간사회에서는 작동을 멈춘 듯하고, 생생한 것은 맘몬의 그물에 사로잡힌 낡은 문명의 몸뚱이들뿐이다. 요즘에는 황교안, 그 성실한 침례교인이 수많은 탈법의 흔적과 정신의 오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움 없이 국무총리가 되고자 뭉개는 것을 보면서, 생명의 가치를 논하기 싫어졌다. 나 또한 스스로 가치를 잃은 존재가 되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몸부림쳐 왔던가.

그래도, 말하자면 이렇다. 생명의 존재론적 가치는 무한하다. 그 가격은 매길 수 없고, 비교는 무의미하다. 한 생명 안에는 우주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근대의 개체론적 사유는 각 개체의 가치를 가격으로 쉽게 환원시켰지만, 탈근대의 관계론적 사유는 그런 명석판명한 생각을 포기한다.

모든 생명(유기체)은 자기 환경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하나의 생명은 우주를 필요로 한다. 몸과 영을 가진 인간 존재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물, 바람, 풀, 흙, 박테리아, 원숭이, 역사와 문명, 여러 별들과 그 너머의 것들이 필요하다. 이 사실은 두 개의 논리를 가능케 한다. 가치로 보느냐, 비용으로 보느냐에 따라 추론은 방향을 달리한다.

만일 한 생명이 그 존재 안에 우주를 담고 있다면, 그 가치는 우주적 무게를 가진 것으로서 측량할 수 없이 고귀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그 가치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생명이란 그 존재구성을 위해 우주를 필요로 하는 비효율적인 존재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생태적 시선으로 볼 것인가 경제적 시선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생명의 가치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느껴질 것이다. 문제는 이 둘 사이에서 무엇을 해석의 도구로 사용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작업에 반드시 필요한 인문학적 감각이다. 

인문학에서 생명에 대한 논의는 설명되기보다는 주장된다. 일차적으로는 생명의 가치가 외면되는 체제가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비판적 주장이요, 더 나아가서는 생명(生命) 즉 ‘살아있음의 명령’을 생명의 의무로 여길 것을 촉구하는 주장이 그것이다. 생명의 가치에 관한 서정주의(센티멘털리즘)적 찬양은 언어의 순수성이라는 마약에 도취된 정신이 되기 쉽다. 그것은 길들여진 영혼이 내뱉는 독백과 비슷한 냄새를 풍긴다.

생명은 법칙(law) 너머에 있다. 생명의 존재론적 가치는 이미 있는 것에 있다기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것에 있다. 현실에서 생명의 가치란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니요, 자기창조, 자기극복, 자기구원을 통해 주장되고 표현되는 것이다. 백척간두에 선 위기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생명은 자기 현실을 대체로 그렇게 느낀다.) 하늘만 믿고 한 발을 내딛는 모험, 거기에서 생명의 고귀한 가치는 몸을 입고 탄생한다. 인간은 거기에서 살아있음의 가치를 느끼며 전율한다.

아마 내가 그리워한 생명담론은 그것이었나 보다. 생명의 가치란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서 그 의미를 인정받는 것이라기보다는, 오고 있는 것에 대한 감각과 와야만 하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맘과 뜻을 모아 극기복례(克己復禮)의 길을 걷는 정신에 의해서 표현될 뿐이라는 것 말이다.

인간은 ‘생각’을 자신의 자연(본성)으로 가진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생명은 ‘얼’의 문제이다. 얼이 나간 얼간이, 얼이 썩은 어리석은 이에게 생명의 가치에 관한 이야기는 무의미하다. 크고 힘 있는 것들에 줄을 대기 위해서 스스로 얼을 빼고 종이 되는 삶의 체제, 그것을 뒤흔드는 운동에 대한 그리움에서 종교와 신학과 인문학은 계속 움튼다.

광대무변한 우주와 연합하여 피어오르는 생명, 우리는 생명의 어떤 가치를 무엇을 위해서 말하려 하는가? 갈릴래아의 한 청년은 다가오는 나라(바실레이아)를 맞기 위해 기존의 삶을 돌이키는 것에서 생명의 길을 찾았다. 그의 간절함을 우리가 품을 수만 있다면, 생명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요된 관심과 길들여진 희망을 몸에서 떼어내고, 영원한 분과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감각을 길러야 한다.

누가/신은 너를 필요로 하는가? 존재로써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에게 참으로 있어야만 하는 것을 아는가? 생명으로 가는 길은 시련의 연속이다. 우리는 참으로 생명의 길을 걷기 원하는가?

▲ 필자 김희헌.     한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목사가 되었다.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조직신학과 종교철학을 수학한 후, 유기체철학에 기초한 기독교 세계관을 정립하기 위한 연구를 어어가고 있다. 한국민중신학회를 중심으로 학술활동을 하면서, 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로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저서는 다음과 같다. [서남동의 철학, 2013], [민중신학과 범재신론, 2014] [한국신학의 선구자들, 공저]"

김희헌 목사  kimhiheon@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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